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21] [연재] 삼류무사-14 첨부파일 :
성명 : 장추삼
출신 : 호북 양양성 길현.
사문 : 그런거 없음.
무공 : 그런거 없음. 간단한 권각술 몇 개 알고 있음.
가족 : '신견용쟁' 장유열의 막내 아들.
비고 : 여자에게 차이고 홧김에 오년간 가출. 강호 유람에서 돌아왔다고 하는데 밝혀진
것 없고 관심 가질 사항도 아님.
특기 : 싸움, 번화가인 청빈로에서 '칠공토혈'로 불리며 뒷골목을 평정, 동물적 감각과
운동신경은 높이 살만함.
집법당주 철무웅은 이 기가막힌 보고서와 눈앞의 인물에게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좋은
행동을 취했다는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눈에 뜨이는 사항이라곤 신견용쟁의 아들이라는 것과 특기사항에 등재된 동물적 감각이
니 운동신경 정도가 다인데 그런걸 다 합쳐봐야 높게 쳐줘서 삼류라는 얘기 아닌가?
한가지가 더 특이하기는 하다.
표국 내의 정보조직인 비룡담(飛龍潭)에서 별기한 사항인데 '무당과 알력소지가 다분
함'이라니!
기도 안차는 얘기지만 이런 놈을 표국주는 '실(失)·회(回)·조(組)'에 넣으란다!
비록 삼년밖에 안되는 설립기간이지만 청해표국의 삼대자랑중 하나인 실주회수조(失珠
回收組)에 말이다.
인상을 있는 대로 긁다가 철무웅이 물었다.
"실주회수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실주...뭐요? 음...들어본 적 없소. 이숙께선 희한한 걸 다 만드셨군."
"표국주께 이숙이라니! 앞으로 그런 호칭은 용납할 수 없다."
철무웅이 고리눈을 뜨는데도 장추삼은 처음 표정 그대로 따분한 얼굴이었다.
'이래서 월급쟁이는 싫다니까! 뭘 그렇게 꼬박꼬박 따지는거야, 맡은 일이나 잘하면 되
지, 호칭은 무슨....'
"정말 무공은 모르나?"
"싸움은 좀 하오."
이해할 수 없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신견용쟁과 표국주와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철무웅이기에 그의 백수 아들이 표국에 취
직하러 온 것에 대해 별반 감정이 없었다.
공신에겐 그에 합당하는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고 아들의 취직 정도의 편의야 봐
주는 게 도리일 것이다.
그렇게 이해했기에 채물관 정도의 편하고 보수가 센 보직을 주겠거니 했는데 느닷없이
실주회수조 발령이라니!
"후∼우, 내가 보건데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국주께서 다른 이의 이름을 잘못
올렸거나 보직에 관한 사무착오가 있었나 보다, 잠시 기다려라."
집무실에서 나갔던 철무웅이 일다경 후에 넋나간 표정으로 비틀비틀 걸어왔다.
"뭐랍디까?"
"이건, 이건 아냐! 뭐가 잘못됐겠지!"
한참을 혼자 웅얼거리던 철무웅이 정색을 하고 장추삼을 쳐다보았다.
"이것보게, 장추삼. 표국주께선 자네를 사지로 몰아넣고 계시네. 무슨 이유로 그분의 심
기가 상했는지 모르지만 어서가서 사죄를 드리게."
"글쎄요."
"이 친구야! 실주회수조는 그냥 표사들하고는 다르단 말이야. 언제나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이라구. 생명수당이 본봉보다 많은 곳이라구. 무슨 말인지 알겠나?"
"끝내주는군!"
휘파람까지 부는 장추삼이었다.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봐도 되겠는 조직인걸!"
머리까지 다 아파오는 철무웅이 겨우 마지막 말을 했다.
"실·회·조의 인원치고 일류 아닌 자가 없단 말이다! 자네가 과연 며칠이나 생명을 부지하
겠는가!"
"다시한번 말하지만 난 싸움을 잘하오."
기지개를 켜는 장추삼을 더 두고볼 만큼 철무웅은 인내력이 좋지 않았다.
"갈동(葛童)!"
"옛!"
꺼지듯 한 남자가 나타났다.
"이 넋 나간 친구를 십삼조 대기전으로 데려다 줘!"
깡마른 사내, 갈동이 의아해 했다.
"거긴 실회조의..."
"신입이다, 국주 추천이야!"
십삼조 대기전으로 가는동안 장추삼은 집법당 소속의 갈동에게서 실회조에 관한 여러
가지 얘기를 들었다.
표국주 이외의 어떤 명령체계도 없다는 것이 우선 마음에 들었고 출전은 바로 싸움이라
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건 보수였다.
본봉에다 생명수당까지 합하면 거의 십이표두들 만큼은 챙긴다는 게 장추삼의 입장에
선 매우 기분좋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갈동도 신견용쟁의 아들이 염려되었는지 한마디 해주었다.
"결원율 역시 표국 최고라는 걸 알아야 하오. 이년 전 무투계열(武鬪系列)의 녀석들과 혈
전 중에 당시 무당 최고 속가제자라던 구궁검 최위가 한 팔을 잃고 나서는 그 잘난 무당
출신들도 실·회·조로 가기를 꺼린다오."
