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의 귀중성
고린도전서 10章 14節-22節 2024年 3月24日 主日 오전 말씀紙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주일은 불러서 복음이 믿어진 자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시고 이후부터 일 년에 2차례 성찬식에 참예케 하사 새 은혜를 부으시는데 갈수록 오래 믿었다 하면서 준비없이 조심없이 참여함으로 열매맺는 영적 생활에 손해 보는 자가 많습니다.
고전11:27절에 성찬을 하지 않거나 잘못함으로 인하여 영적으로 잠든 자 병든 자가 생기는데 모두 나사로와 같은 영적인 병과 잠입니다. 요11:4-
카톨릭에서는 새 신자들에게 교리 공부를 철저히 시키는데 그들의 교리 중 성찬을 화체설을 믿는데 신부가 나눠 주는 떡 자체가 곧 예수님의 살이라고 믿는데 이것은 성경을 오해한 결과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떡은 예수님의 살을 기념하고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는 것으로 나타내주셨습니다. 고전11:24-
사도 요한으로는 영적 성장을 이루는 성찬으로 나타내주셔서 성찬 때에 먹고 마시는 것처럼 말씀을 받아 깨달아지는 기쁨이 있는 영생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요6:53-
어떤 교회는 성찬식을 너무 자주 행하여 자기들만이 잘 믿는 것처럼 자랑하기도 하는데 성찬에 깊은 뜻을 바로 알지 못한 처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해마다 첫 달에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는데
(출12:27) 어둠의 땅 애굽에서의 나오게 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시려 행하게 하신 절기였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과 예수님의 죽음과 같습니다. 고전5:7-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며 일 년에 두 번 행하여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교 조직 신학에 교회론에 1.진리가 있는가? 2.성찬이 바로 거행되는가? 3.권징이 시행되는가? 에 참 교회 거짓교회를 구분한다 하였습니다. 성찬을 남용해도 안 되고 소홀해도 더욱 안 됩니다. 귀중하게 여겨 준비해서 바로 거행하여 은혜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14절=[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그런즉 하신 것은 10장1절-13절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날 때 역사를 나타내주셨는데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1.우상 숭배 2.간음 3.시험 4.원망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그때에 이루신 일은 현재 우리의 거울로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전10:11-
내 사랑하는 자들아 사도 바울로 통하여 복음이 믿어져 1.하나님의 아들로 택하여 지어주신 아들의 생명이 살아나게 하신 자요 (갈4:6) 2.가죽옷 구원과 십자가 구원을 다 이루신 예수님이 믿어져 새 생명으로 사는 자요 (롬6:4) 3.성령으로 부르시고 믿어지게 하시고 자라나 열매맺게 하사 그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풍성한 생명으로 살리심 받은 고린도 성도들입니다. (요10:10) 사도 바울은 자신을 통해서 그 생명이 살아난 성도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살전2:19-
복음의 사역자를 만나면 그 생명으로 살면서 열매가 더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 영은 목자없는 가련한 양같이 유리하게 됩니다. 마9:36-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사랑하는 자들이기에 눈에 보이는 세상에 치우쳐 살지 않게 하시려 권면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모세로는 보이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출20:4,5) 사도 바울로는 너희의 생명이 살았거늘 어찌 이방인들처럼 이 땅에 보이는 것에 다시 마음을 뺏기느냐? 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 사람, 그 어떤 물건, 그 어떤 짐승, 돈까지 탐심을 부려 우상이 된 자가 많습니다. 골3:5-
그러나 그 우상들 때문에 여러 고통을 겪게 됩니다. 복음으로 살리심 받은 영광의 성도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이 땅에 것에 어리석게 소망과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것을 보지 못한 자들은 과거 이스라엘에 왕들과 유다의 왕들처럼 우상 섬기다가 결국 멸망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대하36:14-
15절=[나는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지혜는 하나님의 은사로 그 사랑이 역사하심이 말씀으로 환경으로 깨달아 짐이니 사도 바울로 통하여 주신 말씀을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받으면 루디아처럼 그 마음을 열어 반드시 성령으로 깨달아져 믿어지게 하십니다. 깨달아짐이 있으면 지혜자요 없다면 우매자입니다. 행16:14-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고린도 성도들이 이제는 어린아이 자리에서 조금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사도 바울로 통하여 주신 말씀이 정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영의 양식인가? 아니면 사도바울이라는 사람이 워낙 똑똑해서 하는 말인가? 그동안 주시는 양식을 받아 자라났으니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없이 나온다면 세월만 흘러갈 뿐 바로 가지는 못합니다.
