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신화가 있었다.
야수처럼 산을 오르던 신화
리오날 떼레이같이, 쟝 꼬스트처럼…
고결한 순수를 속살 끌어 안 듯 쓸어 안고 젊은 날의 시간을 산을 올랐다.
눈 덮힌 설악을, 비가 오던 선인봉을, 하늘 푸르던 인수봉을,
별빛 쏟아지는 비박지에서 우리는 언제나 야성의 가슴이었다.
그 들과의 대화는 멋진 산행으로 이어지는 기쁨이었다. 그 들과의 10년 산행의 결말은 알프스를 꿈꾸었고,
아이거와 마터호른, 그랑드조라스는 그들의 관념 속에서 깊숙히 자리하였다.
알프스를 꿈꾸며 땀을 흘리던 그들은
그들의 땀이 이루어진 설악에서
차갑게 땀을 식히며 새벽 별빛처럼 쓰러져 갔다. (청암산우회 알프스원정기 중에서)
클럽샤모니
언젠가 마운틴에 기자로 있는 영준에게 기획기사를 제의한 적이 있었다.
전국의 인공암장을 순회 방문하여 시리즈로 엮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암장의 역사, 암장과 암장 쥔의 색깔, 그 암장이 배출한 유명 클라이머, 현재 암장내 최고수, 암장의 명물 등
서울에서 처음 문을 연 암장(실내인공벽)은 노량진 암장이다.
이 곳을 거쳐간 쟁쟁한 클라이머들도 많지만 잊을 수 없는 이름은 암장을 운영했던 故박현규이다.
1995년 암장운동을 하겠다고 난 이 곳에 등록을 했었다.
항상 그렇듯 몇 번 나가지도 못하며 제대로 운동을 못했지만, 내게 인공홀드를 잡는 기초를 알려준 박현규의 강렬하고도 선한 눈빛은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 있다.
마경오와 더불어 선운산의 수많은 루트를 개척한 장본인이자, 월드컵대회 출전, 조가사키 암장 등반, 트랑고타워 원정...
죽기 전 원주클라이머스가 개척한 원주'대답바위'의 고난이도 루트를 초등하던 그의 날렵하고도 과감한 오름짓이 기억난다.
의정부에 실내암장 샤모니를 만든 사람은 최승철, 김형진 이다.
공교롭게도 박현규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고인의 몸이 되어 있다.
노량진 암장이 그렇듯이 샤모니 역시 수 많은 불세출의 용장들이 거쳐갔거나 배출되었다.
정승권, 이의현을 필두로 최승철, 김형진, 김점숙, 김영태, 조우영, 김세준, 김봉주, 장기헌, 김동현, 한정희, 정석현…
록 음악에도 프로그레시브 록이 있듯이, 마운틴紙에 실린 손재식의 글처럼 샤모니 암장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진보해 오고 있었으니 그 색깔의 이름은 “데카당트” 였다. (Decadent – 퇴폐적인, 제멋대로인, 반항적인…)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의 선구자 비틀즈를 위시해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레드 제플린(Led Zepplne), 퀸(Queen), 딥 퍼플(Deep Purple), 주다스 프리스트, 스콜피온스 등을 떠올려보라. 얼마나 각각의 색깔이 뚜렷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승철, 김형진의 생전 등반 모습이나 삶의 색깔이 너무나 전위적이고 강렬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샤모니의 색깔이 쉽게 연상될 것이다.
샤모니 암장에서 그 들은 미지의 거벽을 오를 준비와 생각을 하였고 트랑고타워에서 '코리아 환타지'라는 신루트를 개척한 직후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를 만들었다.
너무나 ‘데카당트’한 , 그리고 너무나 그들스러운 발상이었다 해야 할 것이다.
이들의 데카당트한 분위기에 한 순간에 휩쓸리고자 멀리서 달려온 클라이머가 있었으니 바로 그가 장기헌이다.
