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천년의 세월이 되어가지만 이제라도 합천이씨(陜川李氏)후손의 한사람으로 신안(神眼)의 일점영광에 깊이 머리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위의 산도는 합천(陜川)이씨 선영도이다. 위쪽이 선대할아버지 이개(李 開)의 묘(墓)이며 아래쪽은 부인 경주김씨의 묘이다.
이묘소의 소재지는 경남 합천군 용주면 월평2리 망월산 9부능선의 높은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조상은 나의 근본이다] 조상(祖上)은 나의 근본(根本)이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자 어찌 조상을 위하지 않을것이며 지엽이 무성하기를 바라는자 어찌 근본을 배양하지 않으리요 무릇 인간은 만물지영장이라 옛말에도 동성동본이면 백대지친이라 했거니와 우리가 친족을 만났을때 조상을 생각하게 되고 조상을 생각하면 이내 골육의 정이 샘솟는것이 바로 천륜의 정인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재산과 영화를 바라며 잘살고 싶어한다.내가 배우지 못하고 잘살지 못하는 한을 풀기위해 자식들에게 기대를 걸고 매일 피땀나는 노력을 하면서 대개 삶의 터전을 찾아 객지로 또 외국으로도 떠나게 된다.이러한 세월이 흘러 이,삼십년이 잠시 가는 바람에 한대가 가고 두대가 지나고보면 가까운 집안도 잊게되고 선조의 고향은 물론이요 일가친척도 모르는 외톨이가 되고마는 사실이 허다하다.
내 자식앞에 또 자식이 있는것과 같이 내 부모위에 또 조상이 여러대 있는것이니 조상이 살던 터전이 곧 고향이오 선조의 무덤인 것이다. 남이 내 조상을 위해주지 않으며 현재 살고있는 우리들 자신이 자식을 잘되라고 돌보듯이 조상들의 무덤도 재산도 우리들이 위해야 될줄안다.내가 내조상의 뿌리를 찾아 거슬로 올라가는 것은 실로 보람된일이라 생각된다.
[용의 흐름과 기이한 점혈] 망월산(望月山) 주산(主山)에서 지현자(之玄字)로 용을따라 기맥(氣脈)이 결인(結咽)과 입수도두(入首到頭)를 거쳐 일선(一線)의 투지은맥(透地隱脈)으로 들어와 혈을 지어 놓으니 눈밝은 신안(神眼)은 일점을 보고 지나치지 않는다. 기맥이 오른쪽으로 심히 치우쳐 기이한혈 상,하 두자리에 크고 작은자리 두자리를 맺으니 조안산이 나를 반겨준다.
주산은 지명상의 망월산(望月山)이며, 조안산은 멀리 월화산(月華山)이 되니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옥토망월형(玉兎望月形)으로 스스로 이름이 지어진다.대지(大地)는 항상 눈밝은 신안이 아니면 그자리를 스스로 감추어 보여주질 않는다.설상 정혈(正穴)을 구했다 하더라도 한번더 가화(假花)가 지사를 유혹하게 되니 이때 눈이 밝지 않은 지사는 가화를 쳐다보고 스스로를 칭찬하게 되며 가화만 쳐다보고 힘을 다하지 못하는 허망한 자리를 만들어 그들의 후손에게 돌려 줄뿐이다. 하지만 눈밝은 지사는 유혹하는 가화에 눈길을 주지 않으며 대지를 구했음에도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다.
[시조 이개의 벼슬] 시조 이개(李開)는 신라 때 벼슬하여 강양(江陽 : 지금의 합천)군에 봉해졌고 고려가 건국되자 두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태조의 부름을 거역 가수현장(嘉樹縣長)으로 강등되었다가 합천호장(陜川戶長)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시조로 삼고 합천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그의 조상은 신라 6촌중 하나인 알천 양산촌의 촌장 알평이다(경주이씨).무릇 천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 그의 후손들이 매년 시산제와 더불어 옛조상을 돌보고 있다.
[이묘소를 점혈한이후 나타난 역사속의 인물]
고려시대에 이문저(李文著)는 음보로 벼슬에 나가 이부시랑, 상서좌승 등을 거쳐 1179년 김자광록대부 수사공특진 상서우복야 태자소보(金紫光祿大夫 守司空特進 尙書右僕射 太子少保)에 이르렀다.
이순목(李淳牧)은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좌복야(左僕射)를 지냈고, 이신손(李信孫)은 좌서윤(左庶尹)을 지냈으며, 이덕손(李德孫)은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이승로(李承老)는 충목왕 때 밀직사사를 지내고 1354년 지밀직사사에 이어 정당문학에 승진한 후 강양백(江陽伯)에 봉해졌으며, 이운목(李云牧)은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냈다.
조선 중종 때의 이복로(李福老)는 1495년 사마시를 거쳐 151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봉상사판관(奉常寺判官) 등을 거쳐 초계군수를 지냈다.
이윤검(李允儉)은 1472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지냈고, 중종때의 이희민(李希閔)은 1516년 별시문과에 급제, 이조정랑을 지냈으며, 이희증(李希曾)은 수찬(修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희안(李希顔)은 14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참봉을 거쳐 고령현감으로 부임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에서 학문에 전심했으며, 이윤서(李胤緖)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곽재우와 더불어 공을 세우고 이괄의 난때 순절하여 형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태경(李台卿)과 이중필(李重弼)은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이 되고,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참판(工曺參判)에 추증되었다.
[현대의 합천이씨 인물] 현대에 와서 이름을 알만한 사람으로 먼저 현대한국의 승려 성철스님(이창훈)을 꼽을 수 있고, 이희성(참모총장, 교통부장관), 이만섭 국회의장, 대종회장인 이상희 전 장관, 영화배우 이대엽(전국회의원), 문학가 이병주씨, 한국 씨름계를 빛낸 이만기 등 정계, 관계, 재계, 학계, 문화 예술방면에 인물이 나타나고 있다 (나머지 현대의 주요인사 명단은 생략)
[무릇 천년의 세월이 되어가도 지금 그의 후손들이 매년 시산제와 더불어 옛조상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다]
[사진]
합천이씨(=강양이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