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느헤미야 8장>
중세 말 유럽에서는 성경이 라틴어로만 읽혔습니다. 성도들은 미사를 드렸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 결과 종교개혁은 단순한 제도 개혁이 아니라 말씀 이해의 혁명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말씀과 기도”라는 구호만 반복하면서 정작 본문의 의미와 역사와 언어와 적용을 설명하지 못하는 목회, 또는 의미를 모른 채 십독·오십독만을 강조하는 신앙은 본문이 보여 주는 영적 재건과 거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맹목적 반복이 아니라 깨달음과 순종을 원하십니다.
1. 말씀은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선포되어야 한다.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느 8:3)
여기서 “읽다”는 동사는 קָרָא(카라)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묵독이 아니라 공적으로 선포하다, 불러 알리다는 뜻을 지닙니다. 에스라는 단순히 성경 구절을 나열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말씀을 공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말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오늘의 강단이 “말씀과 기도만 하면 된다”는 추상적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말씀은 본문의 문맥과 의미를 따라 선포되어야 합니다. 설교학자 존 스토트는 설교를 “두 세계 사이의 다리 놓기(Bridge Between Two Worlds)”라고 정의했습니다. 신ㆍ구약 본문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를 연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경 봉독일 수는 있어도 설교는 아닙니다. 읽기만 하는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목회가 필요합니다.
2. 말씀은 많이 읽는 것보다 깊이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느 8:2), “깨닫게 하니” (느 8:8), 본문에서 가장 반복되는 어근은 בִּין(빈)입니다. 8:2 מֵבִין(메빈): 이해하는 사람, 8:8 וַיָּבִינוּ(바야비누): 그들이 깨달았다. 8:12 הֵבִינוּ(헤비누): 그들이 이해하였다. 성경은 “많이 읽은 사람”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을 칭찬합니다. 물론 성경 통독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십독, 오십독이 신앙의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도 율법을 반복해서 들었지만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지 못한 독서는 몸은 먹었으나 소화하지 못한 음식과 같다.” 현대 해석학자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는 이해를 ‘지평의 융합’이라 설명했습니다. 과거의 텍스트와 현재의 삶이 만나는 순간 참된 이해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성령께서 말씀을 오늘의 삶 속에 살아 있는 진리로 조명하실 때 בִּין(빈)이 이루어집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 십독보다 한 절의 참된 깨달음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3. 말씀은 분명히 해석되어 삶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 뜻을 해석하여” (느 8:8)의 히브리어: מְפֹרָשׁ (메포라쉬), 어근 פָּרַשׁ(파라쉬)는 펼치다. 분명히 설명하다. 해석하다는 뜻입니다. 레위인들은 난해한 본문을 백성의 삶 속으로 풀어 주었습니다. 또한 8:8에는 וְשׂוֹם שֶׂכֶל (베솜 세켈), “다 깨닫게 하니”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שֵׂכֶל(세켈)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 지혜와 적용 능력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초막절 규례를 발견하자 즉시 순종했습니다(8:14-17).
개혁주의 해석 원리인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Scriptura Scripturam Interpretatur)" 역시, 이 정신 위에 서 있습니다. 본문의 의미를 밝히고, 그 의미를 삶에 연결하며, 마침내 순종으로 이끄는 것, 그것이 참된 설교입니다. 오늘날 강단은 단순한 감동의 언어도, 반복적인 구호도 아니라 본문을 메포라쉬(מְפֹרָשׁ)하게 드러내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영적 재건을 해야할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느헤미야의 성벽재건에 이어 에스라는 오늘 본문에서 영적 재건을 하였습니다.
말씀은 바르게 선포(קָרָא, 카라)되어야 합니다.
말씀은 깊이 깨달아야( בִּין, 빈)합니다.
말씀은 분명히 해석(מְפֹרָשׁ, 메포라쉬)되고 삶에 적용(שֶׂכֶל, 세켈)되어야 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울었고, 회개했고, 초막절을 회복했으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말씀을 주문처럼 반복하는 대상이 아니라, 읽은 말씀을 깨닫고, 깨달은 말씀을 실천하여 큰 기쁨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