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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민족이 구약을 가졌던 것처럼 상고시대에 우리민족도 고유한 경전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세계최고(最古)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 자랑스레 떠들면서도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경전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우리민족의 삼대경전은 천부경과,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가 쓴 참전계경, 그리고 삼일신고의 세가지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천부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일 뿐 아니라 유불선과 음양오행, 그리고 주역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우리 민족만의 경전일 뿐 아니라 전체동양의 경전이며, 셰계인의 경전이다.
이 천부경은 원래 환인시절부터 있다가 훗날 환웅에게 전해진 삼부인 세 개 중의 하나인 거울(용경)에 새겨졌던 것인데, 환웅천황이 백두산 기슭에 신시를 개국한 다음 백두산 동쪽에 큰 비를 세우고 거기에 글로 새겨 훗날 통일신라시대까지 전해져 왔던 것이다.
이 비에 새겨진 천부경은 우리민족의 옛글자(훗날 훈민정음의 모체가 됨)인 가림다로 새겨진 것이어서 후세사람들이 판독치 못하다가 통일신라 시대에 해동공자로 추앙받았던 당대의 세계적 석학인
이 81글자로 우주의 법칙 모두를 압축해 담은 번역문을 볼 때에
얄궂은 그림들에다가 황당무계한 숫자들을 잔뜩 늘어 논 것들이라 얼핏 보면 고등학교 수학책인 줄 착각할 정도이다. 그래 놓고서 이 작자들은 꼭 도망갈 구석을 만들어 놓는다. 천부경의 진리는 워낙 심오한 것이어서 풀이자체가 난해할 수 밖에 없단다.
어렵고 난해해야만 진리인줄 착각하는 바보들이다. 그러나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어렵다면 이미 진리가 아니다. 천부경은 가장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해 놓은 글이다. 추측이나 가설의 여지가 없는 글자의 뜻 그대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경전이다.
그렇지 않다면 해동공자는 허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반만년 동안 풀지 못했던 천부경의 비밀을 구름이 풀어드리겠다. 그리고 이 천부경을 통해서 숨겨진 세계사의 비밀을 알려드리겠다. 천부경의 전문을 먼저 올려드린다. 대개의 경우 이 천부경은 끊어 읽는 단락부터가 틀리고 있다.
옛 환인천제 시대의 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이 천부경을 계송하여 낭독해 왔건마는 단락구분조차 틀리니 이걸 노래로 운률에 맞추어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구름이 아래 적은 끊어 읽기가 가장 정확한 것이다. 이래야 운률이 맞는
천부경의 실상은 모든 종교의 출발처럼 알 수 없는 문자로 기록된 것에 전설의 의미까지 부여하여
一 始 無 始 一 (일시무시일)
析 三 極 無 盡 本 (석삼극무진본)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천일일지일이인일삼)
一 積 十 鋸 無 櫃 化 三 (일적십거무궤화삼)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천이삼지이삼인이삼)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대삼합육생칠팔구)
運 三 四 成 環 五 七 (운삼사성환오칠)
一 妙 衍 萬 往 萬 來 (일묘연만왕만래)
用 變 不 動 本 本 (용변부동본본)
心 本 太 陽 昻 (심본태양앙)
明 人 中 天 地 一 (명인중천지일)
一 終 無 終 一 (일종무종일) 이라고 번역하여
하나는 시작과 시작 없음이 함께하는 하나이다.
삼극으로 나누어진 무에 다한 근본이다.
하늘(天)은 하나(一)로되 첫째(一)요, 땅(地)은 하나(一)로되 둘째(二)요,
사람(人)은 하나(一)로되 셋째(三)이다.
하나로 쌓여 열로 크니 무(無)가 함(궤)이 되는 셋이다.
하늘은 둘이며 셋이요, 땅도 둘이며 셋이요, 사람도 둘이며 셋이다.
큰 셋을 합해서 육이 되고, 칠,팔,구도 된다.
움직임이 삼사로서 이루고 고리는 오칠이다.
