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내었다는 기쁨, 수영을 빼먹은 아쉬움과 그래도 마무리 했다는 시원함,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지인들과 써포터즈에 대한 고마움… 결승점을 통과하면서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감정들이다. 철인 3종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또다른 의미를 찾고자 했지만, 사실 내가 얻은 것은 너가 존재하는 이유와 우리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달았다는 것이다.(鐵人이 아니라 哲人이 되었나???)
내가 철인이 되어보니, 귀를 쫑긋 세우며 재미있게 듣던 구철들의 무용담들이 다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고, 많은 시간과 재물을 투자해야 하는, 징그럽게 힘든 이 운동을 끝내 못 떨쳐 버리고 또다시 반복하는 구철들의 심정을 이제야 쬐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3월말 일산철인클럽에 가입하고나서 시작된 빡신 훈련 - 첫번째 잔차 타러 나갔다가 길가에 잔차 내팽개치고 퍼져버린 일, 영종도에서의 모의 3종 경기 연습, 한탄강 찍고 돌아오다가 길잃고 비상금이 없어 길가에서 장사하던 아줌마에게 썩은 복숭아 구걸하던 일, 가장 많이 뺑뺑이 돌던 탄현 순환코스, 출장지인 삼천포에서 아름다운 남해의 경치를 구경하며 장거리 라이딩 가던 일, 제주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무더운 날씨에 장거리 런 연습하다가 감기몸살과 배탈설사로 고생했던 일… 아름다운 섬, 제주를 달리면서 그동안의 훈련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같이 땀흘린 일산철인클럽의 정겨운 얼굴들과 함께… 말톤죤, 건수형, 주화니형, 뱅주형, 뱅준이, 뱅희, 검프, 이프로, 듀당님, 고문님, 주동으니, 오도서니, 남성아니, 한상용이, 훈복이형, 진멍, 충내미, 대윤이성, 정배성, 피영수 선배, 강용이, 안동수, 방창용, 이인화 선배, 김형태 선배…
더위 땜에 그런지 남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런이 가장 힘들었다. 특히 첫바퀴는 반은 걷고 반은 설렁설렁 뛰었던 것 같다. 물론 일산클럽의 막강한 써포터즈 - 강용, 야인, 경수형, 세휘, 유니스, 제인(마누라)-이 있는 곳에서는 예외였지만…달리는 폼도 가다듬고 표정관리도 해야하니 말이다. 두번째 바퀴는 전략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 다음 보급소까지 걷지 않고 뛰기. 보급소에서 온몸에 물을 뿌리면 몸의 열기가 다소 가셔 뛰는 것이 다소 수월해진다. 그러나, 웬 언덕이 그리 많은지 언덕을 만나면 꼬랑지 내리고 다소분히 걸을 수 밖에… 세번째 바퀴, 더위도 한풀 기세가 꺽이고 뉘엿뉘엿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건만 이제는 다리에 힘이 급격히 떨어진다. 아~ 이러면 안되지… 그래, 마지막 바퀴는 이곳 제주에 오고 싶어했지만 올 수 없었던 주 회장님, 이수윤 씨를 위해 달리자. 올해 제주까지 쭈욱 가보자며 도원결의를 했지만 결국 오지 못한 일철 동기 - 건수형과 임진영씨 몫까지 달려보자. 그들을 생각하며 달리니 다시 힘이 솟는 것 같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덥고 비가 많이 왔다. 무더운 공기가 호흡기를 통해 폐로 들어갈 때의 그숨막힘과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에서 더 이상 발산할 곳이 없는 온 몸의 열기가 머리 위로 솟구쳐 올라 곧 뚜껑이 열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반면, 올해 우리 클럽에서 출전한 3개 대회에서는 모두 비가 내렸다. 징글맞은 비… 속초대회에서는 라이딩 도중 약간 비가 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클럽이 있어 좋았고 클럽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어 좋았다. 철원대회에서는 폭우로 인해 수영과 싸이클이 취소되고 결국 하프 마라톤 대회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주철 회장님을 위한 우리 클럽의 따뜻한 마음이 있어 너무 좋았던 대회이기도 했다. 그때 내 플랭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지, “반쪽 철인 등극의 기쁨을 주회장님과 함께…”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주대회에서는 풍랑과 파도로 수영이 취소된 짝퉁 철인대회, “짝퉁 철인 등극의 기쁨을 주회장님과 함께하게 하소서”
싸이클을 시작하자 마자 16K 지점에서 타이어 펑크, 아~ 하늘이 깜깜해진다. 오~주여!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안경너머 사물이 분간조차 안되는 상황에서 예비튜브로 교체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평소 하던대로 침착하게 하나씩 맞추어 나갔다. 대윤이성, 문선배님이 지나쳐 가고 거의 마지막 후미 그룹이 통과할 때 쯤 튜브 교체 완료! 시계를 보니 15분이나 걸렸다. 날씨만 좋았다면 10분 내에 고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제 시작인데 까이꺼 뭐, 생각을 고쳐먹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진다.
