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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선 장로의 이적과 신비경험
역은 사람의 말
1955년 6월 9일부터 일주일간 대구에서 박태선 장로가 인도한느 부흥회가 열리었다.
나는 그 집회에 참여하여 박태선 장로가 말한 것을 필기하였다. 필기한 것을 원고지에 다 옮기자면 원고지 1500매 가량 될 것이요 이것으로 책을 만들자면 500 폐지가 될 것이다. 이것을 추리고 추려서 적게 만든 것이 이 책이다. 박태선 장로는 강단에 나서면 순서를 정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요, 왔다 같다 순서 없이 말을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말로서는 감화력이 있으나 글로 써 놓으면 말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순서를 따라 원고를 정리하였다. 박태선 장로게나 독자 여러분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그후 여러 어른들의 간증은 녹음에 의하여 원고를 작성한 것이다.
박태선 장로를 소개함
1. 신비가(神秘家)
박태선 장로는 이 땅이 낳은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처음 보는 神秘家이다.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세계 각국에서 여러 신비가들이 일어났지만 그들의 신비경험을 다 모아놓아도 박태선 장로의 신비경험을 따를 자 없다. 물론 그의 신비경험 중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더쨌든 나는 우리나라 교회에서 이러한 신비가가 일어난 것을 감사하고 자랑한다.
2. 권능을 행하는 사람
그는 또한 권능을 행하는 사람이다. 기독교 2000년 역사에 많은 권능을 행하는 사람이 일어났지만 아직까지 박태선 장로이상의 권능을 행하는 사람은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의 권능은 그의 신비적 경험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의 신비적 생활과 연결되어있다. 그의 하늘과 통하는 생활에서 권능을 행하는 힘이 생긴다.
3. 부흥사(復興師)
그는 목사도 아니요, 설교자도 아니지만 그가 금년 정월 강단에 서기 시작한 후 불과 6개월에 각처에서 일으킨 선풍적(旋風的)부흥운동은 이 땅의 심령 계를 진동 시켰다. 지금 그의 나이도 겨우 39세 이니라. 교회가 그를 잘 길러 장차 비행기를 태워 런던이나 뉴욕으로 떠나 보내면 전세계 교회를 또 한번 크게 진동시킬 수 있는 힘과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 그러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특수한 인물이 일어가기만 하면 잡아먹기로 유명한 이 나라이매 박태선 장로도 강단에 서자마자 벌써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사람이 생겨난다. 설사 이제 박태선 장로가 그 독아에 걸리어 꺼꾸러진다 해도 그 동안 6개월의 기록만 가지고도 전세계 기독교 부흥사 중에 가장 호화로운 폐지를 남길 것이다.
4. 박태선 장로는 지금 많은 예언을 하고 있다.
1) 10월말 안으로 이 땅에서 악의 세력이 꺾이운다.
2) 이 땅에 다시는 피 흘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3) 중공군은 다 물러가게 된다. 유엔군이 무력에 의하여 물러 갈 것이 아니요, 의인들의 기도에 의하여 물러갈 것이다.
4) 로서아는 그것이 곡과 마곡이요, 이것이 마침내 꺼꾸러지고야 만다.
5) 하늘 창고에 문이 열리고 땅도 그 보배의 창고를 열며 바다도 그 무한한 재원의 창고를 열어 이 백성들이 다시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고 살게 된다.
그 밖에도 많은 예언을 하고 있는데 여기 대하여 (미친놈의 수작이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고 그 말을 그대로 믿고 기뻐하고 찬송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예언은 두고 보아야 알 일이지만 그 예언을 듣기만 해도 마음이 기쁘고 새로운 영기와 담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만일에 그 예언이 그대로 응하기만 한다면 그는 또한 예언자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얼굴은 희고 맑고 키는 커다랗고 양복저고리는 벗어 던지고 입은 아직 굳게 닫고 열지 않은 채로 정렬에 빛난 눈으로 수만 군중을 노려보면 강단에 우뚝 서있을 때에는 마치 하늘 천사 미가엘이 거기 서 있는 듯 마귀도 당장에 물리칠 듯 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안심과 흥분을 준다.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때도 많다.
입을 열면 그의 입에서는 불이 터져 나온다. 나는 (불의 사자) 라는 말을 말로만 들었는데 박태선 장로의 입에서 정말 불이 나오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인간의 입에서 불이 나오는 놀라운 광경을 나는 눈으로 보았다.
