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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대 : 정광영 (안토니오)신부님
*재임기간 : 1977년7월 ~ 1978년9월
1977년 7월14일에 부임하여 1978년9월14일까지 14개월이라는 재임기간은 너무나 짧았지만 정 신부는 초대 본당 주임신부로서 그 짧은 기간 동안 4~5년에 걸쳐 해야 할 일을 모두 했다고 할만큼 열심한 사목을 하였다.
정 신부가 본당에 부임했을 당시의 본당은 광활한 본당구역과 함께 교적으로 넘어 온 신자수는 1천82명이었으나 본당 설립 당시에 나오는 신자는 300명 내외였고, 성전 건립은 초미의 일로 맡겨진 것이었다.
그해 남은 6개월간의 사목지침을 “성전 건립과 신자 찾기” 로 정하고, 본당에 열심히 나오는 몇몇 형제자매들의 협력을 받아 우선 본당의 기본적인 조직을 하고나서는 중점적으로 힘을 쏟은 것이 교우 가정방문이었다.
그것은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기 때문에 구역 내의 모든 신자가 모이지 않는 본당은 지역교회로서의 기능을 다하기가 어려운 것이고, 신자들이 다 모이지 않으면 성전건립을 이루어 낼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정 신부의 교우 방문은 구역 내 본당 신자뿐만 아니라 구역 외의 신자들도 많이 방문하였는데 그것은 효목본당의 성전건립 기금을 봉헌하도록 권면하기 위해서였다. 정신부는 부임 이듬해도 성전건립과 신자 찾기를 계속하면서 성전건립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 됨에 따라 레지오 마리애를 확장하는 한편 많은 신자들을 꾸리실료에 보냈고, 임시본당의 어려움 속에서 주일학교를 개설, 2세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정신부는 성전을 잘 세우고 신자들도 다 불러 모아 함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훌륭한 본당 공동체를 이루어 보고자 했으나 예기치 못한 일로 인사이동이 되는 바람에 이 꿈을 접고 서운한 마음으로 본당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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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 이강언 (바오로) 신부님
*재임기간 : 1978년9월 ~ 1982년1월
갑작스런 인사발령으로 어수선한 본당 분위기 속에서 제2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이강언(바오로)신부는 부임초기에는 신자들을 결속시키고, 성전건립 마무리와 수녀원 건축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신자 재교육과 신앙생활 쇄신에 힘을 기울였다. 이 신부는 가정방문 등을 통해 신자들이 자기 신앙에 대한 확신과 신자생활에 대한 성의가 모자라고 신앙생활에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파악하고, 바른 자세로 미사참례를 하도록 하는 등 신앙생활 쇄신에 역점을 두었다.
신앙공동체는 하느님 중심으로 모여 기도하는 모임이 되도록 장려했고, 반과 가정은 미사를 통해서 예수님과 일치하여 성화되도록 했다. 가정성화를 위해 모범적인 가정에 ‘성 가정상’을 수여했다.
이 신부는 이를 위해 그리스도공동체수련회(BMW)를 도입하여 본당 자체적으로 수차례 실시해 많은 공동체 지도자를 자체 영성하기도 했다.
이 신부는 재임 기간 중 교구 사목지침이 전고에 집중되자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 ‘함께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 ‘함께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 를 사목지침으로 정하고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혼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선교하고, 함께 나누도록 이끌었다.
이 신부의 ‘공동체’를 기조로 한 사목은 요즘 소 공동체 운동이 강조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보면 시대적으로 한 걸음 앞선 사목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들의 전교활동에 있어서도 '기도를 통한 전교‘ ’생활을 통한 전교‘ ’구체적인 전교 활동‘을 강조함으로써 신자들은 전교를 위해서 먼저 기도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해야 하며, 그 다음 구체적으로 전교활동을 하도록 가르쳤다.
이 신부는 또 본당 사목을 철저하게 교구 사목지침에 맞추어 설정하고 추진했다.
*제3대 : 박형진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재임기간 “ 1982년1월~1986년1월
제3대 본당 주님 박형진(아우구스티노)신부는 왕성한 열정으로 본당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박신부는 우선 본당에서 젊은 일꾼들을 많이 양성해 냈다. 박 신부는 꾸르실료를 활용하여 많은 봉사자들을 양성했고, 실제로 본당에서 하는 봉사를 통해서 일꾼들을 길러내기도 했는데 그때 양성된 젊은 일꾼들이 지금도 교회 곳곳에서 한몫들을 하고 있다.