라이딩에서도 ‘런너스하이’라는 것이 있는가 보다. 50K 지점을 지나 파도치는 제주 앞바다를 옆에 끼고 도는 해변도로에 접어들자 기분이 최고조에 달한다. 내장이 간지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온다. 노래를 부르다가 바다를 향해 큰 소리도 질러본다. 남들이 보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기분이 너무 좋은 걸… (바로 이맛이야…)
싸이클 코스 절반을 돌아 특별식이 기다리는 지점으로 들어서는데 와~우, 보급소의 모습은한마디로 난민 대피소라고 해야할까? 비바람이 몰아치는 길가에서 잔차를 팽개치고 쭈그려 앉아 음식을 먹는 모습이라니… 그래도, 준비한 특별식중 동원맛죽과 깐포도 통조림은 시원하게 목구멍을 타고 잘도 넘어간다. 나머지 음식은 버리거나 뒷주머니에 꾸겨 넣고 다시 출발~
구철들에게 듣기로 싸이클에서 제일 힘든 구간은 돈네코 언덕이라지만 내게 가장 힘든 구간을 꼽으라 하면 단연 한라산 기슭을 지나는 구간, 짙은 안개와 몰아치는 비바람으로 평속 20K를 넘기기 힘든데다 사람들마저 거의 없어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어버린 느낌이 더욱 지치게 만든다.
철인 3종경기는 선수들보다 가족들의 이해와 지원, 인내가 필요한 운동인 것 같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주말마다 훈련으로 집을 비우니 가족들이 좋아할 리 없지. 드디어, 마누라가 정색을 하며 철인3종인지 뭔지 때려치란다. 이럴때 선배 철인들도 갈등했겠지… 가정의 행복이냐 아니면, 자아의 실현이냐… 지금껏 난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해야 하는 것들에 스스로 구속되어 살아왔지 정작 하고 싶은 것들에 스스로를 과감하게 던져보지 못했다. 단 한 순간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가? 나도 이제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쬐금 투자를 해도 좋지 않을까?
싸이클 150K 지점을 지나 다시 힘을 내본다. 튜브 교체하느라 까먹은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 앞뒤 기어를 모두 최대로 놓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속도감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하나둘 내 등뒤로 멀어지는 것이 기분이 좋다. 드디어 저~기 써포터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타잔, 파이팅!” 돈네코 언덕에 이어 계속되는 써포터즈의 힘찬 응원. 가뭄의 단비처럼 나에게 힘을 가져다 주는 저들의 응원이 눈물나게 고맙다.
대회 이틀전날 난, 일산클럽 본진보다 빨리 제주에 도착했다. 먼저와서 잔차 훈련중인 한상용씨와 통화하고 점심 때쯤 숙소에서 경수형을 만났는데 오후에 스쿠버다이빙을 할 예정이란다. 아~ 땡기네, 2004년에 하와이에서 다이빙을 한 이래 2년만에 찾아온 기회인데, 더구나 우리나라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인 서귀포 문섬 앞바다가 아닌가? 더 고민할 것도 없다. 당초 계획을 바꾸어 경수형을 따라 문섬을 향한다. 문섬은 서귀포항에서 배로 5분 거리밖에 안되지만 물이 맑고 바다 밑은 산호와 다양한 어종으로 가히 환상적이다. 하와이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바닷속 세계가 거기에 펼쳐져 있었다. 경수형, 잔차도 날라주고 이런 좋은 경험도 시켜줘 정말 감사합니다.