“사자후” (獅子吼) 라는 말을 말로 듣고 글에서 보았지만 사자처럼 소리를 지르고 사자처럼 날뛰는 한 개의 인간을 내 눈으로 보았다. 박태선 장로의 그 목이 터지는 소리와 그 날뛰는 모습 그것을 사자라고 밖에는 무어라고 형용할 수가 없다. 그러나 또 어떤 때에는 어린아이와 같기도 하다. 구약 이사야서에서 사자와 어린아이가 함께 논다는 말이 있거니와 박태선 장로는 사자와 어린아이가 그의 한 인격 중에 잘 조화(調和)되어 있다.
박태선 장로는 분명 하느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사람이다.
그의 머리에는 하늘에서 받은 영감이 있고 그의 가슴에는 하늘에서 받은 불이 타고 그의 손에는 권능의 철장이 쥐어져 있다. 아무리 보아도 그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정신은 소상하고 손은 맑고 신체는 강철같고 그는 백두산의 정기와 4천년 여사의 혼을 타고 난 대한의 한 귀여운 아들도 된다.
그의 눈동자는 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의 뺨에서는 늘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그러다가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날 빛보다 더 밝은 천당)을 바라보며 기뻐서 찬송한다.
백두산 천지에는 매 5분마다 구름과 안개가 덮였다 개였다 하여 변화 무쌍 하다고 한다. 이는 해발 3000M 되는 높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지만 이 대지 위에 서 있는 박태선 장로의 얼굴과 눈도 매 5분마다 십자가의 그림자와 천당 문의 광채로 흐렸다 개였다 한다. 그러나 거의 얼굴이나 눈동자가 땅에 있는 무엇으로는 흐려지는 일이 절대로 없다 그래서 나는 그를 땅 위세 선 하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주여, 주여 이 백성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소리친다. 그는 “회개하시오, 회개하시오 천당 지옥, 천당 지옥”하여 미칠 듯이 부르짖으며 날 뛴다.
이 민족의 환란과 내 동포들의 지옥을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사람을 나는 처음 보았다. 분명 그는 대한의 기특한 아들이요, 삼천만의 갸륵한 동생이다. 그의 말을 빌건대 (남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데야, 무슨 눈물이 나오겠는가? 내 아버지가 죽었다면 어찌 통곡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는 참으로 대한의 아들이요, 참으로 삼천만의 동생이며 이 나라의 불행과 이 동포의 지옥을 그렇게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는 초인간적(超人間的)인 정신력과 체력을 아울러 가진 사람으로 강단에 나서기만 하면 4-5시간 7-8시간 계속하여 외치면서도 피곤한 줄 모른다. 비가 새어 옷이 젖어도 바람이 먼지를 몰아다 들 씌어도 천막이 찢어져 나가도 이런 일은 도무지 개의치도 아니한다. 오직 그냥 불을 토하며 섰다.
나는 박태선 장로 부흥회에 많은 천년 남녀 대학생 중고들 학생 소학생 어린것들이 몰려나오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 오 많이 들 나오너라, 나와서 이 하늘 사람의 모습을 눈에 사진 박아두고, 이 하늘 사람의 불타는 음성을 귀에 녹음하여 두라, 거룩한 인상은 늘 그대들의 혼을 높은 곳으로 인도할 것이요, 귀에 들린 그 음성은 늘 그대들의 마음을 더러운 탁유(濁流)에서 붙들어 줄 것이다.
모두 주목하여 보라.
우리 민족 삼천만이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이 중대한 역사적 장면에 우리 눈앞에 한 불덩어리가 나타나서 딩굴어 다니는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느냐?
내가 박태선 장로에 대하여 글을 쓰게 된 이유
지금으로부터 삼십년 전에 나는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0 교회에 전도사로 있었다 그때에 지금 박태선 장로는 우리 유전주인학교의 학생이었다. 나는 그때 예배당에 드나드는 주일학생 중에 이렇게 귀한 보배가 섞이어 굴러다니는 줄 몰랐다. 나는 그때에 내 눈이 어두웠던 것을 부끄러워하며 그때 그에게 너무 소흘이 하였다는 미안한 생각에서 이 붓을 들게 된 것이다.
