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한국의 활쏘기
한국 활쏘기는 오천년 한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계승되어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이 깃든 자랑스러운 전통 무기이자 정신수련의 수단이었다.
활쏘기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발전되어 왔으며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그 민족의 풍토나 풍습에 따라 사용방법이나 모양에 특징을 가지며, 이를 지중해형(地中海型)·몽골형[蒙古型]·해양형(海洋型)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 고유의 국궁은 몽골형에서 유래되었으며, Archery는 지중해형에서 유래되어 발전되었다. archery는 활쏘기 라는 뜻이기는 하나, 한국 고유의 국궁(國弓), 즉 궁도(弓道:궁술)와 구별하기 위해 양궁이라 한다. 한국 궁도의 발전은 1922년 조선궁술연구회가 창립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조선궁술연구회는 현 대한궁도협회의 전신으로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영학정에서 발시인 35인으로 당시 영학정 사두였던 성문주 주재 아래 탄생되었다.
이는 한국 궁도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스포츠 단체로서 의의를 지닌다.
조선궁술연구회는 1926년 조선궁도회로 개칭되었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는 조선궁도협회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48년에는 조선궁도협회를 대한궁도협회로 개칭하여 1954년 대한체육회가 발족되면서 대한궁도협회는 대한체육회 가맹단체로 가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나. 한국양궁의 도입과 발달
우리나라에서의 양궁의 도입은 1959년 당시 체육교사 이었던 고 석봉근선생이 중앙시장 부근 한 고물상에서 양궁을 발견하여 양궁의 보급을 모색 하였으며, 1962년 미국 군인 에로트 중령이 장충단공원 석호정에서 양궁 시범을 보였고 1963년부터는 시범경기이긴 하지만 양궁경기가 기존의국궁대회에 포함하여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하였고, 한국 최초의 양궁 공식대회인 제6회 전국 활쏘기대회가 열렸으며 당시 대회에는 유엔군 총사령관인 “하우즈대장”을 비롯한 주한 외교사절단인 참가하였다. 이와 함께 1963년 국제양궁연맹(FITA)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여 국제 스포츠계에 한국양궁의 출범을 알리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 궁도의 도입은 한국양궁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국궁이 한국 궁도의 주류로서 계속되어 온 국궁시대로부터 전통궁도인 국궁과 국제궁도인 양궁이 모두 권장되고 발전 되었다.
1966년에는 한국에서 최초로 양궁강습회가 열렸으며 전국 남·여 양궁종별선수권대회가 창설되었다. 한국 양궁은 1970년대에 들어와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으로 안보체육위 강화로 남학생은 태권도, 여학생은 양궁을 장려하여 양궁의 보급은 물론 저변확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74년에는 최초로 한·일 친선 양궁경기가 열렸으며 제3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양궁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양궁의 소년체전 정식종목 채택으로 선수가 조기 발굴되어 우수한 국가대표선수들이 배출되었다. 1978년에는 양궁이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개최된 제8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
양궁이 사실상 국제대회에 처음 출전한 대회로 여자부만 참가 하였으며 김진호선수가 한국양궁 최초로 국제대회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 했으며 단체전에서도 준우승의 쾌거를 이룩했다.
1979년에는 한국에 양궁이 도입된 지 20년 만에 첫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로서 여자부만 참가를 하였으며 김진호선수는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60m, 50m, 30m에서도 1위를 하여 세계 양궁계를 깜작 놀라게 했다.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 재패는 한국 양궁뿐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 사상 첫 기록경기 세계 제패라는 금자탑을 이룩한 쾌거였다.
1983년에는 대한궁도협회에서 국·양궁을 분리하여 초대 대한양궁협회장에 정몽준회장을 선임하였고 최초로 양궁 상비군을 결성하였다. 이후 1985년에는 제2대 대한양궁 협회장에 정몽구회장이 취임했다. 정몽구회장 취임 후 제33회 세계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개최가 되어 한국양궁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1986년에는 양궁 과학화를 위한 양궁 과학 장비 구입 및 슈팅머신을 개발했다. 당시 정몽구회장은 미국 출장 중 경기력 향상을 위한 일환으로 양궁에 필요한 과학 측정 장비를 사재로 구입하여 대한양궁협회에 전달했다. 이때 구입한 장비는 국내에서 구입하기 어려웠던 시력 전문 측정기, 시신경 감응도 측정도구와 기록표등 훈련용 슈팅머신을 현대정공 연구팀에 개발 하도록 실내 양궁 연습기를 만들었다.
특히 정몽구회장이 아시아양궁연맹 3대회장으로 취임하여 한국 양궁의 국제화에 기틀을 마련했다. 1989년에는 한국실업양궁연맹(초대회장 고이병탁회장)이 결성되었으며 1998년에는 한국 대학연맹이 결성 되었다.
2005년에는 현 대한양궁협회 회장이신 정의선회장이 제9대 대한양궁협회장으로 취임하여 제43회 세계선수권대회(2005년. 스페인)와 제45회 세계선수권대회(2009년. 울산)에서 전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양궁이 세계무대에서 한 단계 앞선 기량을 과시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