아주 마음에 드는 말 아닌가!
건물엔 현판도 없었다.
누가 해놨는지 모르지만 대청의 기둥에 十三이라고 칼로 긁어놓은 것이 전부였고 일반
대기실과 동떨어져 있는 관계로 고즈넉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청해복룡표국 최고의 전투조직 실주회수조의 대기전이었다.
'빌어먹을 동굴에 비하면 왕궁이구만.'
그런건 알겠지만 이곳은 이상하다, 분명히 이상하다.
무사들의 휴식은 대개 소란스러운 법이다.
사람수가 작다고는 하지만 조금의 기척도 없다는 건 이상하다.
갈동의 말에 의하면 세 명의 인원이 한 조가 되어 이틀 전에 자리를 비웠다고 하니까 네
명은 이 건물 내에서 숨쉬고 있다는 건데.
'할 일이 없어서 모두 자기라도 하나?'
삐그덕-.
딴에는 조용히 문을 연다고 했는데, 그 즉시 장추삼에게 여덟 개의 눈동자가 쏟아졌다.
걔 중엔 몸을 일으키는 자도 있었다.
"출동 명령 같은 거 아니오."
의아한 반응, 그렇다면 여긴 사람이 올 일이 없잖아라는 듯 한 표정들.
'아예 담을 쌓고 사는군, 담을 쌓고 살아.'
"나도 오늘부로 이곳 소속이 되었소, 잘 부탁하오."
네 쌍의 눈동자는 곧 제각기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아니, 자기 소개들도 안하나, 하고 생각했지만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이란 걸 알고 있었
기에 금새 포기했다.
대기전의 내부는 중앙을 통로로 양옆에 나무로 만든 침상들과 관물함이 늘어서 있었다.
침상의 수는 열 여덟 개, 안쪽에 아홉 개씩이 있었으니 실·회·조가 본래 열 여덟의 인원으
로 태동되었음을 알게 해주었고 아울러 수북히 쌓인 빈 침대들은 신입지원자가 한동안
없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였다.
남이 무시할 때 굳이 친하려 노력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간섭받기 싫어하는 장
추삼에게 이곳은 거의 이상적인 분위기였다.
아쉬운건 맨 구석의 두 침상은 이미 주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에이...어? 저런 명당이 비어있어?'
안쪽에서 세 번째의 침상, 그것은 두 개밖에 없는 창과 인접해 있어서 통풍이 잘 되고 침
상 자체가 새것인 양 윤기마저 흘렀다.
'웬일이야, 나에게도 재수가 들어오려나?'
관물대 위에 육이라고 쓰인 오른쪽 세 번째 침상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장추삼은 다
시한번 감탄했다.
"이해가 안가는군. 이건 거의 새거 아냐? 초짜가 이런 데를 차지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벌렁 드러눕고 모자란 아침잠이나 청해보려던 장추삼은 문득 몇 쌍의 시선이 그를 주시
하는걸 느꼈다.
임자가 있나해서 관물대를 열어보았지만 텅텅, 침상밑까지 뒤져봐도 나오는건 먼지뿐인
데...
'아니, 들어올 땐 파리보듯 하다가 갑자기 왠 관심이람? 신경끄쇼, 신경 꺼. 나는 잠이나
잘라니까.'
남이야, 하며 무시하고 드러눕는데 그 소리가 들렸다.
"이번은 며칠 갈까?"
걸걸한 목소리.
"한달 이내 정도로 봐요, 난."
앳된 목소리.
"그래? 쭉 찢어진 눈에 한달은 추가하고 싶은데?"
다시 걸걸한 음성, 다분한 장난끼가 었었다.
'뭐야, 이사람들도 말은 하고 사는군.'
"그럼 내기 성립이네요? 평소처럼 은자 두 냥 어때요? 설마 고 아저씨가 내기에 발을 빼
는건 아니겠죠?"
앳된 음성이 무슨 내기로 걸걸한 음성을 살살 꼬드기고 있었는데 눈을 감은 장추삼이 나
설건 아닌 듯 싶었다.
하지만 내기라면 소시적부터 즐겼고 승률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장추삼에게 그들
의 대화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고 자연히 대화내용에 신경이 쓰였다.
"내기꺼리로는 그야말로 금상첨환데 저 친구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다는게 좀 그래.
남의 이목 신경 안쓰고 자리부터 차지하는걸 보면 강심장이란건 알겠는데 육호 관물대
는 간 큰거 가지고 어찌 해볼만한 자리가 아니거든."
너무 궁금해서 살짝 실눈을 뜨고 보니 호랑이 가죽으로 옷을 해입은 사십대의 장한과 조
카뻘로 보이는 약관 문턱에 선 젊은이가 턱까지 괴고 소근거리고 있었다.
'젠장, 무슨 내기길래 저렇게 심각해. 덩치도 곰만한 양반이 좀스럽기는, 쯧쯧.'
은자 두냥이라면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렇지만 자신보다 어린 녀석이 깐죽거리며 약을
올린다면 이십냥이라도 거는게 장추삼이다.
"에? 고담(高擔)아저씨답지 않게 그런 약한 모습이 뭐예요. 불확실성의 시대에 최소한
의 조건으로 유추가 엇갈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인간이 만들어 낸 언어예술의 극치가 내
기라고 말씀하신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잊어버리고 조건타령이세요?"
