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대가 만난 사람 5. 의성전통시장 안평상회 손영복(73), 정말란(71), 손현봉(47) 가족
새디기 하고 얼라들이 와야 할 낀데!
‘가는 날이 장날이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필자는 가는 길에 장에 들리게 되었다.
의성군민회관에서 [지방보조금 관리 매뉴얼 설명회]가 있어 의성군탁구협회 사무국장으로 참석을 하고 종대가 만난 사람 다섯 번째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의성전통시장으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TV도 신문도 전화기도 없던 시절,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기능을 넘어 세상의 소식과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의 기능을 담당했었다. 사람들과의 약속도 장소 날짜 시간이 필요 없이 “다음 장에 보세!”라는 한 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 되었다. 장날 시장에서 들을 수 있었던 세상의 소식이 TV 뉴스로 옮겨지고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보다 물품을 구매하는 편리함의 가치가 우선되는 시대가 되면서 시장은 세상의 중심에서 점 점 밀려나고 있다. 예전만은 못하지만 장날이면 아직도 사람들의 발 길이 북적이는 의성전통시장을 가족이 묵묵히 지키고 있는 안평상회 문을 두드렸다.
언제부터 의성전통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하셨나요?
손영복 : 안평에서 농사를 짓다가 군대 가기 전 19살 때 의성시장에서 마늘장사를 하는 형을 거들면서 발을 담그게 되었습니다. 군대 제대하고 결혼을 해서 안평에서 농사를 조금 짓고 살다가 농사보다는 장사가 나을 것 같아 의성읍으로 나와 마늘장사에 뛰어 들었어요. 처음에는 요령이 없으니 손해가 많았어요. 서울에서 건어물 장사를 크게 하는 매부가 나의 사정이 딱해 보였던지 거래처와 방법을 알려 줄 테니 품목을 마늘에서 건어물로 바꿔 보라고 권유를 하여 건어물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장사를 시작한지 나로 치면 54년이고 가족으로 치면 40년이 될 것입니다.
두 분께서는 어떻게 만나 결혼을 하셨나요?
정말란 : 바깥양반은 안평 마전리, 나는 안평 창길리가 고향입니다. 고향이 같은 안평면이라 연애해서 결혼 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서로가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연애하다가 들키면 집 어른에게 다리몽둥이가 부러지는 시절이라 연애는 꿈도 꾸지 못해요. 중매쟁이가 중매를 해서 약혼(지금의 상견례) 때 얼굴을 처음 봤는데 얼굴이 듬직하게 생긴 것이 마음에 들었어요. 부모님 말이 곧 법이라 결혼해라 하면 무조건 해야 되는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신랑감이 마음에 드니 안심이 됩디다.
50년 가까이 함께 사시면서 힘든 일은 없었나요? 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오래 하다보면 서로가 사소하게 부딪치는 일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정말란 : 안평에서 농사 조금 짓다가 밑천도 없이 의성으로 나와 맨 몸으로 장사를 시작하다 보니 고생이야 말 할 것도 없었지요. 가게에 딸린 작은 방 한 칸에서 다섯 식구가 같이 생활했었는데 애들 아버지가 마음은 뻔한데 장사가 생각대로 잘 안되니 속이 상하는지 술을 입에 댔어요. 술김에 소리도 한번 씩 질렀는데 그때는 무서워서 애들이랑 옆집으로 도망도 하고 그랬습니다. 10년 정도 고생을 하니 거래처도 늘어나고 일이 풀리기 시작합디다. 바깥양반은 안평장, 단촌장, 탑리장 외장을 돌고 장이 비는 날은 물건을 하러 나가기 때문에 가게에서 같이 얼굴 맞댈 시간이 없어지더라구요. 한참 고생할 때 애들하고 가게에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앞을 지나가면서 ‘참 좋을 때다!’라고 말하면서 지나가요. 겉으로 말은 못했지만 속으로는 ‘저 할마씨는 남의 속도 모르고 저런 소리 하신다.’라며 서운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가 지나가며 했던 말처럼 비록 고생은 했지만 그때가 재미도 있었고 좋은 때 였던 것 같습니다.
장사를 오래하시면서 큰 고비나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요?
손영복 :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 의성토박이는 아니지만 형이 의성 장에서 오래전부터 마늘장사를 하고 있었고 군대 가기 전에 형 밑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텃새를 느끼거나 일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다만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초기에는 돈이 안 되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나니 감이 조금씩 잡히자 돈도 따라서 잡히기 시작하더라구요. 의성, 안평, 단촌, 탑리 장이 설 때마다 직접 팔기도 했지만 소매상과 노점상을 합쳐서 약 60여 곳에 물건을 대주는 도매업을 같이 했습니다. 외상 거래가 쌓이다 보니 돈을 떼어먹고 몰래 도망을 치는 소매상들이 있었어요. 당시 돈으로 370만원이 걸려 있는 사람이라 이곳저곳에 알아보니 구미 어디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돈을 받으러 찾아 갔더니 골방에서 형편없이 살아요. 내 돈 내 놓아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오히려 불쌍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오죽 살기 힘들었으면 도망을 갔겠나! 싶어 그날 가게에 돌아와서 외상 장부를 불에 다 태워 버렸습니다. 또 한 사람은 노점을 하는 아주머니였는데 큰돈은 아니었지만 외상값을 갚지 않아 거래를 끊었어요. 그랬더니 찾아와서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사정사정을 하여 속는 셈치고 물건을 다시 대어 주었는데 또 못 받게 되었습니다. 형편이 딱하니 매정하게 받아내기가 어렵더라구요. 이렇게 못 받은 외상값을 지금 돈으로 치면 수억 원은 족히 될 겁니다. 이렇게 떼인 돈도 많지만 지금까지 밥 안 굶고 자식들 키웠으니 그것만으로도 된 것이지요.
