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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에게서 베르그송이란^-^
류종렬, 2019, 12, 2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같잖은 생각’(nothos logos)” 여섯째 마당의 부분 발췌 발표용.
윤구병: 드문 삶.
스피노자 윤리학 마지막 구절에는 “드물고(rare) 어렵다(difficile)”고 한다. 캉길렘은 세상에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 말고도, “별종”((l’anomalie, 덕후)도 있다고 한다. 나로서는 별종에는 파라노이아와 스키조가 두 종류가 있는데, 그를 스키조에 가깝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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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이가 남에도 대학원에서 내가 형님을 만난 것은, 군대를 갖다와 석사과정에 들어온 철없는 이와 “뿌리깊은 나무”편집에 손을 떼고 박사과정에 들어온 노련한 이 사이의 만남이었다. 이 만남은 나로서는 행운이자 숙명으로 삼고 있다. 그 대학원 시절에 그에게 찾아가 형님하자고 했을 때, 그는 공부를 해야지, 형님하면서 패거리를 먼저 만들면 안 된다고 했지만, 남들이 뭐라 하든 여전히 나에게 그는 선배님이고 형님이다. 그리고 왜 형님하려고 했는지 기억에 가물거리지만, 또한 무언가 잘 몰랐었지만, 그에게 일반적으로 사고하는 방식과 달리 사유한다는 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사유는 무한정 깊이 들어가려하고 또는 무한히 높이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욕망 덩어리라는 점에서, 나는 그를 좋아한다. 내가 나중에 플라톤 보다 소크라테스에, 그리고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보다 플로티노스에 빠져들어 갈 때도, 형님의 사유가, 끝없는 추구로서 ‘(향연의 소크라테스처럼) 사랑(욕망)’이라고, 그의 표현으로 사랑(思, 사)이라고, 변증법이라기보다 생산하는 탐구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편으로 박홍규 선생님 제자들 중에서 이태수, 김남두 등은 플라톤주의에 머문다고 생각하는데 비해, 윤구병에게는 헤라클레이토스, 에피쿠로스, 스피노자, 맑스, 벩송 등이 뒤 엉켜서, 다른 방향을 찾아가고 있었고, 이들 사상들 사이에 뒤섞이는 선들들에 따라서 이탈의 방향과 속도가 다르다고 느꼈다. 나중에 나가르주나(철학 다시 쓴다에 한번 등장한다)를 덧붙이게 되면, 이탈의 속도와 강도는 달라진다. 서양철학에다가 인도와 중국 뒤섞으면서, 우리나라의 고유성(특이성)을 불교와 연관하여 찾으려는 듯이 보인다. 나로서는, 플로티노스, 스피노자, 벩송, 들뢰즈/가타리로 이어지는 내재성의 사유에는 불교 냄새가 진하게 나서, 아페이론이라는 일자의 근원이 화엄과 같은 세상이라고 상상하고 있기도 했었다.
그보다 중요한 측면들이 있다. 달리 살기 또는 달리 생각하기와 마찬가지로, 평상시에도 그의 사유에는 또는 박홍규 선생님의 수업에서도 접선에서 이탈이라는 측면이 있었는데, 그 이탈(탈주)의 영역이라 할 수 있은 것이 탈주선들과 닮았다. 이 탈주의 선들이 제국이나 주변국과는 다른 풍경을 지닌 풍토와 생태에 따른 우리나라 고유의 얼굴성을 만든다고 본다. 농담으로 신석기 시대 고인돌과 선돌의 유적이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70퍼센트 가까이 있다고들 한다. 대륙의 서쪽은 전쟁의 승리자가 구원을 위해서 가는 영토라면, 대륙의 동쪽은 새로운 삶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삶은 달리 말하기에도 있다.
중요한 측면 중에서, 우선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그의 관심이다. 여기 “같잖은 이야기(nothos logos)”는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그의 중요한 작업은 우리말 사전의 작업에 있다. 11년간 처음부터 끝까지 보리 국어 사전(2008)을 한글자한글자를 다듬었다고 한다. 언젠가 선생님의 묘소를 다녀오는 길에 그는 “나의 작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말 사전을 만들고 있고, 지금도 덧붙이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고,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를 창간(1945)하기도 하고, 연극에 관여하면서 극작가이도 한 철학자 사르트르와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윤구병은 일찍이 단편 소설(대학시절)도 썼으며, 한글 잡지 뿌리 깊은 나무 편집장을 지냈으며, 철학자로서 농부가 되어 일기체 글도 남겼고, 게다가 어린이 동화를 여러 편을 쓰면서 문학적인 소질도 드러내기도 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 이래로 유태계 세파라드 철학자들의 공통성은 의학을 연구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데카르트까지도 그러하고, 스피노자와 니체도 선과 악의 문제를 건강과 건강하지 못함으로 다루기도 했다. 또한 벩송도 물질과 기억(MM, 1896)에서 의학과 생리학의 연구가 있었고 실험의학 연구 입문(1865)을 쓴 베르나르에 대한 존경으로 「끌로드 베르나르의 철학(La philosophie de Claude Bernard, 1913)」을 썼는데, 윤구병은 2007년(예순 넷) 8월에 ‘민족의학 연구원’(재단)설립하면서, 통속 한의학 원론(학원사, 2007년 03월)을 썼으며, 인민들이 스스로 건강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약손문고> 여러 권을 펴냈다.
그가 1988년 “보리 기획”을 한 이후에 보리 출판사를 통해서 시대의 탄젠트(파생)로 활동의 다른 영역도 있다. 초등 입학 전후 꼬마들을 둔 어머니들에게 회자되게 한 작업이 있다. 1997년 이래로 10권에 해당하는 세밀화 작업인데,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식물, 동물, 곤충, 새, 어류 등등을 그린 세밀화 작업이다. 그 시리지 열권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냈던 모양인데, 대통령은 트위터로 좋은 선물 받았다고 선전해 주었다.
하나 덧붙이면, 그는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불어, 독어뿐만이 아니라 한문에도 깊은 조예가 있는데, 근래에 불교의 관심은 그가 청소년 시절에 출가하려했던 마음이 환갑이 지나서 도졌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그리스 철학에서 코스모스와 아페이론 또는 혼란(카오스), 그리고 추상하여 존재와 무(le neant) 등의 사유의 기원과 발전에서, 인도의 대수적 사유를 붙이기도 한다. 이런 사유가 중국의 선불교와 도교에 영향을 미쳐서 중국의 유교에도 변화를 가져왔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나름의 선유불이 있었는데, 대중불교를 통하여 새로이 무(無), 공(空), 비(非)를 수용하다가, 훈민정음 덕분으로 사랑(思, 사)의 길을 찾아내려 하기도 한다. 그는 김지하와 더불어 80년대에는 동학이야기도 하였지만, 미륵하생경의 이야기를 더 많이 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그에게 불교는 내면에 자리하고 있었다가 이번에 “같잖은 이야기”로부터 현실에 다시 솟아올랐다고 본다. 솟아오르다(jaillir / le jaillissement)라는 단어는 벩송이 생명 도약(l’elant vital)만큼이나 좋아하는 표현이다. 용솟음을 생각한다면, 벩송이 소크라테스와 플로티노스보다 한발 더 나간 것이 아닌가하고 느낀다. 소크라테스가 진실에 대한 욕망(사랑)이 나선형으로 커져나간다고 기하학적으로 본데 비해, 벩송은 창조적 진화(EC, 1907)에서 회오리처럼 크게 확장되어 간다고 하는 점에서는 운동과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플로티노스가 일자(생명, 자연)의 충만이 빛처럼 퍼지고 샘처럼 넘쳐난다고 하였는데, 벩송은 넘쳐나는 정도를 넘어서 샘에서 솟아난다고 하여 생동적이고 활동성을 비유로 표현하였다고 여긴다.
대학원 시절에, 개떡 형님을 안주 삼는 이야기는 아마도 박홍규 선생님보다 또는 어느 철학자보다 흥미진진하였다. 박정희의 몰락과 광주항쟁이란 시대의 격변에서 각자의 관점들이 넘쳐나던 시절이라. 술좌석의 사람들은 그를 한편으로는 너무 세속적이라며 ‘속물’이라고 비판하기도 하고, 선생님처럼 형님도 어눌한 면이 있어서 사유의 측면이 잘 전달되지 못하여 그가 자기의 약점을 감추는 소심한 자로 몰리기도 하며, 제대로 된(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또는 영미철학처럼) 학문적 내용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던지기를 좋아하는 것은 학문적 노력에 정진하지 않고 세상사에 기웃거렸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 마지막 관점에는 다른 말이 필요하다. 소크라테스가 글을 남기지 않았고 플라톤이 논증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대화로 글을 썼다. 박홍규 선생님의 대화는 소크라테스와 달리 테이프로 남아 제자들이 글로 복원해 놓았고, 형님은 선생님의 나름대로 한 발작 더 앞으로 옮겨보기 위해 스스로 글로 남겼다. 실제로 선생님께서 거의 플라톤에 한정되었다면, 형님은 소크라테스 이전에서부터 현대철학에서 그리고 서양과 동양의 접점을 찾는 노력으로 보아, 박홍규의 나선형의 확장이 윤구병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겸손하게, 철학을 다시 쓴다에서 박홍규 선생님께 올리는 헌정사를 보면 박홍규 선생님과 윤구병 형님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살아계셨을 때나 돌아가시고 난 뒤에나
쉰 해 가까이 ‘존재론’의 진창 속에서 ‘참’과 ‘거짓’,
‘좋음’과 ‘나쁨’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허둥대면서
‘할’ 짓 재껴두고 못 ‘된’ 짓만 일삼는 못난 제자 노는 꼴
죽 지켜보신 박홍규 선생님께 이 책을 바친다.
‘자네, 또 거짓말하고 있네!’ 하고 꾸짖으실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능청스럽게 딴전을 펴야지.