마치 자신의 주군이 유비인 것을 알아보고 천리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 상산의 조자룡 처럼…
그 전위적인 두 클라이머는 미지의 거벽등반을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를 수립했고, 그 프로젝트의 첫 번째 해결과제가 바로 탈레이사가르 였다.
바위로만 색칠된 탈레이사가르의 사진 한 장을 보곤, 등반장비를 온통 쇳덩이로만 꾸렸던 그 들을 무모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5.14급 등반 아시아 X게임과 월드컵 국제루트 세터 등의 꼬리표가 붙어있는 김동현,
그 역시 의정부 샤모니에서 3년 세월을 보낸 시절이 있다.
슬로베니아 대회에 출전하기위해 안양 암장에서 훈련 중이던 1997년 8월, 김동현은 새로 산 보리알 암벽화에 정신이 팔려 안전벨트에 로프만 통과한 채 안양의 인공암벽 16미터를 오른 후 두 손을 놓아 버린다.
그리고 바닥까지 한 번에 떨어졌다.
온 몸이 으스러졌다고 해야 할 엄청난 사고였다.
"어느 날 내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형진이가 의정부로 오래요.
안양에서 짐 싸들고 와서 의정부 우영이 형 집에서 자취하게 되었지요. 지금도 그들과 함께 했던 샤모니 암장 시절이 따뜻하게 느껴져요."(손재식 한국의 바위열전 중에서)
사과는 세잔느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 있다.
이를 설명하자면 인류 역사상 세 번의 사과가 있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
첫 번째 사과는 이브가 주었던 아담의 사과
두 번째 사과는 뉴우튼의 만유인력의 사과
세 번째 사과가 바로 세잔느의 사과 이다.
단순한 사과를 그린 평범한 정물화의 사과가, 세잔느라는 불세출의 화가에 의해 재탄생되었음을 의미하는 말인데,
이 격언을 박인식은 '사람의 산' 에서 한국의 스키는 전담에 의해서 다시 태어났다고 비유한다.
마찬가지로 비유하자면,
한국의 대암벽등반(Aid Climbing)은 최승철, 김형진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레이사가르에서 승철과 형진이 죽은 후에 정승권은 그 둘을 "새끼 호랑이"라고 비유했었다.
하지만 장차 숲을 호령할 성인 호랑이로 자라지 못하고 이슬처럼 스러져간 젊은 그 들.
1995년 겨울 어느 날
자신의 사부인 정승권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이 가장 큰 무기이자 믿음임을 확신한 김점숙은 서슴없이 토왕폭 단독등반을 결심한다.
최승철은 단독등반을 결심한 김점숙에게 함께 등반할 것을 제의한다.
줄을 묶지 않고 옆에서 나란히 오르는 것이니 김점숙의 단독등반의 의미는 조금도 퇴색되지 않는 것 아니냐면서…
그 때 그는 이미 김점숙에게 프로포즈 할 결심을 한 상태였다.
등반이 끝난 후 내려서는 길에, 발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서 먼저 내려선 승철은 점숙에게 자신의 머리를 선뜻 내어주며 밟고 내려서기를 권한다.
승철은 남자로서 그리고 클라이머로서 의리를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김점숙과 살면서 행동으로서 보여진다.
몇 년전 당시 최고의 화제였던 허영만화백의 만화 “타짜” 1편 지리산 작두를 보면, 맨 마지막 장면에 이런 글이 나온다.
당대 최고의 고수인 전라도의 ‘아귀’와 명승부를 펼친 끝에 절묘한 수로 아귀를 박살낸 곤이는 자신을 사랑했던 기생 화란이를 찾아간다.
단지 하룻밤 풋사랑을 나눴지만 자신의 핏줄을 가진 그녀에게 곤은 이렇게 말한다.
“형님이 당신에게 해주려고 했던 일을 내가 해도 되겠소?”
“하지만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잖아요?”
