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옥수수 생명체의 설계도를 읽다
가을만큼 여름도 수확의 계절이다. 7월 태양은 온 들녘을 온전히 익히고 있다. 자연은 한 해의 땀을 열매로 돌려준다. 며칠 전, 농장에서 직접 수확했다는 참옥수수를 받았다. 밭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는 갓 수확한 싱싱한 옥수수였다. 오후의 한가로운 시간, 찜솥에 올리기 위해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은 곧 생명의 신비를 마주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껍질을 벗겼다. 한 겹, 두 겹, 세 겹…. 겉껍질은 두꺼웠지만, 점점 벗겨낼수록 속껍질은 얇고 연했다. 세어 보니 열 겹이 넘는 껍질이 어린 열매를 촘촘히 감싸고 있었다. 식물학에서 이 껍질을 포엽이라 부른다. 왜 이토록 껍질이 많은지 궁금했었다. 일반적으로 옥수수는 8~15겹의 포엽으로 보호된다. 이는 강한 햇빛을 차단하고 수분 증발을 줄이며, 병원균과 해충의 침입을 막는 정교한 방어 체계다. 참 신비롭다. 옥수수 알 하나 하나는 생명체이다. 생명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치밀하게 보호되고 있었던 것이다. 옥수수 수염도 엄청 많았다.
문득 시편의 말씀이 떠올랐다.
“주께서 나의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시편 139:13~14)
마지막 껍질을 벗기자 손이 멈췄다. 눈앞에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펼쳐져 있었다.
보랏빛 옥수수 알갱이들은 각각 다른 농담(濃淡)으로 빛나고 있었다. 짙은 자주색에서 연보라까지 이어지는 미묘한 색의 배치와 조화는 마치 수백 번의 붓질로 완성된 유명한 화가의 작품과 같아 보이는 모자이크를 떠올리게 했다. 노란 옥수수 알만 대하다가 이처럼 황홀한 색채의 옥수수 알을 처음 대하며 정말 감탄했다. 어느 하나도 같은 색이 아니었지만 전체는 놀라울 만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연은 공장 생산품처럼 획일성을 만들지 않는다. 다양성 속에서 질서를, 질서 속에서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이 아름다움에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 보랏빛은 안토시아닌이라는 천연 색소에서 비롯되며, 이는 강한 자외선과 활성산소로부터 씨앗을 보호하는 항산화 물질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기능이 인간에게는 감동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과학은 그 원리를 설명하지만, 그 원리 자체가 왜 이토록 정교하고 아름답게 구성되었는지는 여전히 깊은 사유를 요구한다.
호기심은 이어졌다. 알의 배열을 세어 보았다. 둘레에는 열두 줄이 가지런히 이어져 있었고, 세로로는 한줄에 약 서른다섯 개의 알이 촘촘히 배열되어 있었다. 계산해 보니 약 사백여 개의 알이 들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한 자루에는 300~700개의 알이 맺힌다. 이 수백 개의 씨앗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각각은 하나의 암꽃이 수정되어 형성된 독립된 생명 단위다.
더 놀라운 것은 옥수수 수염이었다. 흔히 버려지는 이 부분은 식물학적으로 암술대에 해당한다. 수염 한 가닥은 옥수수 알 한 개와 정확히 연결되어 있다. 수꽃에서 날아온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수염 끝에 도달하면, 꽃가루관이 이를 따라 씨방까지 이동하여 수정이 이루어진다. 수염 하나가 수정되지 않으면 그에 해당하는 알도 형성되지 않는다. 우리가 무심코 먹는 한 자루의 옥수수에는 수백 번의 생명적 만남이 정교하게 기록되어 있는 셈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수염에도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 칼륨 등 다양한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오래전부터 ‘옥미수’라 불리며 활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자연에는 불필요한 것이 거의 없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기능과 의미를 지닌다.
옥수수 한 그루를 바라보면 그 질서는 더욱 분명해진다. 뿌리는 물과 무기질을 흡수하고, 잎은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수행하며, 줄기는 영양분을 운반한다. 꼭대기의 수꽃은 꽃가루를 만들고, 가운데의 암이삭은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식물은 제한된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구조를 이미 내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치셨다.
“들의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어떻게 자라는가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태복음 6:28)
사도 바울 또한 자연을 통해 창조주를 증언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로마서 1:20)
과학은 옥수수의 구조와 기능을 설명한다. 포엽은 보호를 위해 존재하고, 안토시아닌은 항산화 역할을 하며, 수염은 수정의 통로가 되고, 광합성은 생명의 에너지를 만든다. 그러나 신앙은 그 설명 너머를 바라본다. 이처럼 정교한 질서와 조화, 기능과 아름다움이 하나로 어우러진 세계를 통해 창조주의 지혜를 묵상하게 된다.
그날 오후, 딸이 보내준 보랏빛 옥수수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물학적 통찰을 담은 교재였고, 자연이 빚어낸 예술 작품이었으며, 창조의 질서를 묵상하게 하는 살아 있는 메시지였다. 한 자루의 옥수수를 손에 들고 나는 신비로움에 감탄하며 다시금 깨달았다. 자연을 깊이 바라보는 사람은 과학의 경이를 배우고, 그 경이를 끝까지 사유하는 사람은 창조주의 지혜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보랏빛 알갱이 하나에도 생명의 설계도가 새겨져 있었다. 그 작은 씨앗들은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질서는 우연보다 깊고, 아름다움은 기능을 품으며, 생명은 창조주의 지혜 안에서 오늘도 조용히 익어 가고 있다고.
첫댓글 여름철 잘영근 찰옥수수를 양은솥에 넣고 찌면 온 家族의 간식으로 그만한 것이 없었지요.
追憶을 떠올리게하는 좋은 글에 한ㅍ참 머무르다 갑니다.
建安하시고, 健筆하시기를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