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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스크랩 ? 클래식 음악을 듣기 위한 기초지식
차이코프스키 추천 0 조회 123 11.10.29 18:0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클래식 음악을 듣기 위한 기초지식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의 정의

‘클래식’이란?

21세기가 문화의 시대라는 건 이제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제 세상에 대항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문화’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인지 근래 들어 부쩍 클래식 음악을 알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 듯 하
다. 물론 기존의 클래식 음악 팬들이 어렵게 지켜 온 클래식 음악이기에 이러한 문화의 세기에 적
절한 코드로 존재할수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클래식 음악이란 과연 무엇인가?

대중음악과는 다른 음악으로, 혹은 격이 높은 음악이라든지, 좀 잘난 체 하는 부류들이 그야말로
향유하는 음악이라는 식으로 막연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세밀히 들어
가서 ‘클래식’이란 용어 자체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클래식(Classic)’이란 뜻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먼저 ‘최고의 클래스
(class)’의뜻에서 파생한 것으로 (예술품 등이) 일류의 최고 수준의~,표준적인 단아한, 고상한~,
그리스&로마 문예시대의 고대 그리스 라틴의 예술 형식을 본받은 낭만주의에 대하여 고전풍의~,
역사적, 문화적 연상이 풍부한, 유서 깊은~, 그런 가하면 권위 있는, 정평 있는, 유행에 메이지 않
는 전통적인~’이라는 식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클래식(Classic)이란 '고전적(古典的)'이라는 뜻이다. 즉,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
모범적인 작품이나 어떠한 양식에 대한 가치 개념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얼른 감이 안 잡힌다
면 이러한 예를 들어보자. 이 용어의 기원이 된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고대 로마
시민은 모두6계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중 제일 상위층인 계급을 ‘클라시쿠스(Classicus)’라고
하였다. 이 표현에서 유래하여 가장 ‘상위 급의’, 또는 ‘최고의’라는 뜻에서 예술 상의 최고 걸작을
일컬어 '클래식’, 즉 ‘고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에 더해 고대 문예의 부흥을 꾀한 르네상스를
경험한 유럽에서 예술의 이상적 전형으로 생각되었던 그리스·로마의 미술·문예였으므로 가치판단
상 또는 양식상 ‘고전적’이라는 표현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넓은 뜻에서는 각 시대마
다 나름의 기준에 따른 비판을 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아 그 가치가 확인
된 하나의 모범, 따라서 시대의 변화에도 변치않는 영원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예술품도 가치판단
상 ‘고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리스· 로마의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시대, 다른
민족의 예술품이라도 그 문화권에서 모범적 이고 전형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경우는 ‘클래식’,‘고전
적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단순히 양식상의 용어로서 ‘클래식’이라고 하는 경우는 ‘낭만’ 또는‘바로크(baroque)’에
대립되는 유형개념(類型槪念)으로서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형식상의 분류로서 ‘클래식’
이라는 기본적인 표현이 주는 엄격한 형식이라든지, 통일적이고 조화된 구성, 명석한 표현 등이
양식적 특징으로 정리되는 기념이라 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의 뜻

여기까지 ‘클래식’이란 표현의 뜻을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다시 클래식 뮤직, 음악이란 뜻을 정확
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 표현 역시 정확히는 ‘클래시컬 뮤직(Classical Music)'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클래식은 형용사이긴 하지만 ‘고전’이라는 뜻의 명사로도 쓰이기 때문에 ‘뮤직’이라는 명사
앞에는 형용사로만쓰이는 ‘클래시컬’을 붙이는 것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표현이 일반화되어 있으므로 일단 클래식 음악
이라고 통칭하기로 하고, ‘클래식 음악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서양의 전통 예술 음악을 이르
는 말’ 또는 ‘서양의 고전파의 음악’, ‘옛날에 만들어 진 것으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도 현재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는 예술 작품‘, 또는 ’고전 음악’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클래식을 표방하는‘클래식 음악’은 말 그대로 고상하며 유서 깊고 최고 수준의
음악, 옛날에 만들어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는 음악, 그러면서 서양의 전통 예술 음악, 또는
서양 고전파의 음악이라는 뜻이 된다. 이 개념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이렇게 대비해 보면 좋
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인데, 이는 시간
개념으로 해석해 보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옳은 비교라고는 할 수 없지만 흔히 말하는 대중음
악의 경우와 비교해 보자. 대중음악은 말 그대로 당시 사회 대중의 음악이다.

