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원리
엔트로피는 쉽다. 붙은 것은 떨어진다. 이것이 엔트로피다. 이미 붙어 있으므로 거기서 일어나는 변화는 떨어지는 것 뿐이다. 지극히 당연하다. 붙은 것은 메커니즘이고 떨어지는 것은 변화다. 너무 쉽다. 존재가 메커니즘에 의한 자발적 변화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된다.
문제 속에 답이 있으므로 이미 증명되어 있는 것을 자명하다고 한다. 엔트로피는 자명하다. 변화라는 말 속에 엔트로피가 반영되어 있다. 변화하면 달라진다. 같으면 하나고 다르면 둘이다. 어원으로 보면 둘이다와 다르다는 같다. 변화는 하나가 스스로 둘이 되는 것이다.
모든 변화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하나가 둘로 되는게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경험적 직관과 일치한다. 우리가 느끼는 힘은 전자기력의 반발력에 따라 밀어내는 힘이다. 가만 두면 서로 밀어내다가 떨어진다. 흙, 돌, 나무, 물은 들러붙은 것이며 놔두면 떨어진다.
보편원리 - 붙은 것은 떨어진다.
매개원리 - 붙이려면 매개체가 필요하다.
그럼 붙는 것은 무엇인가? 붙는 것은 까다로운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붙이려면 접착제가 필요하다. 벽돌을 붙이려면 모르타르가 필요하다. 반드시 매개가 있다. 이미 붙어 있는 것이 새로운 결합을 방해한다. 외부 에너지가 투입되어 방해자를 제거해야 겨우 붙는다.
저절로 붙는 것은 반드시 상부구조가 있다. 그것은 여러가지의 협력으로 가능하다. 식물의 성장은 햇볕이 밀어줘서 가능하고 사람의 성장은 밥을 먹어서 가능하다. 저절로 붙는 것은 없고 붙여야 붙는다. 그렇게 붙여진 것이 메커니즘이다. 자발적인 변화는 깨지는 것이다.
매개원리
우리가 엔트로피를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자발적 변화라는 전제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매개가 없는 자발적 변화와 매개가 있는 강제적 변화를 구분하지 않아서 혼선이 빚어졌다. 주는 것은 그냥 주면 되는데 받으려면 주선해주는 매개자가 필요하다.
주기 - 능동, 보편원리 : 그냥 주면 된다.
받기 - 수동, 특수조건 : 알선해주는 매개자가 필요하다.
엔트로피는 주고받음에 의한 변화다. 주면 무질서해진다. 쓰레기를 버리면 무질서해진다. 받는 것은 매개자가 필요하다. 받으려면 공간과, 시간과, 주체를 특정해야 한다. 까다롭다. 무질서하면 받지 못한다. 받으려면 청소해야 한다. 받기 위한 사전작업에 에너지가 소모된다.
공짜로 줄 수는 있는데 공짜로 받을 수는 없다. 배설은 공짜로 주는 것이다. 배설물을 거름으로 쓰려고 받아가려면 운반비가 든다. 창고도 필요하다. 주기보다 받기가 어렵다는 것은 현실에서 누구나 경험한다. 1분만에 1억원도 줄 수 있지만 1억원을 받아내려면 만만치 않다.
주는 것은 능동이므로 자체동력을 쓰면 된다. 받는 것은 수동이므로 어디선가 동력을 조달해야 한다. 엔진이 바퀴에 동력을 주기는 쉽지만 바퀴가 엔진의 동력을 빼가기는 어렵다. 엔진은 동력이 있으므로 줄 수 있지만 바퀴는 동력이 있으므로 엔진의 동력을 훔치지도 못한다.
우주의 본질은 주기와 받기의 메커니즘이다. 사람은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둘 다 동력을 갖고 있지만 자연은 주는 자만 동력이 있다. 태양이 일방적으로 지구에 주는 것이다. 지구가 태양의 것을 빼가지 않는다. 우주는 주는 자 위주로 작동한다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언어원리
엔트로피가 동력의 주고받기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고받기는 두 사람이 필요한데 결정은 주는 사람이 한다. 받는 사람이 결정하면 도둑질이다. 받는 사람은 주변의 협조 없이 혼자 못 받는다. 포수는 투수와 상의해야 한다. 골키퍼가 골을 결정하지 않는다. 권투라 해도 맞는 사람이 골라 맞지 않는다.
1. 우주는 주고받기 메커니즘이다.
2. 의사결정은 주는 사람이 한다.
이것은 언어의 문제이므로 사유실험으로 충분하다. 언어 속에 답이 있는 것이 자명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메커니즘을 반영하는 언어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엔트로피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우리가 변화 메커니즘의 의미를 엄격하게 정의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열역학의 문제 이전에 변화의 문제다.
자연은 주고받기 메커니즘이고 주는 것과 받는 것은 다르다. 주는 것은 무방향이다. 내 손을 떠나기만 하면 준 것이다. 받는 것은 주체와, 장소와, 시간이 특정되어야 한다. 사전에 약속해야 받는다. 받기는 까다롭다. 자연에는 주는 자만 있고 받는 자는 없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은 주는 것이다. 받는 사람은 없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진다. 땅이 낙엽을 받은게 아니고 나무가 일방적으로 준 것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이유는 자연에 주는 자만 있고 받아가는 자가 없어서 점차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주고받기를 하다보면 부스러기가 생기는데 청소는 받는 자의 몫이다. 자연에는 청소부가 없다. 점차 무질서도가 증가한다.
주는 방법은 밸런스를 사용한다. 밸런스는 짝수다. 주는 비용을 제하면 언밸런스가 된다. 필연적으로 홀수가 남는다. 주는 것은 나눠주기다. 나눗셈을 하다보면 나머지가 생긴다. 동력전달은 나눗셈을 쓰므로 나머지가 생기는 것이 엔트로피다. 메커니즘 속에 나누기를 하는 밸런스가 숨어 있다는게 구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