‘입만 벌리면 저도 모르게 거짓말이 술술 나와요. 헤헤.’ (5쪽)
나로서는 어느 술좌석의 안주로 삼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형님은 우리말로 쓴 학위 논문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있음과 없음(2003)이 박사학위 논문이고, 10년 지난 후에 사유와 실행의 확장으로 쓴 철학을 다시 쓴다(2013)는 프랑스식으로 보면 국가 박사학위 논문이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사르트르도 국가박사학위를 정식으로 제출하지 않았지만 존재와 무(L'Etre et le néant, 1943)는 국가박사학위라 할 만하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윤구병 형님에게 한 가지 덧붙여야 할 것은 박홍규 선생님 이상으로 그도 벩송에 대한 애착이 크다. 선생님에게서 생전에 발표한 벩송에 대한 논문으로는 「베르그송에 있어서의 근원적 자유」(1975) 한편 뿐이다. 윤구병에게도 「풍경사진을 통해서 본 베르크손 철학: 창조적 진화를 중심으로」(1995) 한편이 있을 뿐이다. 선생님의 벩송에 관한 요약은 이정호가 뽑아서 “素隱 朴洪奎先生 追慕碑(소운 박홍규 선생 추모비)”에 쓰인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추모비 앞면) “자유의 의미는 자유로 인하여 사물의 존재가 확보되는 데 있으므로 본질론적인 이장에서 자유의 가치는 본질의 진상 즉 모든 타자에 대한 영원한 무감동에서 성립하나 생명의 입장에서 진정한 자유는 끊임없는 자발성으로 타성의 지배를 뚫고 모든 사물과 관계맺음 속으로 들어가는 데 성립한다.” 형님이 벩송에 대한 사랑의 문구가 한마디 있는데, 철학을 다시 쓴다(2013)에서 제1부 시작 부분에서, <primum vivere, deinde philosophari ‘프리뭄 비베레, 데인데 필로소파리’ - “생이 먼저이고 철학은 나중이다”(21쪽)>가 있다. “프리뭄 비베레”는 벩송이 1922년(예순셋)에 「[철학]입문 II」에 나오는 문구이다. 그가 둘째로서 “철학은 나중”이라고 덧붙였다. 나로서는 하나 더하여, 플라톤의 파이돈편에서 나온다고 하는, “철학한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를 덧붙일 것이다. 윤구병은 이렇게 말한다: 철학을 다시 쓴다(2013)의 마지막에 「윤구병이 걸어온 길」이 있는데, 윤구병이 쓴 것이 아니라 편집자의 글일 것 같다. 그럼에도 인용해보자 “2013년(일흔한 살): 아직도 안 죽었다. 징그럽다. 하지만 살아온 세월이 행복하고 고마웠다고 돌아보고 있다. / 이제는 잘 죽을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393쪽) 이 “잘 죽을 준비를 해야겠다.” 형님의 이야기를 편집진이 받아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04, 52WLH, 4:20, 52WLI)
덧말: 모든 철학자는 그 시대와 토지(영토, 실증, 위상)의 아들이다. 윤구병은 “같잖은 생각’(nothos logos)”을 다루는 첫째 마당에서 이 뭐꼬[ti esti]라고 칠판에 쓰면서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박홍규의 강연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뭣꼬(ti esti)”를 다루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그러면 도대체 플라톤에서 데이터[les données]는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하고 비교해 보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사람이지, 늙은 사람, 누구누구의 아들, 어디서 온 사람 등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람이에요. .. [그런 것은] 우연적 속성이기 때문에 학문에서는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이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데이터라는 것은 벌써 체계에 의해 추상화된 데이터입니다. .. 그러나 플라톤의 데이터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늙었는데, 이름은 무엇이며, 누구누구의 아들이고, 어디서 왔고, 무엇하러 온 사람이라는 등등으로 자세히 나옵니다. .. 철학적인 데이터라는 것은 개별과학적인 데이터와는 달리 모든 데이터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14-15). 박홍규, 「고별강연(1984)」, in 형이상학 강의 1: 박홍규전집 2(1995, 2007판)>. 이와 너무나 닮은 들뢰즈의 강연이 있습니다. 「드라마화의 방법(La méthode de dramatisation, 1967)」에서, 그는 “이 뭣꼬”를 역동적 드라마로 다루어야 한다고 하면서, <무엇인가?(qu’est-ce que?)라는 질문이 본질이나 이데아(Idée)를 발견함에 있어서 과연 적합한 질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사실 이데아(l’Idée, 이데아, 이념)에 관하여 보다 중요한 것을 규정하는 일은 물론이고 본질을 발견하는 일에 있어서도, 누가?(qui?), 얼마나?(combien?), 어떻게?(comment?), 어디서?(où?) 언제?(quand?)라는 유형의 질문들이 더욱 훌륭할(meilleures) 수 있다. (131, 번 486-488쪽)>고 합니다. (52WLI)
아차!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다. “평화통일영세중립코리아”이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과 같은 11자라 한다. 그의 혁명론은 특별기고: 우리는 하나다(윤구병, 보리, 2017)에서 “아메리카 합중국 혁명 공약”(윤구병, 한겨레 등록 :2015-09-17)에 있다. 그 후속 실천으로,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를 앞당기기 위한 “평화마을 만들기” 제안서 초안(64쪽)은 1+1=하나,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변택주외 여덟, 누리살림, 2018)에 실려 있다. 그가 언제가 식사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하나: 토지의 국유화, 둘: 의료와 교육의 무상화, 셋: 하늘 길, 땅길, 물길(가스, 수도, 하수도 포함)은 공공화를 기치로 걸어야 한다고 했었다. (52WLJ)
새로운 과학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별 학문들의 몰락.
사람이 먼저이고, 국가는 다음이다.
노동이 먼저이고, 자본(제국)은 다음이다.
윤구병과 박홍규, 즉 이들의 사유에서 벩송의 사유를 따로 떼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는 벩송이 자기 사유의 근원 또는 계통을 잘 밝히지 않았듯이, 박홍규도 그러하고, 윤구병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벩송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도표 참조)
벩송의 사유를 새로운 철학이라고 명명한 사람은 철학교수가 아니라 수학교수라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르화(Edouard Le Roy, 1870-1954)는 자신의 수학적 관점이 벩송과 유사하다는 주변의 평가 때문에, 벩송의 철학 작품들을 읽고 벩송 사상을 옹호하는 책을 펴냈다. 이 수학에 관련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벩송의 시론(DI, 1889) 제2장 앞부분에 나온다. 윤구병의 “0과 1”의 문제는 이 부분과 연관이 많다. 이 부분이 피타고라스의 수와 플라톤의 분할법(지식의 이분법), 그리고 제논의 운동 부정에 대한 벩송의 비판이 있다. 게다가 벩송이 신칸트주의를 지속, 기억, 생명이라는 개념을 쓰면서 비판했는데, 이런 비판을 “주지주의 비판”이라고 한 철학자는 윌리엄 제임스가 창조적 진화를 읽고, 벩송에게 보낸 편지에서였다.
벩송은 자신의 철학을 전복(subversion)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고, 전도(l’inversion)이란 용어를 썼고, 또한 철학적 사유의 두 질서(방향)가 있는 데, 이제까지 밖에서부터(dehors) 사고했는데, 안에서부터(dedans)[전치사이다] 사유하자고 하였다. 들뢰즈의 사유도 플라톤주의에 대한 전복이지, 플라톤 사상 자체에 대한 전복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프랑스 실증주의는 앵글로색슨 철학에서 말하는 논리실증주의와 아무 연관이 없으며, 이는 마치 스피노자의 철학이 데카르트 철학과 아무 연관이 없고, 스피노자의 두 가지 속성의 계열은 라이프니츠의 평행론과도 연관이 없는 것과 같다. 게다가 스피노자의 신은, 종교에서 말하는 무에서 창조하는 신과 무관하며,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로서 신과도 무관하다.
왜 ‘플라톤주의’에 대해 문제를 삼는가? 박홍규 선생에 따르면 이 세상에 허무주의(회의주의) 극복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플라톤이다. 전자는 세계를 무로부터 창조하면 되기 때문에, 그 극복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희망[사기, 기만]이 있다. 다른 하나는 데미우르고스가 플라노메네 아이티아를 어르고 구슬러서 이데아를 닮게 하는 극복이 있다. 전자의 방식을 스피노자와 베르그송은 착각(l’illusion)이라 하며, 후자의 방식은 데카르트 이래로 과학주의 또는 신칸트학파가 세계를 통일성 안에 있다고 여길 때 또는 헤겔이 변증법이라는 종합을 통해 절대성을 추상할 때 가능하다고들 한다.
플라톤 자신은 상층만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 플라톤은 신학자가 아니기에 심층에 대한, 즉 아페이론과 정념에 대한 고민을 죽 하였다고 한다(박홍규설). 창조(제작) 또는 생산에 관하여, 들뢰즈가 뽑아낸 시뮬라크르의 문제는 플라톤의 소피스트편에서 이다. 이데아를 닮은 시뮬라크르(모방체)와 아페이론에서 생겨나는 시뮬라크르(모방체)가 있는데, 전자에는 아테네의 이상을 따르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진실한 시물라크르이고, 그렇지 못한 닮음으로 이방인들(소피스트)의 시뮬라크르는 추방해야 한다고 한다. 들뢰즈 방식에서는 이데아가 없으며, 닮아야 원본이 없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의 특이성을 발현하는 것이 시뮬라크르라 한다. 그래서 시뮬라크르의 전복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특이성을 완성하는 길을 매진하였고, 그 길을 끊임없이 가는 것이 욕망의 화신이었다. 그도 이데아가 먼저 있어서 그 원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플라톤주의에 대한 올바른 문제는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정지에서 운동으로 가는 사고가 아니라, 운동자체로부터 사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뭣꼬”를 문제 삼은 소크라테스는 대중부였는데 비해, 플라톤은 상좌부였다. 상좌부의 사고의 틀은 선분의 비유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물 대 그림자’의 대비로 ‘노에마 대 노에시스’라고들 한다. 이를 동심원으로 상상하면, 중심의 선의 이데아, 노에마, 노에시스, 사물, 그림자 이며, 동심원에서 멀어져 가는 것이 진리 또는 정의(la définition)이 안 되는 경우이다. 이를 뒤집어서 보면 플로티노스의 동심원이 보이는데, 중심에 일자, 누스, 로고스, 사물, 부스러기로서 동심원을 그릴 수 있다. 이 일자가 정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재성이라는 점에서 플라톤과 다르다.
