餘 暇
-자유와 문화와 교육의 기초-
저자 : 요셉 피이퍼
역자 : 이홍우·이미종
이 책은 josef Pieper, Muβe und Kult, Hegner-Büchereiim Kösel-Verlag zu München, 1948, Alexander Dru(trans.), Leisuse: the Basis of Culture, New York : Pantheon Books, 1952를 옮긴 것입니다.
본문중에서...
-자유와 문화와 교육의 기초-
그러나 일의 멍에를 쓰고 태어난 인간을 불쌍하게 여긴 신들은 피로해진 그들의 몸을 회복시켜 주기 위하여 일련의 반복적인 축제를 제정해주고 인간에게 뮤즈신과 그 지도자인 아폴론, 그리고 디오뉘소스를 보내어 인간이 이들 신들과 더불어 축제를 가지는 가운데 잃었던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똑바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Platon, Laws. 653c-d).
여가를 행하라. 그리하여 내가 여호와임을 알라(성경, 시편, 46:10).
§1. 저는 먼저 제가 내어 건 제목에 대해서 사람들이 제기할 수 있는 반론 한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반론이라는 것은 옛날 스콜라주의자들이 ‘時宜不適(시의부적)’이라고 부른 것으로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특히 지금,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지금은 여가를 논하기에 적당한 때가 아니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서라도 우리는 지금 집을 짓기에 바쁘다. 우리는 잠시도 일을 손에서 놓을 수도 없고, 우리 중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의 일이 끝나고 우리 집이 다 지어지기까지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뼈 빠지게 일하는 것뿐이다. 등등.
§2. 이것은 결코 가볍게 일축해 버릴 수 있는 반론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 그 ‘우리의 일’이라는 것이 단순히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는 것, 가장 절박한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일 때,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의 지적 도덕적 정신적 자산을 새롭게 재조직해야 하는 사태에 봉착할 때-그 때에는 언제나, 세부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이전에 참신한 출발과 새로운 기초를 위하여 여가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약간 터무니없는 가정이겠지만 일단 우리가 지으려고 하는 집은 서구적 전통을 따르는 집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사실상 이 가정은 그 타당성 여부가 결코 자명하지 않은, 충분히 반론의 여지가 있는 가정입니다.) 만약 이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먼저 서구문화의 한 가지 기초는 여가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형이상학」의 첫 장을 보면 누구나 그 정도는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여가’라는 단어의 역사부터가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가는 희랍어로 ‘스콜레’, 라틴어로 ‘스콜라’이며, 이것은 영어의 ‘스쿠울’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는 원래 여가라는 뜻의 단어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스쿠울’은, 제대로 하자면, 학교가 아니라 여가를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