'불확실성, 유추, 언어예술의 극치, 도대체 뭔말이야?'
생각보다 저 중년은 굉장히 똑똑할지도 모른다고 장추삼은 생각했다.
뭔말인지 모르겠는건 고담도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서 죽어들어갈 순 없었다.
요즘 한동안 저 꼬맹이와 술을 자주 펐는데 나이가 들었는지 중간중간 기억이 끊기곤
했었는데 '두주불사의 호한'을 자처하는 그로서 끊긴 시간을 부정해야만 하고 또 아는
가?
맛이 갈 정도로 취한 상태에서 자신이 그런 유식하고 지적인 말을 했을지?
"어허험! 내, 내가 그런 말을 하기는 했지. 하기는 했는데... 에잇, 좋다! 걸어, 두냥!"
'그런 말을 하긴 언제 그런 말을 했다구.'
단사민(段思旼)은 쾌재를 부르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굴러 들어온 은자 두 냥은, 물론 '산
동의 맷돼지'라는 고담의 발광을 보게 될까봐 겨우 눌러 참았다.
뜸만 들이면 받을 수 있는 밥상을 순간의 기분으로 걷어찰 만큼 바보는 아니니까.
"그래요! 그래야지 싸나이 고담이지요. 일구이언?"
"이부지자! 사민 넌 따논당상이란 표정인데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야. 이런 말이
나와서 하는건데 내가 네 나이때...."
뭘 주제로 했는지 몰라도 내기는 쌍방간의 원만한 합의하에 체결된 것 같았고 희희낙락
해 하는 젊은이에게 호피중년이 자신의 내기 인생에 관해 설파하는 것 같아서 장추삼도
신경을 끊으려 했다.
그 말만 듣지 않았다면.
"...해서 확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놈이 갑자기 켁 죽어버리더라고. 빌빌거리던 집닭이
산닭을 이길 줄 누가 알았겠냐?"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는데요, 결과를 보면 알 문제니까 지금 왈가왈부할 건 없잖아요."
"어이구, 두달을 언제 기다려. 내가 괜한 내기를 했지."
"하기야, 저도 '육호관물대의 저주'만 아니었다면 사람 목숨갖고 내기같은건 안했을텐
데...실회조가 사람 많이 버려논것 같죠?"
'육호 관물대?'
六!
'가만?'
이번에는 며칠을 버틸까 라는 건 처음 온 얼굴이라는 것이고 바꿔말해 신입, 쭉 찢어진
눈에 대해 자신은 여전히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 입에서 그런 소리
가 나온다는건 그렇게도 보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무엇보다 육번 관물대! 의심 없는 증거다.
즉, 장추삼을 두고 호피중년과 애송이가 내기를 걸었다는 건데, 내기의 내용이 '얼마나
버틸까,와 사람 목숨 가지고'를 결합해 보면 그냥 나온다.
'이... 이!'
상체를 곧추 세운 장추삼이 둘을 노려보았다. 잡아먹을 듯이!
"들었나 본데요?"
"응? 자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뻔뻔한 인간들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막상 화를 내려고 해도 뚜렷한 명분이 없질 않은가.
장추삼 개인을 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해를 끼친건 없다.
무슨 소리! 눈가지고 인신공격을 했고 수면방해 소음도 있잖아...멀쩡한 병신되기 쉽다.
"기분 나쁜가 봐요."
"음, 찢어진 눈에 핏발까지 세우니까 아주 장난이 아닌데."
자기들딴에 소근거린다는 모양인데 다들린다!
장추삼의 표정이 거의 아수라화 되어가고 있을 때 그것이 시비라면 고담은 꺼리낄 게 없
었다, 상대에 대한 동정심이라는 건 좀 있었지만.
'아, 그 놈 인상한번 드럽네.'
신참이란건 처음 막사-군생활을 한 오년 했던 고담에게 대기전은 막사같은 의미다-로
들어서면 당연히 쭈뼛거리면서 눈치를 보아야 한다.
적당하게 굳은 안면과 얼빵해 보이는 눈빛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당황 정도는 필수라
는 게 그의 지론이었거늘 오늘 들어온 신참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군대와 다른 표사직이고 그 중에서 타격대의 역할을 담당하는 실회조라고는 하나 어쨌
든 사람 사는 곳에서 이방인이 느끼는 소외감의 무게는 남다른 것인데.
'그렇다고 경천동지의 기세를 흘리는 것도 아니잖아?'
벌떡, 그놈이 일어섰다.
고담과 단사민의 눈빛이 허공에서 얽히며 격렬한 불꽃을 일으켰다.
그렇다!
버르장머리없는 신참에게 매보다 귀한 보약은 없다.
성큼성큼 그 자가 다가올 때 어리지만 그건 나이뿐인 단사민의 입가에 희미한 조소가 맺
히는걸 고담은 보았다.
그리고
단사민의 입가가 얼어붙듯 굳는 것도.
"그 내기...나도 낍시다, 옛수 두 냥!"
짤랑-
[10232] [연재] 삼류무사-15 첨부파일 :
찝찝하다, 몹시 찝찝하다.
한 여름날 세시진을 육체노동하고 등목도 하지 않은 채 이불을 덥고 자도 이보다 찝찝하
진 않으리라.