16절=[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성찬 때 떡을 뗀 후 잔을 나누는데 축복은 복을 비는 것이니 성찬을 집례하는 자가 성찬에 참예하는 자에게 복을 비는 것입니다. 무어라고 빌까요? ‘이 잔을 받는 자마다 주 예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사함의 은총이 더하여 영광길을 기쁨으로 가게 하소서’ 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니‘ 성령의 역사로 죄가 더욱 깨달아지게 하옵시고 믿고 난 이후에 죄까지도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그 피로 사하시고 열매맺은 대로 상을 잃지 않게 하소서’ 복을 비는 것입니다. 성령 받고 난 이후에도 깨어있지 못하고 또 다시 육에 속해 세상에 속해 살은 자신을 치게 하시고 영적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성찬인 것입니다.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복음으로 살리심 받은 우리가 이제 떡을 뗌 은 성령의 역사가 내게 항상 있기를 원하여 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의 역사가 있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은 자라나 힘이 있어 영광에 합당한 열매맺는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성령의 역사로 영광의 보좌 우편에 가셨듯이 오늘도 성령의 역사가 있는 자는 그 영광의 보좌 우편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니 성찬을 무시하고 성령의 역사도 잘못 알고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치 못하게 되고 자기가 한 일을 자랑만 하다가 왼편에 떨어지는 자가 됩니다.
17절=[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이제 성찬을 행하게 하신 이유를 나타내주시는데 떡이 하나 임은 온 세상의 죄를 지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영광을 받는데 하나가 된 것이요
많은 우리는 그 생명의 떡을 함께 먹고 살리심 받은 자로 그 영광에 식구들이요 마12:50-
한 떡에 참예함은 성령의 역사로 하나를 이루어 그 빛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생명의 떡을 받아먹고 살아나며 열매맺고 그 영광성에 들어가는 한 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찬식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행하여 영광성의 식구들이 하나 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엡4:13-
하나 됨이라는 것은 말씀을 받을 때도 함께 받고 기도할 때도 함께 기도하고 열매맺을 때도 함께 생명 살리는 일을 할 때도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부가 한 몸이라는 것과 그 뜻이 같은 것입니다. 창2:24-
18절=[육신을 따라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함께 영원한 구원으로 구원해주신 것을 감사케 하려 아담 때부터 양을 잡아 제사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시기 전 소나 양의 제물을 드리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택자들의 속죄 제물 되심을 미리 나타내주셨습니다. 구약에는 육신으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나게 하신 자들만이 제물을 하나님께 가져왔고 제단을 섬기는 구별된 레위 자손들만이 제사를 하게 하셨고 그 제물을 먹게 하사 거룩케 하셨습니다. 레7:15-
19절=[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그런데 고린도 성도들 중에 우상에게 제사하고 또 성찬에 참예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우상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헛된 것이며 바친 그 제물 또한 헛것이 됩니다. 오늘도 복음과 진리의 말씀이 없는 예배당은 건물부터 시작하여 눈에 보이는 각가지 우상이 난무한 것입니다.
20절=[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이방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들이 죽은 조상에게 그 무엇을 얻기 위해 제사하는 것으로 거짓에 속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 예배한다 하면서 이방인처럼 땅에 것을 더 얻기 위한 것이라면 역시 거짓의 역사에 속은 것입니다. 저마다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만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예배함은 귀신에게 하는 이방인의 제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신32:17-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지 않기를 원하노라] 오늘도 복음으로 살리심받고 진리로 자라나 신령과 진정의 참예배를 하지 못하고 그저 남이 하니까 세상 욕심이나 가지고 예배한다면 성령의 역사가 없으니 더욱 귀신의 역사인 거짓에 속을 뿐입니다. 요4:24-
21절=[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치 못하리라] 주의 잔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피흘려 주신 주의 피에 대한 감사요
귀신의 잔은 각가지 눈에 보이는 우상들 혹은 죽은 조상들에게 무언가를 드리며 자기의 안녕을 구하는 것인데 거짓에 속아 무당식 샤만니즘 바알이 되는 것입니다. 사44:15-
주의 상은 생명을 자라나게 하시는 떡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요
귀신의 상은 죽은 조상들에게 정성들여 차린 것인데 하나도 먹지 않으니 거짓인 것입니다. 이러한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 죽은 자를 추앙하거나 제사하는 것을 멈추고 주의 잔(영적 생명 살리심에 기쁨)과 주의 상(자라나게 하시는 영적 양식)인 성찬에만 기쁨으로 참예할 것입니다.
22절=[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아직도 성찬의 귀한 뜻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하는 자들은 주를 노엽게 하는 자요 기어코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은혜 주시려 제정하신 성찬을 소홀히 하는가? 성찬을 함부로 하는 자는 주를 대적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눅22:19-
성찬을 잘못하면 영적으로 잠이 들어 영적 양식을 받지 못하고 영적 병이 든 것은 나와서 받으나 깨달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고전11:30-
요한을 통해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영적 성장을 이루는 영생이니 사는 날 동안 성찬식을 바로 집례하는 곳에 참예하여 그 피로 죄 사함의 은혜와 살이신 떡으로 그 영이 성장하여 그 영광에 넉넉히 들어가는 영생하는 은혜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