즉, 듣는 이가, 혹은 만든 이가 현재의 삶을 표현해 낸 것이기 때문에 시간상으로 ‘단명’하는 경우
가 많다. 물론 이는 대중음악의 질을 놓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대중이라는 보다 많은 이들의 감
성을 추구하는 음악이니 만큼 일정한 ‘유행’이나 시대적 특성들을 포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중
음악의 속성이라고 얘기할 때, 그러니 시간이 흘러 유행이나 대중의 추구하는 바가 달라지면 그
음악은 지난 시대의 것으로 잊혀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음악들도 많다는 것을 간과하
지 말자.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비틀스나 퀸, 이런 음악가들의 음악을 그래서 대
중음악의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떠올리면 수긍이 갈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비교적 당시 시대의 상황이나 한창 유행하는 개념들을 개의치 않은 음악이기 때문
에 시간적으로 장기 집권이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는 당대에는 결코 이해받지 못하다가 오랜 시간
이 흐른 뒤에 후손들로부터 추앙받는 음악들이 얼마든지 클래식에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
서다. 또한 마리 왕트와네트 시절에나 지금에나 일단 들으면 우선 가볍게 흘려 넘기게 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클래식 음악의 진정한 가치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클래식 음악은 단 시간에 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작곡자든, 연주자든 감상자든, 클래식 음악은 일단 어느 정도의 수련과 훈
련, 시간들이 포함되어야 가까이 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점이 일단 클래식 음악이 아무렇게나 취
급될 음악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준다. 흔히 얘기하듯 ‘가방 끈이 긴 사람을 선뜻 무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소 무리스런 비유이긴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 볼 때 ‘클래식
음악’은 고상하고 유서 깊은 최고 수준의 음악으로, 오래 전에 만들어 졌지만 시대에 상관없이 사
랑을 받는 음악이며 넓게는 서양의 전통 예술 음악, 좁게는 서양 고전파의 음악을 말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양식적인 면에서의 정의는 이렇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은 넓은 의미로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나, 그레고리아 성가
의 코랄, 나아가서는 현대음악까지를 광범위하게 포함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클래식 음악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바로크 음악’에 속하는 비발디의 <사계>나 텔레
만, 재즈와 클래식의 경계를 부순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 오늘날 광고 등의 상업 음악으로 가
장 많이 이용된다는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브라나>같은 현대 음악까지를 간단하게 클래식, 또는
고전 음악이라고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클래식 음악’이라는 개념에는 ‘서양 고전파의 음악’이라는 뜻도 들어있다. 그런
탓에 정확히 말하면 고전 음악, 클래식 음악이라는 말은 옳지 않은 표현이라는 주장이 있고, 이
주장은 옳다. 즉, 우리가 ‘클래식 음악’, ‘고전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편의상 대중 음악과 반
대되는 의미에서의 음악을 통칭해서 부르는 것이지, 그야말로 정말 편의상일 뿐 온전한 표현은 아
니라는 얘기다. 그 이유는 ‘클래식(Classic)’이란 것이 음악사 속에서는 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클
래식 음악의 근간이 되는 서양 음악사를 보면 크게 두 갈레로 나뉘어지는데, 그 한 갈레가 18세
기 후반의 작곡가들인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 음악, 즉 클래식
음악이다. 또 한 갈레는 그 뒤를 이어 19세기 이후 슈베르트와 멘델스존, 바그너와 브람스로 대표
되는 ’낭만 음악(Romantic)'으로 분류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가 쉽게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통 음악의 한 부분만을 지칭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고전 이전의 음악인 흔히 ‘그레고리안 찬트’로 분류되는 중세와 16세기 교회 음악과
바로크 음악, 인상파 음악, 국민악파 음악, 현대 음악 등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대개는 고전과 낭
만 두 갈래로 분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사의 한 갈레인 클래식, 고전 음악이 전 장르의 음악을 대표해 지칭되는
이유는 고전 음악이 지니고 있는 나름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사실 서양 음악의 뿌리는 종교 음악
에서 비롯되 었다. 그러던 것이 중세의 암흑기를 지나 르네상스, 바로크를 거치면서 눈부시게 발
달되었다 그래도 바로크까지는 음악이 종교에 예속되어 있었으며 음악가들 또한 종교를 무시하고
는 입지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고전파는 이렇게 종교에 예속되었던 음악을 그 굴레에서 해방시켜 순수하게 음악을 위한 음악을
정립하려는 예술 운동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종래까지의 신을 위한 음악에서 탈피해 형식과 내용
의 일체화를 중시하고 균형이 잡힌 절대 음악을 지상의 예술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즉 ‘신’보다는 ’사람‘을 위한 음악, ’음악‘을 위한 음악을 이루어 나가겠다는 굳은 결의였던 셈인데,
이 운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는 명확하게 설정하긴 어렵지만, 그 성숙기가 18세기 후반 하이
든, 모차르트의 시대에서 비롯되어 베토벤에 의해 그 위업이 완성된 것으로 대개는 본다. 특히
옛 그리스나 로마처럼 보다 정돈된 형식을 가진 음악을 써보자는 주의였기에 ’고전파‘, 즉 옛 것에
서 배우자는 의미의 뜻이 붙은 것이다.