현재 상황은 어떠신지요?
손영복 : 요새는 아무래도 예전 만 못하지요. 한참 때는 이 근처가 전부 건어물 전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없어졌습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으로 전통시장이 점 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원인으로 어떤 것을 들 수 있는지요?
손현봉 : 의성군 인구가 감소하다보니 시장에 오는 사람도 따라서 줄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시장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홈쇼핑, 인터넷 쇼핑 등으로 다양하게 늘어났기 때문에 전통시장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사람들의 발걸음과 이용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비가림막 설치 등의 정부 지원정책이 있기는 하지만 자체적인 자구책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손현봉 : 먼저 전통공설시장 상인회가 8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제가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습니다. 회원 대부분 한 자리에서 장사만 하신 분들이라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일들을 시도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먼저 전통시장으로 사람들을 불러오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 지난 7월 27일 의성출신 향토가수 분들의 재능기부와 상인회의 물품찬조로 작은 음악회를 열었더니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상인회에서 찬조한 물품은 당일 저렴한 가격에 경매를 하여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조성을 해 놓았습니다. 오는 10월 2일에는 생활체육전국씨름연합회의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남․여 씨름 한판] 행사를 유치하여 시장에 오시는 순수 아마추어 분들을 대상으로 씨름대회를 열 예정입니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은 상인들의 의식과 서비스 정신을 높이기 위해 상인대학을 운영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오게 하는 방법으로 먹거리가 중요한데 현재 의성전통시장에는 먹거리가 부족합니다. 따라서 의성전통시장을 상징할 수 있는 먹거리를 개발하여 젊은 사람이 전담하여 운영하는 마을기업 형태의 사업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전통시장에 종사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친구나 지인들이 시장으로 찾아 올 확률이 높아지겠군요?
저도 바라는 점이지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돈이 되면 가업을 물려받고 너도 나도 뛰어 들려고 하겠지만 소득이 보장이 안 되니 누가 이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의성전통시장에서는 50대와 60대 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40대가 남선옥 식당과 저를 포함해서 4명, 30대가 경북축산 1명 입니다. 새롭게 들어오는 젊은 사람은 없으니 나이 드신 분들이 손을 놓으면 전통시장도 유지되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젊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마을기업 사업을 하고 싶은데 여력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역의 행정기관과 유관기관과의 협조도 중요한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이나 역할이 필요한가요?
유관기관의 일일 찻집, 새마을부녀회에서 진행하는 아나바다 행사 등을 의성전통시장과 연계해서 진행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의성 교육청의 협조로 초등학생들의 물물교환 행사를 주말이 겹치는 장날에 열었으면 합니다.
의성전통시장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먹을 것과 돈이 귀했던 어린 시절 장에 가신 할아버지께서 풀빵이라도 사 들고 오시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마을 앞 어귀에서 목이 빠져라 할아버지를 기다렸었다. 할아버지의 장 보따리에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실망감의 기분은 천근만근 어린 몸을 짓눌렀지만 입 밖으로 감히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삼켜야 했다. 반대로 장보따리에 먹을 것이 있으면 기분은 새털이 되어 구름 위로 날라 다녔다. 그렇다고 바로 먹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께서 주머니에 있는 집게 칼을 꺼내 식구 수대로 나누어 “이거는 너거 아버지 꺼, 이거는 너거 엄마 꺼, 이거는 병권(형)이 꺼, 이거는 종대 꺼...”라고 몫을 정하고 배급을 해 주셔야만 손을 댈 수가 있었다. 학교를 다니고부터는 집으로 오는 길이 장터를 지나야 했는데 장날이면 온갖 신기한 것과 북적이는 사람 구경에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나에게 장터는 할아버지께서 맛있는 것을 사오는 곳, 신기한 구경거리가 가득한 곳으로 기억되어 있다. 살고 있는 안계에도 1일, 6일 5일장이 열린다. 싱싱한 채소 과일을 마트보다 값싸게 살 수 있어 집사람이 자주 이용을 한다.
지금의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대형마트에 간다. 이 아이들이 미래의 대형마트 고객인 샘이다. 대형마트로 향하는 젊은 엄마들의 발걸음을 무엇으로 전통시장으로 돌리게 할 것인가? 그것이 큰 숙제인 것 같다. [인터뷰 2014.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