플라톤주의에서는 이데아가 실재성이며, 스피노자와 벩송에 의한 플로티노스에서는 일자가 실재성이다. 이 역전은 실재성의 이중성, 이데아의 이중성, 자연의 이중성과 더불어 사유해야 한다는 점을 알린다. 플라톤의 영원불변은 천체에서 스스로 동일하게 움직이지만 불멸성인데, 플라톤주의는 동일 운동성, 영원성, 불변성, 불멸성(아타나토스)으로 간다. 플로티노스의 일자의 합일이 불멸성이라고 보면 역전됨을 알 수 있다.
서양학문사는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우위로서, 플라톤이래 2000년 동안 이어져 오다가 천문학이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뒤바뀌면서, 브루노에 의해 우주의 무한이 열리고(1600년, 브루노 죽음), 갈릴레이의 재판(1632)이래로 절대성이 아닌 상대성의 인정으로 자연학이 하늘에서 빗금을 타고 내려와 물리학으로 성립한다. 그럼에도 데카르트만 보아도 수학은 분석기하학(해석기하학)이 여전히 상층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달리 사유했다.
계몽주의에 이르러서도 크리스트교가 말하는 자연은 피조물이었다. 그럼에도 루소는 숲 속에는 악마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고, 인간의 품성은 자연에서부터 왔으며, 종교도 자연종교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이를 주목을 한 철학자는 칸트였다. 그럼에도 칸트는 권력과 권위에 안주하여 자신이 쓴 자연종교에 관해서는 살아서 발표하지 않았다.
벩송은 학문의 탐구가 갈릴레이에 의해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그리고 200여년이 지난 19세기에는 지상의 내부로 또는 사물의 내부로(dedans) 들어갔다고 한다. 실증과학의 ‘달리 말하기’는 프랑스 혁명 덕분이다. 프랑스 혁명은 두 상층, 권력과 권위를 제거했었다.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내어 왕권을 인민권(의회)으로 바꾸어 놓았고, 성직자들을 단두대로 보내면서 하늘(상층)의 권위를 지상(자연)으로 바꾸어 놓았다. 자연은 이제 피조물이 아니라는 스스로 생성하는 관점이 대두될 것이다.
생물 변형론(le transformisme)에서, 화석에 대한 또는 사라진 동물들에 대한 논쟁에서 출발한 조프르와 생틸레르와 퀴비에 사이에서, 생명체의 형성[변형]에 대한 논쟁은 플라톤주의자인 퀴비에의 승리였다. 그럼에도 프랑스의 둘째 혁명이 일어날 시기인 1830년 전후에는 사물의 외부에 대한 논의에서 사물의 내부에 대한 논의로 바뀌었다. 생물학은 현미경의 발달로 콜레라 질병이 세균임을 안 것은 1831년이었다. 물리학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이 개념은 이데아와 유사하며, 부동이고 영원하다)의 내부에는 전자와 핵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이 시기이다. 화학의 발전은 물론 대혁명과정에서 단두대에서 사라진 라브와지에의 공기 속에 산소를 규명하면서 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실재성이 아니라 추상공간(또는 절대공간)의 선가정이라고 제기한 볼리야이와 로바체프스키 등이 있었다. 산술학에서 단위 1의 개념을 문제 삼았던 젊은 두 수학자, 아벨과 갈르와도 있었다. 이들의 단위에 대한 물음은 1859년 리만이 교수취임에서 비유클리트 기하학의 성립을 선언할 때쯤에서 다시 조명된다.
전자기에 관한한, 벩송의 관심은 그의 작품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나로서는 이중성에 대한 견해가 좌석의 두 힘의 두 방향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1820년에 외르스테드(Ørsted 1777-1851)가 전기와 자기 연관을 제시하고, 1831년에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가 ‘전자기 유도법칙’을 발표한다. 이 시기에 이데아와 에이도스의 실재성은 추상의 극한으로 수 또는 절대 공간에 대한 사고이며, 실제로는 사물의 내부에 실재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은 이런 시기를 아리스토텔레스 학설이 무너지는 시기라고 한다.
카르노-마이어-클라우지우스로 이어지는 열역학은 새로운 장(위상)을 연다. 운동량 보존의 법칙을 인정하는 것과 달리 생성하는 힘이 실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의학이 발달에서는 끌로드 베르나르의 실험의학 연구 입문(1865)은 생명현상에서도 플라톤의 이데아와 다른 이데아(이념)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벩송이 읽어 낸다. 이데아 개념의 이중성은 이제 양적 추상의 이데아와 달리 질적 추상의 이데아도 있다고 할 것이다. 이즈음에 1859년에 파리에서 인류학 학회가 성립한다. 인간에 관한 실증으로 생물학에서 의학으로, 혁명을 거치면서 사회학과 인류학의 성립에 이어 인종학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생명체와 사회체(socius)라는 두 가지 형식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하나는 내재성의 형이상학이고, 다른 하나는 표면에서 제도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이다.
원리와 법칙에서 상층을 먼저 상정하고, 그에 따른 표면과 내면의 파악이라는 사고를 뒤엎는 또 다른 중대한 계기는 무한의 종류가 여럿이라는 점에서 이다. 미분의 이원성을 넘어서는 허수와 복소수에 이어서, 1882년 파이(π)라는 수를 규정할 수 없어서 초월수(초한수)라고 하고, 또한 초월수의 종류가 여럿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칸토르의 집합론에 이어서 무한의 파라독스가 제기되었으며, 그 다음 러셀의 논리주의와 힐버트의 형식주의와 달리 사유하는 21세기의 직관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벩송의 사유는 직관주의에 속하며, 들뢰즈는 이런 수학적 공간을 사회체에 적용하여 유형학과 위상학을 구분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위상학은 리만의 다양체와 벩송의 ‘안에서’와 공연적이고, 들뢰즈의 용어로 “고른평면”(상수평면, 플라노메네 아이티아, 비유클리드 공간, 왕관 쓴 아나키스트)과 같은 의미가 될 것이다. 이쯤에서 고른 평면의 위상에서 사회체의 변형과 기호들은 영토화, 탈영토화, 재영토화, 또 다시 탈영토화라는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알릴 것입니다.
윤구병과 베르그송(벩송)
그러면 윤구병과 벩송(베르그송, 베르크손)을 말해야 할 때가 되었지만, 사실상 그 둘 관계를 문헌적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먼저 말해야 할 것이다.
나로서는 2019년 윤구병의 “같잖은 생각’(nothos logos)” 여섯 마당은 윤구병 사상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그 다음에 자리를 만들어 한 번 더 청자들 또는 독자들이 윤구병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방식으로 해도 무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굳이 윤구병이라는 데이터를 두고 각자 발제를 하는 방식을 취하겠다면, <준비 위원들의 정해진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주제: 윤구병과 베르그송
데이터로 치자면, 윤구병의 “벩송”은 사실상 단 하나 수필 같은 글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주제로서 윤구병을 들먹이자면, 박홍규 선생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학문적으로 둘 사이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박홍규에게는 「Bergson에 있어서의 근원적 자유(1975)」(철학연구 10, 41-57쪽)가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자연에 관한 두 의미’는 아마도 윤구병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보다 형님이 선생님의 강의를 오랫동안 들었던 것(라틴어 공부, 희랍어 공부, 베르그송)이 훨씬 더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조금만 선생님의 강의록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로서는 들뢰즈의 탈주 개념을 빗대어, 박홍규와 윤구병의 유사점을 한 가지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고대 플라톤의 학설에서 코스모스이거나, 데카르트의 분석(해석)기하학이거나, 라이프니츠의 포물선 운동이거나 간에 우주(자연)의 총량은 일정하다는 점에 선전제로서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이탈(탄젠트)이 비유클리트 기하학이라고 합니다. 두 분은 접선에서 이탈의 길을 걸었다고 봅니다. 선생님은 플라톤에서 아페이론(플라노메네 아이티아, 필연)이라는 문제거리로 철학사의 접선(tangent)을 이탈했으며, 형님은 세계 철학사에서 제3의 근거를 찾으면서(0과1 사이, 아페이론, 공(空), 무(無), 비(非) 등등) 접선의 떠나 유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0세기 “구조없은 구조”라는 철학자로서 푸꼬가 “달리 말하기”를 하였다면, 들뢰즈는 “달리 살기, 달리 하기 또는 달리 되기(창조)”를 내세웠습니다. 이런 “달리”는 반복된 정상(고정) 또는 일상(상투적)과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윤구병은 달리 행하기[함]으로 자유만큼이나 시대의 과제로서 “통일”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은 철학사적으로 의학-생리학, 언어학, 인류학(사회학, 인종학, 역사학)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심리학의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에 정상과 (정신)병리학의 구분이 중요합니다. 물론 벩송은 병리학의 데이터로 정상을 찾아내기도 하고, 새로운 생성을 창안해 냅니다. 기억이론이라고. 그리고 21세기에 이런 심리학의 발달로 또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포함해서 정상(le normal)과 비정상(l’anormal)을 구분하고 다른 생성으로 별종(l’anomalie)라는 영역을 창안합니다. 이점에서 선생님과 형님은 아노말리(별종)입니다.
원과 타원의 접선에서 원으로 빨려들지 않고, 또 타원으로 태양계의 궤도에 머물지 않은 사유는 접선(탄젠트)의 이탈이며, 이를 탈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에서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접선의 기준으로 탈주하지 않을 경우에 벡터량이라고 합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이어서, 유체역학에서 속도와 밀도(강도) 측면을 보탠 행렬이라는 분야는 탈주의 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고, 학문적으로 지금의 영토와 다른 탈영토화가 생겨납니다. 안에서 시작하는 실증과학은 사유에서 만이 아니라 신체 또는 물체(빛)에서도 실증적 자료들이 점점 삶의 영역에 들어와 앉습니다.