"핫핫핫핫!"
어쩐지 맥빠진 웃음을 흘리는 장추삼을 바라보며 단사민은 생각보다 이 자의 성격이 그
리 나쁠 것 같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알량한 미신을 믿고 두 냥을 날리는 형씨들을 보니 안타까워 웃었소. 핫핫핫..."
물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신이라? 글쎄요, 미신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존재하지 않는 현상에 관해 맹목적으로
믿는걸 말하는 건데 나랑 고 아저씨가 한 내기는 실증된 반복현상의 발생시기에 관한 의
견차이였다구요."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 발버둥 친건데 매정하고 냉정한 꼬마는 장추삼의 마음을 전혀 헤
아려주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하, 내 주제에 재수는 무슨....'
처음부터 너무 잘 풀려서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
가진 거라곤 뒷골목의 이력이 전부인 자신을 청해표국 최고의 무투조직인 실회조로 보
내준 이효가 그랬고 꼴보기 싫은 무당 것들이 없다는 것도 그랬다.
실회조원들의 철저한 개인주의까지.
이만하면, 이 정도로 잘 나갈 땐 조심을 했어야 했다.
최고 명당 관물대가 비어있으면 그만한 사연이 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했어야 옳았다.
무공 높은 고수들이라고 깨끗하고 볕 잘드는 침상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는 걸 염두했어
야 했다.
"이상하기도 하지. 육호 침상의 인물들이 전부가 강했다는건 아니지만 최소한 적위나 맹
사계 정도의 인물들은 그렇게 죽기엔 아깝고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거든."
사냥꾼 출신이라는 고담이 턱을 문지르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장추삼은 한발 더 현실적
인 세계로 자신이 들어섰다는 걸 알았다.
이 둘의 대화는 내기라는 저차원적인 도박세계를 잊고 육호관물대의 저주라는 심령현상
으로 몰입해 있었다.
"맞아요, 마조 적위라고 하면 섬서에서 조법으로 오위권에 든다는 초고수로 알려졌었는
데 첫 출장에서 별볼일 없는 악가채 놈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건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
중 하나죠."
"그때 같이 있던 당소저의 말을 빌리면 선봉을 맡은 조위가 지면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
나뭇가지에 있던 새집을 건드려서 떨어지는 새알을 받다가 칼에 찔렸다고 하더군."
"마조 적위가 조류를 끔찍이 아꼈다는건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
이었지요. 하기야 무당십검 중 일인이라던 삼룡검객 맹사계 대협의 죽음은 더 어처구니
없었죠."
"아, 아,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지. 별볼일 없는 삼류녀석이 던진 나한전이 돌풍에 휘말
려 어기회선의 수법으로 정수리에 꽂힐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거들먹거리는 무당 패거리 중에서 그나마 인간적인 사람이었는데... 검로도 제대로 밟
고 있던 분이었고. 무엇보다 검 한자루에 사십평생을 일로매진한 분이 암기 나부랭이에
맥없이 생을 접은 걸 보면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도저히 믿지 못할 괴사지요."
저렇게 호흡이 잘 맞을 수 있을까?
이인연수합격을 한다면 천하제일고수도 두렵지 않겠고 재담꾼으로 나선다면 기루의 변
설자들이 모조리 쪽박 찰 일이다.
한명이 고수하고 다른 이가 노래를 부른다면 명창은 따논 당상일거다.
마구마구 피어나는 장추삼의 불안감을 한껏 증폭시키려는 듯 고담과 단사민의 얘기는
그야말로 점입가경, 육호침상을 쓰는 이가 적미천존이라도 절대 삼개월을 버티지 못할
거란 확신마저 들게 했다.
그러나 장추삼은 장추삼!
조마도, 삼룡검객도, 그리고 죽어나간 수많은 실회조의 전대 육호침상 사용자도 아니다.
"킁!"
두 중청(中靑)이 놀랄 정도로 큰 콧방귀를 낀 장추삼이 느물거렸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약해서라구. 목숨을 걸고 임하는 대전, 그것도 다수 결전은 생
각지도 못했던 돌발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하는 걸 염두해야 하는데 본인이 주의 의무를
망각한 상태에서 벌어진 가변변수조차 예측하지 못하고 당했다면 그게 뭐가 섬서조법
오위고 뭐가 무당십검이야. 개가 웃겠다."
마지막에 고개까지 모로 꼬고 침 한 번 퇘! 뱉는 것으로 장추삼의 얘기가 끝나자 고담과
단사민의 눈은 왕방울만큼 커졌다.
'흐흐, 사기꾼 사부가 했던 말인데 요럴때는 쓸만하군. 그 외에 대부분이 버릴 거지만.'
단사민의 목젖이 꿀꺽 울렸다.
'와, 대단한 연출력이다. 분명히 다 맞는 말인데 뭔가 사기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가?'
"어쨌든."
기세를 탔다고 여긴 장추삼이 거만한 얼굴로 두 중청을 내려보았다.
"난 실회조가 전부 죽더라도 살아 남을거요, 내기로는 육십일만 살아남으면 되겠지만 장
가도 못가고 죽기엔 너무 괜찮은 얼굴이 아니오?"