내가 박태선 장로를 위하여 붓을 들게 되매 또 한사람이 내 머리에 떠오른다. 김예근(金禮根) 이라는 사람이다. 김예근은 본래 덕천읍 사람으로 일제시대에 헌병과 명 형사부장으로 20십여년간 일본 고등경찰의 앞잡이 노릇하던 세파트였다. 내가 덕천 교회에 있을 때에 이 흉악한 인간이 젊은 전도사 앞에 꿇어앉아서 자기 모든 죄를 자복하고 새 사람이 되었다. 그후 그는 특별한 음성을 듣고 모든 재산과 소유를 다 버리고 거지 전도의 길을 떠났다. 자신이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며 거지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거지성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기를 십여년 후에 그는 또 월남하여 부산 아미동 산 위에 (거지교회)를 세우고 주일이 되면 50-60명의 거지들을 모아놓고 예배하더니 지금은 서울에 또 거지교회를 세우려고 개천가 다리 아래 거지들을 찾아다닌다.
나 박태선 장로 김에근은 다 덕천서 만났던 사람으로 하나는 큰 부흥사가 되고 하나는 거지성자가 되었다 나는 부흥사도 못되고 거지성자도 못되고 30년 전이나 30년 후나 요 모양이다. 허허....
1955년 8월 5일 부산 진 교회 목사 김 성 여
차례
화보.....
역은 사람의 말.....1
박 태 선 장로 소개함......2
1. 권능의 집회....3
2. 성신의 불을 받기까지.....23
3. 불의 변화를 받은 후.....35
4. 신앙생활의 3계단.....45
5. 6,25 동란과 생수를 마시는 경험.....60
6. 성신의 역사.......70
7. 주의 보혈을 받은 경험......82
8. 안찰(按擦)함으로 병이 나음......94
9. 연보를 권함.....104
10. 천년시대와 천당 가는 길.....115
11. 믿음의 힘과 사탄이 주는 의심.....127
12. 그리스도의 보혈.....138
국회의원 윤치영 선생의 간증....149
전 사회부장관 의학박사 최 창 순 선생의 간증....155
중앙대학 총장 임 영 신 선생의 간증.....160
전 무임소장관 박 현 숙 선생의 간증.....163
국방장관부인 홍 은 혜 여사의 간증.....168
1. 권능의 집회
다 머리를 들어 내 얼굴을 보라.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내 언론과 전도함이 지혜의 고은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신의 나타남과 하느님의 권능으로 한다. 고 하였다. 성신의 운동은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다만 하느님의 권능에 있다. 그런고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유대사람이니 헬라사람이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권능이요 하느님의 지혜가 된다고 하였다.
지금은 사도시대에 없던 일이 일어난다.
내가 인도하는 부흥회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창신동교회 집회에서는 많은 이적이 행하여지는 가운데 특히 앉은뱅이 십 여명이 한꺼번에 뛰어 일어났다.
안동 집회에서도 매일 여러 백 명의 병자가 낳았고 소경이 눈을 떳다. 60세가 된 노인, 나면서 눈먼 사람이 눈을 뜨는 것을 보고 믿지 않던 안동 양반들이 막 몰려들었다.
부산 집회에서는 벙어리가 말을 하고 메고 왔던 전신 불수가 뛰어 일어나고 천 여명 병자가 낫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주님 당시에 바리새 교인들이 예수의 권능을 조롱하더니, 오늘날에 이 부흥운동에 대하여서도 조롱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신자들은 도리어 받아들이는데 믿는 체 하는 사람들이 이을 반대한다. 언제나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고 뜨뜨 미지근한 사람들이 말성이라.
나는 본래 목사도 아니요, 설교자도 아니다.
내가 주의 일을 시작한 것은 안찰하여 병을 고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많은 교회의 청원과 하느님의 지시에 의하여 강단에 서기를 시작 한 것이다. 내가 강단에 서기 시작한 것이 금녀 정월부터다. 그런고로 아직 모든 것이 유치하다. 에레미아의 말과 같이 나는 말 할줄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직 성신의 도으심으로 강단에 나선다.
내가 인도하는 집회에는 몇 가지 특색이 있다.7
첫째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다. 금년 정월 첫 집회에서부터 꼭 배씩 더 모이더니 지금은 사오만명씩 몰려 와서 은혜를 받는다.
둘째는 한번 와 앉으면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암만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배겨 있다. 이삼일 금식하고 철야하는 것은 보통이요, 일주일간 금식 철야하는 사람이 몇 천명씩이나 된다.
