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귀농인의 메카를 만들어가는 전남 나주 김경호 씨(41)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20~30대를 사회활동에 전념한 김경호 씨(41). 귀농 8년 차인 그는, 나주 양천리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소박한 공동체 삶을 꿈꾸고 있다.‘ 내가 먼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세상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나의 삶이 먼저 평화로워야 된다’라는 목표로 귀농인의 삶에 뛰어든 그는. 현재 닭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며, 차량 봉사를 통해 마을주민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를 나주의 포근한 햇살 아래서 만나보았다.
사회활동가에서 마을 공동체 지킴이로
“가톨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며 평화로운 사회 실현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사회복지사였던 아내를 만난 것도 당시의 일이었죠.”
사회단체, 종교단체와 연계해 사회활동에 앞장섰던 김경호 씨는 현재 귀농을 통해 ‘사회’가 아닌 ‘가족’과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가고 있다.
2005년 나주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된 배경은 ‘변화’와 ‘솔선수범’이었다.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주변의 반대는 생각보다 컸다. 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아내를 비롯해, 부모님의 반대도 매우 컸다. 대학원까지 나온 아들, 딸을 시골로 내려 보내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 씨는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귀농 지역이 아닌 지리산의 깊은 산골을 고집했다. 귀농을 결심한 남편은, 약 6개월간 아내를 데리고 선배 귀농인의 집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고 조언을 들었다. 직접 귀농인의 삶을 남편과 함께 들여다본 아내는 그들의 행복한 모습에 마침내 귀농을 허락하게 되었다. 단, 집과 땅은 물론이며 마을주민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이라면 괜찮다는 조건이었다.
부부의 보금자리가 된 나주 노안면 양천리는 아내의 조부모가 살았던 마을이다. 아내의 예상처럼 마을주민들은 자식을 대하듯, 가족을 대하듯 아낌없는 응원과 도움을 건네주었다.
“밝은누리(8살)가 태어나던 날, 마을에는 오랜만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자신의 아이인 양 기뻐해 주셨죠. 저 역시도 마을의 젊은이로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느 때보다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귀농 8년 차, 이제 그는 어엿한 마을주민이 되었다. 나아가 자신의 마을을 평화롭고 활기가 넘치는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된 마을을 장기귀농인의 메카로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젊은 귀농인의 유치·확보를 선과제로 삼고, 젊은이들의 일자리 개발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사회활동가에서 마을 공동체 지킴이로 나선 김경호 씨. 귀농 8년이 지난 지금 그는 ‘귀농인’이 아닌 ‘마을주민’으로서 행복한 삶을 가꿔가고 있었다.
‘유정란’에서 ‘유기농 배’까지 자연농업의 길
“귀농을 준비하며 다양한 교육에 참여했습니다. 그중 자연농업 교육을 통해 ‘유정란’을 알게 되었고, 당시에는 흔치 않던 ‘유정란’을 귀농 첫 번째 수입원으로 삼게 되었죠. 비록 손이 많이 가지만, 손이 덜 가도 3년을 기다려야 하는 소나 말보다 초기투자비용이 적고 6개월이면 자금회전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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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개 동의 축사를 통해 하루 600개 이상의 달걀을 거두며 월 3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4개월 후면 하루 1,000개 이상의 달걀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안정을 이야기하지만,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만만찮은 축사의 비용 문제와 자연재해, 땅에 대한 소유권 문제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선 축사는 고물상 아저씨와의 친분을 통해 고창의 버려진 하우스를 500만 원에 사서 설치할 수 있었다. 당시 설치한 축사는 안타깝게도 2005년 내린 폭설로 무너져버려 정책지원자금 2,000여만 원과 개인 투자를 통해 총 4,000여만 원이나 들여 새축사를 짓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새로 지은 축사는 자연농업 축사로 지어져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귀농인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땅 문제는 그에게도 찾아왔다. 임차한 땅에 축사를 지었지만, 땅 주인이 은퇴 후 귀농 의사를 밝힘에 따라 눈물을 머금고 축사를 이동하는 대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축사를 위해 갈고 닦은 땅의 투자비용은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을 회수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고충을 겪은 뒤에는 ‘자신의 땅’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2개 동의 축사(간이 축사 1동, 하우스 1동)는 본인 소유의 땅 위에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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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의 핵심 키워드는 수입원입니다. 최소 3개 이상의 수입원을 마련해야 안정적인 귀농을 영위할 수 있죠. 그런 이유로 닭을 키우는 것 외에 친환경 쌀과 유기농 배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우스에서는 800여 마리의 닭이 달걀을 낳고 있고, 간이 축사에서는 1,000여 마리의 병아리가 성장하고 있다. 김 씨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우렁이 쌀과 유기농 배농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우렁이 쌀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우렁이로 제초하고, 한방영양제와 각종 녹즙, 바닷물을 이용한 자연농업으로 재배해 인기가 높은 생산물 중 하나이다. 홈페이지(www.happyfarmer.net)를 통해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 우렁이 쌀은 주문에 맞춰 현미, 오분 도미, 백미로 직접 찧어 판매한다.