넉냥 벌었다, 킬킬거리고 장추삼이 실회조 대기전을 벗어날 때까지 고담과 단사민은 아
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무슨 일 있었던 것 같은데..."
단사민이 벌렁 누으며 대답했다.
"몰라요."
큰소리치고 나오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허세다.
세상에 누가 있어 그런 소리를 듣고 기분 좋을 리가 있겠나.
"제기랄...."
세상은 불공평하다, 아주아주 더럽게 돌아간다.
하고 많은 자리 중에서 어떻게 육호였고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 자기라는 건가.
전각이 마주 보이는 바위에 걸터앉고 보니 해가 벌써 중천이다.
밥도 먹지 못하고 끌려왔기에 점심시간이 그리울만도 하건만 순간적으로 부린 허세가
배불렀는지 밥 생각도 없는 터였다.
"믿지 않겠지만...."
고개를 뒤로 죽 젖히고 장추삼이 말을 꺼냈는데 산새 몇 마리와 퉁명스런 전각이 청자
(聽者)들의 전부였으니 그가 장님이 아닌 다음에야 독백이 틀림없을 터였다.
"내 부친께선 적미천존과 시비가 붙고서도 목숨을 건진 사람이었소.
무공? 삼류요, 삼류.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지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거요? 그건 나
도 모르오. 우리 마을 뿐 아니라 양양성 일대에서 삼류의 인물이 그렇게 추앙받는 일은
처음일거요, 그것도 죽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릴 때야 모두가 추켜주니까, 돈을 많이 받
으니까 그냥 좋았었소. 근데 알고보니 우습더군. 칼밥을 먹는 이로서 상대의 동정으로
한목숨 부지한 것도 구차스런 일일텐데 결과적으로 그것 때문에 팔자가 달라진거요. 부
친이야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정말 창피했었소. 그래서 생각했지...."
아련한 세월을 쫓는가, 장추삼의 시선은 닿을 수 없는 먼 허공으로 향해 있었다.
그런데,
독백이라고 부르기엔 알 수 없는 말투다.
입에서 터져 나오니까 대화체이겠지만 그의 어법은 누구인가를 옆에 두고 넋두리를 늘
어놓는 형태가 아닌가?
"죽어도 무공따윈 익히지 않겠다고, 만약이지만 피치 못해 익히더라도 최소한 적미천존
을 제압하는 무공을 배우리라고. 말이 안된다고? 아, 물론이오. 최소한 적미천존을 제압
할 무공이라니, 최소한...."
양손으로 바위를 짚고 미친 듯이 웃었다. 목젖이 다 드러날 정도로 고개를 젖히고서 나
이 스물 여덟살의 젊은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우울함을 가졌지만 알만한 사람은 없으니
까.
"후우∼ 그렇소. 자연스레 삐뚤어지다보니 어쩌다 싸움질, 다음엔 패싸움, 맞기 싫어 때
리니까 이기고 이겨 어느 순간에 나보다 쌈잘하는 놈들이 없더군. 부친께 엄청 혼났지
만 그때는 이미 통제불능이었소."
우스웠다.
신견용쟁의 아들은 왜 꼭 '속'신견용쟁이어야 하느냔 말이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견자(犬子)라고 부르는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풋! 모두들 내가 여자한테 차여서 집을 떠났다고들 하지만, 정적이라고 소문난 무당파
의 속가제자에 대한 열등감이 가출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 일은 단지 내 인생의 계기
에 불과했었소."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조각 구름이 뭉쳐 몽실한 얼굴 하나를 자아냈다. 눈이 크고 볼이
귀여운 여인네 하나.
감상을 떨치려는 듯 눈을 감은 장추삼이 낮은 휘파람을 만들어냈다.
"무당, 소림... 벽도 높더군. 화산에 청성... 아미파같은 여자들로 이루어진 문파 외엔 거
의 다 갔었지만 전낭의 무게와 소개장의 유무로 가입이 결정되는걸 알았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조차 하기 어려웠었소."
무엇이 우스운 지도 몰랐다. 그저 키득키득 쉰 바람처럼 허파 뚫린 소리가 입안을 꽉 채
우고 부피를 감당 못해 밖으로 터져 나왔다.
"사부... 말하기 싫은 사기꾼 노인에게 속아서 오년간 동굴 생활을 했었소, 이끼만 먹으
면서 사람이 오년간 연명할 수 있다는 걸 내 몸으로 체험하며 인간의 생명력이란 경탄스
러우리만치 질긴 거라는걸 알았지, 쿡쿡."
쉰 바람소리는 목없는 메아리가 되었다.
"그리고 알았소."
잠깐 뜸을 들이고 장추삼이 정말 하기 싫었던, 그리고 가장 하고싶었던 한마디를 뱉었
다.
"내가... 삼류무사가 되었다는걸 말이요."
부스럭-.
전각에서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지은지 오래된 것이라 보수가 필요한 상태인가 보다.
"웃으시오, 젠장. 마음껏 비웃어도 좋은데 제발 남에게 입방아는 찧지 마시오."
부친의 손에 끌려와서 재수 옴붙은걸 티라도 내듯 관물대를 차지했다는 얘기를 일다경
에 걸쳐 이은 그가 느닷없이 벌떡 일어섰다.
"여름도 아닌데 볕이 제법 따가운걸?"