셋째는 통회와 자복이다. 모두 중심이 뜨거워지고 죄가 무너져 나간다. 통회와 자복의 통곡성은 진동하고 눈물이 자리를 적신다.
넷째는 큰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본래 안찰 함으로 병을 고치는 데서부터 주의 일을 시작하였다. 내가 안찰 함으로서 그 속에 죄가 무너져나가고 성신 받아 새 사람되고 병이 나은 사람은 수 천명이다. 나는 그들의 썩어질 육신의 병이 낫는 것 보다, 그 중심이 새로워지는 것을 더욱 기뻐한다. 썩어질 육신이야 병이 나아도 아므래도 죽을 사람이 아닌가? 그의 영혼을 구원하여야 하겠다.
그런데 내가 안찰 하는 일에 대하여 많은 비난이 일어난다. 그런고로 나는 기도한다. 지금은 주님 당시보다 몇 십배 악한 시대인 고로 이 시대에서 일하기가 어렵사오니 이제는 안찰 함으로 성신 받고 병이 낫는 것 보다, 말한 마디로 성신이 일하시고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 기도한다. 그래서 점점 말 한마디로 성신의 불이 떨어지고 병 고치는 능력이 나타난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말만하면 벙어리가 말하고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많은 병자들이 아음을 얻는다.
나는 또 기도한다. (이제는 이 눈의 신선만 마주쳐도 마귀의 세력이 물러가게 하시옵소서) 기도한다. 이 기도가 이루어 간다. 안동집회에서 전도사 일을 보던 한 분이 그간 15년을 반을 반신불수로 누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를 내 집회에 메어다 놓았을 때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확 가슴에 불이 들어가서 전신이 떨리더니 그만 일어나서 성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너무 기뻐 날뛰어 다니며 찬미를 불렀다.
청주에서는 내 집회에 왔던 사람이 나의 손수건을 얻어 가지고 돌아가서 자기 교회의 병든 사람에게 얹어 더니 그 병자가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은 다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영원히 살아 계신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어서 역사 해 주시기 때문에 되어지는 것이다. 이 비결을 아는 사람은 이 집회에 와서도 내 시선이 잘 마주치는 앞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이 앞자리가 제일 은혜 받는 자리다, 금 자리다.
@ 불의 역사
나는 (주여, 주여) 하고 소리친다. 이는 나의 외마디 기도이다. 맹목적 기도가 아니다. 내가 (주여, 주여) 부를 짖을 때에 불이 내리는 것이다. 영안이 열린 사람은 그 불을 본다. 이 불은 회개하지 못한 사람들의 죄를 태우는 불이다. 엘리야을 잡으려 보낸 군사 50명을 하늘에서 내러온 불이 태워 버렸다. 이는 죽이는 불이다. 지금 하늘에서 내리는 불은 사람을 죽이는 불이 아니라 중심의 죄악을 사뤄 버리고 그 사람을 살리는 불이다. 죽이는 불보다 살리는 불은 얼마나 귀한가? 죽이는 직분보다 살리는 직분이 얼마나 더 귀한가?
내가 주여, 주여 기도 할때에 불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사람이 많고 어떤 때에는 왼 집회 장소가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있는 고로 가는 곳마다 사람이 따르고 집회마다 구름 모여들 듯이 모이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보지 못하지만 점점 모든 사람이 다 보게 되는 것이다.
합하고 뭉치어 가는 운동
주께서는 하나 되기를 원하신다. 마귀는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 불화 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 나라 교회 안에 서로 화합치 못하는 일이 많다. 이는 마귀의 역사이다. 나는 고려파다, 나는 총신파다. 나는 한신파다. 하늘나라에도 고려파의 천당따로 있고, 총신파 천당 따로 있고, 한신파 천당 따로 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천당 가서도 고려파, 총신파, 한신파, 제각기 따로 천막 치고 살겠는가? 이런 어리석은 노름이 어디 있겠는가? 교회 안에서 파를 가르는 사람은 아직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 그리스도 안에 어찌 파가 있겠는가? 나의 안찰과 부흥운동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 점점 화평이 이루어져 간다. 내 부흥회에는 고려파, 총신파, 한신파, 심지어 재건파 까지 다 모인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지금 정계요인(政界要人)들 중에서도 이 운동이 전개도어 안찰을 받고 서로 모이고 그리하는 중에 점점 하나이 되어 뭉치어진다. 오래지 않아서 우리 나라 상충계급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즉 악의 세력이 물러가서 의의 세력이 이 나라 정계를 지도하게 될 것이다. 두고 보아라.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세상에 게실 때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었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정도 안에서 행사신 것이다. 병 낫기를 운하며 병을 고치려고 배가 고파하는 5천명의 군중을 떡 다섯 덩이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이시고 하였다. 그들이 믿는 정도 안에서 요구하는 정도 안에서 행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무엇이든지 받는 사람의 정도대로 일하신 것이다. 일하시는 것만 아니고 교훈 하시는 것도 받는 사람의 종도 대로 교훈 하신 것이다.