하나는 오묘하고 넘쳐서, 만 가지를 가게 하고, 만 가지를 오게 한다.
쓰임은 변하나, 아니 움직이는 근본이다.
근본 마음은 근본으로서 크고 빛난다.
높이며 밝게 하는 사람은 가운데로서 하늘과 땅이 하나이다.
하나는 끝남이 무(無)에서 끝나는 하나이다.
라고 삼일신고나 참전계경 등으로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하고 있는 천부경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그 본질의 의미는 어떤 대단한 사람이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그 무엇에 의한 그 무엇이고
그 무엇이 부와 모와 나인 삼으로 분리하여
부를 첫째, 모를 둘째, 나를 셋째로 분별하며
그 무엇이 이런 식으로 인류를 번식하고
부와 모와 자도 각각 이런 식으로 종족을 번식하여
결국 그 무엇에서 개인, 가정, 씨족, 부족, 국가로 확장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인생 속에서
끝없이 문명을 발전시키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무엇의 근본은 절대로 알 수 없고
그렇게 흘러가는 인생으로 정답으로 착각하여
그런 인생의 선생이 되어 정답처럼 열심히 달려가지만
결국 인생 무상을 읊조리며 홀연히 허공 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져 간 것을 노래한 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바로 알 때
이 역시 책임과 의무가 있는 구속을 자유로 미혹하는 교육과 훈련에 세뇌되어 정답으로 착각하고 있는 괴물들처럼 지금까지 참을 가리고 가로막는 칼로 물 베기란 부부 싸움과 결혼의 실체나, 피조물의 외침을 가로막는 괴물의 외침 등의 제목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라고 하거나, 공 하다는 성경이나 불경의 논리나 주장처럼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피조물이 아니라 괴물의 본능과 본질을 따라 만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한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인 도덕천을 비롯하여 삼강오륜이나 인의예지신 등 수 많은 법이나 틀로 참인 정답을 가리고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용감무쌍하게 행하고 있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피조물의 궁극적인 본능과 본질을 따른 목적과 사명은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로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만고의 영웅호걸로 거듭나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소유하지 못한 종교나 철학을 비롯하여 이 세상 모든 학문의 대단한 선생들이 상상의 용을 그려 진짜 용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외모를 따라 분별하여 스스로 그린 상상의 허망한 신기루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나, 천국이나, 불국 정토나, 유토피아나, 파라다이스 등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는 동상이몽의 세상을 현실로 실현하기 위하여 만든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을 따라 첫 상견례 장에서부터 그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으로 의미를 부여하여 만든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인 모성애를
피조물의 본능이나 본질을 따른 정답으로 착각하여 생명줄 같은 유혹의 젖가슴으로 입을 막아 피조물을 괴물로 만들어 피조물의 본능과 본질을 따른 목적과 사명의 외침인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만고의 영웅호걸을, 괴물의 외침인 의식주의 자급자족과 일용할 양식으로 왜곡 변질한 것처럼
달콤한 신기루 유혹의 명분과, 온갖 감언이설과 권모술수의 곡학아세와, 표리부동의 굿판인 온갖 방법의 교육과 훈련 등으로 세뇌하여 굴욕의 항복인 참회의 회개를 강요하는 자승자박과 자가 당착의 모순 속에 빠져 스스로 바람이나 구름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세뇌함으로
죄인이나 괴물이 되거나, 만들려고 의미를 부여한 어떠한 의식이나 인식 유무에 상관없이 무조건 그 모든 것의 본질은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인 이 세상과, 이 세상의 허망한 신기루 유익인 똥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삯꾼이나, 사기꾼이 되어 만든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으로 그 실상의 본질은 참을 가리고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기에
지금까지 어떠한 인생도 그러한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으로 피조물의 한계를 온전하게 극복하여 위 없는 살아있는 온전한 만고의 영웅호걸로 거듭나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기쁨과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보다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는 괴물이 되어 다람쥐 쳇바퀴 돌리다 결국 인생 무상을 읊조리며 홀연히 허공 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져 간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깨달아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또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신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온전한 영이신 여호와처럼 영원한 동상이몽인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무심과 무관심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외모인 공평 타당함이나 공의롭게 판단하여 표적으로 구하고 있는 허망한 신기루 유혹인 종교나, 부귀영화나, 피난처나, 기념일이나, 