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마라톤…그것도 ‘국제’가 들어가는 국제적 평화를 기원하는 대회이건만 내 다리는 전혀 국제이지 못했고 평화롭지도 못했다.
대회 이틀이 지난 오늘이다. 첫날은 같이 달린 휘마동 선후배님과 동병상련의 정을 같이 했으니 늦게 끝난 뒤풀이마저 별반 힘들지
않았는데, 어제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처럼 침대를 끌어안고 오롯이 천장만 바라봤을 뿐이다. 천장을 올려보며 달린 코스를 곱씹어 봤다. 어디서부터 비틀즈가 되었는지, 참지못할 고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풀코스를 신청했음에도 책자에 그려진 코스를 한번도 훓어보지 않은 건 하프코스에서 반환하겠다는 끊어먹기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몸은 풀코스를 받아들일 만큼 훈련되지 않았고, 스스로도 ‘니가 무슨 풀코스~’라고 배불뚝이 내 몸이 거울앞에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7시 5분에 산본에서 탄 버스는 평촌에서 7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버스에 앉아가면 마냥 좋을지 알았고, 잠시 잠깐
부족한 아침 잠을 버스에서 꾸벅이면서 보충하고 싶었다. 휴일 이른 시간이면 1시간도 안돼 잠실에 도착하던 버스는 오늘따라 상당히 게을렀다. 운전기사는 똥줄 타는 내 속사정을 알 턱이 없었고, 급기야 영익이와 양재역에 내려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다.
대회장은 많은 인파로 붐볐다. 오늘따라 휘마동 부스는 출발점과 가까운 곳 영동대로 코 밑에 있어 배번을 전달하기 위해선 한시가 바빴다. 광장시장 만큼 거대한 인파는 비집고 달리기를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늦어 본 적이 없는데,,,, 어쩌나... 미안하고 죄송할 뿐이고,.. 배번을 급히 나눠드리니 다음의 순서도 급했다. 물품을 맡겨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한다. 오늘 대회는 풀코스를 뛰어 않아도 될 충분한 핑계거리가 생겼다. 늦게 도착했고, 물품보관소도 붐볐고, 볼일도 급했다고…
화장실을 나오니 풀코스 출발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시계도 안 차고 왔으니 설렁설렁 뛰다 하프에서 반환하겠다고 생각했다.
안덕환 선배님께서 달리고 계셨고, 문명걸 선배님도 계셨다. 천천히 달리기로 했다. 이틀 전에도 술을 마셨으니 이렇게 달리는 것도 썩 괜찮은 속도라고 내 호흡과 다리를 위안했다.
탄천으로 진입하니 회사직원과 동네 마라톤 여성분을 만날 수 있었다. 같이 달리다 보니 영동5교에서 1교까지도 괜찮았고 10키로도 거뜬히 통과했다. 양재천은 7 TO 7 울트라 마라톤에서 다섯 바퀴를 왕복한 코스라 눈에 익었고, 학창시절 내가 살았던 곳이라 고향 길 같아 편안했다. 90년대 초반 이곳에서 아침마다 황영조,이봉주를 볼 수 있었다. 코오롱 마라톤 숙소가 내가 사는 아파트 건너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정묵이 형이다. 얼굴에 힘겨운 모습이 전혀 없다. 매일 런닝머신에서 훈련한 결과가 오늘 저런 편안한 모습일 것이다.
하프 선두주자들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들은 한마리 표범들 처럼 몸도 날렵하다. 그들도 밥만 먹고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닐텐데… 하옇튼 잘도 달린다. 그 속에 내가 흠모하는 여성주자도 보인다. 바로 정순연 선수다. 모델보다 더 예쁜 아줌마는 오늘도 여성 1위를 차지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앞만 보고 달렸다. 나도 앞만 보고 달리던 왕년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꽤나 아름다웠다... 몸도 그랬고, 마음도 그랬다.