바리새 교인에게는 그 정도대로 니고데에게도 그 정도대로 제자들에게도 또 그 정도대로 교훈 하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도 다 성신의 감동으로 기록한 책이지마는 그 감동하심의 정도는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유다 나, 야고보서 보다 베드로의 글이 베드로의 글보다 바울의 글이 바울의 글보다 요한의 글이 각각 그 받은 은혜의 정도가 다른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그들 앞에서 행하는 권능이리요.
그런고로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때에 행하신 권능은 당신이 가지고 계신 그 능력의 몇 억만분의 일도 나타내지 못한 신 것이다. 왜? 그 원능을 다 나타내시면 온 세상이라도 다 감당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그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의 신앙정도를 보자 우선 열두 제자들은 어찌 되었나? 인간적으로 제일 잘나고 똑똑하기 때문에 돈 전대를 맡았던 유다. 그는 예수를 팔아먹었다. 그 밖의 사람들도 다 처음에는 썩을 것을 위하여 따라 다녔다. 장차 주님께서 왕이 되는 날이면 세상 감투나 하나 얻어 쓸까하고 따라 다니던 인물들이다. 그밖에 많은 사람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리요,
그들이 한때는 종려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부르더니 또다시 한 사람 빠짐없이 소리를 같이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주소서) 하고 고함쳤다. 한사람도 십자가에 못박지 말라고 한 사람은 없다. 예수의 행하신 이적과 권능은 이러한 사람들을 상대로 행하여진 것이다. 이렇게 믿음이 없고 패 역한 시대에 있어 어찌 예수님의 가지신 능력을 다 나타내 실수가 있겠는가? 오직 그 시대에 사람들이 보고 듣고 감당할 수 있는 정도 안에서 행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는 한번 탄식하시었다. 이 패 역하고 음란한 시대가 이적을 구하니 선지자 요나의 이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더러 이르노니, 나를 믿는 사람은 나의 행하는 일을 저도 행할 터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것도 행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감이라. 어떻게 예수의 행사신 것 보다 더 큰일을 행할 수가 있겠는가? 이는 예수 승천하신 후 성신 강림하시어서 역사 하심으로 시대와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즉 시대와 사람들의 마음이 이적과 권능 나타나심을 감당할 정도가 점점 높아 가는 까닭이다.
예수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많은 이적을 행하였다. 심지어 사도들의 손수건을 얹어도 병이 나음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사람이 행한 것이 아니요, 사도들 안에 주님께서 계시어서 행하신 것이다. 또한 사도들의 이적도 그 시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정도 안에서 행사여진 것이요 그 정도 이상에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 인간의 무지와 연약함을 아시는 고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 대로 임하시는 것이다.
예수의 말씀을 또 한번 생각하자.(막16:17-18)믿는 자에게는 이와 같이 니적이 있어 따르리니 나의 이름으로 저희들이 사귀를 쫓으며 새로이 방언을 말하고 뱀을 잡으며 독한 것을 마시되 결단코 상함이 없으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안찰 한즉 나으리라. 여기 믿는 사람은 무슨 특별히 믿는 사람을 말한 것이 아니다 보통으로 믿는 사람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믿는 사람을 말한 것이다. 입술로만 믿노라고 하는 사람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디 세상에 참 믿는 사람이 그리 많으냐? 믿는 사람에게는 이적이 따르고 병든 사람에게 손을 안찰 한즉 낫는다고 하신 고로 나는 그 말씀을 믿고 손을 안찰 하매 과연 병이 낫는다. 안찰 하므로 병이 나은 사람이 벌써 여러 천명이다. 이도 내가 행한 것이 아니요, 생명의 주되시고 만병의 의원 되시는 예수께서 내 속에 계시어서 행하시는 것이다. 중심에 내 주님만 모시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보다, 사도들이 활동할 때 보다, 더 큰 권능이 나타나는 때이다. 나는 이 시대가 예수 당시나 사도들의 시대보다 더 큰 권능이 나타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믿는 사람들의 기다리는 마음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예수 당시나 사도들의 시대보다는 말할 수 없이 커지고 진보되었음이다. 보라 지금 삼사 만명이 모여서 은혜를 부르짖고 수만명이 철야하고 금식하며 전심전력을 다하여 구하지 않느냐 하느님께서 이 간절한 요구에 대하여 모른다고 하시겠는가? 반드시 기다리는 대로 부어주시고 보여 주실 것이다.