박 신부는 또 많은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성소후원회, 인성회, 장학회, 군종후원회를 만든 것은 손꼽을 일이다. 이 공동체들은 다른 본당에서는 잘 하지 못하거나 한다해도 한두 개 정도만 하는 것인데 박 신부는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서 적극적으로 이 모임들을 만들었고, 신자들의 참여를 적극 권장해 활성화시켰다.
박 신부는 지역교회가 필수적으로 감당해야 할 선교는 물론이고 신자들의 전례생활 활성화, 이에 따른 신자 재교육과 피정을 쉼없이 계속함으로써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또 특수 사목에도 남다른 관심과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신용협동조합 설립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당시 신자들의 생활이 많이 어렵고, 생업이나 생활자금을 싼 이자로 쉽게 대부받아 쓸 수가 없었는데, 박 신부는 신자들의 이러한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방법으로 신협 설립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한 사람을 위하여’ 라는 정신으로 설립된 신협은 신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게 되고, 신자들을 본당을 중심으로 모이고 결속시키는데 큰몫을 하였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
또 본당에서 분가되는 만촌본당 성전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를 구상하고, 신자들과 함께 상품을 준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여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제4대 : 이창배 (안드레아) 신부님
* 재임기간 : 1986년1월 ~ 1991년3월
1986년 1월 본당에 제4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이창배(안드레아) 신부는 앞으로 본당에서 사목할 목표를 제시하는 글을 월보 ‘효목’의 2월호와 3월호에 나누어 실었다. ‘생명이 넘치는 사회를 향하여’ 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이글에서 이 신부는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한국교회는 끊임없는 쇄신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교회가 당면한 중대한 과제는 지금까지의 사목을 반성하면서 앞으로 새로운 사목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힘쓰는 일입니다. 새로운 사목의 분위기란 사람들로 하여금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목을 뜻합니다.”···중략···“이러한 사회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뜻있고 참되며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고 전제하고 그 구체적인 사목목표를 제시했다.
그 소제목들만 살펴보면 ‘바로 사는 삶의 자세를 길러 줘야 한다’, ‘신자들은 다섯 권 째의 복음서이다’(누가 예수님께서 사신 것처럼 살기를 원하고 이를 배우려고 물어온다면 우리는 서슴치 않고 교회안에서, 다시 말하면 우리 신자들 안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신자들이 교회안에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사랑의 공동체 안에 있게 해야’, ‘남을 위해 사는 삶’ 등이다.
이 신부는 교구안에서는 처음으로 본당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칙을 성문화하였고 평협회장단을 비롯해 제 단체들의 간부를 신자들이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본당안의 민주화를 기하고 평신도들의 자율적인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신자들이 뚜렷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협동하여 자율 자립하게 했다.
한티 성지 개발 기금 모금도 이러한 신자 자율적인 분위기로 추진, 무난하게 해내었다. 또 본당에서는 처음으로 ‘삼왕래조’행사를 도입했는데 본당 내 33개 반의 신자들은 어린이들이 분장한 삼왕들이 나타나자 융숭(?)한 대접까지 하고 성금도 내는 등 잘 치렀고 그후 삼왕래조 행사는 본당의 전통으로 이어졌다.
이 신부는 또 사이비 종교 대해 많이 가르침으로써 신자들이 사이비 종교에 현혹되지 않도록 경계했다.
*제5대 : 김상목 (다미아노) 신부님
*재임기간 : 1991년4월 ~ 1995년7월
제5대 본당 주임 김상목(다미아노) 신부는 1991년 4월 10일자로 부임했다. 그러나 본당 사정으로 해서 5월부터 정식으로 본당사목을 시작햇다. 김 신부는 본당 현황을 파악하면서 본당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으로 신자수가 6천명에 가까워지고 있어 현재의 사목 시스템으로는 사목하기가 어렵고, 특히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끌기가 어렵다고 보았다.
그 대책으로 ‘기초공동체 운동’을 도입하였다. 본당 관할의 전 구역을 구, 구역, 반, 조의 4단계로 나누어 조직하였다.