이러한 고전주의의 악풍은 그 후 낭만파 음악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형식의 자유화를 꾀하면서
일종의 조성 파괴의 방향으로 향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겐 불협화음의 어려운 음악이 되
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그 잘 잘못은 어찌되었든 그러한 이유로 해서 고전파 음악이 지니는 형
식과 격조를 바탕으로 한 예술성은 타 장르에서는 찾기 힘든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반면에 이러한 논리에서 보면, 고전 음악이 반드시 하이든, 모차르트 혹은 그들과 같은 시대의 작
곡가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도 된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 보면 고전 음악이 하이든과 모차르트로
대변되는 시기의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결국 고전 음악이라는 것은
굳이 시간적인 개념과는 상관없이 어떤 형식이 요구하는 법칙에 따라 질서와 규격을 말하는 작품
이라는 점에서, 굳이 전체 음악을 대표하는 명칭이 된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는 것이다.

클래식을 통칭하여 ‘고전음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렇듯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것을 선택할
때 가장 최고의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모두들 바라고 있다는 선상에서 출발
한다.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 음악은 사람들이 바라는 가장 높은 질의 음악, 고순도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함없는......우리의 경우, 클래식 음악을 ‘고전 음악’이라
고 번역해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것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회에 가 본 이라면 알겠지만, 클래식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종종 지적하는 연주자들
의 연미복이나 화려한 드레스도 결국은 이러한 고 품질을 위해 차린 격식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음악은 ‘클래식 음악’인가?

클래식 음악이 오랜 시간 검증받아 온 음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면 현대 음악은 클래식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검증’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인데 현대 음악도 클래식에 포함되어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하는 것이 맞다.

왜 그런 가하면 현대 음악은 현재 만들어지고 연주되는 음악이지만 그러한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오랜 기간 수련하고 교육받은 음악인들이 만들어 내고 연주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원칙적으
로 ‘클래식 음악’의 범주에 넣는다.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 음악에는 예전에 만든 것뿐만 아니라 현
재에 만들어지면서도 미래에까지 그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예술작품이라는 부분 역시 첨가되어야
한다.