…
"따지고 보면 사랑도 구라야,
사랑은 늘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상대방을 들었다 놓았다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거든”
"난 무식한 놈이라 잘 모르지만
사랑보다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믿소!
의리란 놈은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으니까!"
"당신이 나와 결혼 해주면 한 평생 남편으로써 의리를 지킬거요."
승철이 지키고자 했던 그 의리는 탈레이사가르에서 김점숙의 등에 떠매어진 채 영원히 종결된다.
<살다 간 흔적 지우기>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제 나는 낡고 고단한 나의 배낭을 벗으려 합니다
살아온 세월의 무게만큼
언제나 내 어깨를 짓누르며 육신을 옭아매었던
배낭을 말입니다
쉬지 않고 바쁘게 걸어온 이곳이
내가 다다르고자 했던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더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제 나는 멀리 떠나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는 아무도 나를 위해 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비탄에 젖은 울음은 오히려 진실이 아니며
떠날 때를 알고 가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삶의 배낭을 훌훌 벗음으로써
나는 처음으로 자유롭고 처음으로 평온해졌습니다
그런데 왜 울고 있습니까
이제 진실을 알았다면 울음을 그쳐주십시오
당신이 울면 나도 따라 함께 울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질곡과 회한
그리고 애증과 안타까움은 더 이상 눈물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는 이제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생전에 펑펑 솟았던 눈물샘과 함께
그런 감정을 느낄 육신이 이제 더 이상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나의 누더기 같은 육신이
한 줄기 연기로 바뀌는 것에 동의해주셔야 합니다
욕심뿐인 집착, 잡스러운 노트와 가슴아픈 기억과
부끄러운 치기, 허망했던 욕심, 허울과 탐욕, 절망만 가득했던
손때 묻은 배낭과 모든 것을 함께 태워
푸른 연기로 바꿔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나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또한 그것으로부터 소멸되는 눈앞의 현상을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돌이켜보면 짧지 않은 삶에 기쁨과 긍겨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산다는 것에, 즐거운 세월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런 희망과 함께 절망도 늘 따라다닌 것을, 나는 이제 압니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속박이었음을 이제 압니다
육신이 살아 숨쉬는 동안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미망이었다는 것을, 이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고통에서 비로소 해방되었는데
왜 당신이 울어야 됩니까
눈물을 거두십시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의 부탁을 기억해주십시오
이제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몸뚱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땅 속에서 까지 자유를 속박당한다면
여태 힘겨운 삶의 무게를 지탱해온 육신이 불쌍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배낭 한 가득 꽉 차 있던 삶의 무게에서 해방되었듯
육신도 자유로운 연기가 되어 하늘로 날려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리하여 나는 한 줄기 미풍에도 흔들리며
점점 형체가 옅어지다 흔적도 없이 사그라지는 잊혀짐이고자 합니다.
다만 갈참나무 여린 잎새를 흔들거나
잔잔한 연못에 비늘 같은 물결을 만드는 바람에서
나의 솜털처럼 가벼워진 영혼을 기억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제야 진실로 나는 세상의 모든 인연과
굴레로부터 자유스러워지는 느낌입니다
그것에 이르는 오롯한 길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그 죽음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라면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라면
담담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걸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제 눈물을 멈추고 내게 꿈꿀 수 없는
깊고 투명한 잠을 들게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나는 잠들고 다시는 꿈을 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흔적 지우깁니다
그리고 머지 않은 날
맑은 영혼이 되어 푸른 하늘로 오게될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육신이 불살라지고 한 줄기 연기가 되면
하늘거리며 솟아오르는 나의 마지막 손짓이 그 약속이 될 것입니다
하늘가에 번져 가다가 이윽고 그 흔적마저 지워져버리는 사이
태양은 늘 그렇듯 빛나고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이제 배낭을 벗을 때입니다
이렇게 먼저 짐을 벗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허물뿐인 나의 배낭을.....
< 신영철 著 히말라야 이야기 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