이 가운데4~7가구로 구성된 ‘조’를 기초공동체(소공동체)로 삼고, 신자들은 이 ‘조’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구역 조직으로 본당과 신자들 간의 의사 소통이 쉬워지고, 사목의 효율성을 높이게 되었다.
김 신부는 본당에 재임하는 동안 이 ‘기초공동체’ 활성화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기초공동체’는 임의단체가 아니라 신자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본당의 조직이며, 본당의 여러 가지 단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조직화 되어 있는 레지오 마리애도 ‘기초공동체’를 도와주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보고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조직이 그 기능을 하도록 ‘기초공동체’를 지역 중심으로 개편하였다.
김 신부는 또 신자들의 ‘성체신심’과 ‘성모신심’을 키워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가르멜산 지속적인 성체조배회’를 도입, 성체를 모시고 24시간 끊이지 않고 조배하도록 했는데 이 지속적인 성체조배는 나중에 교구가 공식으로 인준한 ‘지속적인 성체조배회’로 개편되고, 조배 방법을 조금 바꾸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제6대 : 최현철 (파비아노) 신부님
*재임기간 : 1995년7월 ~ 1998년 9월
1995년7월4일자로 부임한 제6대 본당 주임 최현철(파비아노) 신부는 1998년 9월 2일 교구 사무처장으로 기용되는 바람에 본당에서는 3년2개월밖에 안 되는 비교적 짧은 기간을 사목하였다.
그러나 최 신부는 효목본당이 지역교회로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본당이 되게 하기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최 신부는 우선 본당을 ‘사랑을 실천하는교회’로 만드는데 힘을 기울였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신자들 모두가 본당의 사랑 실천에 동참해야 한다고 보고 전 신자가 사회복지회원이 되도록 했다. 신자 개개인이 전부 나서서 불우한 이웃을 위해 일하지는 못하더라도 모두 사회복지회원이 되어 적은 액수라도 회비를 냄으로써 본당이 펼치는 사회복지 사업에 동참하게 하였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 대상을 본당 안에만 국한하지 않고 교회 밖, 즉 외인에게까지 확대함으로써 하느님을 모르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였다.
최 신부는 근간에 와서 전교가 부진한 것을 보고 지역교회인 본당이 선교사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면서 전 본당 차원으로 전교를 하기 위해 ‘새로운 양 찾기’ 운동을 펼쳤다. 이 ‘새로운 양 찾기’ 운동은 한번으로 끝내지 않고 거듭했는데, 외인 입교뿐만 아니라 쉬는 교우들을 다시 본당 안으로 불러드리는 일도 중요하다고 보고, 제2차 ‘새로운 양 찾기’를 하면서 ‘잃어버린 양 찾기’를 병행하여 적지 않은 사람이 교회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최 신부는IMF사태로 인해 신자들의 생활이 대부분 크게 어려워졌을 때 경제사정이 좋아진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교무금을 올리지 않았고, 나빠졌다는 사람은 오히려 낮추어 주는대신 본당 예산을 긴축 운영하였다. 이 때문에 98년도 교무금 수입이 전년에 비해 약 380만원 감소했으나 주일 헌금은 110만원이 늘어 큰 어려움 없이 본당을 운영했다.
*제7대 : 이상호 (베드로) 신부님
*재임기간 : 1998년9월 ~ 2001년12월
제7대 본당 주임 이상호(베드로)신부는 1998년9월3일 부임하여 2001년 12월5일 은퇴할 때까지 3년 3개월 동안 본당에서 사목하면서 사제생활 40년을 마무리하는 뜻깊은 사목을 하였다. 이 신부는 본당 사목기간 동안 은퇴를 앞둔 고령임에도 나이를 잊고, 은퇴를 의식하지 않고 노익장의 열정으로 많은 일들을 하였다.
이 신부는 부임 이듬해 본당 사목지침을 ‘인의식을 갖고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돕고 나누며,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맺으며, 선교에 투신하자’로 정하고 본당 중장기 계획을 수립,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사목자세를 보였다.
이 신부는 선교에도 역점을 두어 종전의 ‘새로운 양 찾기’에서 보다 적극적인 ‘신자 배가운동’으로 전환시키고 선교활동 그 자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전교 대상자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성체조배를 하도록 했다.
