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편 소총사격 부활하는가? - 한진섭, 김종현, 김학만 선수 편
올림픽 사격종목은 크게 권총, 소총, 클레이로 나뉘며 각각의 종목에서 세부적으로 5종목씩 총 15개 올림픽 사격종목으로 되어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진종오 선수의 권총 종목 메달 획득은 모든 국민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의 사격 메달 획득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소총종목에서 시작되었고 사격 종목의 대표성을 갖고 주도해왔다. 그 첫 출발은 '88년 서울올림픽 50M소총 은메달, '92 바르셀로나올림픽 10M공기소총 금메달∙50M소총 금메달, '00년 시드니올림픽 10M공기소총 은메달 획득으로서 명실공히 올림픽 사격 종목을 리드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중국 외에 세계 각국의 여러 나라가 우리나라의 소총기술을 배우려고 온갖 방법들을 동원해 원정 및 교류를 하자고 붐까지 일어 민간외교 역할까지도 했었다. 그런 소총 종목이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후 계속되는 노메달에 심지어는 결선경기 진출 조차도 못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다.
그야 말로 최대의 위기다. 아! 옛날이여....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몇 가지 원인을 찾을 수가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국제사격연맹의 사격규칙 개정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너무 적극적이었다 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바뀐 규정에 있어 선수들의 적응시기를 좀 더 고려했어야 됐다. 변경된 국제규칙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선수들의 그 동안 해왔던 패턴과 기술들을 고려해서 체질 개선을 조금씩 진행을 시켰어야 하는데 최대한 빠르게 적응시키고자 한 것이 패인의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그 결과 지난 10여년 동안 설움도 받으면서 노메달 종목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의 50M소총경기는 8월 3일 50M소총복사(남), 8월 4일 50M소총3자세(여), 8월 6일 50M소총3자세(남) 경기가 있으며, 국가대표 소총팀의 김학만 선수는 국군체육부대 소속으로 36세로 팀 내의 큰 형이라 할 수 있다. 올림픽을 제외한 다른 국제대회에서는 메달획득의 경험을 했기에, 올림픽 메달 획득 도전을 꿈으로 이번 런던올림픽에 임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과도한 사격훈련으로 인하여 어깨가 손상이 돼서 늘 맘에 부담감을 갖고 있다.
다음은 소총종목의 간판 선수인 한진섭 선수이다. 31세로 충남체육회 소속으로 50M소총부문에서 한국신기록을 2개를 보유하고 있고 올림픽 금메달을 5개 목표로 두고 있는 당찬 선수이다, 항시 긍정적 생각으로 경기 3일전에는 손, 발톱을 자르지 않는 습관과 배우 김아중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지며 수줍음을 표현한다. 또한 50M소총은 5백여만원 정도하는데, 8백 5십만원짜리 고가의 총열만을 스위스 총기 공장에 자비로 신청하여 과감한 투자로 메달
획득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총팀 막내 김종현 선수이다. 창원시청 소속으로 한진섭 선수를 라이벌로 생각하며, 친한 선․후배 관계로 50M소총과 10M공기소총 부문에서 각각 한국신기록 1개씩을 보유하고 있다. 늘 조용하게 대화하는 타입으로서 성실한 자세로 연습했던 대로 경기결과는 나온다라는 소신으로 욕심을 갖지 않고 경기엘 임하는 스타일이다. 경기 2일전 대한민국 소총팀을 런던 왕립포병사격장에서 만났다. 그들은 역시 훈련을 하고 있었고, 하나같이 온통 올림픽메달 획득에 전념하고 있었다. 엘리트 스포츠는 메달획득, 즉 결과만 중시한다. 그러나 자신을 인내하며 온몸을 불살라 목표를 향해 전념하는 모습 또한 엘리트스포츠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의 대한민국 사격 소총팀은 결승경기 진출과 나아가 메달획득으로서 과거의 영광을 부활하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대한민국 사격 국가대표 소총팀과 경기 2일전 런던 왕립포병사격장에서 -
우측부터 윤덕하 감독, 김학만선수, 김종현선수, 한진섭선수>
Writer. Lee, Jong-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