플라톤주의에서 탈주는 1830년 이래의 새로운 학문들의 창안과 새로운 개념의 발명에서 죽 있어 왔습니다. 이런 19세기의 개별학문의 발달을 두고 프랑스 바칼로레아 교재들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몰락이라고 합니다. 벩송이 철학사에서 새로운 형이상학의 발명자라고 할 때, 아리스토텔레스 학문과 전혀 다른(탈영토화) 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이 길이 수학에서 다양체와 직관주의, 물리학에서 자기장이론, 생물학에서 세분화 진화 등을 일상적으로 설명했을 때, 학계조차도 잘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그의 학설을 오도한 것은 그의 사상이 플라톤주의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유는 플로티노스와 스피노자에 가깝습니다.
박홍규 선생님의 장점은 선생님 스스로 플라톤에 깊이(안으로)로 들어가면서, 플라톤 주의에서 이탈(탈주) 즉 탈영토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형님도 탈영토화로서 문헌적 데이터를 넘어서 공(空)과 무(無)로서 아페이론을 정립하려는 점에서, 일단 플라톤주의에서 이탈(파생)을 보입니다. 10여년은 거의 0와 1사이의 아페이론 개념에 전념하다가 인도(불교) 사상과 중국(도가, 선종)을 보면서 다른 길을 모색하면서 벩송에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습니다.
“같잖은 생각’(nothos logos)” 강연에서 불교 사상의 깊이에서 상좌부와 대중부의 구별은 플라톤의 이데아계와 현상계 분할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가치의 잘함과 못함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진리의 허위 거짓으로 갈 것이 아니라, 삶에서 함과 됨으로 가는 데는 당파성을 지니고 인민에 서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민은 토지(영토)를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님의 사유에는 함 즉 됨이 들뢰즈의 생성(devenir)와 곧 바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들뢰즈/가타리가 천개의 고원에서 인류사에서 탈영토화의 사건들을 나열하며 탈영토화가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이루어 졌는가를 보았다. 형님은 0-9사이라는 다양체의 개념을 만들어서 철학의 발생 또는 창안의 솟아오름을 찾아보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글을 쓰기 어려운 것은 그가 마침표를 찍어야 어떤 논의의 대상으로 올려질 것인데 아직도 과정이기도 하고 “같잖은 생각’(nothos logos)”을 나 나름으로 다섯 번을 정리하여 “마실에서 천하루밤”(다음카페)에 올렸지만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기에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덧: “도법과 윤구병: 스님과 철학자(2016)”에서는 귀족 불교 대 대중 불교 사이를 의상과 원효에 대해 탐색하면서 불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개해 왔다. 그 후의 전개로서, 불교 잡지에 기고했던 아픈데 마음 간다는 그 말, 중생을 향한 보살의 마음으로(윤구병, 호미, 2019)와 이번 “같잖은 생각(nothos logos)”을 잘 중첩하여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하면 철학다시 쓴다에서 얼핏 한번 등장했던 나가르주나가 “같잖은 생각(nothos logos)”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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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들(les philosophies)이 있다. 수학들(les mathématiques)처럼>
<철학한다는 것은 인간사유(틀)를 그려보는 것이다.>
형님은 파생하는 접선(la tangent)이다. 단선적인 스칼라양(une quantité scalaire)은 이미 아니고, 그런데 벡터공간(un espace vectoriel)을 넘어서 비유클리트 공간처럼 다양한 공간을 향한 활동을 선들이다. 이 선들을 들뢰즈 식으로 탈주로라고 할 수 있다. 이 접선의 점은 차원이 없다는 점에서 1(하나)이며, 아직 선들이 생겨나기 전이라, 형님의 표현으로 0 또는 무규정자(apeiron)에 가깝다. 여기서 이 단위 0은 산술적이고 기하적인 의미이다. 그런데, 스칼라양의 0(영)은 수(un nombre)가 아니라, 숫자(un chiffre)로서 기호(signe)이며, 셈에서 번호(le numéro) 매김의 기준일 뿐이다. 사실상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기호로서 표기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0이 있어야 할 자리는 십진법에서 자리를 1001처럼 자리를 표기하는 데 없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대수학에 이르러 0은 계산상 필수적 이다. 특히 부정방정식에서는, 즉 x-y=0일 경우이다. 답은 무수히 많지만 간단히 x=5 y=5일 경우 표기는 0이어야 한다.
기하적 의미로서는 초점 또는 중심점에 가깝다. 좌표 상으로 기점의 표시이며 동심원의 가운데인 초점이다. 이 점은 차원이 없다. 차원은 점과 점사이를 잇는 선들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에 1차원이라 한다. 기하에서 점은 무한히 확대할 수 있다는 상상이 가능하고 무한히 축소할 수 있다는 상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양 끝을 규정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무한히 작은 점을 0에 무한히 큰 점을 1로 표시할 경우에 0과 1사이가 무한하다고 한다. 두 방향의 무한 사이에는 무한정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상상의 영역인데, 구체적 실증으로서 두 선분 사이에 무한히 자를(분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한 것에 빗대어 0와 1사이가 무한하다고 하기도 하고 무한정하다고 하기도 한다. 나로서는 무한하다고 하기보다 무한정이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칸토르가 자연수의 확장의 무한하고 0와 1사이의 무한정하고 사이에서 어느 무한이 크냐는 것을 고심하였고, 산술학적으로 자연수의 무한보다 0와 1사이의 무한정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이런 무한정의 예로서는 π가 있는데, 3.14‥…∞가 있는데, 이를 수직선 상에 표시(un signe)할 수 없다. √2는 수직선 상에 분명한 점이 있는데 비해 이 파이(π)는 어림짐작으로 표시할 수 있어도 정확한 지점이 없다. 이로서 1882년부터 파이를 초월수라고 한다. 초월수의 종류가 많아짐으로써 (오일러의 Le nombre ea, La constante de Gelfond-Schneider이라 불리는 2√2, 등등) 무한이 열렸다고 한다.
형님은 0와 1사이에 관심이 거의 플라톤의 아페이론(apeiron)에서 출발하는데, 아낙시만드로서 아페이론은 무한정자로서 생성자이라고 니체가 말한다. 전자의 아페이론은 대상화의 아페이론이라면, 후자의 무한정자는 생성으로서 자연에 가깝다.
그럼에도 형님은 무한정자로부터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는 의미를 찾고 있는 듯하다. 생각과 행동에 앞서서 사람이 살아야 한다면, 무한정자가 아니고 신체가 지닌 지위에 대해 고민했으리라. 신체는 단위 상으로 하나(1)이다. 있는 것이다. 이 있는 것이 무엇을 살아가는데 좋고 나쁨(잘하고 서툴고, 건강하고 아프고, 자리잡고 빗나가고)이 있다. 이 후자들을 모아보면 서툴고, 아프고, 빗나가고, 등이 왜 생기는가? 그럼 거꾸로 잘하고 건강하고 자리잡고 등은 어떤 경우인가? 형님은 전자의 좋은 것으로서, 즉 살아가면서 좋은 것이란 아제에도,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으면 좋은 것이라 한다. 여기에 이제와 아제의 계속성에서 유지되는 쪽을 바라는 것은 보수적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진보적이다. 삶에서 지속은 동일성의 유지가 없다는 것이 삶을 이해하는 정확한 사유이다. 동일성의 계속은 사고에서 가능하고, 또한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삶에서 왜 다른 삶들이 이어지는가?
생명체에서 탈영토화는 계속되어 왔다. 대퇴부의 발달, 경추의 발달, 손의 발달, 엄지의 발달, 전달하기 위한 언어의 발달, 혀의 발달, 두뇌 회로의 발달 등의 과정은 탈영토화의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이 과정에서 토지를 벗어나지 않았다. 인공지능(AI) 시대에서 두뇌로부터 탈영토화가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실례로 알파고, 알파고 제로)으로 탈영토화를 걷고 있다. AI의 탈영토화는 혀의 탈영토화와 두뇌 회로의 탈영토화와는 전혀 다르다. 전자의 탈영토화는 토지와 공동체를 넘어선 탈영토화 즉 명령체계의 탈영토화이다. 들뢰즈가 이에 대해 기관없는 신체를 말하게 된 것이다.
윤구병은 삶에서 출발한다. 삶은 맞다 틀리다는 진리 규정이 먼저가 아니라, 잘 사는 것에 대한 개체와 공동체 가치를 창안하는 데 있다. 이 가치는 토지를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새로운 영토를 탈영토화는 토지와 더불어 삶에 대한 것이다. 결국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삶을 다시 배워야 할지 모른다. 자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마땅히 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이 해야 할 가치는 토지(자연)와 더불어 사는 삶을 중요시하는 ‘당파성’을 갖자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서 “이뭣꼬”의 관심이 시대에 부합하다(유용하다, 편리하다)에서 진실을 보자면서 “이다, 아니다”를 넘어서 “좋다, 틀리다”를 찾아 나섰다. 그래서 미래에 있을 것을 사랑(思, 사)하는 것이며, 이를 계속해서 추구하는 욕망의 가장자리(끝)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 가장자리가, 영혼이 갈 저세상(Er, 저넘어)이라고, 플라톤이 전한 이야기가 있다. 저 넘어는 나중이니 과정을 보자는 것이 형님의 생각인 것 같다.