대회에서 내가 뛴 시간이 12시간이라면 제주에서 일철 및 써포터즈와 같이 보낸 시간은 3박4일이고 이 대회를 위해 클럽사람들과 훈련한 시간은 무려 5개월이나 된다. 이렇게 놓고볼 때, 철인3종은 고독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가족 및 주변 사람과의 관계맺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같이 땀을 흘리며 서로를 격려해 준 철인들과 대회 때마다 헌신적으로 지원해주고 하루종일 목이 터져라 파이팅을 외쳐준 써포터즈들과 남편을, 자식을, 아빠를 뺏기고도 묵묵히 뒷바라지해 준 일철의 모든 가족들에게 머리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싸이클을 마치고, 어렵사리 런 두 바퀴를 돌고나니 이제 끝이 보인다. 멀고 먼 여정의 마지막. 기록이고 뭐고 다 귀찮다. 빨리 끝냈으면 하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한다. 석양에 해는 뉘엿뉘엿 지고 어둠이 몰려온다. 피니쉬 지점이 다가오자 점점 힘이 솟는다. 자, 어떻게 대미를 장식해야 하지? 사진발 잘받게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은 채 여유있는 자태로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마누라의 손을 꼬옥 잡고 들어가자… 드디어 월드컵경기장과 서포터즈의 모습이 들어오고 마누라가 반갑게 나를 맞는다. 나보다 더 기뻐하는 아내의 흥분된 모습과 꼭 잡은 손을 통해 전달되는 아내의 발동작이 내 머리를 울린다. 각본에는 없었지만 피니쉬라인을 통과하고 나서 난 아내를 꼬옥 안아주었다. 끝.
첫댓글 감동과 눈물의 부루스....짠한 타잔에 글이 찡 하게 전해오네.....너무 애 많이 쓰셨고 펑크 불구하고 함께 여기까지 온 타잔에 노고에 박수를 내년에 한번 더 가야지 셩 껴서 한판 더 ....타잔 ....힘.....
시공을 초월하는 특이한 경험을 하셨네요... "해탈"하셨습니다. 철인등극을 왕추카~~~ 글구 요즘보니까 산꼬등어가 그리 좋다는데 .....ㅋㅋㅋ
철인을 하든 마라톤을 하든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 하는건 힘든 일이다. 특히 아내에게 지원을 받는건 더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데 반대를 안 한다면 이미 사랑이 식어 버린게 아닐까? 아니면 어서 가라고 치성을 드리는 맴으로... 그저 마음을 비우고 다른 취미 생활로 유도를 해야지...그래서 타잔은 행복한 사람이다 넘 부럽다 산고등어가 좋다고 뱅주씨가 한마디하네 내도 산고등어 좋아하지 만 타잔 언제 볼수 있을까 ??
타잔 선배님의 여유와 정신력... 모두 짱입니다~~ 얼렁 일산으로 복귀하셔서 얼굴 자주 뵙기를....^^
대회앞두고 삼천포로빠져 쪼께 걱정했는디... 워낙 여유로운 사람인지라 큰무리없이 수고많으셨습니다. 부담주는것같아 산XXX는 애기안하는데 조총무 애기가 이번주 금요일 제주다녀오신분들과 함께할 자리를 마련중이라하오니 한상자지구와도 누가뭐랠사람 없을것입니다.
철인등극 정말로 추카추카 합니다.대회 앞두고 지방 출장이라 걱정되었는데 이제보니 출장이 아니라 비밀훈련 하러 가신듯.......너무너무 수고하셨고 내년에도 더욱 더 화이팅입니다!!!!!!!!!
꼭 제 마음속에 들어와 글을 쓰신것 같습니다..저도 형과 똑같은 그 마음이었습니다.요즘 삼천포에서 어찌 지내시는지요? 그저께는 꿈에 형이 나오더군요..제가 형차를 얻어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꿈이었는데...멋진 후기입니다. 이제 좀 쉬셨다가 다시 운동하셔야겠죠? 가을의 전설이 남아있으니까요...움하하하!
타이어펑크났을때 정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실력이 되질 못하니... 여하튼 축하합니다. 내년에 한판 더 해야지요???
타이어 펑크에도 완주하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일산철인 동기지만 타잔님의 완주는 저의 완주라 생각듭니다. 축하드리고요 훈련부족으로 많이 고생하셨을텐데 몸조리 잘 하세요
타잔, 연습때부터 잘할줄 알고는 있었는데, 역시나 훌륭하게 완주한것 다시한번 축하합니다.
역시 그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셨네요... 별로 운동도 못하신 것 같은데요, 아무튼지 일산지역에 태어나신 분들은 강골임이 분명하네요, 김철협님,이훈복님,이성희님, 피영수님,피영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