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 험담은 기본, 어린이집 원장은 왕좌?
● 어린이집 교사인 A씨는 회의 때 원장으로부터 비난을 당하고 사소한 일로 시말서를 작성하라는 말을 듣고 노동청에 신고하러 갔다. 그런데, A씨를 본 근로감독관은 "증거가 있냐?"고 물어본 뒤, "증거가 있어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원장을 처벌할 수 없다" 라고 말했다. 근로감독관은 "구청에서 수탁한 어린이집이라, 구청에 민원을 넣어도, 노동청으로 가야 한다"면서 "내가 원장이랑 잘 얘기해 보겠다" 라고만 말했다. 그 뒤, A씨는 신고하고 민원을 넣었다는 이유로, 전보다 심한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
● B씨는 연차를 써서 남자 친구와 여행을 갔다. 그런데, B씨가 근무 중인 어린이집 원장은 짧은 치마를 입고 찍은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결혼도 안한 아가씨가 남자랑 여행갔다며, 동료 교사들과 학부모들에게 험담을 했다. B씨는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어린이집 보육 교사들이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비율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시민단체 직장 갑질119와 공공 상상 연대기금은 2020년 12월 22일 보육교사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은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어린이집 같은 소규모 사업장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큰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어린이집의 경우, 작은 규모의 사업장이 많고, 대부분 어린이집에서 원장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응답자 60% 이상이 직장 내 갑질 경험, 사각 지대 여전
설문 조사에 참여한 보육교사 중에 약 63.2%(316명)가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직장 갑질119가 2020년 10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36.0%) 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응답자들 중 72.2%(361명)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에도 괴롭힘이 줄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역시 직장인 ,1000명 조사 결과(43.1%)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근로계약서 작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72.6%(363명)가 작성하고, 교부 받았다고 응답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지만, 교부 받지 못했다는 응답자가 23.2%, 작성도 못한 응답자는 4.2%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계약서는 서면으로 근로자에게 교부해야 하지만, 아직도 어린이집 4곳 중 1곳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괴롭힘 가해자는 대표(원장 또는 이사장)인 경우가 44.6%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 중 49.0%는 괴롭힘이 발생해도 참거나 모르는 척 했고, 31.0%는 회사를 관뒀다고 답했다. 참거나 모르는 척 하는 이유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서" 라는 응답이 62.0%로 가장 많았고,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 라는 응답도 19.6%였다.
● 원장이 왕인 어린이집, 정부도 개선 노력 안 해
보육교사들은 원장과의 관계에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62.6%가 원장과의 관계를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았는데, 이는 아동과의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응답한 59.6%보다 높은 수치이다. 응답자 중 59.4%가 근무 환경을 높이기 위한 정책 개선 방안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하는 원장에 대한 처벌 강화'를 뽑았다. 주관식 응답란에는 원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보육교사들은 "원장의 감정 기복이 심해 교사들이 눈치보며 근무", "원장의 무한한 권력", "원장의 신뢰를 받는 교사가 괴롭히기 때문에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원장이 괴롭힘이라는 인식 없이 수시로 CCTV를 감시한다" 라는 등의 답변을 적었다.
응답자들은 정부가 어린이집 근로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전체 응답자 중 86.0%(430명)가 정부의 관리 감독과 처우 개선 노력이 없는 것 같다고 답했고, 2021년이 되면 처우가 나아질 것 같냐는 질문에도 16.2%만 그렇다고 답했다. 2021년 직장에서의 소망을 묻는 질문에는 '업무량, 근무 시간 등 근무 여건 개선'이 가장 많이 뽑혔고(42.4%), 급여 인상이 두 번째로 많이(29.6%) 뽑혔다. 노동조합 가입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필요하지만, 불이익이 우려되어 가입이 꺼려진다'는 응답이 54.6%, '적극 가입하겠다'는 응답이 41.6%로 나타났다. 직장 갑질119 관계자는 "이번 설문 결과로 어린이집같은 소규모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효성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처벌 조항 신설·적용 범위 확대 등 갑질 금지법 개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