과정 또는 생명체의 지나온 진화(변형)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개체발생은 일반적으로 배태과정에서 종발생을 반복한다고 한다. 인격발생 과정은 인류학적으로 그 사회 문화의 전개과정을 되풀이하다가 자기의 방향과 확장을 이루면서 주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20세기 전 지구적으로 교육과정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은 거의 같다. 새로운 생성 또는 창안은 대학을 마치고 개인의 주체가 자기 방식으로 나간다고 할 수 있다. 즉 새로운 생성은 기존의 문화라는 영토를 넘어서는 탈영토화에서 이루어지는 데, 그 영역 또는 법위는 일반인으로서는 접근이 쉽지 않다. 미래의 인간에게는 쉬운 중등과정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영역은 인간의 두뇌를 벗어나 다른 차원의 지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걱정이 있다. 이 차원에서 인간은 다른 인간 신인류가 될 것인데, 신체의 변형(진화)없는 지식의 탈영토화가, 즉 신체에 인공물을 삽입하면서 사는 탈영토화가 인간의 삶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제인간이 인공물을 몸에 투입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식은 뒤떨어진 인간일까? 아제인간이란 이제인간들의 삶에서 각자가 찍어 놓은 지표(un repère)를 기준으로 아제에 새로운 지표를 측정해 나가는 것일 진데, 인공인간의 경우는 미래에 정해진 지점 또는 목표에 맞추어 AI에게 맞게 구성되고 구축되는 인격체로 가는 것이 될 것이다. 편리와 편안은 인간의 삶에 잘(좋은)이라는 가치에 맞는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형님은 자연 또는 토지의 삶에서 이질반복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질반복이란 같잖은 생각을 하는 자들의 삶이다. 이질 반복은 미래가 정해지지 않고 목적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측정’을 해나가는 과정이라, 여러 착오가 있을 정도로 서툴기도 하지만 선량하다. 살아온 사람(어제 인간)에게서 배우고, 이제 인간들 사이에서 지표들을 설정하고 이런 저런 구성(멜로디처럼 구성)에서 꼬불꼬불 갈 수 있다. 그럼에도 다음 측정을 향하여 가는 이들이 드물다 왜냐하면 그 다음 측정을 사유하는 것이 어렵고 또는 할려고 노력하지 않고 쉽게 지식을 통하여 사다리를 타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52WLB)
***[아래 두 꼭지(참조 둘), 철학을 다시 쓴다(2013)와 있음과 없음(2003). 전자의 글은 이미 카페에 있는 글 중에서 발췌한 것이고, 후자의 글은 새로이 간략하게 요약 작성한 것이다.]
#1##윤구병, 철학을 다시 쓴다(2013), [[{책1943윤구병2013철학을}(21:02, 52WKI)}에서]]
1부 ‘좋음’과 ‘나쁨’, 19-84
2부 ‘있음’과 ‘없음’, 85-274
“ ‘.. 동그라미의 이데아도 하나고, 세모꼴의 이데아도 하나이니까, 하나라는 점에서는 같다. 동그라미의 이데아도 있는 것이고, 세모꼴의 이데아도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믿게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그라미의 이데아와 세모꼴의 이데아는 같다고 우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어거지로 플라톤을 두둔해 주려고 하다가는 저마저 거들나기 십상인 판국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련이 없지는 않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을 받아서 플라톤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172) [소크라테스가 파르메니데스에 한수 밟히는 것, 플라톤의 논리 전개의 약점은 이데아들이 있음과 하나의 있음을 동일하게 취급한 것이다. 동일성이라는 것은 단위 성립의 근거(순수공간)에서만 있는 것이다. 있음은 이데아처럼 대상의 것이 아니라, 토대로서 있음이다. 이 있음을 부동으로 보았던 것이 파르메니데스인데 비해서 이 있음이 움직임으로 보았던 것이 베르그송이다. (46RKB)]
제 아버지[아리스토텔레스]가 신을 생각의 생각이라고 규정하셨을 때, 앞 생각(noesis)과 뒷생각(noeseos)은 같은 것이겠습니까, 다른 것이겠습니까? 저더러 말하라 하면 저는 다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앞 생각과 뒷 생각 사이에는 틈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대체 이 틈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249) [베르그송은 질료들이 늘여지고 압축되는 과정에서 ‘사이’가 있고 여기에 생명이 개입된다고 한다. 이것은 플로티누스의 견해에서 생명의 자발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46RLC)]
베르그송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공간이론을 비판하는 데는 까닭이 있어요. 제마음대로 재구성한 베르그송의 생각을 잠깐 들어보지요. / “흐르는 물을 물방울로 해체시킨다고 해서 어는 순간 그 물이 멈추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라. 지속(durée)과 계기(succession)는 다르다. 계기는 문자판에 고정시킨 시간이고, 공간화된 시간이고, 사람의 의식이 인위적으로 금을 그어 놓은 페라스일 뿐이다. 지속은, 순간순간 아페이론을 그 안에 안고 있는 페라스를 넘는 도약이다. 제논이 아무리 ‘날으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 ‘한 시간은 반시간이고 두 시간이다’ ‘바보같은 짓 걷어치우고 파르메니데스로 돌아가자’고 해도, 그렇게 해서는 현상계를 구제할 수 없다고 해서 플라톤이 나섰다. 플라톤이 이데아와 데미우르고스의 역할을 갈라놓았는데, 그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미우르고스를 1로 놓고 모든 운동을 그 정지 모델로 공간화했는데 그거 문제 있다. 나 베르그송은 그거 뛰어넘겠다. 생명이라는 게 운동인데, 그 운동 멈추면 죽는데, 우주 전체가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운동해야 하는데.. 살아남으려는 이 몸부림을 뛰어넘기로 보자. 그게 삶의 도약(élan vital)이고 궁극으로는 사랑의 도약(élan d'amour)이다. (259-260) [윤구병도 박홍규처럼 한 가지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있다. 1과 0에서 0은 없는 것 또는 아님이라는 전제이다. 내가 보기에, 베르그송은 운동만 있다. 운동하는 질료만 있다. 그리고 그다음 움직이지 않은 무와 같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베르그송은 1이 거의 희박한 것으로 무와 같은 것이지만 거의 움직이지 않은 그대로 있는 것이고 0은 있음 즉 무한정임이다. 0은 무도 아니다. 윤구병이 나에게 한 질문에서 0가 절대온도 상황일 경우라면, 그것은 움직임 없은 무가 아니냐고 한 것인데, 절대온도의 무가 완전자들의 움직이 아닌 1이고 가정상이지만 블랙홀과 같은 모든 것을 녹이는 지점이 0로서 불덩이이외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가정될 수 있다. 즉 1의 완전은 희박화의 끝으로 얼어붙은 세계인데 비해 0에는 불덩이 세계라 해야 할 것이다. / 질료의 성질에서 느슨해짐(이완)과 당김(긴장)이 있다. 생명은 긴장이고 물체는 이완이다. 이질적이라도 당김에는 부서질 수 없음(분할 할 수 없음)이며, 동질적이라도 이완은 부서질 수 있음(분할할 수 있음)이다. 그래서 생명과 의식은 긴장이며 물체는 분할가능하다. 이 두 상반되는 운동을 하나는 하향 다른 하나는 상향이라 부르며, 생명있는 존재는 이것을 현실적으로 작용(l'acte)하게한다. / 또 하나 윤구병은 두점 사이에 극한을 페라스라 보았는데, 나로서는 점과 원주 사이에 페라스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에 있는 0도(점도 아닌 것이 점이기도 하고) 단위이며, 원주도 하나 단위, 즉 1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과학은 1에서 출발하는데 비해, 벩송은 0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0이 무규정자이고 1은 여러 원들의 중첩으로 다수의 규정자가 된다. 그 다수는 딱 하나의 원리 파이라는 규정이다. 어느 원도 파이라는 규정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게 플라톤의 다자의 공존이다. 이 공존 세계는 자연히 위계질서 일 수밖에 없다. / 벩송은 0에서 빗살처럼 퍼져나가는 다양한 계열의 공존이다. 어떤 원주까지 나가든 그 나가는 방향이 생명체에 따라 다 다르다. 그 다양성은 이질성의 다양성이다. 퍼져 나가는 것 만큼 그 존재자(각 생명체, 각 종)은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이것은 그의 진화론과 맞닿아 있다. (46RMA)]
물론 베르그송은 2원론자 이기 때문에 질료의 측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힐레(hyle)를 무시하지 않아요. 늘 두 개를 나란히 놓아요. “물질과 기억”에서처럼 1과 0을 나란히 놓아요. 0의 해체 기능을 잘 알고 있어요. 아마 베르그송 철학의 밑바닥에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상상력이 깔려 있을지 몰라요. (260) [내가 벩송을 일원론자로 하는 것은 0이 자기 변화를 계속하는 것이고 아직 1을 만들어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질료0이라는 운동이 완전자1(부동의 영원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못 만들면 0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 0에 자연을 대입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 플라톤에서 부동의 영원성은 천문학의 별들의 영원성 그리고 그 원운동처럼 다시 돌아오고 또 예견가능한 것이다. 이에 비해 생명은 예견불가능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그럼에도 벩송의 낙관은 내적 지속이란 개념으로 생명(의식, 기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 지속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원할지 안할지도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긴 시간의 과정을 보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지속이 만든 것이 다음에 만드는 것과 동일성이 없다는 것은 진화론에서 알 수 있듯이 다음에 만드는 것은 알 수 없지만 그대로 지금과 다른 것을 만들 것이다. 이 달리 만드는 노력이 엘랑비딸이다. / 이것을 사회에 적용하면 새로운 공동체이다. (46RMA)] [나로서는 심층형이상학적으로 일원론이다. (46NNA) ]
박홍규 선생님한테 들은 말인데, 한때 교황청에서 베르그송철학으로 신학이론을 바꿔치기 했다고 해요 (261) [이것은 오해일 것이다. 교황청 대사를 지낸 쟈끄 마리땅 같은 제자가 얼마나 베르그송을 비판했던가. (46NNA)]