-문화의 시대에 클래식 음악이 돋보이는 이유

클래식을 얘기하면 그때부터 지나 간 시대의 사람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영화를
많이 본 탓이지만, 무슨 무슨 귀족 부인과, 금빛 가발을 쓴 음악가의 사랑...뭐 이런 것들은 연상하
며 마치 먼지 뒤집어 쓴 골동품을 보는 듯한 눈초리, 아마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은 그런 시선을
받아내는 기분을 잘 모를 것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하는 표현이 먼저 나오는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물론 지금은 테크노가 판
치고 인터넷과 사이버 세상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가는, 그래서 1분 1초만 한눈을 팔아도 따라
잡을 수 없도록 휙휙 돌아가는 세상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 앞에 ‘클래식’이라는 단어는 그냥 붙는 게 아니다. 아무리 이것 저것이 바뀌
어도 변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있는 것, 그래서 더욱 시간이 갈수록 그 빛을 발하는 것, 그것이
‘클래식’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는 장르인 것이다.

더구나 클래식은 음악이다. 그 얘기는 무슨 뜻이냐 하면 음악은 소리이고 선율이기 때문에 언어가
필요 없다는 너무나 큰 장점이 있다. 오늘 날 인터넷의 등장으로 가장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자국의 언어를 최고의 자부심으로 알고 지내던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의 강국들이다. 그들은
영어로 소통될 수 밖에 없는 인터넷의 특성 상, 그간 자국의 언어에 대해 지켜 왔던 자긍심을 땅
에 내려 놓아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영어를 모르고서는 그야말로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는 현 시
대를 살아갈 수 없다는 생존 법칙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음악의 경우는 다르다. 음악은 오히려 서로 인종이 다르고 말이 다른 전 세계의 사람들을
하나의 감흥으로 묶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때문에 음악 앞에서는 모두가 그저 하나의 사람이라는
것, 그 외의 큰 의미는 따라붙을 수가 없다.

이제 더 이상 이태리 출신이 아니더라도 최고의 성악가는 얼마든지 있고, 독일의 카라얀이 아니더
라도 일본인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 한국의 정명훈은 본 고장의 지휘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는
무슨 뜻인가? 이제 더 이상 음악 앞에서 어떤 나라 출신이고,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한국의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정명훈이나 조수미, 신영옥 같은 세계에서 인정
받는 음악가들은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세계 무대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이다. 어느 나
라 사람이건 정말 음악을 잘 하는 것, 그것이면 족하다는 것, 세계가 인정하는 음악가의 자격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다녀갔던 세계적인 테너 호세 카레라스는 ‘음악은 이제 세계의 언어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얘기를 역시 카레라스와 쌍벽을 이루는 플래시도 도밍고가 했는데, 그들이 그렇게 얘기
할 수 있는 것은 하루가 다르게 전 세계를 돌며 그들 스스로 체득한 감각이며 진리이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잔치인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앞두고 성대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리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카레라스나 도밍고가 소리 높여 부르는 <축배의 노래>는 이제 더 이상 오페라 속에
나오는 아리아도, 이태리 오페라의 음악도 아니고, 그 음악을 즐기는 모두의 것이므로. 거기다

변하지 않는 고급의, 최상품의 음악이라는 것, 클래식 음악이 소멸할 수 없는, 게다가 지나간 시대
의 유물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지금은 변화의 시대다. 그리고 변화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의 공통된 심리다.
그러다 그 거듭된 변화에 싫증을 느끼는 것 역시 사람들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에 사
람들은 어디에 눈을 둘까? 바로 변하지 않는 것, 그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제5원소‘라는 영화가 있다. 세상을 구원할 마지막 요소가 바로
’사랑 ‘이라는 뜻의 영화인데, 하늘로 택시가 날아다니는 그야말로 최첨단의 시대에 사람들은 그러
나 변하지 않는 어떤 가치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인공위성에 첨단 콘서트 장을 만들고 인공으로
가수를 만들어 오페라 아리아를 노래하게 한다.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졌지만 잊고 싶지 않은 가치,
혹은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움에의 열망, 바로 이러한 것들을 대변해 보이는 장면이다. 이러한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한 추구, 그것이 바로 새로운 세기에 대항해야 할 명제라는 것을 21세기
를 맞는 세계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http://cafe438.daum.net/_c21_/home?grpid=1Ll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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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10.21 08:34

    첫댓글 처음 들어보는 소중한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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