또 매 미사 전에 ‘전교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미사 끝에는 전교를 위한 노래를 불러 신자들의 선교열기를 돋우었다.
본당에서도 머지 않아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그때를 대비하여 지금부터 준비하기로 하고 성전건립기금 조성을 위한 나눔장터를 개설하는 등 성전건립기금 적립을 시작하였다.
성소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신자들이 성소후원에 동참하도록 독려함으로써 회원을 700명선까지 늘였다.
‘소공동체 운동’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 김상목 신부 재임시 ‘소공동체’의 하나로 조직되었다가 그동안 흐지부지된 ‘조’를 부활하는 대신 ‘반’을 아예 ‘조’ 규모로 세분화하여 총 99개반으로 만들어 신자들의 반모임을 쉽게 하도록 하는 한편 가정에서 드리는 반미사를 부활시켰다.
이 신부는 구역장과 반장의 조직을 강화하고, 본당 간부들을 비롯해 모든 신자들이 반장의 지시에 따르고, 본당 내 어떤 단체나 교구단체의 행사 때문에 반모임에 결석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제8대 : 곽길우 (베드로) 신부님
*재임기간 : 2001년 12월 ~
제8대 본당 주임 곽길우(베드로)신부는 2001년12월5일 부임하여, 부임 후 한달도 안되는 기간에 본당 실정을 파악하고 2002년 사목지침을 ‘배움의 해’로 정했다.
본당 신자들은 그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는 예가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뜻은 실천지침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실천지침을 보면 ①매 주일미사 후 ‘3분 교리’를 실시하여 가톨릭 기본교리를 배워 나가겠습니다. ②강론이나 특강, 피정및 연수를 통하여 우리들의 영성생할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③기도생활의 기초로서 각 가정마다 아침.저녁기도를 비롯한 일상기도 바치기 운동을 전개해 나가겠습니다. ④성가로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도록 미사 전에 전 신자를 위한 성가연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⑤주보 간지를 통해서 본당 사목지침과 그 단계, 그리고 각종 회합에서 토의된 사항 등을 알려, 전 신자가 본당 소식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목지침을 발표한 곽 신부는 이 모든 것을 곧바로 실천하였으며, 그 결과로 일상기도를 바치는 성인 신자가 95%에 달하는 등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또 본당 월보가 발간되다가 1995년 8월 이후 발간이 중단되었음을 알고 2002년 4월에 월보‘孝睦’(효목)을 복간시키고 한달 동안 있었던 중요한 일들을 모두 수록하여 신자들에게 알리도록 하고 있다.
선교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2월 초부터 3월 중순까지 전교를 집중적으로 하도록 하면서 종전의 레지오 마리애 중심의 선교활동에서 ‘반’ 즉 ‘소공동체‘ 중심의 선교활동으로 전환시켰다. 특히 각반은 이 기간동안 매주 모임을 하면서 구역 내에서의 전교를 위해 기도하고 의논하여 함께 활동하여 1개반에서 1명이상 전교하여 봉헌하도록 했는데 그 결과 좋았다.
성모성월을 맞아 본당에서는 매 저녁미사 후에 신자들이 본당 성모당 앞에 모여 묵주기도와 성모성월 기도를 바치도록 하고, 기도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신자들이 성모님을 통해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제9대 : 장영일 (그리산도) 신부님
*재임기간 :
첫댓글 이렇게 올려 놓으니 어느 신부님께서 다녀 가셨는지 알아보기 좋군요. 이왕이면 신부님 옆에 년도도 함께 올리시면 더 좋을 듯한데... 아직 올리시는 중이시지요? 수고 많으십니다..^&^
카타리나님 고맙습니다. 준비중에 있습니다. 넘 급하게 서둘지 않을려고 합니다 =^ㅇ^=
신부님사진 찾는데로 올리겠습니다 =^ㅇ^=
본당 사무실에 가면 사진이 진열돼 있는데요.
숲샘님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좌신부님들도 같이 올려주심 좋겠는데요^^ 보고싶은분들이 참많은데 다들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강언 바오로 신부님께서 제2대 주임신부님이셨군요~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으니 신영세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