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최고의 아이돌 스타 브룩 쉴즈는 잘 나가던 그녀의 명성에 못미치는 영화와 연기로 안타까움을 주는 배우이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끊임없는 혹평과 때로는 비웃음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후속 작을 내놓는 불굴의 집념을 가진 배우이기도 하다. 모델 출신으로 유명한 그녀는 77년 [은막의 여인]으로 스크린에 데뷔하였으며, 78년 [프리티 베이비]에 어린 창녀로 출연하여 [택시 드라이버]의 조디 포스터와 함께, 미성년자를 창녀 역할로 출연시켜도 되느냐 하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의 필모그라피를 볼 때 그래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있긴 한데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했고 그녀를 톱스타로 인식시켰던 영화 [끝없는 사랑]이 그것이다. 이 영화에서 브룩 쉴즈는 마틴 휴이트와 주연을 맡아 연기에 열성을 보이나 연기보다 이 영화의 의미는 주제가가 대 히트했다는 점과 톰 크루즈가 단역으로 영화에 출연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그녀의 명성을 업은 영화 83년 [사하라]에 출연하였으나 또다시 혹평을 듣고 말며, 92년 [브룩 쉴즈의 러닝 와일드]에서 풋내기 다큐멘터리 작가로 출연하고, 93년 [브룩 쉴즈의 성희롱 사건]에 출연하면서도 결국은 배우로서 인정받기에 실패하고 만다. 한때 테니스 스타 앙드레 애거시의 애인이기도 하였던 그녀는 배우로서보다는 염문설과 이혼, 재혼 등의 사생활로 더 유명한데 그녀를 주연으로 내세운 시트콤 <Suddenly Susan>의 시청률이 괜찮은 것을 보면 연기력의 부족을 탓할 일만은 아닌 듯 하다.
1965년 5월 31일 PM 1:45 뉴욕 포크릭 병원 출생. 세기의 미녀로 칭송받는 여배우.
그녀의 족보를 보면, 보스톤시 태생의 올리비아 무아라는 미인이 증조 할머니인데, 이 여인이 이태리로 건너가 이 나라의 귀족 도루로니아 공과 결혼, 일약 명문의 귀부인이 된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게 브룩 실즈의 친할머니인 마림나 도루로니아 비인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국제적 미인이었다. 이 할머니가 1930년대 세계적 테니스 선수였던 프란시스 실즈라는 신사와 결혼, 그 사이에서 브룩의 아버지를 낳게 된다. 브룩의 아버지가 197.5cm의 휜칠한 키에 영화 배우 같은 호남형인 것은 켤코 우연이 아니다. 아버지를 닮아 브룩 실즈는 13살 때 162cm, 14살 땐 170cm나 되는 장신이었고 엄마 또한 180cm나 되는 장신 미인이었다.
그러나 훌륭한 혈통에도 불구하고 브룩의 부모는 불행한 사이였다. 그녀가 태어날 당시 아빠 프란시스 실즈는 24세, 엄마 테레사 슈몽은 31세, 무려 7살이나 연상이었다. 부모가 결혼 신고를 한 것은 브룩을 임신한 5달 후이고, 그가 태어나자 바로 이혼했다. 나이 차이도 많고 집안 차이도 커서 실즈가에서 반대가 심했던 모양. 아버지는 그 뒤 딴 여자와 결혼, 새 부인이 데리고 온 남매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등, 모두 다섯 식구가 살고 있다. 그래서 브룩은 성장하면서 매달 한 차례 아버지 집에 가서 지내다오게 되었는데 이복 동생들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4살 때 국민학교에 입학, 도중 영화 촬영 때문에 1년간 휴학했는데도 제 나이보다 2년이나 학년이 빠르게 미국 명문 프린스톤 대학을 다녔다. 그녀의 IQ가 무려 155. 글재주가 뛰어나며 공상적인 글도 있고, 심리 묘사를 잘 하는 시도 많다. 그림도 잘 그리고 폐물을 이용한 조각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피아노에도 솜씨가 있다. 발레도 4년 쯤 배웠었고 노래 공부도 했다. 그리고 프린스톤 대학에서 올 A를 받을 만큼 미모와 지성을 겸비하고 있다.
브룩 실즈의 모델 출연은 생후 11달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보리 비누의 선전에 나왔는데, 카메라 앞에서도 딴 아이들처럼 겁을 먹거나 울지 않고 시키는 대로 연기를 잘 해냈다. 그 뒤 여러 상품 CF모델이 되었다. 8살 때와 10살 때는 <공원의 왕자>라는 영화 등에 잠깐 나왔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영화 스타가 될 셈으로 데뷔한 것은 역시 <프리티 베이비>. 브룩이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래 세계 최대의 미인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2살 때(77년) 출연한 루이 마르 감독의 <프리티 베이비>라는 영화에 데뷔하면서부터. 더구나 이 영화가 그녀의 섹스 어필로 화제가 되었으니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때 출연료가 2만 7,500달러.
국제적으로 유명한 루이 마르 감독에 픽업되면서 브룩 실즈의 주가는 급상승하여 <집시의 왕(King of the Gypsies)>, <완다 네바다(Wanda Nevada)>에선 피터 폰다와 공연하여 15만 달러나 받았다. 다시 그의 개런티는 껑충 뛰어 <아가씨, 나와 그대 뿐이고(Just you and me, Kid)>에선 무려 50만 달러가 되었다. 그 뒤로 계속된 <푸른 산호초(The Blue Lagoon)>라든가, <사하라>에선 100만 달러 선에 육박하였다. 89년 <브렌다 스타> 이후 5년의 공백 끝에 영국-호주-일본의 합작 서스펜스물 <7층>에 출연했다.
97년 테니스 스타 안드레 아가시와 결혼했으나 2년 뒤 결별, 2001년 방송작가 겸 제작자인 크리스 헨치와 재혼했고, 2003년 둘 사이에서 첫째 딸 로한을 낳았다.
그녀는 안타깝게도 거인증으로 알려진 말단비대증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