양광을 받아내는 그의 얼굴도 봄 햇살만큼은 아니지만 적당한 여유로움을 되찾고 있었
다.
"어쨌든 재미없는 신세타령을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소. 노인은 그저 뚱뚱한게 아니라 마
음도 넉넉한 것이 틀림없으니 본인의 체형에 그리 열등감을 가질건 없소. 그렇지만 무병
장수가 꿈이라면 적당한 운동으로 지방을 줄이는 것도 괜찮으리라고 보오."
투두두둑-.
전각에서 아까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흙먼지가 떨어졌다. 확실히 이곳은 보수가 필요한
가 보다.
"어? 화났소?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좋소, 노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건 아니었으
므로 내가 인심한번 쓰리다. 앞으로 노인이 어떤 부탁을 하든지 내 한번은 들어주겠소.
그리고 그곳은 기녀들의 탈의실도 아니고 재물이 숨겨져 있는 창고도 아니니까 노인같
은 사람이 관심가질 건 아무것도 없는데 뭐하러 그런 힘든 자세로 매달려 있는거요? 하
긴 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인연이 있으면 또 봅시다."
손을 한번 흔들고 휘적휘적 장추삼이 사라졌을 때 전각에서 또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흙먼지가 아닌 실체감, 사람이었다.
아무 것도 없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것 같이 뚱뚱한 노인 하나가 지면에 내려선 것이
다.
"허, 노부더러 대놓고 뚱뚱하다고 하는 녀석이 있다니!"
계양이었다.
[10256] [연재] 삼류무사-16 첨부파일 :
4. 대체 뭐야?
기분이 꿀꿀할 땐 술이 최고다.
남성들의 영원한 연인이자 결혼한 여인에게 일생의 숙적이라고 불리는 술은 인류가 발
명해낸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하다.
아침, 저녁, 심지어는 잠자리까지도 꼭 둘이 마실 때는 서로의 마음 깊은 곳까지 보여주
는 촉매제로 제 몸을 아낌없이 바치고 셋 이상의 자리에선 자칫 산만해지는 분위기를 붙
여주는 아교와도 같다.
조사가 있을 때면 눈물만큼 진한 향기로 아픈 이의 가슴을 보듬어 안고 경사에서는 그
능력을 십이분 발휘하여 축하하는 이나 축복받는 이의 마음을 하나로 엮어주니 이보다
아름다우며 이보다 질긴 끈이 어디 있으랴!
허나 앞서의 얘기는 모두 적당한 정도의 음주 상태에서 받는 축복이고 그것이 도를 넘어
서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일개인의 파멸은 물론 한 가정, 세가, 나아가서 국가의 반석마저도 스스로는 움직이지
도 못하는 술의 과용에 따라 흔들리니 어찌 경계하지 않고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랴?
금강수라신을 익혀 도검이 불침하는 외공을 지닌 자라 하더라도 술독에 절어 몇 년을 보
내면 저자거리의 불량배가 날린 일수에도 내상을 입게 되고 불괴연혼을 이루어 만독이
두렵지 않은 자라도 하릴없이 술창고만 헤매고 다닌다면 얼마안가 이삼일 지난 음식 따
위를 먹고는 식중독에 걸려 의원을 찾게되니 무형지독이라도 이보다 두려울까?
다행히 장추삼은 술을 즐기나 과하지 않고 술자리를 좋아하는 만큼 주정부리는 사람을
싫어했다.
꼴불견인 남자 중에 일순위를 꼽으라면 단연 주정부리는 사내이리라.
"주문은 먼저 하겠어?"
"예, 오늘은 저 혼자 마실거니까요."
"혼자라구?"
노칠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추삼을 쳐다보았다.
전 같으면 혼자서 마시는 술은 독이라고 혼이라도 내겠지만 지금의 장추삼에겐 왠지 어
려운 그였다.
"취직... 잘 안됐나?"
장추삼이 빙긋 웃었다.
"그럴리가요. 든든한 뒤가 있는데. 너무 잘돼서 축하주 하는거에요."
정말 변해도 많이 변했다. 주문을 넘기면서 노칠은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는 그를 다
시 한번 돌아보았다.
시끄러운 주위와 칼로 자른 듯 구분지어지는 장추삼의 탁자는 그늘지어 있었고 소리조
차 막혀있는 듯 했다.
'예전이라면 동네방네 떠들고 그것도 모자라 한무리 이끌고 들어와서 노래부르고 마셨
을텐데.'
노칠은 자신의 기분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다.
칠공토혈 시절의 장추삼은 통제불능의 망나니까지는 아니더라도 봉황루에서 가장 시끄
러운 고객중의 하나였고 그 때문에 골머리를 썩은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거늘, 지금처
럼 변한 그의 모습에 의당 박수라도 쳐야 마땅하거늘 어쩐 일인지 한구석이 아련히 저리
는건 왜일까!
안주로 나온 돼지고기볶음은 돼지고기가 구할 이상 함유된 진짜 '돼지고기볶음'이었다.
봉황루의 식단에 올라있는 그것과 질이 전혀 다른 노칠식 특제 돼지고기볶음인 것이다.
노칠의 세심한 배려에 흐뭇해하며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래, 이맛이야.'
