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추정재-선두산-선도산-상당산성-이티봉-이티재-26km)
2010,10,15.맑음.
아침05시44분에 집을 나서서 청원군 낭성면 관정2리 추정재에 차를 세워 두고 산행 시작.
산행시간;9시간08분(07시44분에 들머리에서..16시52분에 날머리로).
이티재는 하루에 버스가 두번(미원-초성) 밖에 안 다녀 대중교통 이용하기에 불편했다.
마침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대전으로 향하는) 마음씨 좋은 젊은분을 만나 차가 있는 추정재까지 올 수 있었다.
해가 뜨길래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 찰칵하고..
추정재(머그미) 묵정은 우물빛이 먹물처럼 검게 보였다는 전설이 있으며 머그미, 먹우물이라고도 한다.
장자불 위에는 장수굴이 있는데, 옛날 장수가 나온다는 전설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중국 장수가 혈을 판 구덩이라고 한다
487봉
길/강인행
걷는다
한없이 걷는다
그냥 걷는다
길이 있기에 걷는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無念의 길을..
무심코 걷고있는 데 오른쪽 숲에서 뭔가 움직이면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는 데..
고개 돌려 보니 버섯 따는 아저씨의 가래침 뱉는 소리였다.첫번째 놀람.
오늘은 4자가 많이 들어있어(집을 나온 시간이 05시44분,산행시작 시간이 07시44분)영 찜찜했는 데
역시나..세번을 놀라는 일이 생겼다.
오름길에 고개 푹 숙이고 걷고있는 데 바로 눈 앞에 시커먼 짐승이...야~~임마~~깜짝이야!!
야생 염소 함마리가 떡 버티고 날 보고있었다.이것이 두번째 놀람이였고..
오늘 처음으로 보는 조망
무명봉
처음에 무슨 버섯인가 했는 데..참 요밀조밀하게 집을 멋스럽게 잘 꾸며 놓은 벌집이다.
폐 벌집인 줄 알고 떼어 가서 장식품으로 쓸까하고 스틱으로 건드렸더니
구멍이(겨우 벌 한마리가 나올 만한) 뻥 뚤리면서 새끼손가락 만한 말벌들이
튀어 나오며 내 머리위에서 공격을 한다.모자를 썼으니 다행이지 큰일 날 뻔했다.
고개를 숙이고 걸음아 나 좀 살려!!하고 냅다 내 달려서 위기를 모면하고..세번째 놀람이다.
몇년전 아는 사람이 강원도 갔다 말벌에 쏘여 죽은 일이 생각나며 식은땀이 줄줄..
그래도 죽기는 싫었나..죽고 싶다는 생각도 더러 있었는 데..씁쓸하다.세번째 놀람.
선두산 표지판이 여러개다
선두산/先頭山, 선도산/先到山 선두산은 낭성면 무성리,지산리,현암리 경계에 있는 해발 547.2m의 산이다.
옛날에 신선이 이곳에 와서 놀았다고 전해진다.선두산은 가덕면 한계리와
청주시 월오동 사이에 걸쳐 있는 해발 572m의 산이다. 선도산과 선두산은 한자의 표기와 관계없이
'선돌산'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여기서 '선돌'은 우뚝 서 있는 바위를 뜻한다. 따라서
'선돌산'은 '선 돌이 있는 산'으로 해석된다.선두산은 선도산의 변화형이고, '선도산'은 '선돌산'에서
치조음 'ㅅ'앞의 유음'ㄹ'이 탈락되면서 실현된 어형이다.
현암삼거리 선도산 들머리 이곳에서 묵밥 한그릇 뚝딱하고..
현암삼거리(수레너미) 원래는 '수루네미'이다. 수루네미는 산 너머가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암삼거리 들머리 은행장묘 뒤로 진행
목련공원. 공원에서 보이는 앞산
포장도로가 나오고 건너 산으로 치고 오르니 중계탑이 나타나고
것대산 정자
것대산 활공장
옛 문헌에는 ‘거차대산(居次大山)’또는 ‘거질대산(居叱大山)’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식생은 소나무를 주종으로 하여 참나무, 단풍나무가 자라고 있어 가을이면 단풍으로 유명하다.
정상에는 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26호로 지정된 거질대산봉수지(巨叱大山烽燧址)가 있다.
풍향계가 세차게 돌고있다.오늘은 바랍이 거세게 부는 데 제법 차갑다
▲▼ 것대산에서 바라 본 청주시가지
봉수대
봉수대는 옛것이 아니고 2009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것대산 봉수대는 청주시 산성동 것대산(거칠대산)의
서쪽 산봉우리(해발 403m)에 위치한 내지봉수로 남쪽으로 문의면 소이산(所耳山)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 진천읍 소을산(所乙山) 봉수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정확한 설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이미 봉수대가 설치되어 1895년(고종 31) 봉수제도가 폐지될 때 까지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당산성이 보이고
출렁다리 밑으로 아래 사진의 산성고개 길이다
상당산성(上黨山城).사적 제212호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백제 때 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의 성은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돌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여장)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성 안에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는 데, 현재는 문과 치성이 남아있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상당산성에 올라
남문
산성 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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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을 지나쳐 능선 거의 다 오른 곳에있는 암문을 통과하여 좌측으로 진행해야..
이곳에서 알바를 많이 한 듯..아래 사진 암문
숲속의둥지 이정표를 따라 한참을 간다
운보 김기창의 생가(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갈림길
운보의 대표작 "청록산수"1976 비단에 수묵채색 84 x 101
이곳에서 숲속의둥지 이정표와 헤어져서 직진으로 진행 |
이곳 동네가 어딘지..계속 음악소리와 함께 시끌벅적이다.무슨 축제나 행사가 있는 듯..
새터재 보호수 느티나무
새터재
이티봉 정상
익어가는 가을 /이 해 인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행복하여라
말이 필요없는 고요한 기도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
이티재
구녀성
축성시기는 신라시대로 추정하며 석축형태의 작은 성임.
옛날 어느 마을에
아들 하나에 아홉딸을 가진 홀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이들 남매는 모두 힘이 장사였는데
불화가 잦아 마침내 생사를 건 내기를 하게 되었다.
내기인 즉,
딸 아홉은 산꼭대기에 성을 쌓는 일이고
그 사이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내기를 시작한지 5일이 되던날 어머니가 상황을 살펴보니
성은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데
서울 간 아들은 돌아올 줄 몰랐다.
이에 내기에 지게되면
아들이 죽게 될것을 생각한 어머니는 묘안을 생각하게 되었다.
가마솥에 팥죽을 펄펄 긇여놓고 딸들을 불렀다.
팥죽을 맛있게 긇여 놓았으니 먹으면서 천천히 해도 되리라 했다.
뜨거운 팥죽을 식혀먹고 있는동안
아들은
부릅튼 다리를 이끌고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그리하여 내기에 진 아홉딸은
성위에 올라가 몸을 던져 죽고
부질없는 불화와 아홉 누이를 잃게된 아들도
그길로 집을 나가 돌아올 줄 몰랐다
그뒤 어머니는 남편의 무덤앞에 아홉딸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여생을 보내다가 숨을 거두었다 라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성안에 두줄로 배열된 11기의 묘가 있는데
아홉딸과 부모의 묘라 한다는 데 ......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는 중생들.
한편 구녀산은 해발 499m에 등산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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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里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그네, 朴木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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