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마운틴> 7월호
“형님, 만수무강 하세요!”
지난 6월 4일 인수봉 정상에서 백발의 클라이머들이 샴페인을 터트렸다. 주인공은 희수(77세)를 맞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한국산악회 자문위원). 1960년대 중반부터 등산을 시작해 현재까지 ‘현역’ 클라이머로 활약하고 있는 이용대 선생은 이날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산악인들과 함께 인수B 코스 전 구간을 날렵하게 선등하며 여전히 건재하게 후배들을 이끌었다.
1968년 동양산악회 창립 후 인수봉 동양길, 궁형길, 노적봉 형제길 등을 개척한 이용대 선생은 이후 한국산악회에서도 편집위원, 해외산악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1981년부터 지금까지 등산잡지에 산과 관련한 글들을 연재해왔다. 또 1986년 한국산서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하고 1985년 코오롱등산학교 개교 때부터 대표강사로, 1997년부터는 교장으로 이끌어오는 등 반평생을 산과 책, 그리고 교육으로 살아왔다.
특히 이용대 선생은 ‘문무를 겸비한 산악인’으로 사람들에게 불린다. 등반뿐 아니라 오랫동안 해온 저술활동과 강의를 통해 폭넓은 산악 지식과 역사를 후배들에게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선생은 지금까지 <한국산악회50년사>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재 <등산> <즐거운 암릉길> 등의 편찬에 참여하고 개인적으로는 <등산교실>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 <등산상식사전> 등 꾸준히 스테디셀러로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책들을 펴내왔다.
“여기가 내가 처음 선등했던 곳”이라고 말하는 이용대 선생에게 인수B 코스는 각별하다. 첫 바위를 노적봉 T침니 코스에서 하고 나서 세 번째 암벽등반에서 바로 인수봉을 선등해 올랐기 때문이다. 그땐 코스도 몰랐지만 앞서 등반하는 팀들을 눈여겨보며 후배에게 확보를 맞기고 무작정 올랐다는 선생은 “실은 겁은 났지만 늦깎이로 산에 다닌 탓에 후배 앞에서 내색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산이 좋아 1969년부터 아예 우이동 부근으로 이사와 살기 시작했다는 선생은 동생들과 후배를 잃는 아픔 속에서도 평생 산을 떠나지 않고 살아왔지만 “돌이켜보면 친구도 없이 외롭게 산을 올라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날 들판뿐이었던, 상전벽해로 변해버린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77세의 청년’의 눈동자는 여전히 인수봉에 빛나고 있었다.
이용대 선생
≫ 동양산악회원
≫ 인수봉 동양길, 궁형크랙 개척/초등
≫ 북한산 노적봉 형제길 개척/초등
≫ 백두산 동계등반
≫ 요세미티 등반
≫ 설악산 토왕성폭 및 소승폭 등반
≫ 설악산 장군봉 남서면 개척등반
≫ 마운트 쿡. 세바스토폴 등반
≫ 카라코람 히말라야 차라쿠사 지역 등반
≫ 중국 쓰꾸냥 빙벽원정, 드레곤브레스 등반
≫ 유럽알프스 등반
≫ 아제르바이잔 국제빙벽대회 출전
≫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테 산군 원정
≫ 한국산서회 부회장 역임, 현 고문
≫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특임교수
≫ 한국산악회 자문위원
≫ (사)한국산악회 공로상 수상
≫ (사)대한산악연맹 대한민국 산악상(등산교육부문) 수상
≫ 한국 대학산악연맹 산악문화상 수상
≫ 월간 사람과산 산악지도자상 수상
≫ (사)대한산악연맹 대한민국산악상(문화부문) 수상
≫ 한국산악회 노산 이은상 상 수상
<이용대 선생은 여전히 인수봉의 여간한 코스는 선등할 만큼 팔팔한 체력으로 후배들을 놀라게 했다. 인수B코스 항아리 크랙 하단을 오르고 있는 이용대 선생>
<이용대 선생 희수를 기념해 인수봉 정상에 오른 산악인들이 샴페인을 터트리며 함께 건배하고 있다.>
<인수봉 대슬랩에서 천진한 포즈를 취한 이용대 선생(오른쪽)과 허욱씨>
<다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인수봉에 오르면 개구쟁이가 된다. 인수봉 정상에서 바위를 드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월간 <산> 7월호
첫댓글 아름답네여~
완전 멋지십니다 선생님~!!
미수기념 등반기도 꼭 보고 싶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교장선생님.... 100세 기념 등반도 기대 하면서 늘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