하프주자가 반환하는 그곳에서 돌아갈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다리도 불편하지 않았고, 가락동 이후 한번도 달려본 적 없는 풀코스 반환지점이 궁금하기도 했다. 미지의 세계는 늘 궁금하다. 산을 넘으면, 길을 꺽으면 어떤 세상이 나올지 내 두눈으로 두발로 체득하고 싶었다. 그래서 올림픽 훼밀리 타운 아파트를 지나 서울 비행장으로 달리는 곧게 이어지는 길에서도 힘들어 하는 다리를 위로할 수 있었다. 모란시장 표시판이 보이고, 중마코스 여수동도 보인다. 이제 내 몸은 어디가 반환점이냐고 물어볼 정도가 되어버렸다. 주로 봉사자는 거의 다왔다고 하지만 내 몸은 이미 천근만근이다. 오른쪽 성남 비행장 외벽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 회색 시멘트 벽돌로 쌓은 벽이라 그곳이 중동 분쟁지역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떡해 해볼 수도 없었다. 지금 꺽어서 가는 길이나. 반환지점에서 꺽는 거리는 별차이가 없을 만큼 오고 말았으니 말이다. 수십번 넘게 마라톤 대회를 출전했음에도 이런 경험은 초보자의 미숙함처럼 느껴진다.
27.5키로 지점에서 처음으로 걸었다. 반환하고 급수대가 나오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뒤에 오시던 이정희 형수님께서 크게 호흡하고 달려보라고 조언을 해 주신다. 이젠 큰 호흡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게는 그저 인내가 필요할 뿐이다. 점점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2km를 달리다 100m 정도 걷던 속도는 이제 1키로도 되지 않아 걸어야 할만큼 산책보다 못한 속도로 떨어졌다. 이런 경험은 광주 빛고을 울트라 마라톤 92km 지점에서 느꼈던 경험과 비슷하다. 그때도 떨어지지 않는 발이었는데, 한발 두발 씩 움직여서 인내심만으로 힘겹게 골인적이 있었다.
이럴땐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무념무상일 뿐이다. 내가 달리는 것인지 기어가는 것인지 분감이 안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내 앞으로 달려나간다. 더욱 슬픈 건 생각나는 단어들 마저 불쌍하기 그지없다. ‘빵과 족발, 시원한 음료수,그리고 담배’… 모두 쉬면서 먹고 마시는 그것들이라 내 몸은 원초적인 배고픔과 힘겨움으로 털썩 주저앉고 싶었던 것이다.
왕 형수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주며 앞으로 달리시는데 참으로 몸이 가볍다. 나도 왕 형수님과 그들의 일행처럼 웃으면서 달리고 싶은데 내 몸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 동무는 길가의 바람과 풀들 뿐이다. 까막득히 남은 ' km표시판'에 질려 고개를 쳐박고 밑을 보며 달려도 보고, 주변의 경치에 위안 삼기도 했지만 떨어지지 않는 다리와 배고픔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41km 지점을 지나서도 한참을 걸었고, 탄천부터 골인지점으로 꺽는 지점까지도 마냥 걸어야 했다.
오늘의 기록 4시간 46분 7초… 비로소 내 몸은 노예에서 주인으로 바뀐다. 허탈감은 성취감으로, 절음발이 걸음은 가슴의 훈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휘마동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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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회명 : 국제평화마라톤
2. 일 시: 2014. 10. 03(금) 오전 8시 ∼
3. 장 소: 코엑스 한국전력 앞
4. 대회 간략내용
가. 대회장 부스에 집결(배번을 갖고있는 제가 늦게와서 늦게 배번드림)
나. 풀코스 출발 후 10km 하프 순으로 출발
나. 오후 2시 10분에 마지막 풀코스 주자골인
다. 운동 후 학교 앞 CF사우나에서 샤워
라. 교내 쌍다리 식당에서 식사(이사장님과 교장선생님,조직국장님등 참석)
마. 인근 호프집으로 옮겨 2차(이사장님께서 비용지불)
5.참석명단(존칭생략) : 45명
54회 김선기,이성오,김기후
59회 안덕환
60회 이근철 왕명순
61회 안대용 강승욱
63회 김동호 이정희
65회 이용주 박기구
67회 김용환 김응규
68회 정일남,이명호 송영숙 문명걸
71회 권용학 윤수형
72회 이한구 임정묵 류하영
73회 이영규 민철규
74회 유승호,이성규 서민규
77회 민경남,이호철 함영욱 윤영준
79회 홍영준
82회 권영익
모교 : 이사장님 외 1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