칠년동안 변한건 아무것도 없었다. 봉황루의 취객도 여전히 유쾌한 대소와 왁자지껄함
으로 점소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그들 입에서 씹히는 음식의 맛도 다름이 없으리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옷을 바꿔입은 친구들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조명산이 고서점을 한다고 해도 그는 조명산이고 하대보가 비단을 판다고 해서 하대보
가 아니진 않은 것이니까.
'무엇이 이렇게 답답한걸까?'
아까 도둑 흉내내던 돼지노인에게 푸념을 늘어놓았을 때만 해도 기분이 나아지려나 했
는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엉망이 되었다.
'왜 사부는 네게 사기를 친걸까, 하기야 처음부터 삼류라고 했으면 경로사상이고 뭐고
간에 때려눕히고라도 도망쳤겠지만.'
그 눈, 소림의 정문에서 열심히 감자바위를 먹이고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바라
보던 아이같은 눈망울에 빨려들었던 자신을 후회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저,
'한 일년정도 지나고 그냥 사실대로 말해주었더라도...'
어차피 반신반의였다.
'당금 무림의 최고수라는 적미천존도 이길 수 있나요?' 했을 때 숨한번 쉬지않고 '그
럼!'이라는 답변을 하는 사람은 미친쪽이거나 은거초기인일거라고 판단했었는데 한가지
를 빼먹었었다.
사기꾼도 그럴거라는 걸.
죽엽청은 차가웠다. 차가와야 제맛이 나는게 정석이다.
병을 떠나 잔으로 향하는 투명한 술은 호리병 모양의 액체 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
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둥근 원통모양으로의 변화를 보였다.
원통의 술잔을 들어 긴 타원형으로 옮겨 부으면 타원의 모습으로 화하겠고 다시 사각의
잔에 붓는다면 사각의 모양을 하겠지.
자의식이 없는 액체는 그렇게 사람이 옮기면 옮기는 대로 형태를 바꾸다가 결국엔 위장
으로 들어가며 존재의 종말을 고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한번이라도 스스로 판단하여 타당한 일을 해보았을까?
장추삼의 꿈은 비교적 소박한 것이라 하겠다.
남들에게 무시 받지 않는 위치에서 최소한의 문화생활 이상을 누릴 정도의 돈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고 물론 결혼도 하고 싶었다.
되도록 이쁜 여자가 좋겠지만 우선은 부친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마음씨를 지닌 여
자.
'자식은 몇이 좋을까? 아버지는 다다익선이라고 하시겠지.'
잠깐동안 낯간지러운 상상을 하던 장추삼의 이마에 주름이 몇 줄 흘렀다.
'그 모든걸 위해서... 나 자신부터 제자리를 찾아야지.'
단숨에 술을 한잔 들이키고 입가를 소매로 문지르며 낮게 으르렁 거렸다.
"육호관물대? 엿이나 먹으라고 해."
저벅저벅-.
"뭘 먹어? 엿?"
고개를 번쩍드니 조명산이 싱글거리고 있었다.
"명산이구나. 밥먹으로 왔...?"
띠-잉!
'꽃미남이다!'
웃는 조명산 옆에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같지 않은 사람이.
꽃미남은 꽃미남대로 짜증이 났다.
'뭐야 이자식, 얼굴 다니까 그만 쳐다봐라.'
"청승맞게 혼자 술을... 뭐 안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실쭉 웃으며 조명산이 맞은편 자리에 털썩 앉아 술한잔을 따라 마셨다.
"니 잔으로 마셔, 임마!'
장추삼이 조명산의 손에서 잔을 휙 뺏아들자 꽃미남의 표정이 잠깐 변했다. 그러나 그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아직도 그 버릇을 안고쳤구나, 여기- 잔 하나 부탁해!"
손을 들어 점소이를 부르는 조명산을 무시하며 장추삼이 다시 한잔을 들이켰다.
"버릇이 아니라 최소한의 주도(酒道)라는거다. 근데 명산, 너 뭐 잊고있는 없어?"
"에고!"
전낭을 두고 장보러 나온 아낙처럼 깜짝 놀란 조명산이 벌떡 일어나서 부산스레 떠들었
다.
"우건공자, 본의 아니게 실례를 범했구려. 이 친구가 늘상 얘기하던 장추삼이라는 내 죽
마고우요, 추삼! 이분이 우리 서점일을 맡아주시는 꽃... 아니, 우건 공자라네."
"우건 이라고 합니다."
"장추삼이라고 하오."
꽃미남, 아니 우건이라고 밝힌 청년은 그야말로 미남이었다.
피부는 무얼 먹고 자랐는지는 몰라도 뽀얀 우유 빛에 잡티하나 섞이지 않았고 얼굴의 이
목구비를 논한다면 점입가경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초승달같이 곧고 가느다란 아미, 일부러 그리려고 해도 쉽게 뽑아내기 어려운 곡선을 이
루고 있었고 남자의 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눈망울과 길게 뻗은 속눈썹. 적당
한 크기로 솟아서 눈과 입의 조화를 보조하는 코의 모양새하며, 시원스레 나가다 위로
살짝 말려져 아름다움과 도도함을 수반하는 입술.
'뭐 이따위로 생긴 인간이 다 있어?'