맑스는 베르그송과 마찬가지로 2원론자예요. 그런 점에서 베르그송보다 앞서요. 의식과 물질 다 인정해요. 다만 물질에 있는 힘을 더 크게 보아요. (271)
3부 ‘함’과 ‘됨’ 275-377
* ‘함’과 ‘됨’: ‘능동’과 ‘수동’의 힘 277 [A원] [B원]
“그것이 바로 둘이 가지고 있는 신비한 특성이자 하나와 다른 점이지요. 모든 하나는 어떤 하나이든 크기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간의 규정을 벗어납니다.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형상(idea)의 세계에는 모든 형상이 하나 하나 다 고립되어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에 공간이 없습니다. ... 그러나 어찌어찌해서 어떤 하나[A원]가 다른 하나[B원]와 관계를 맺어 둘을 이루면, 이 둘 사이에는 이 하나도 아니고 저 하나도 아닌 것[접점]이 나타나는데, 점의 형상에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듯이 두 개의 하나가[[A원과 B원의 만나는 접점 하나가]] 저마다[두개의 원에서 보면 저마다] 크기가 없는 것, 끝, 한계이므로 이 하나도 저 하나도 아닌 것[접점]은 크기가 없는 것이 아닌 것, 끝이 아닌 것, 한계가 없는 것입니다. 둘이 없으면[이 접점을 통해 둘을 갈라놓지 않으면] 크기도 없고 공간도 없습니다. 둘은 이 하나와 저 하나의 만남의 다른 이름[우연]이고, ‘실체’의 이름이 아니라 관계의 이름입니다. 여럿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279-280) [벩송이(DI, 제2장)은 모든 수는 하나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자연도 하나다 그 하나는 수와 다른 하나다. (EC). 나로서 의식, 욕망도, 삶도 하나다라고 할 때 하나는 자연의 하나이다. 이는 지속의 하나이지 공간의 하나가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의 하나를 공간의 하나와 구별하기 위해 시간의 하나는 아페이론이라고 하고 공간의 하나는 페라스라 하는 것이다 (46RMG)]
접촉면을 매개하고 있는 ‘점’이라는 것은 빨간 당구알에도 속해 있지 않고, 하얀 당구알에도 속해 있지 않고, 늘 왔다갔다 요동치고 진동한다(vibration)고 했습니다. 이 바이브레이션(vibration)이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베르그송한테도 중요한 개념이고 들뢰즈도 마찬가지입니다. (351)
* 상황에 따른 인간의 의식과 행동변화 363-366
지난 수십만년 동안 인류는 생명에너지와 생체에너지로 살아가는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200년이 지나지 않은 짧은 기간에 인류는 삶의 양식이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물질 에너지에 기대지 않으면 너도나도 살길이 없는 세상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366)
* 삶과 생명체 367-370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미래가 없는 도시 문명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대로, 그야말로 되는 대로, ‘될 대로 되라’고 살아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떨쳐 일어서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냐 입니다. - (367)>
도시에서 봉기한 혁명이 성공한 예는 역사상 한 번도 없습니다. ... 지금까지 인류 혁명의 거점은 늘 농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산과 혁명의 거점이었던 농촌이 다 무너져 버리고 있습니다. (367)
우리는 생명의 시간을 인공의 시간으로 바꿔치기하려는 모든 통제에 대해서 의심하는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 합니다. /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 특히 먼미래를] 걱정 말고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물읍시다. (377; 마지막 두 문장) (발췌 3:31, 52WLH)
#2## 윤구병, 있음과 없음, 2003,*******************************************
# 윤구병, 있음과 없음(2003)(P.244)
[첫째에서 셋째 강의는 존재(있음)와 무(없음, 무한자)을 다룬다. 넷째 강의에서 운동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다섯째 강의에서 운동을 시간 흐름으로 바꾸면 플라톤주의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여섯째 강의에서 왜 시간이 중요하냐면 삶은 과거를 포함하고 미래에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있을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벩송의 관점이 철학사에 들어온다. 윤구병은 여기서 마치면서 미래를 함께하는 생성의 철학(당파성)이 중요하다는 데 이른다. (52WKI)]
첫째 강의: 왜 고상한 ‘존재’와 ‘무’가 아니고 흔해빠진 ‘있다’와 ‘없다’인가? (11-50)
[존재론: 같은 것(tauton)과 다른 것(heteron)]
“그러니까 뭉뚱그려 말하자면 다른 것(heteron)은 동시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50)
둘째 강의: 있을 것은 없고 없을 것만 있는 개 같은 세상 (51-74)
[형이상학: 이데아는 없고 다양한 현상들만 있는 세상]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는 없은 것이 없는,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나 이성을 통해서나 파악할 수 있는 사물들의 모든 성질(quality)들이 하나도 뒤엉켜 있지 않고 저마다 분명한 한계를 드러낸 채 따로 따로 떨어져 다 갖추어져 있는[,]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점에서 플라톤은 자기가 파르메니데스의 하나로 있는, 그래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사실들을 모두 헛것으로 돌려버리는, 있는 것이라는 괴물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의 품 안에서 벗어나는 순간 자기의 이론이 모순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몰랐던 듯합니다.” (74)
셋째 강의: 사람이 ‘동물’이 되는 자리와 ‘짐승’이 되는 자리 75-95
그림 15: [동심원 설명] 나) 사람) 동물) 생물) 있는 것)[있음, 존재] (80)
“게다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들은 직접 간접으로 구체적인 사물들과 너무나 단단히 맺어져 있기 때문에 추상적인 사람이 구체적인 사람과 같은 공간 속에 뒤섞이는가 하면, 추상적인 동물 이야기가 갑자기 구체적인 짐승으로 뒤바뀌어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 놓기도 합니다.”(81) [그림 15의 동심원의 그림에서, 심층으로부터 구체성에서 동물인데, 상층에서 내려오는 과정에서 짐승이 된다. 이런 생각을 설명으로 옮긴 철학자는 니체이다. 자연의 동물(생명체)로서 인간으로 살자는 것이지(bon), 사고의 괴물(환영들)에서 짐승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mechant).]
“플라톤도 티마이오스에서 불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시도 하고 있는데 희미한 흔적, 다시 말해서 잠재적으로 있는 숨은 불에서부터 기하 도형(삼각형)으로 구성된 불, 우주의 네 가지 큰 구성 요소인 불, [1]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파악하는 불, [2]사물을 인식할 때 대상에서 빛으로 바뀌어 우리에게 오고 우리의 눈에서 역시 빛으로 바뀌어 대상에게 가서 서로 만나 사물의 모습이나 색깔을 알아보게 하는 불, [3]논리의 공간에서 기하학의 입체 도형으로 드러나는 불, [4]이데아로 있는 불‥… 이렇게 여러 공간에서 불의 특징을 살핍니다.” (94) [네 가지 구성요소는 국가편에서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비유”의 연장이다. 이런 관점을 윤구병은 동심원으로 그렸고, 게다가 그 동심원의 역순으로 플로티노스의 관점을 설명했다. 나는 이 그림을 보기 전에, 벩송의 단위에 관한 논의에서 막연하게 동심원으로 생각했었는데, 동일한 추론으로 갈 수 있었다.(52WKI)]
“모든 이론적 분석은 이론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데,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이론 공간은 무한히 다양합니다[다양체이론]. 이론 공간 가운데 [4]어떤 것들은 사다리처럼 맨 밑 칸부터 맨 위 칸까지 층층을 이루어 정연한 질서를 보여주기도 하고, [3]어떤 것은 서로 나란히 놓여 있거나, [2]어느 것의 테두리 안에 다른 것이 반쯤 걸쳐 있어나, [1]서로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것어럼 엉킨 실타래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나중에 따로 다루려고 생각합니다만 이론과 실천과 실천의 문제에서 어떤 이론은 번번이 실천에 이어지지 못하고 공리공론으로 그치고 마는 것은 이 이론공간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제대로 매기지 못해서 생겨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95)
넷째 강의: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다? 97-125
“이쯤해서 저는 이제까지 미루어 왔던 과제, 곧 운동의 문제를 다루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직 운동에 관해서는 확실한 이론이 서 있지 않습니다. .. 저는 운동과 기간에 대한 제 이야기의 실마리를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에서 찾기로 했습니다. / 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 제11권 제10장부터 제31장까지 나오는 시간에 관한 논의를 발췌해서 학생들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99) [나로서는, 이 논의에서 신체의 공간 점, 길이, 너비, 부피와 달리, 영혼의 위상에 관한 논의로 바꾸어서 생각했다. 영혼은 운동이기에 부피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위상적 흐름으로 말입니다. 어제와 이제와 아제의 연속적인 흐름을 자르면 이제가 나온다. (52WKI)]
다섯째 강의: 있는 것만 있는 게 아니고 없는 것도 있다. 127-151
[공상을 넘어서 환영, 망상, 착란에는 (현실에서) 없는 것도 있다. 공상만화 공상영화를 보면 세상에 없는 것도 있는 것 같이 여겨진다. 그러면 그렇게 여겨지는 것이 무슨 효과인가?]
그림 18: [동심원의 중앙에서부터] 하나(있음, 있는 것, hen), 생각(정신, nous), 생명(영혼, psyche), 자연(생성, physis), 질료(없는 것=비존재, hyle), 아예 없음 (138-139) [플로티노스 위상 도식이다.]