둘째는 진리의 편에서 이같이 맹렬한 반면에 세상은 또한 극도로 악하여져서 지금은 예수 당시나 사도들의 시대에 행하던 십배 백배의 권능이 아니면 저 비 진리와 악으로 더불어 싸워 이길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고로 묵시록에도 말세에 권능을 행하는 두 전지자가 일어날 것을 말하였다. 지금이야말로 권능의 선지자가 일어나고 역사 하여야 할 시대이다. 나는 하느님께서 이 권능을 맡겨주셨음으로 내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이렇게 죽을힘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2. 성신의 불을 받기까지
나는 평안북도 영변군 구장(寧邊郡 球場)의 한 좋지 못한 가정에서 출생 하였다. 내 아버지는 내가 나기 3년전부터 조부가 물려준 많은 재산을 가지고 매일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며 내 어머니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그는 10여년 동안은 돈 뭉치를 가지러 오는 때 이외에는 별로 집에 들어오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니 내 어머니의 외로움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섯 살 부터 어머니의 괴로움을 알았다 밤에 자다가 깨어 보면 언제나 어머님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우는 것을 보게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일곱살이 되었을 때에 어머니는 신경쇠약에 걸리었다. 캄캄한 밤인데 일곱 살 되는 나와 아홉 살 되는 내 형을 시오리나 되는 술집에 가서 놀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오라고 보내는 것이었다. 어린것들이 문을 열고 내다보니 캄캄한 밤이 무서워서 문밖을 나설 수가 없지만 어머님의 너무나 안타까워하심으로 할 수 없이 문밖을 나서서 캄캄한 밤길을 더듬어 아버지를 찾으러 가곤 하였다. 캄캄한 무서은 밤에 가다가 바스락 소리만 나도 둘이서 불안고 울다가 또 가고 돌에 발길이 채어서 너머만 져도 또 악 소리를 치며 울었다 공동묘지를 지날 때에는 왜 그리 무서웠는지? 금방 무엇이 나오는 것 같아서 오금이 재리서 울지도 못하였다. 벌판을 지날 대에는 도깨비불이 왔다 갔다 함으로 또 둘이 불안고 떨기만 하였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 울며, 불며 시오리 길을 걸어 주막에를 찾아가면 아버지는 한참 못된 계집들을 데리고 흥에 겨워 놀다가 찾아간 우리에게 호령을 하며 그냥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우리 어린 형제는 또 엉 엉 울며불며 그 무서운 밤길을 걸어 어머니에게로 돌아오군 하였다. 그때에 나는 나이 비록 일곱 살이지만 이 모든 가정형편을 보고 세상에 술이라는 것이 내 아버지를 저렇게 만들었은 즉 나는 커서 어른이 되어도 술은 아예 보지도 않겠다고 작정하였다 기생들은 참으로 더럽고 내 어머니의 가슴을 저렇게 태우니 나는 더러운 계집은 보지도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그 결심은 이때까지 깨어지지 않았다.
내가 아홉 살 될 때에 괴로워하시던 어머님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불행한 어머님의 죽으심을 참으로 슬퍼하였다. 어머님을 잃어버린 나는 정붙일 곳이 없어 종치는 예배당을 찾아갔다. 내가 다니던 주일학교는 평안남도 덕천군 교회주일학교였다. 오래지 않아서 아버지도 죽고 재산은 다 없어졌다. 나는 더 열심히 예배당에 출석하고 생기는 돈은 꼭꼭 모아 두었다가 염보로 드리었다.
