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 빌 Vol.1/반지의 제왕 3: 왕의 귀환/브로드웨이를 쏴라/Combustible Edison – Vertigogo/할로윈 H20/크리스토퍼 리/희생/태양은 없다/공공의 적

[loveesia]

대한민국의 영화광은 몇명? 정답은 "영화보다 딴생각"에서~

<킬 빌 Vol.1> : Revenge is a dish best served cold ‘복수’라는 행동이 없었더라면 소설, 영화, 드라마의 절반은 소재를 어디서 구했을까? 이 말대로 복수는 해를 입은 순간 바로 갚아주면 그 맛이 덜하다. 오랜 시간 칼도 갈고, 이도 ‘바드득’ 갈면서 차근차근 준비한 뒤에 실행에 옮겨서 ‘밟아줘야’ 제 맛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준비하다 제풀에 지치거나, 까먹거나 또는 득도하여 용서를 베푸는 경우도 있다는 것. 폼 나기로는 용서만한 것이 없지만, 은혜와 원수를 막론하고 받은 것은 고스란히 또는 몇 배로 갚아주는 것이 재미도 있고, 어떻게 보면 사는 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대체 저 문장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 지 몰라 원문을 그대로 쓴 것에 용서를 구한다. 복수는 사절이다)

		<반지의 제왕 3: 왕의 귀환> : 2001년 <반지 원정대>의 엔드 크레딧을 보며 2003년까지 어떻게 기다릴지 막막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맞이하게 되었다. 예고편으로 잠깐 맛본 펠렌노르 전투를 생각하면 약간은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카피인 ‘사상 최대의 마지막 전쟁이 시작됐다!’가 전혀 과장이 섞이지 않은 솔직한 문장으로 보인다. 지난 2편의 포스터와 비교하면 약간 모자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 영화의 포스터가 걸려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 나게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그렇게 눈이 빠져라 기다리던 마지막 시리즈도 이제 개봉하니 내년 겨울은 무슨 낙으로 살꼬.

<브로드웨이를 쏴라> : 재담꾼인 동시에 그리 가볍지 않은 철학을 영화를 통해 수다스럽게 풀어내는 우디 앨런은 이 영화에 작가로 등장하는 셰인을 통해 다시 한번 예술과 권력 또는 작가주의와 스타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과물이 어떠한 형태이건 간에 창작을 생활수단으로 하는 사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문제. 이른 바 ‘돈이 되는 결과물’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처신을 하는가에 관한 할리우드 시스템과 모든 예술가에 대한 메타포로서 이 영화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이 문제는 정말 답이 없는 골치 아픈 문제라고 우디 앨런도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작가가 무슨 말만 꺼낼라 치면 우아한 여배우는 그에게 ‘Don’t Speak’이라며 입부터 막았으니까.

		Combustible Edison – Vertigogo : 이제 슬슬 송년회 일정이 잡히고, 크리스마스다 뭐다 해서 약속들은 늘어만 가는데, 일도 연말 결산이네 어쩌네 해서 정말 정신 없는 하루들이 가고 있다. <포 룸>의 오프닝으로 쓰였던 이 음악이 그 산만함을 정리해주지는 않지만 그 정신 산란함 자체를 즐기는 여유는 느낄 수 있다. 벨보이 테드가 그랬고 타란티노가 그랬던 것처럼. 타란티노는 의외로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선곡하는 센스도 뛰어난 편인데 <킬 빌> 전까지 그의 영화음악으로 쓰였던 곡을 셀렉션한 앨범에서도 이 곡을 들을 수 있다.

<할로윈 H20> : 제 아무리 죽었다고 한들 절대 안 믿는 사람(?) 둘. 프레디와 제이슨. 불에 태우고 믹서에 갈아버리고 가루를 낸다 한들 그들은 꼭 다시 돌아올 것을 믿는다. 여기 <할로윈> 시리즈의 마이클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다만 둘에 비해 좀 뜸할 뿐. 첫 편의 주인공이었던 제이미 리 커티스가 다시 출연하여 아들을 지키는 열혈 아줌마로 열연한다는 것과 그녀의 아들로 귀여운 조시 하트네트를 볼 수 있다는 걸 빼면 이런 종류의 영화들과 절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리즈의 공포요소만을 착실하게 지키고 있는 영화다. 프레디나 제이슨에 비해 조금 덜 시끄러우니 그간 겁이 나서 이런 영화에 도전 못하셨던 분들에겐 좋은 기회일지도. 호러 팬들에게는 덤덤한 주말드라마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크리스토퍼 리 : 젊은 시절엔 드라큘라 백작으로, 지금은 위대한 백색 현자 사루만으로 명성을 날리시는 할아버지. 아무리 22년에 태어나셔서 많은 활동의 시간이 있었다지만 ‘스크롤의 압박’이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필모그래피라니!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 셜록 홈즈 역이 가장 어울리는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홈즈의 외모나 느낌에 딱 맞아 떨어지는 깐깐함과 지성이 어울리는 외모의 소유자. 이제는 그 세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을 보면서 이 멋진 배우와 함께 할 시간이 줄고 있음이 진심으로 마음 아프다. <왕의 귀환>에서 사루만이 나오지 않는다는 괴소문이 떠돌고 있는데. 그러면 정말 정말 섭섭할 것 같다. 피터 잭슨을 미워할거다!

<희생> : 한동안 이런 질문이 떠돌았더랬다. “대한민국에 영화광이 몇 명이게?” (사실 우리끼리는 ‘영화또라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정답은 10만.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개봉 당시 관객수다. 아무리 그 때 영화가 유행처럼 번졌던 시기라 해도 몇 번을 다시 봐도 절대 ‘만만찮은’ 이 영화를 보러 극장까지 갔던 사람이 10만 명이라는 건 아직도 불가사의하다. 그리고 궁금하다. ‘몇 명이나 졸지 않고 이 영화를 끝까지 봤을까?’ 리나는? 정말 처절하게 졸았다. 그래서 또 한번 봐야 했다. 혹시 그래서 10만이 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태양은 없다> – 도철&홍기 : 김성수 감독의 말에 따르면, 원래 의도는 이 두 사람은 밤에 골목에서 만나면 겁이 덜컥 나는 이미지였다는데 이 두 꽃미남은 솔직히 그 이미지랑은 한참 멀다. 그저 고마울 뿐. 하지만 영화 속에서의 도철과 성훈은 청춘이라는 짐이 그저 무거울 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친구다. 두 사람을 이렇다 하게 묶어주는 특별한 인연의 끈 같은 것이 없다는게 덤덤한 듯 보여도 한편으로는 가장 현실적이고 흔한 관계이고, 젊음에게 주어지는 도전과 기회라는 특권이 오히려 짐이 되어 막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걸 보여주는, 청년 실업자 운운 하는 요즘 세상에서 가장 많이 부딪히게 되는 청춘들이다.

<공공의 적> - 성지루 : 많은 ‘대박 영화’에 잊을 수 없는 조연으로 단골출연하고 있는 성지루. 조폭으로 나와도, 시골학교 소사 아저씨로 나와도 마냥 재미있고 좋더니 또 진지한 연기는 그대로 감칠 맛 나는 연기로 영화 전체를 받쳐주고 있는 좋은 배우. 성지루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역은 없지만 그가 했기에 빛나는 역할들. 뻔한 대사도 그가 하면 굉장히 재미있는 대사로 기억되고,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역도 기억에 남지만 절대 영화 전체의 큰 흐름을 흩어놓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고정된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 어찌 멋진 조연 배우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