그림 19: [동심원 중앙에서부터] 없는 것, 흔적만 있는 것, 몸, 생명, 생각(정신), 있는 것. (139) [플라톤의 도식 천문학인데, 제일 외곽원 바깥이 있는 것, 이 있는 것(존재)이 크리스트교에서 신의 세계이다. 당대의 천문학으로는 그 바깥을 알 수 없었고, 볼 수도 없었다. 이것이 깨어지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이지만 철학적으로 자연의 무한 인정은 브루노였다.] 의 의 처 아
“제 이렇듯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간단히 줄이고 플로티노스의 이론을 저 나름으로 해석하여 장황하게 늘어놓는 까닭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닙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모자 속에 감추어 놓고 끝까지 보여 주려 들지 않았던 실체가 플로티노스의 이론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150)
“‘없는 것이(은)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은 ‘없는 것이(은)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나란히 놓고 판단할 때 한층 더 강화됩니다. 만일에 이 두 문장을 놓고 볼 때 그 가운데 어느 하나는 분명히 참인데 다른 하나는 거짓임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면 사태는 더 심각해집니다. 모순율이 깨지면서 동시에 배중률도 공리의 구실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이 사태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학이 설 자리를 잃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 논리학이 무너지면 파르메니데스가 주춧돌을 놓고 플라톤이 그 위에 기둥을 세운 그리스 존재론의 전통이 한꺼번에 와르르 주저앉을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151)
여섯째 강의: 있는 것이 아니면 없는 것이라고? 천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있어. (153-175)
[있는 것 또는 없는 것으로 자르는 측면이 아니라, 어제-이제-아제의 잘라지지 않은 고른 평면(위상)도 있는데, 이것은 공간적으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공간적 사고에서 시간적 사유로 넘어간다. 왜 이렇게 늦게 나오는 거냐? ]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과 연관되는 딱지 이론의 대가이니까요. 아시다시피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은 살아있는 시간(참된 운동)이 아니라 의식 속에 고정된(매장된) 시간 의식입니다. 이 점에서는 그 전통을 이어받은 후설(Husserl)도 마찬가지지요. 이 이론에서 살아움직이는 것은 모든 살아 움직이는 것을 움직이지 못하게 핀으로 고정시키는 의식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를 이미 없는 것으로 미래를 아직 없는 것으로 못 박습니다. 그러니까 있었던 것은 이미 없는 것이고, 있을 것은 아직 없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지금 있는 것? 그것은 이미 없는 것과 아직 없는 것을 이어주는 흔들리는 접점 노릇을 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거꾸로 말하면 이미 없는 것도 아니고, 아직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170)
“... 유전정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생명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과거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미래입니다. 과거가 거미의 꽁무니에서 실을 빼내 거미줄을 치고, 벌에게 밀랍을 만들게 하여 정교한 육각형 집을 짓습니다. 죽어 없어진 저 하늘의 별은 몇억 광년을 가로질러 이 하늘에서 저렇게 찬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오래 오래 그럴 것입니다. 땅 속에서 뿜어 나온 과거의 불은 현재 저렇게 큰 바위로 웅크리고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부스러져 바닷 속으로 흘러가서 밑에 깔렸다가 압력이 점점 커지면 다시 한 번 불길로 뿜어 오를지 모릅니다. / 나에게 그런 힘이 주어질지는 모르지만 더 엄밀한 증명이 필요하다면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지요.” (174-175)
일곱째 강의: ‘있는 것’보다 ‘있을 것’이, ‘없는 것’보다 ‘없을 것’이 더 앞선다. 따라서 ‘당파성’이 ‘객관성’에 앞선다. (177-200)
[기준으로 보아, 현존이 본질(존재)에 앞선다. 좀 더 현실적으로 사는 것이 먼저이고, 추상적 사고(철학하는 것)는 다음이다. 그리고 철학한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아제)을 배우는 거다.]
“변화의 필요는 있을 것이 없고(거나) 없을 것이 있는 상황에서 생겨납니다. 더 이야기를 진행하기 전에 왜 때 매김이 미래로 되어 있는 있을 것이라는(또 없을 것이라는) 말이 있어야 할 것(없어야 할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지 간단하게나마 밝혀 놓은 게 좋을 듯하군요. 지금 있는 것, 곧 현재는 그 자체만으로 볼 때는 텅 비어 있습니다. 지금 있는 것은 하나의 특성을 지니고 있고 이 하나는 모든 관계에서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크기가 없는 것, 따라서 지속도 변화도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헤겔의 말마따나 지금 있는 것(헤겔식으로 말하면 순수 존재)은 지금 없는 것(헤겔식으로 말하면 순수 무)이나 마찬가지로 아무 내용도 없은 공허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체의 처지에서 보면 지속이냐 변화냐는 살아남느냐 죽느냐를 판가름하는 선택의 기로입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지속해 왔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러저러한 변화를 거쳐 왔다는 기억 내용 만으로서는 삶에 도움이 되는 지침이 될지 모르나 삶의 보장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기억은 걸러진 것, 곧 규정된 정보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직 없는 것인 미래는 규정되는 않은 것, 무엇이라고, 어떻다고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지속된 것, 또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변화된 것을 구체적 자료(data)를 통해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 있다, 있었던 것이 없다, 없었던 것이 있다, 없었던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을 기초 삼아 정보 철을 만들지만 그 기억된 정도의 사용 가치는 미래 상황이 결정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억에 저장된 정보 철을 뒤지는 인간의 의식이 따르는 통상 경로가 있습니다. 원칙은 간단합니다. ‘간단한[가까운] 것에서 먼 것[복잡한]으로’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라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자료들을 뒤져 나갑니다. 생명 유지는 시간 축을 따라 이루어지니까 현재에서 가장 가까운 과거가 일차 탐색의 대상 영역입니다. 시간 축에 따라 현재로부터 더 먼 과거와 거 가까운 과서 사이엔 이런 대응 관계가 성립합니다. 그림 21 [여기 그림은 직선으로 대응관계로 되어 있다.] (198) [이 대응관계를 벩송은 8자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심층의 과거 회로(동그라미)와 상층의 미래 회로(동그라미)와 맞댕응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과거 회로가 크게 또는 작게 등장한다. (52WKI)]
“이런 말을 하면 지나치다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사실판단이 가치판단을 앞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기에는 모두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경지에 있거나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멍청이들이에요.” (200)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없을 것이 있다.’는 게 세 살배기 아이도 알 만큼 산더미를 이루고 있어서 물질세계에만 국한하더라도 온갖 산업 쓰레기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판에 ‘없는 것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하여 이른바 선진되었다는 나라에서 국가 정책으로 복제 인간까지 만들어 내려는 꿍꿍이셈을 품고 있는데 나 몰라라 하고 지금 여기 있는 것에만 넋을 팔고 있다는 게 말이나 돼요? / 어느 시대 누가 맨 먼저 그 말을 썼는지 모르겠으되 ‘당파성이 객관성에 앞선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울리더군요. (200) [이 책의 마지막 두 문단]
# 인명록 ***
544 헤라클레이토스(Héraclite, Ἠράκλειτος, 기원전 544-480) 이오니아 에페소스 출신, 불(le feu), 투쟁의 변증법.
540-450 파르메니데스(Parménide, Παρμενίδης/ Parmenídês, 기원전 540-450) 존재가 있다(L'Etre est) / fr.Wiki 520/510 - vers 450-448[2]. [소크라테스 20살에 파르메니데스가 죽었다]
490 엠페도클레스(Empédocle, Ἐμπεδοκλῆς, 490-435) 시실리 아크라가스(Ακράγας, 아그리장뜨Agrigente)출신, 4원소(물, 공기, 흙, 불) 사랑과 증오 (소크라테스보다 20여년쯤 선배)
469-399 소크라테스(Socrate, Σωκράτης, 469-399; 70살) 아리스토파네스(Ἀριστοφάνης, 450-386)가 소씨를 아테네의 “등에”라고 불렀다.
427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본명 아리스토클레스 Aristoclès 427-347; 80살) 플라톤이란 ‘어깨가 넓음’을 의미한다. 이데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나이 42살이었고) [그리고 18세 이후에 배울 수 있을 있었다면, 소크라테스 나이 60살이었으며 10여년을 따라다니며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Aristotélēs, 384-322: 62살) 스타지르(Stagire)에서 탄생. (플라톤 나이 33세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367년(17살)에 플라톤의 나이 50살에 아카데미아 입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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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용수, 나가르주나(龍樹, Nâgârjuna 150?-250?) 인도의 불교학자. 대승불교 제창자. 『중론(中論)』“Prajñānāma mūla madhyamaka kārikā”(Traité du Milieu)에서 전개한 공(空)의 사상은 그 이후의 모든 불교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공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침이 없는 중도적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후세에 그의 학파를 가리켜 중관파(中觀派)라고 불렀다. / “대지도론(大智度論)”은 《반야경》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부류에 속하는 《대품반야》의 주석서이다.]
204 플로티노스(Plotin, Πλωτῖνος; lat.. Plotinus 204-270)탄생. 이집트 리코폴리스에서 알렉산드리아 학파. 엔네아데스(Les Ennéades, Ἐννεάδες, 254-270). 그는 세계에 대한 이해로서 세 가지 기저(trois « hypostases »)를 깨닫게 되었다. 일자(L'Un, ἐν), 지성(L'Intelligence, l'Intellect, νουϛ), 영혼 (L'Âme, ψυχη) [이말로 보면 중간에 점으로서 일자, 상층의 지성, 심층의 영혼이다. / 학설상 일자에서 누스로 그리고 영혼으로 연결되면 누스는 자연자체가 된다.]
354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 d’Hippone, Aurelius Augustinus 354-430) 교부철학자. Les Confessions, écrites de 397 à 400 ; De la trinité (410-416) ; la Cité de Dieu de 410 à 426 (있음과 없음(2003), 새로 작성 5:24, 52WKI)]
(첫마무리, 21:14, 52WLI)
*** 아래 글들은 단상입니다. 나중에 수정 보완하기로...
덧붙여서
인류사는 전투와 투쟁의 과정이다. 전쟁이 아니라.
자연이 생성이고 세분화이기 때문이다.
나가르주나(龍樹, Nâgârjuna 150?-250?)와 플로티노스(Plotin, Πλωτῖνος; lat.. Plotinus 204-270) 등장이 거의 같은 시대라는 것이 나에게 흥미롭다. – 소크라테스, 플로티노스, 브루노, 스피노자, 루소, (니체), 벩송, 들뢰즈 (들뢰즈는 250년대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들뢰즈는 서양사 입장에서 “제5장 기원전 587년-기원후 70년: 몇몇 기호체계에 관하여” 디아스포라로서 노마드에 주목하였다는 점이다. 그 이후로 1400년에 이르기까지 지중해의 철학은 거의 아랍(알렉산드리아)의 철학들이었고, 그 철학들은 천문학과 의학을 병행했다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불교 철학에서 나가르주나, 마하가습, 달마, 혜능, 종밀, 지눌, 보우, 서산, 경허 등에다가 화담 서경덕을 첨가한 것이 새롭습니다. 서경덕이 개성이라는 토지(영토)에서 조선의 유학과 다른 탈영토화의 탈주를 하였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서구가 견고한 실용, 편리, 유용에서 벗어나 가치로 전환에는 다른 문제가 제기되었다. 1440년 바다에서 그래서 들뢰즈가 1227년 몽고를 제기한 것이다. 몽고의 확장은 서구에서 십자군 전쟁의 후유증과 같다.
중국은 견고한 정주적인 천자 사상 속에서 인민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떠돌이에서 가능했다.