만우절처럼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인 이 세상과, 이 세상의 허망한 신기루 유익인 똥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바람이나 구름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생명줄 같은 유혹의 젖가슴 명분으로 괴물을 만든 것처럼 정답이 아니라 절대 불가능의 동상이몽이기에 사후약방문처럼 오히려 달려간 만큼 실망만 더 커지고 멀어지는 다람쥐 쳇바퀴로 결국 인생 무상을 읊조리며 홀연히 허공 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져 가므로 결국 참인 정답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힘이나, 고래를 춤추게 하는 칭찬이나, 동전의 양면이나, 이현령비현령이나, 오십 보 백 보나, 도토리 키 재기 등의 허망한 신기루 명분으로 의미를 부여하여 조성된 허망한 신기루인 명분을 정답처럼 굴욕의 항복인 참회의 회개를 강요함으로 죄인이나 괴물로 계속하여 머물러 있게 하려는 것으로
결국 이 세상의 유익인 똥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한 자신들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위선의 비겁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스스로 만든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을 정답으로 미혹하기 위하여 질풍노도의 자유의지를 통제하여 죽이려는 불의와 불법의 수단과 방법이기에
결국 목자 없는 양 같이 유리하는 모순과 안타까움의 나팔과 꽹과리 소리만 난무하는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인 아비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직시한다면 이렇게 교묘하게 피조물의 외침을 가로막는 괴물의 외침은 자신을 비롯하여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자녀와 이웃 등이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인 이 세상과 피조물의 한계를 바로 깨달아 회개함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까지 박탈하는 동상이몽의 나팔과 꽹과리 소리로, 참을 가리고 가로막는 허망한 신기루 유혹인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 됨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인 이 세상과, 이 세상의 허망한 신기루 유익인 똥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처럼 또는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는 짓이 될 뿐 아니라
피조물의 궁극적인 본능과 본질을 따른 목적과 사명인,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만고의 영웅호걸로 거듭나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기쁨과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찾아 소유할 중요하고 소중한 유한의 유일한 기회와 시간을 허공으로 날리며 인생 무상을 향하여 열심히 달음질치는 짓이 되고
또 온전하고 유일한 정답인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복음과, 자신을 위한 것을 타인을 위한 것처럼 또는 타인을 위한 것을 자신을 위한 것처럼 심각한 착각과 모순의 무지로 나만을 위하는 것은 오직 나 밖에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왜곡 변질하여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인 이 세상과 이 세상의 허망한 신기루 유익인 똥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예수나, 붓다나, 부모나, 자식이나, 각종 조직이나, 국가 등 허망한 신기루 표적인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대단한 무엇을 해주는 것으로 미혹하여 표적으로 구하도록 강요하는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으로 인하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사명을 괴물의 목적과 사명으로 왜곡 변질하여 끝없는 미로 속을 헤매도록 미혹하여 강요하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인 나팔과 꽹과리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답이 아닌 그런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의 유혹에 미혹되어 허망한 신기루를 표적으로 구하다 결국 인생무상을 읊조리며 홀연히 허공 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져 가기보다 참을 가리고 가로 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분명하게 바로 깨달아 위 없이 살아 있는 온전한 회개를 함으로
복음으로 구원받아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로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온전한 영과 생명인,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만고의 영웅호걸로 거듭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온전한 영이신 여호와처럼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소통인 일심동체가 되어
서로 사랑하는 질풍노도의 연애인 이심전심으로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함으로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고 외모의 형상인 육체를 가진 피조물로서는 절대로 누릴 수 없는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기쁨과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동상이몽이 아니라 이심전심인 실삶으로 확인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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