내가 주일학교에 다닐 때에 목사님에게서 이런 말씀을 들었다. 개천(价川)에 황목사(황귀조개사)가 있어 그는 성신 받은 목사인데 자기의 죽을 날과 시간을 예언하였다. 예언한 그날 그 시간이 되매 교우들이 다 모이고 구경꾼이 겹겹이 몰려들었는데 황목사는 찬미하고 설교를 하다가 예언한 그 시간이 되매 고요히 누어 잠이 들 듯 세상을 떠났는데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어린 나는 나도 어떻게 그처럼 찬사같이 죽을까? 하고 내 마음속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그후 나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에는 갈 수가 없었음으로 집에서 그냥 있다가 고학이라도 하여보겠다고 약간 여비를 마련하여 가지고 동경으로 건너갔다. 일본서 고학하는 중에 가진 천한 노릇도 다 해보고 온갖 고생도 다 해보고 멸시와 천대도 받으리 만치는 받았다. 하루종일 우유배달 신문배달로 뛰어 다니다가 밤에 학교에 가면 칠판에 쓴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 였다.
실직(失職)을 하고 이틀 사흘 굶기도 한번 두 번이 아니었다.
너무 고생스러워서 자살을 하려고 독약을 사 가지고 죽음의 길을 찾아가기도 한번 두 번이 아니었다. 강변 외 따른 곳을 찾아가서 독약을 먹으려면 약 봉지를 입에 대려고 하면 그때마다. “자살을 하면 지옥 간다”. 하는 음성이 귀에 들리군 하였다. 이는 주님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그만 입에 쏟아 넣으려던 약봉지를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러기를 네번 했다.
나는 동경서 이렇게 허덕이며서도 안식일은 한번도 범하지 않았다. 신문배달, 우유 배달을 해서 몇 푼 얻은 돈 중에서도 십일조는 꼭꼭 드리었다. 내가 고학하는 중 한번은 아주 악한 주인을 맛났다. 여러 일본아이들 중에 나 혼자 조선 사람이라고 해서 일본아이들의 열곱 일을 나에게 시킨다. 나는 참고 견디다 못해 한번은 일이 너무 여려워서 못하겠다고 하니까 그럼 그만두라고 당장에 쫏겨 났다. 나는 그 동안 일한 삯으로 사십일원 돈을 타 가지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파트로 돌아왔다 앞길을 캄캄하였다.
엎친데 덮치는 셈으로 실직된 다음 주일날 나는 성선 전차를 타고 예배당에 갔는데 예배당에 가서 만져 보니 양복 주머니에 넣었던 사십일원을 (스리) 따가 버렸다. 사십일원이 있어도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연한데 이 사십일원을 잃었으니 앞이 더욱 캄캄할 뿐이었다. 다른 주머니에는 쓰다 남은 사원육십전이 들어있을 뿐이다. 나는 비관하던 끝에 차라리 잘되었다. 고 생각하였다. 몇 번이나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지옥 갈가바서 못하였는데 이제는 지옥 안가고도 죽을 길이 열리었다. 돈이 없어 굶고., 굶고 또 굶으면 저절로 죽어지지 안겠는가 생각하였다. 그래서 최후로 주머니에 남은 삼원육십전을 전부 하느님께 드리었다.
예배를 필하고 아파트로 돌아가는데 올 때에는 전차를 타고 왔지만 이제는 전차도 못타고 걸어서 가는데 이 길은 죽으러 가는 길이다. 돌아가서 아파트에서 굶고 있으면 죽어진다. 죽으려는 어린것에게는 모든 것이 눈물이었다. 상점에 장식한 물건을 모아도 뜰에 핀 꽃을 보아도 모두 눈물이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 가는 아이를 보아도 나는 왜 어머니가 없는가 하고 하염없는 눈물이다. 어미와 같이 노는 고양이 새끼를 보면 고양이 새끼도 어미가 있구나? 하고 눈물은 비오듯 쏟아진다.
숙소에 돌아가서 나는 물한방울 마시지 않고 목숨이 끊어질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울고, 울고 또 울다가 눈물도 다 말라버리고 울 기운도 없어졌다. 사흘이 지나매 몸에 수분이 다 없어져서 몸이 꼬이는 듯하고 가슴에는 불이 일어 나는 듯 하였다 나는 이제는 죽을 때가 가까웠나보다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죽지는 못하였다. 요 못난 것이 무엇에 쓸 대가 있는지 하느님께서는 나를 살려 주셨다. 이제 지내고 보니 이 모든 고생이 다 나에게 유익이 되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나를 연단 하시는 것이었다. 그 후로부터는 나는 다시 굶주리거나 고생하지 않았다. 모든 일에 하느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었다.
