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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치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산성동 | ||||
▲ 공산성은 사적 제12호로 공주시 금성동, 산성동, 옥룡동에 걸쳐 있는 백제시대의 토성 400m, 조선시대 석성 2,260m 성곽으로 둘레 2,660m, 면적 21만㎡이며, 남으로 시가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금강의 연안에 접해있는 해발 110m의 분지형 야산에위치 하며, 동서의 길이가 약 800m. 남북의 길이는 약 400m의 포곡형 형태를 띠고 있다. 원래는 토성(土城)이었던 것을 임진왜란 직후에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보이며 동쪽과 서쪽에 보조산성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 안에는 웅진도읍기로 추정되는 왕궁지를 비롯해 백제시대 연못 2개소, 고려시대 때 창건한 영은사, 조선시대 인조대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쌍수정과 사적비,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 등이 남아 있다.
동문과 서문은 최근에 복원하였으며 주변에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공산성은 역사와 문화가 함께 정이 깃든 수려한 자연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있게 보여지고 있다. 가족 단위, 부부, 연인들이 금강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산책할 성벽길이 있고 우거진 숲과 숲사이의 산책로가 있다. 계룡산과 차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오고 비단결 같은 금강이 발 아래에서 찰랑거린다. 1. 무령왕릉이 있는곳 충청남도 공주시(公州市) 금성동 2. 무령왕릉이 만들어진 시대 왕은 523년에 사망,525년에 이 능에 안장되었고, 왕비는 526년 에 사망하여 529년에 안장되었다. 이로 보아서 왕과 왕비는 모두 사망 뒤 2년 세월이 경과한 뒤에야 능에 안장되었는데, 이것은 일정기간의 가묘 상태에서 다른 곳에 안치하던 투벌묻기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시대 때 만들어졌다. 3. 발굴된 때 1971년에 발굴 4.가치 왕과 왕비의 왕관을 비롯하여 금팔찌·금귀걸이 등 순금제 3㎏의 정교한 금세공품과 도자기·철기 등 총 88종 2600여 점의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국보 163호 무령왕릉(武寧王陵)은 충남 공주시 금성동 송산 언덕에 위치해 있다. 이곳 송산 언덕은 백제가 공주에 도읍을 정하고 있던 시기의 왕들의 무덤이 밀집되어 있어 송산리 고분군이라 불리는 곳이다. 10여 기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까지 발굴된 것은 모두 일곱 기의 무덤으로 각각 1호분부터 7호분까지인데 이중 7호분이 유명한 무령왕릉이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릉으로, 5호분과 6호분의 침수를 막기 위해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고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무령왕릉은 발견 당시 사학자들을 들뜨게 한 의미있는 무덤이라 한다. 우선 6호분과 함께 벽돌로 쌓아 만든 전축분이란 점이 눈길을 끌고, 다른 백제의 왕릉과는 달리 안에서 국보급 유물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물은 모두 108종 2906점에 이르고 있으며 이중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점이나 된다. 현재는 모두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왕과 왕비의 금관 및 금제 관장식, 금제 귀걸이, 금제 목걸이, 청동거울, 배개, 족침 등을 들 수 있다 이 왕릉에는 삼국시대의 확실한 연대 및 그 시대의 사회상, 문화상 등 역사적인 사실들을 입증하는 108종 1,90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령왕릉의 발굴은 우리에게 백제 문화의 찬란함을 확인하도록 해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 고분 발굴사에 한 획을 그었다. 무령왕릉은 우선 벽돌로 만든 지하 건축물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된 벽돌은 주로 연꽃을 소재로 한 무늬들로 표면을 장식하였기 때문에 전체적 외관이 퍽 화려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왕과 왕비가 모셔진 바닥에서 천정까지의 높이는 3미터에 이르고, 입구와 현실의 천정은 아치형으로 축조하였다. 무령왕릉은 백제 시대의 건축수준, 예술적감각, 그리고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5. 만든사람 동성왕(東城王)의 둘째 아들로 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무령왕. 6. 만든방법 북쪽에 직사각형의 널방과 남쪽벽 중앙에 널길이 부설, 천장은 굴 모양. 축조방법은 벽돌 4개를 포개고, 그 위에 짧은 변을 높이로 세우는 방법을 여러 번 되풀이한 4평 1수의 방식을 취하였다
7. 무령 왕릉이 왜 만들어졌는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그의 왕비의 사후를 위해 만들어졌다. 무령왕릉은 산 경사면을 판 다음 벽돌의 쌓아 무덤방[玄室]과 널길[연도]를 만들고 물길을 낸 뒤 그 위에 아치형의 천장을 만든 벽돌무덤[塼築墳]이다. 벽은 길이쌓기와 모쌓기를 번갈아 쌓았으며, 아치형의 천장을 만들기 위해서 천장부분에 벽돌의 숫자와 형태를 달리 하였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벽돌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길이쌓기와 모쌓기 방식의 차이에 따라 다른 무늬의 벽돌을 사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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