인민의 평등은 서구에서 그렇게 쉽사리 등장하지 못한다. 하나는 천상의 평화와 지상의 평화라는 갈릴레이 였는데, 데카르트가 이원화 함으로서 모호해졌다. 그러다가 증기기관과 모터의 발달로 맑스의 정치경제학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이 있다. 다른 하나는 스피노자가 윤리측면에서 자연(본성) 제기하기도 하고, 엉뚱하게 인성(nature)의 측면에서 흄과 루소가 있었다. 그리고 인성(nature)을 지속-기억에서 제기한 벩송이다.
윤구병이 불교가 브라만에게 밀렸듯이, 중국에서 상층(유학)에 밀려서 선불교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었다고 보는 견해는 흥미롭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민의 평등에서 글과 말이 우리식으로 등장하는 세종의 훈민정음을 철학사에 끌어들인 것도 흥미롭다.
그리고 새로이 철학을 제기한 박홍규에서 윤구병으로 창발의 과정이 있고 그 과정에서 벩송과 들뢰즈 박홍규로 보는 시각은 참신하다. 윤구병에게는 인민의 평등 그리고 평화통일이라는 과제와 맞물려서 2천5백년의 철학사를 재구성하려고 한다. 그 재구서에는 정지에서 운동으로 공간에서 시간으로 인데, 들뢰즈의 폴리스 대 노마드, 홈파인 공간 대 매끈한 공간을 대비해 볼 필요가 있고, 게다가 매끈한 공간이 신체와 연관이라면 위상적 공간은 사유와 연관인데, 이에 대해 윤구병은 달리 아페이론의 이중성(이원론이라 표현했지만) 논의를 전개하려 하고 있다.
벩송이 아세키나제가 아니라 세파라드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학문에 대해 남다른 견해가 있다. 그리고 그는 그 당시에도 카이로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제자였던 칸(Albert Kahn, Abraham Kahn, 1860-1940)이 매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52WLA)
**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1969)을 국가박사학위 논문을 내고, - 여기에서 그의 사유의 얼게로서 의미의 논리를 주목하면서 - 인간사에 대해 가타리와 더불어 앙띠 외디푸스(1972)를 토대로 천개의 고원(1980)을 썼다. 들뢰즈가 가타리를 만나면서 자연주의(유물론)의 사유를 현실 사회와 역사에 적용할 수 있었다. 내가 이야기를 왜 꺼내나 하면, 형님의 “같잖은 이야기”가 아페이론(유물론)으로 본 인간 사유사를 우리나라에 접근 시키려는 시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와 주체는 철학사 안에 내재해 있었다. 소크라테스, 플로티노스, 브루노, 스피노자, 벩송, 들뢰즈 계보이거나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 헤겔, 후설, 하이데거의 계보이거나 간에 “자유”의 탐색에서 주체의 자주가 없을 수 없었다.
인간이 자유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신학일 것이고 논리학을 앞세워 사고하는 자들은 자유가 쟁취의 대상인데 비해, 전자의 계열에서는 자유란 생산, 창안, 발명, 창조의 노력이다. 어쩌면 같잖은 이야기를 전개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들뢰지가 꼽기에는 니체, 카프카, 로렌스, 아르또 같은 인간이기도 하다. 윤구병은 우리나라에서 원효, 지눌, 화담 서경덕, 그리고 박홍규를 보태고 싶은 만큼이나. 본인이 들어갈 것이라고 상상할 것이다. 창안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사유를 한다는 점에서, 수학사를 읽어보면 더 잘 보인다. 인류 역사에서 ‘자유’의 실현을 주장한 사람은 헤겔로 칭하지만, 역사의 발전이 자유의 실현으로 국가 또는 절대자의 인식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아리스토텔레스에 가까울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슬기인(호모 사피엔스)이라는 개념을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인류는 어째거나 자기의 활동의 영역을 전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면서 살아왔다. 이런 다른 삶을 들뢰즈 표현으로 ‘탈영토화’라고 한다. 탈영토화가 자유의 발현이라면 헤겔의 사고와는 다른 방식 사유하면서 인류사를 다시 보았을 것이다.
슬기인이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기원전 500년경에 그리스에서 인식에서 정의(la définition)를 하는 방식을 찾았을 때로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구전이 문자로 체계화 되는 시기는 이 시기보다 빠르지만, 이야기(mythos)보다 검증된 사실로서 또는 검증할 수 있는 논리로서 기원(archê)[원인학(aitiologie)]을 찾는 방법은 뒤늦게 나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원인학(aitiologie)에서 아이티아(aitia)는 플라톤에서 제기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자연탐구의 방식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첫 원인은 이야기에서는 혼돈으로부터 출발하는데 비해, 슬기인들은 물, 아페이론, 공기(숨결, 바람) 등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여기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을 숨결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본 철학자는 플라톤보다 니체라고 보는 들뢰즈가 흥미롭다. 플라톤에서 아페이론은 수동적 대상으로 여긴데 비해, 니체의 경우에 아페이론은 생성과 발생의 ‘힘’여겼다는 점이다. 윤구병은 아페이론을 유물론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삼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아페이론에서 발생적 요소들이 유물론의 토대이고 아페이론은 여전히 암흑물질처럼 규정되지 않은 또는 한정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그는 이 아페론을 0와 1사이에 두고자하는 데, 이는 산술학적 체계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나로서는 아페이론이 집합론에서 φ(여집합)에 가깝다고 여기고, 산출학이 아니라 기하학의 달리 사유하기에 속하는 위상학으로 보아야 한다고 여긴다.
박홍규 선생님의 창안한 개념인 원인학으로서 철학은 시대에 따라서 실증적으로 깊이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겉보기(현상, 재현)의 학문에서 구체적 검증으로 들어가면서 천문학이, 물리학이, 화학이, 생물학이, 사회학이, 심리학이 새로운 영토로서 학문의 지위를 차지한다. 여기서 수학은 탈영토화가지 않았던가? 수학은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를 반복하면서 각 학문들이 성립할 수 있는 여건(필요조건)을 만들어 주었다거 해야 할 것이다. 천문학을 예로 들면, 행성의 운행을 관찰하고, 짧은 시간대 정확한 위치들의 기록(검증) 위에서 원원동이 아니라 타원운동임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운동 속에서 일직선에서 타원(포물선)의 시대를 열면서 물리학이 성립한다. 시대를 넘어서 1882년에는 산술학의 단위로서 설명할 수 없는 무한(∞)의 영역에 대한 집합론은 자기의 파라독스에 빠지지 않으려고 φ(여집합)를 끌어들인다. φ(여집합)의 단위 또 다른 기하학의 파이(π)라는 단위는 수학에서 사유의 지도리를 떼어내어, 인간의 두뇌(사고)를 무한 속으로 던져버렸다. 상상을 넘어서 공상이라는 것도 학문으로 가능할 것인가? 그러면 공상을 넘어서 망상과 착란은? 정신분석학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 였을 것이다.
토지와 더불어 신체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생명체로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상상과 공상을 넘는 영역에 대한 것은 인간의 사고의 오만과 과신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가. 우주 나이 137억년이든 우주의 거리가 158억 광년(또는 276억 광년, 또는 780억 광년이라 하든) 지구라는 곳에서 삶과 연관은 그들 우주 천문학자의 이야기(신화)에 맡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뭣꼬’의 주제는 산다는 것인가? 우리가 부딪히는 모든 대상들(아페이론 사물, 사고. 관념, 공상)에 대한 물음인가?
산다는 것은 현재 여기에 땅위에서 산다. 이런 점에서 토지(지구)로부터 시작하자는 점은 윤구병이나 들뢰즈가 마찬가지이다. 들뢰즈는 삶의 공동체에 관한한 토지가 아니라 국가와 제국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토지에서 벗어난 현상과 재현의 삶을 보면서 토지를 기반으로 중첩적으로 또는 압축적 토대를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데 있다. 곡식과 채소는 GMO라고 하더라도 토지 위에서 생산되는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산다는 토지 위에서 이다. 이제 이주와 이동으로 한 영토위에 살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비율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토지를 떠나 건물 속에서 누에고치처럼 건물 속에 처밖혀 산다고 하더라도 그도 ‘죽는다’. 이 죽는다는 건물 속에서 계속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을 사실에서 맞다 틀리다고 사고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삶이 저런 삶이 창안하는 자유인가라는 가치의 문제로 다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산다는 것이 먼저이고 철학하다는 다음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윤구병의 생각인 것 같다.
그가 신인류는 AI하고 싸움하고 구인류는 가치 정립을 위해 살다가 간다는 뜻으로 지나가듯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는 있음과 없음(2003)의 마지막에서 당파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산다는 가치를 창안하는데 있어서 맞다 틀리다는 진리 사고의 사고 이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당파성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이 당파성은 달리 말하기, 같잖은 생각하기 등과 마찬가지로 달리 살아가기를 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죽는다’ 것에 닿아 있다. 잘 죽는다라는 것은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아제세상을 만드는 노력을 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살다가 가려고 변산공동체 뒷 산에 토방을 하나 꾸려서 지내다가, 아마도 그는 당파성(2003)과 함 또는 됨(2013)을 이야기 했었는데, 빠진 것이 있다고 여겨서 달리 살기 만큼이나 ‘같잖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려깊은 논리의 이야기에 대해 플라톤이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과 달리, 그는 살아보니까, 다 쓰잘데없는 이야기 같고(개구즉착, 開口卽錯), 이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길도 없고, 그럼에도 누군가(on)가 이런 저런 길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길들을 찾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 그는 2019년 2월 강연 다음에 심장이 멈췄다. 남들이 심장박동기를 몸에 삽입했다. - 아제인간이 엉뚱하게 힘을 소비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을 그려보는 것도 개구즉착이겠지만, 그래도 ‘입만 벌리면 저도 모르게 거짓말이 술술 나와요 헤헤’라고, 박홍규 선생님에게 말하고 싶듯이, 인민에게 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 나름으로 그의 과정을 방법후설(내가 만든 용어 ‘방법후설’이라 부르는)을 엮어보는 것, 그의 생성과 창발은 여전히 의미 있다. (52WLC).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