유기농 배는 2010년 크게 실패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주의 배는 유명하지만, 유기농 배는 없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그는 끊임없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행복한 농사꾼의 소박한 공동체 만들기
마을에서 김 씨를 부르는 호칭은 ‘손주 사위’로 시작됐다. 아내의 조부모가 살던 동네였던 탓이다. 그만큼 편안하게 정착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마을주민과의 융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시골 마을은 도시와 달리, 적은 인원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함께 행복을 추구하고 함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그렇기에 마을주민이 되지 않으면 행복한 귀농인의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나주 영천리는 또한, 주민 90% 이상이 천주교 신자로 김 씨에게는 최적의 귀농지였다. 특히 100년 이상 된 노안천주교회가 자리해 있어 성당 봉사를 통해 주민과의 융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매 주말 차량 봉사를 했습니다. 마을 곳곳을 돌며 어르신들을 모시자 자연스럽게 저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죠. 처음 이사를 온 날에는 마을회관에서 주민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언제 어디서든 미소와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려준 김 씨 가족은 마을주민의 행복 아이콘이 되었다. 울음소리의 주인공인 김밝은누리 군(초등학교 1학년)은 현재 마을 어르신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김 씨는 귀농의 성공 키워드로 ‘5,000원의 경제학’을 들려주었다. 막걸리 5통과 ‘쭈쭈바’ 10개를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베풀고 나누기를 한 달만 하면 행복한 귀농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적은 액수지만 발품을 파는 정성을 보이고 안면을 자주 익히며 수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되고, 나아가 인식이 좋아지게 된다.
“차량을 운행한 이후로, 어느 날부턴가 집 앞에 양파와 감자 등이 놓여 있더라고요. 그것이 바로 시골 마을의 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쌀과 달걀을 주민과 나눠 먹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판매가 이뤄지고 경제적인 면에서 안정을 찾게 되는 지름길이 되었죠.”
김 씨의 자연농업은 단순히 ‘경쟁력 있는 상품의 개발’이 아니다. 행복한 농사꾼으로서 마을 공동체를 가꿔가는 것이다. 축사에서 나오는 퇴비를 이웃에게 주고, 이웃에선 농업 부산물을 얻어 닭 모이로 활용하니 그야말로 소박한 낙원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녹색농촌체험마을 지정으로 예비 귀농인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마을을, 장기 귀농인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농업 외 일자리 창출에도 앞장서고 있다.
귀농을 꿈꾸는 많은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행복’이다. 김경호 씨의 행복은 귀농생활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예비 귀농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의 모습에서 경제적인 성공보다 더 중요한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의 꿈처럼 귀농인의 메카로 우뚝 선 그날에, 다시 한 번 영천리를 찾아가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나눠 마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자료제공·농림수산식품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시니어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