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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매기| 김병화 역| 심산| 2005.09.24 | 614p |
목차
추천사 _ 『트리스탄 코드』를 말한다/ 김문환 (서울대 교수, 미학)
들어가는 말
1장 먼저, 음악
2장 청년 독일단 시절의 바그너
3장 좌익 혁명가 바그너
4장 바그너, 포이에르바흐, 미래
5장 바그너에 대한 잘못된 평판
6장 그리스 연극으로서의 오페라
7장 <반지>를 이끌어가는 몇 가지 주제
8장 바그너, 쇼펜하우어를 발견하다
9장 쇼펜하우어의 철학
10장 바그너,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다
11장 전환
12장 음악으로서의 형이상학
13장 오페라로서의 철학
14장 드라마로서의 음악
15장 먼저, 오케스트라
16장 최고의 업적
17장 바그너와 니체
부록_바그너의 반유대주의
책
"살면서 이제껏 한 번도 이렇게 진정한 사랑의 축복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 내 모든 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에 기념비를 세워야 하겠소. 내 머리 속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가장 단순하지만 또 가장 완전하게 성숙한 음악적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설명하면서 이 유명한 편지가 언급되지 않는 경우는 오히려 매우 드물지 않을까요?
<트리스탄>이 마틸데 베젠동크와의 '진정한 사랑의 축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근거로 제시되지요.
브라이언 매기가 똑같은 구절을 인용하면서도 베젠동크의 이름을 연관시키지 않은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브라이언 매기는 <트리스탄>을 쇼펜하우어를 읽음으로써 촉발되어, 모든 요소가 철저히 쇼펜하우어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작품으로 이해합니다.
그것만을 강조하기 위해 그 이외의 것을 고집스레 외면한 것입니다.
<트리스탄 코드>는 잘 된 오페라와 같습니다. 완성도가 높은 오페라 작품에 대해- 바로 <트리스탄>- 일부 트랙만 골라내서 만든 발췌 음반을 들어도 충분하다는 바그너 애호가는 없지요.
이 책도 문장 하나하나가 밀도 높고, 중언부언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문장이 없어 요약하는게 참 어렵습니다.
매우 대담하고 독특한 글쓰기입니다. 내용면에서나 스타일 양면에서.
<트리스탄>이라는 위대한 작품의 창작이 베젠동크와의 만남이라는 우연, 외적인 사건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최초의 성숙기 작품인 "네덜란드인"에서부터 고개를 드는 바그너의 본성에 근거하여, 그의 예술관의 발전을 연대적으로 짚어나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어찌됐든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필연론적인 의견을 제시합니다.
쇼펜하우어를 발견한 것도 그것이 바그너의 본성에 가장 닿아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수시로 인용되고, 매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영국의 다른 유명 바그너 저술가들의 이름들은 우리에게는 낯선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바그너 像이 유럽에서는 굳건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국내에서 인종주의자, 독일 극우주의자 등으로 고정화 된 바그너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인물상을 제시합니다.
음악해설서가 아니라 철학서이기 때문에, 책의 진행과 발전방향은 분명합니다. 오페라 작품은 하나의 완결된 세계이며, 완성되면 그 세계관을 버리고 다시 다음 작품의 세계관으로 넘어가야 하는 오페라 창작과는 달리 철학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바그너 초창기 작품에서부터 시간순으로 진행하며, 전체를 관통하는 큰 흐름을 잡아가면서도 세월에 따라 하나씩 더해지고 숙성되어가는 예술관의 발전 과정을 보여줍니다.
바그너 예술의 최종 형태는 대본없는 오케스트라 교향곡이었을 것이라는 예단은 대담하면서도 탄탄한 예술적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브라이언 매기가 그려내는 바그너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 천재 음악가가 있었고, 당대의 다양한 철학사조와 정치적 환경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았고, 어느 날 운명적으로 쇼펜하우어의 세례를 받아 독자적이고 비할 데 없는 예술관을 확립할 수 있었고, 비할 데없는 걸작을 인류 예술사에 남겼다.... 바그너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수없이 "바그너는"이라는 주어가 반복되지만 인간 바그너의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네덜란드인"에서부터 "반지"에 이르는, 쇼펜하우어를 접하기 이전에 기획된 작품은 바그너의 최종적인 세계관과 모순이 일어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바그너의 세계관의 최종적 형태, "쇼펜하우어 3부작"이라고 통칭해도 좋을 <트리스탄>, <마이스터징어>, <파르지팔>의 세계관과 일관된 저류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세 작품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몇 가지 면모를 반영하고 있으며, 각각 "갈망 Sehnen ", "광기 Wahn", "동정 Mitlied"으로 응축된 키워드를 통해 개별 작품을 이해함으로써 이 3부작의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하다는 것을 훌륭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마이스터징거>를 한스 작스의 관점에서 비극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통찰이 먼저 필요했지요.
쟁점들
이 책에서처럼 바그너의 반유대주의에 대해 이렇게 정면으로 응시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부록_바그너의 반유대주의)
일반적으로 바그너 애호가들이 할 수 있는 변론은 그래도 음악은 좋은데... 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회피이며, 이런 방식은 바그너가 부당하게 뒤집어 쓴 누명을 더욱 공고히 할 뿐입니다.
그러나 브라이언 매기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바그너의 반유대주의는 다음 세기에 일어났던 비극을 경험한 사람들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그너 당대의, 혹은 그 훨씬 이전인 셰익스피어 시대의 사람들의 시각으로도 보아야 하며 바그너의 발명품도, 전유물도 아니었다는 것.
유독 편집증이 강했고 불우한 시간을 오랫동안 겪어야 했던 바그너로서는 반유대주의에 빠질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으며 자랑스레 내세울 것은 아니지만 혼자 독박쓸 정도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브라이언 매기는 이러한 반유대주의에 대해 유대인들이 취해야 할 유일한 행동수칙을 제안합니다.
바그너에게 종종 돈을 떼인 한 유대인이 남겼다는 말을 에피소드로 제시하는데,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분명 마지막 대목일 테지만 바그너의 나쁜 면을 길지 않은 문장에 빠짐없이 담아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많은 돈을 빌려주었다. 그는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내가 유대인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나를 샤일록이라고 불렀다. 친구들이여, 알겠는가. 세계는 무언가를 빌리고서도 갚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다른 남자의 아내와 딸과 애인을 훔치고서도...... 하지만 그들 가운데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쓴 것은 오직 한 사람 뿐이다." (P 556)
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역시 반유대 문제에 대한 옹호는 아무리해도 어느 선에서 타협을 볼 수 밖에 없음을 잘 나타내줍니다.
니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7장_바그너와 니체)
두 사람 간의 관계를 서로의 입장을 통해 분석을 해보면, 바그너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는 것이었지만 니체가 바그너와 자신을 동급으로 놓기 위해 지나치게 무리를 했으며, 심각한 오해도 개입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바그너의 편을 들어주었다는 비판도 가능하겠지만 한쪽에 치우쳤다는 것이 꼭 왜곡은 아니지요.
참고로, 지휘자 푸르트뱅글러가 "바그너의 문제 -니체 풍의 단상"이라는 장문의 글에서 니체 식 비판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짚어냈는데, 푸르트뱅글러의 스타일이 다소 장황한 것을 참아줄 수 있다면 꽤 읽을만 했습니다.
Best Track
이 훌륭한 오페라에서 한 트랙만 억지로 발췌낸다면, (12장_ 음악으로서의 형이상학)을 선택하겠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트리스탄 코드>가 이 장에서 비롯되었으며, 바그너 음악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영향이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되었으며 또한 가장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