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코오롱 등산학교 다녀와서는 침을 튀기며 드렸던 말씀 기억하셔요?
무릎보호대는 필수다, 관절보호와 관절통 예방을 위하여 반드시 사야 하고 반드시 차야 한다,
라고 했던.............................
그런데 어제 나무 특별회원님의 지리산 산행 준비 차
등산용품 매장에 갔다가 들은 충격적 이야기,
나무 언니가 무릎보호대를 찾으니까
매장 판매자 왈,
"평소에 무릎보호대 없이 못 걸으십니까? 아니라면 할 필요없습니다.
별이상이 없는데도 보호대 차고 등산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보호대 없으면
등산을 못 하는 지경이 됩니다."
허걱.......
무릎보호대 제 거 사고, 신랑 거 사고, 사람들한테 두루두루 소문까지 냈는데,
등산학교 하루짜리 갔다 와서는 한 1년 길게 배운 여자처럼 자랑해왔는데,
'천진이 등산 한 몇 년은 한 애 같다'라는 비웃음 섞인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그래도 괜찮다, 회원들, 아니 산을 좋아하는 이라면
하나라도 더 알고 산을 타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 희생정신? 하나로 살아왔는데
그리하여 미천하나마 알고 있는 바를 널리 알리고자 애써왔는데.....
라며 진땀을 빼고 있자니
문희언니와 나무언니는 손뼉을 치며 좋아라 하고 있더군요.
"앗싸~! 아직 안 샀어, 난!!!" 이라며....
그들의 환호성은 제 염장을 후려쳤지요~~
저는 착찹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술 한 잔이 그리운 밤이었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술을 잘 못 먹게 되었기에
쓴 차를 술삼아 들이키고 들이켰습니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밤새 악몽에 시달렸는지 아침에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더군요.
암튼 길고 고통스러운 밤은 지나갔고
일어나자 마자, 코오롱 등산학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침 제가 강의 들었던 교수님께서 받으시더군요.
저는 다짜고짜,
"무릎보호대 차면 안 됩니까? 저는 선생님께 수강한 사람입니다."
짧은 말 속에는 이런 뜻이 숨어있었죠.
'선생님께서 분명 무릎보호대를 차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저는 지금까지 무릎보호대를 신중하게 골라 샀고, 신주단지처럼 가방에 넣고 다녔고,
상할까봐 고급의류 세제로 손빨래 해와고, 늘어질까 바닥에 눕혀 말렸고
사람들한테 나 코오롱 등산학교 갔다온 여잔데,
학교에서 무릎보호대 꼭 지참하라고 배웠고
배운 여자가 하는 소리니 다들 내 말을 들으라고 강요해왔고,
이젠 그래서 산추 회원 중에 무릎보호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안 산 사람은 사려고 하고 있고 못 산 사람은 산추명예를 훼손시켰다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마 지금 누군가는 무릎보호대를 사고 있을 지도 모르니,
그리고 신랑이랑 저랑 무릎보호대 사는데 10만원 들었고
시댁식구들한테까지 그렇게 얘기해서 시댁식구들도 한분두분 무릎보호대를 사고 있으니,
선생님, 제발, 무릎보호대는 무진장 필수라고 꼭 말씀해주셔요, 네??'
라는 뜻이었죠......
그러자 선생님 왈,
"무릎보호대를 차야 한다고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두둥!!!
그리고 그 분의 충격적인 말씀은 계속 이어지십니다.
"무릎이 안 아픈 사람이 무릎보호대를 차기 시작하면
원래 자연히 쓰여야 할 무릎관절과 다리 근육이 덜 쓰이게 됩니다.
나중엔 무릎보호대 없이 등산이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 몸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가장 좋은 상태지요옷!!
무릎보호대는 의료보조기구랍니다~~!"
두둥!!!!!
도대체 무릎보호대 이야기는 그럼 언제, 어디서 들은 거지?
도대체 학교가서 뭘 배운 거지?
도대체 나란 인간은 학교에 왜 간 거지?
그리고 무슨 배짱으로 하루 갔다 와서는 온갖 회원들에게 교육을 해온 거지?
혼자 묻다 묻다 지쳤습니다.
끊임없이, 묻고 묻고..............
이젠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릎모호대가 필수란 이야기를 언제, 어디서 듣고 온 걸까요?
꿈을 꾼 걸까요? 아,,,,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여러분께 다시 묻습니다.
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혹시, 저의 잘못된 정보 때문에 무릎보호대를 벌써 사신 분이 계시다면
저희 집 근처 유명한 황주집에서 곱창으로 보상해드리겠습니다.
만약 그걸로도 산추 회원님들의 공분을 풀어드릴 수 없다면
그리하여 총무자리를 내놓으라시면 마음은 아프지만
정말 내놓기 싫지만,
내놓겠습니다.
오히려 총무라는 직책이 양날의 칼처럼 저를 괴롭힙니다.
저에게 영광과 부끄러움은 동시에 안겨준.....
산추, 그간 고마웠습니다.
산추, 많이 사랑했습니다.
만약 저에게 선처를 베푸시어 총무자리를 유지시켜주신다면
총무라는 이름 두 글자!! 예! 두 글자!
주홍글씨처럼!!! 가슴팍에 새기고
두번다시! 하루 학교 갔다 와서는 설레발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가슴이 먹먹한 수요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