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도소송과 세입자보상
재개발사업이 한창 진행될 때 건물을 철거하고 공사에 착수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다. 최근 용산에서 벌어진 참사처럼 건물을 기습적으로 철거하고 사업에 반대하는 세입자들이 망루를 세우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재개발사업장에서는 세입자들에 대해 명도소송이 제기되는데 법원의 판결에 의해 명도가 이뤄지면 그에 터 잡아 건축물을 철거하기 위해서이다.
세입자에 대한 명도소송에서 조합 또는 사업시행자가 활용하는 법적 근거는 도시정비법 제49조제6항이며, 이 조항은 관리처분계획의 인가로 소유자, 임차인 등의 사용수익권을 정지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세입자가 더 이상 건물을 점유해서 거주하거나 또는 영업을 할 수 없다고 해석되므로 조합이 명도를 청구하는 권원으로 기능하게 된다.
다른 한편 도시정비법과 이에 의해 준용되는 토지보상법은 주거이전비, 임대주택공급, 영업손실 보상 등을 세입자에 대한 생활권보상의 내용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정비법에 의해 토지보상법이 준용되는 경우는 수용대상자에 대해서일 뿐
수용대상이 아닌 자에 대해서는 토지보상법이 준용될 수 없다(도시정비법 제40조제1항).
그러므로 사업에 찬성하는 일반조합원은 수용대상자가 아니며 그들의 세입자에 대해서도 수용권이 발동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수용권이 발동되지 않으면 토지보상법상의 보상조항도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이들에 대해서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실무에서는 다행히 재개발조합의 정관이 세입자에 대해 토지보상법을 준용하도록 하는 조항을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일반세입자도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세입자의 주거이전비 청구권을 공법상의 권리로 보고 공법상 당사자소송을 통해 사업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토지보상법 및 도시정비법에서 세입자에게 소유권 이외의 생활권에 대해 보상을 정하고 있는 계기는 그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고, 이 때 생활권의 핵심은 건축물에 대한 점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조합이 명도소송을 통해 점유의 이전을 요구하게 되면 이 소송은 ‘수용소송(收用訴訟)’의 실질을 갖게 되며 명도판결을 통해 세입자의 생활권은 박탈된다.
이 때 법원이 세입자의 생활권을 수용할 것을 명하는 수용판결을 내리고자 한다면 헌법(제23조제3항)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정당한 보상이 지급될 것을 조건으로 해야 한다.
정당한 수용절차에서 사업시행자는 보상액을 먼저 공탁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수용재결이 실효되므로(토지보상법 제42조), 보상과 명도를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 아니다.
현장에 따라서는 세입자에 대한 보상을 피하기 위해 조합이 직접 명도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조합원 명의로 명도소송을 제기하거나
또는 조합이 조합원의 권리를 대위해서 명도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되고 나면 소유자의 사용수익권도 정지되므로 소유자도 점유의 이전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해석해야 한다.
이는 사업시행자에게 세입자보상의 의무를 정하고 있는 도시정비법의 제도적 취지를 우회하는 소송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