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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주는 추억 술이란 녀석이 언제부터 우리 일상사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태고의 제례의식에서 주요위치를 떠억 하니 차지한 그 이전부터이지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 친구가 유해물질(?)로 법적인 지위를 받기 시작한 것은 상형문자가 만들어 질 때부터 낙인이 찍혔지 않았을까 예측해 본다. 상형문자는 물체나 사물의 모습을 보고 만든 글인데 원래 모양을 보면 저절로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되어 있다. 한자의 술 주(酒)자는 물 수(水)와 닭 유(酉)가 합쳐서 이루어진 글인데 수(水)는 물 흐름으로 물결 이랑을 보고 만들었고 유(酉)는 언뜻 이해가 안 가나 닭이 머리를 곧추세워 날개를 접고 앉아있는 형상인데 술이 닭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궁금했더니 닭이 물을 먹을 때는 한 모금 머금고 하늘을 보고 물을 삼키는 것을 보고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즉 ‘알코올이 함유된 물을 먹을 때는 병아리 물먹듯 한 모금씩 음미하며 천천히 먹어라 그렇지 않고는 유해하다’고 경고를 담아 만든 것이 아닐까. 술 취할 취(醉)는 닭 유(酉)와 마칠 졸(卒)의 합친 글로써 닭이 졸 한다 즉 죽는다는 것으로 ‘자주 취하면 죽을 수 있다’는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미루어 상형문자를 창조하기 이전부터 술이 과하면 인체에 유해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추론하기에 어렵지 않다. 나는 이런 태고부터 낙인찍힌 유해 식품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성장했다. 모친은 부친의 어떤 명이라도 면전에서 거부의사를 밝혀서는 안 된다는 일본식 교육을 받고 해방 후 교사로 재직하셨고 정원이 넓고 연못과 돌탑이 있는 일본식으로 꾸며진 개방된 집은 이웃어른들의 모임 터로 언제나 평상에는 구기자나무로 만든 담뱃대와 담배가 있었고 자주 주석이 벌어졌으며 기분 좋게 취하신 부친이 집에서 담은 ‘국화주나 송순주가 떨어졌다’는 모친의 말이 있으면 술도가로 심부름 가는 것 내 몫이었고 무거운 주전자를 이손저손으로 옮겨들며 오다가 한 모금씩 마시면 주전자가 가벼워지고 기분도 유쾌해 진다는 진실을 깨닫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지에밥을 말릴 때 파리 쫓는 노역은 호사였고 지게미에 당원을 타서 먹고는 얼굴이 볼그스레 물들어 소나무 분재에 곤두박질을 쳐도 어른들은 껄껄껄 웃으시며 어린놈이 술기운에 서서히 젖어가는 모습을 보시고도 관대하셨던 덕분에 술로 인해 하늘과 집이 돌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친이 감 냄새를 풍기며 옛이야기를 하실 때는 가족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어김없이 박하사탕이나 유과를 안주머니에서 갑자기 꺼내 우리를 감동케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소 근엄하신 아버지의 유쾌한 재담은 공부보다 더 재미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아버지가 적당히 취하시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으니까. 이렇듯 나는 어릴 때부터 술이란 녀석과 동락하며 성장한 때문인지 성인이 된 이후 체격에 비해 이른바 쎈(?)편인데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이 탁월하도록 부친으로부터 유전적 대물림 받은 것이거나 아니면 지속적인 훈련(?)으로 인해의 내 인체 메커니즘이 알코올과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도록 진화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되는데 많은 형제들 중 유독 내가 술을 즐기는 편인데 아마도 부친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자산(?)이라 믿고 싶다.
고등학생 때 대포집에서 친구 두엇과 작부들 사이에 앉아 주전자뚜껑을 두들기다가 경찰서 소년계를 구경하게 되었는데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진 아줌마 순경에게 기압을 호되게 받고 부친에게 인계되었는데 그 당시 부산진 경찰서 명예 서장으로 계시던 부친이 소년계 문을 밀고 들어오셨을 때 ‘죽을죄를 지었다’라는 느낌이 가슴을 쳤고 부친은 당신이 죄를 지으신 것 같이 어깨를 옴츠려 초라해 보였다. 이른 오후. 집으로 향하는 걸음. 고개 숙이고 뒤 따르는 나를 돌아보시며 ‘학교 결석해서 어떻게 하느냐?’ 라시거나 ‘어린놈이 왠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냐?’ 아니면 ‘이 놈아 정신 차리라’ 질책을 예상한 나에게 엉뚱 맞게 “아침 아직 안 묵었제? 개장국 한 그릇 먹고 가자” 보신탕을 먹이시며 얼마나 상심하셨을까만 주리고 쓰린 속을 데워주시려 그랬는지는 몰랐지만 나는 벼락으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지.
어느 날 계속 근신하는 나를 밥상 앞에 꿇어앉히고(우리형제는 언제나 식사시간이나 손님이 오시면 꿇어앉는 것이 습관화되도록 교육을 받았다) “자! 우리 영명이도 술 배울 나이가 되었다.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 제대로 술버릇이 드는 법이다. 자! 한 잔 받아라.” 경찰서에 갔었던 이야기는 일체 함구하시고 철딱서니 없는 아들놈 행여 술로 인해 잘 못될까 우려하여 주법을 가르친 것이다. 급하게 마시지 않으며 상석에 앉은 분이 파하라는 분부가 하령될 때까지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윗사람이 술잔을 권하면 공손히 두 손으로 받아 고개를 돌려 쭈욱 마시고는 두 손으로 받들어 다시 어른께 올리는 즉 이른바 ‘원 샷’을 참으로 일찍 배웠고 인자한 부친, 근엄한 숙부로부터 교육받은 주법으로 인해 더 이상 술로 인한 사고 없이 오늘까지 살아왔다. 몇 일전 외지에서 근무하는 큰 아들이 모처럼 휴가로 집에 온 휴일. 공직에 있는 둘째와 가족이라야 달랑 네 사람이지만 힘든(?) 전원집합이라 아내가 부자지간에 정담을 나누며 약주를 하라고 안주를 만들었다. 고생했다며 두 아들에게 한 잔씩 술을 권하자 녀석들이 같이 두 손으로 잔을 받들고는 늘 내가 어른 앞에서 배우고 마시던 그 버릇대로 마시는 게 아닌가! 녀석들을 주전자 들려서 술도가로 심부름 보낸 경우도 없고 부친에게 전수 받은 주법을 가르친 적도 없는데? 부친에게 물려받은 내 DNA에 주법까지 포함해서 유전된 건가? 과하면 유해하여 낙인찍힌 상형문자를 풀어서 교육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오늘 나는 젊은 시절의 내 자신을 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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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등학생이 그냥술먹는것도 아니고 작부를 옆에 않혀놓고 알만합니다 쯧쯧........
낄낄낄!!!!
난 먹지도 못하는 술을 놓고 3대를 논하고 있으니 가히 주당들의 잔소리를 충분히 이해하겠도다 ! 그래도 어쩌다 밥 사준다고 가자해서 밥 한 그릇 얻어먹은 죄로 밤 12시까지 붙어앉아, " 했던 말 또하고 ~~ 그리고 또하고 " 를 들어주어야 했던 어떤날의 고역 보다는 메끄럽게 전개되는 홍알의 술꾼이야기가 훨씬 좋기만 하네그려 !! 인자, 사생활 이바구 좀 자주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