자신을 미남의 표본으로 생각했기에 이런식으로- 그게 어디 남자라고 하겠는가! - 생긴
제비형의 인물에 크나큰 반감부터 피어나는 장추삼이었다.
"듣던대로 우공자는 정말 자-알 생겼구려."
가는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듣던대로 장공자는 눈꼬리의 고고함이 하늘을 찌를 듯 하구려."
파직-.
'이자식이?'
'뭐 이딴게 다있어, 아유 재수 없어.'
둘의 눈에서 일섬광이 튀었다. 잘만하면 봉황루 하나정도는 우습게 날려버릴 정도의 위
력의.
당황스러운 건 엄한 조명산이다.
"그, 그래 주문부터 해야지? 우건공자, 무얼 드시겠소? 나는 오늘따라 물고기가 굉장히
땡기는데, 녹두활어 어떻소, 녹두활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우건을 일별하고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볼 심산으로 조명산
이 점소이를 크게 청했지만 둘의 시선은 여전히 방전하고 있었다.
"듣자하니 고서점엔 발길도 않던 청빈로 일대의 기녀들이 유행처럼 고서 한권은 들고 있
다고 하던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구려."
"흐-흥, 듣자하니 이동네 사람들은 유난히 개고기를 좋아해서 짖는 소리 한번 들은적이
없었는데 요 며칠새 어슬렁거리는 놈들이 많아서 의아해 했는데 이제야 그 연유를 알
것 같구려."
"그게 무슨말이야?"
먼저 발끈한건 장추삼이었다.
"나도 모르지, 얼마전에 개싸움의 귀재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있었으니 놈들도 우두머리
의 귀향소식에 고무되서 간덩이가 부었을거라는 얘긴데 형장은 신경쓸 것 없잖아? 왜,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 그리고..."
우건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반말쓰지 마시오. 어디서 초면에 반말이야, 반말이?"
"자, 자... 인사는 그쯤에서 해두고..."
조명산은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장추삼의 지랄맞은 성격이야 익히 알고있던 사실이고 우건의 결벽에 가까운 쌀쌀맞음
을 모르고 있는건 아니었지만 양자의 대면이 이처럼 최악의 전개를 펼칠 것은 전혀 예상
하지 못했던 엉뚱한 것이었으니까.
오히려 두사람이 서로를 완전히 무시해서 말한마디 안하는 삭막한 자리가 될까 염려했
었는데.
장추삼식 표현을 빌리자면 '돌출변수를 계산에 넣지 않은 결과'라고나 할까?
"추삼! 너 오늘 내 잔 한번 받지 않았잖아?"
술을 다르며 조명산의 눈빛은 살의에 가까운 애원으로 장추삼을 옭매었다.
'끄...응!'
몇십년을 함께 뒹군 친구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할 바보는 아니었기에 장추삼은 쓴 술을
털어놓는 것으로 발작을 대신했다.
겨우 진정시킨 망아지를 자극하는건 천하의 돌머리나 하는법, 고개를 돌리고 생각에 잠
긴 장추삼과 고서점의 사람들은 얘기의 고리가 끊어져 별개의 사람들이 한탁자에 앉아
식사를 하는 형태로 변했다.
'그래, 시간은 흘렀고 서로에게 중요한 가치란건 변하기 나름이지.'
지금의 조명산에게 필요한건 술 한잔 같이 마시고 시비거는 옆 탁자의 파락호 패거리 수
가 아무리 많아도 같이 싸워줄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를 하다 순사에게 들켜서 쫓길 때 개똥을 던지고 감자바위를 먹여
서 약을 올리고 턱에 숨이 차도록 도망치며 낄낄거릴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최고의 가치란게 있을까?'
창고 어디에 처박혀 있을지 모를 죽간을 은자로 바꿔주는 점원을 친구보다 우선시하는
조명산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섭섭한건 어쩔 도리가 없지만.
이제 왜 혼자 마시러 왔는지조차 까먹은 장추삼이 집에 가기도 술도 아직 덜 돼서 혼자
홀짝거리며 둘이 하는 얘기를 무심히 듣고 있을 때 시령전의 복장을 한 무사가 그들의
탁자로 다가왔다.
"이보시오, 조점주! 부탁한 일은 어찌된거요?"
눈에 띄게 위축된 조명산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삼, 다음에 보세. 우공자께도 작별을 고해야겠소, 내일 봅시다."
조명산과 무사가 봉황루를 나가자 아까의 숙적들만이 자리에 남았다.
이차전이 벌어질 법도 한데 둘은 어색한 침묵으로 격전을 대신했다.
"한잔 더 하겠소?"
장추삼의 반응은 의외였다. 예전의 그라면 방금전까지 싸우던 - 그게 말싸움이든, 뭐
든 - 상대에게 어떤 결말도 없이 술을 청한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킁! 내가 왜 당신과 술을...."
"윤파파의 노상객잔이라는 곳을 들어보았소?"
"글세 내가 왜 당신과..."
"삶에 지치고 힘이 없을 때 그만한 장소는 없지, 음식도 맛있고."
"이보시오, 내말을 좀..."
장추삼이 가만히 의자에서 일어나 우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목까지 숙여질 정도로 겹겹이 눌러쓴 그대의 탈, 한번쯤 벗어보지 않겠소?"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즐감 합니다
다녀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