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최근에 교육 현장에서 쓰이는 말 중에 ‘모둠’이라는 말이 있다. ‘모둠’은 한자어인 ‘조(組)’나 영어의 ‘group’을 대신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모둠’은 국어사전에 다음과 같이 올라 있다.
모둠 [명][교육] 초․중등학교에서, 효율적인 학습을 위하여 학생들을 작은 규모로 묶은 모임. (예) 모둠 토의
그런데 기성세대에게는 ‘모둠’보다 ‘모듬’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횟집의 차림표에서 볼 수 있는 ‘모듬회’처럼 ‘모듬’이 비교적 널리 쓰였기 때문이다. ‘모듬회’가 여러 가지 종류의 생선회를 모은 것이므로 ‘모듬’ 또한 ‘모둠’과 의미가 비슷하다. ‘모듬안주’, ‘모듬볶음밥’의 ‘모듬’도 같은 의미로 쓰였다.
어원상으로 볼 때 ‘모둠’과 ‘모듬’은 모두 옛말 ‘몯다’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몯다’는 현대어의 ‘모이다’에 해당한다. 옛말에서 ‘몯다’는 ‘모이다’의 뜻을 가진 자동사로만 쓰였다. 현대 국어의 ‘모으다’의 뜻을 가진 타동사는 ‘모도다’였다.
그런데 ‘몯다’와 ‘모도다’는 1900년대 초반에는 서로 잘 구분되지 않았다. 그 당시의 국어사전에는 ‘몯다’와 ‘모두다’가 모두 ‘모으다’에 해당하는 뜻을 가진 타동사로 기술되어 있다. 1936년의 《조선어 표준말 모음》과 1938년의 문세영 편 《조선어사전》을 보면 어형은 둘을 설정해 놓았지만 모두 타동사인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1938년의 《조선어사전》은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사실을 보여 준다. ‘몯움’과 ‘몯음’을 명사로 올려 놓고 ‘몯움’은 ‘사람을 모은 단체’로 뜻풀이하고 ‘모듬’은 ‘사람이 모인 단체’로 뜻풀이함으로써 두 말이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분이 있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합리적인 처리라고 하기 어렵다. ‘몯움’과 ‘몯음’에 자동, 타동의 기능이 있었다면 ‘명사’가 아닌 ‘명사형’이므로 사전에 표제어로 올리지 말아야 하고 ‘명사’라면 자동, 타동의 기능이 있는 것으로 뜻풀이한 자체가 문제가 된다. 결과적으로 ‘몯움’, ‘몯음’은 ‘모둠’과 ‘모듬’의 근거가 되는 말이지만 표제어 설정 자체에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역사적으로 볼 때 ‘모둠’과 ‘모듬’ 중에 어느 한 쪽의 설정을 특별히 지지해 줄만한 뚜렷한 근거는 없는 셈이다.
따라서 ‘모둠’과 ‘모듬’ 중에서 ‘모둠’을 선택하게 된 것은 ‘모둠’으로 시작하는 어형이 표준어로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근거가 되었다. ‘모둠냄비’, ‘모둠발’, ‘모둠꽃밭’, ‘모둠밥’, ‘모둠 앞 무릅치기’와 같은 말들이 남아 있는 것을 근거로 ‘모둠’을 표준어로 선택한 것이다. ‘모둠’을 표준어로 삼았으므로 ‘모듬’으로 쓰던 말들도 ‘모둠회’, ‘모둠안주’, ‘모둠볶음밥’과 같이 ‘모둠’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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