나는 황 목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로부터는 사람이 죽는 장면을 많이 찾아 다녔다 특히 믿는 사람 수 백명의 임종하는 광경을 목도하였다. 꼭 자기신앙생활 그 정도대로 죽는 것이다. 한번은 어느 장로가 있는데 사십년 믿고 이십년 장로 노릇한 분이요 돈도 있고 지위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말성만 일으키고 목사 배척이나 하고 교회에 아무 유익을 끼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사생활에도 신앙이 있는 표적을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임종시에 그가 고통이 심할때 교인들이 가서 찬미를 부르니 듣기 싫어하고 기도를 해도 별 위로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그는 소리를 지르고 이를 악물고 눈을 부르뜨고 꼭 마귀의 얼굴같이 변해지고 숨이 넘어갔다.
그가 천당 갔느냐? 분명 지옥 갔을 것이로다.
나는 그의 죽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리었다. 여러분 찬송 할 때에 기쁨이 있는가?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정도대로 죽는다. 마음속에 참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 죽을 때에 그 정도대로 죽는다. 마음 가운데 성신 충만하고 그리스도께서 와서 거하시면 그는 기쁨으로 살다가 평안함으로 천당에 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고생스러울 때에 부지런히 하느님을 찾았더니 그후에 경제력도 좀 펴지고 지식도 좀 늘어가니까 도리어 하느님의 은혜가 가리워 지는 것이었다. 내 조그만 과학지식이 하느님의 말씀도 의심하게 되어 믿어지지 않는 것이 많아지고 그때 김 익두 목사님이 이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많이 퍼지었는데 나는 이를 부인하며 미친 영감이라고 입으로 더러운 말을 많이 하였다. 황 목사가 죽을 대에 있었던 일도 다시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사람이 지혜는 하느님의 영광과 권능을 가리운다. 과학을 배우는 청년들 사람의 두뇌는 세균 하나를 놓고도 머리가 벗어지도록 연구하고 그래도 다 연구하지를 못해서 여러 대를 이어가며 연구를 해도 몰라서 애쓰는 것이다. 구대기 하나는 놓고 연구해도 몰라서 애쓰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반해 빤이 아는 것을 가지고 하느님의 하시는 일을 의심하게 되니 될 말이냐?
내가 이의심의 길에서 돌아서게 된 것은 고통 중에서 내 길을 열어 주시던 어떤 장로님의 임종을 목격하게 될 때부터이다. 그는 얼굴만 보아도 은혜 스러운 이 장로님이 병이 들어서 별세하게 되었다 나는 늘 그를 방문하고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는 고통 중에서라도 찬동만 부르면 고통을 잊어버리는 듯 하고 성경을 읽어 드리면 무한히 기뻐하였다. 그가 임종 사오분전에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되고 기쁨이 충만하여지더니 조금 있다가 일어나서 옷을 입고 주님께서밖에 와 계시나 하더니 또 주님이 들어오신다 하며 문을 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얼굴빛이 환하게 빛나더니 고요히 그 자리에 누어서 자는 듯이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은혜 받은 사람은 죽은 후에도 그 시체에서 향내가 난다. 그 장로는 이 주야를 지나서 장사하였는데 꼭 잠이 들어 이제 깨어날 사람과 같았다. 유다서를 보면 모세의 시체를 놓고 천사와 마귀가 다투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도 죽으면 마귀는 우리의 시체라도 빼앗아가려고 한다. 그때에 천사는 불로서 우리 시체를 지켜주신다. 성신 받은 사람은 죽은 후에도 불로써 지켜주신다. 나는 그 장로님의 죽음을 보고 나의 의심하던 마음은 또 깨어졌다. 그래서 또 마음이 안타까워 다시 바른 길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후 나는 학교를 마치고 공장을 경영하였다.
나의 신앙생활로 말하면 주일을 거륵히 지키고 십일조를 꼭꼭 드리고 도둑질하지 아니하고 간음하지 아니하고 외형으로는 한 개 훌륭히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새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맘속에 들어와 계시지 아니 하였다. 나는 공장을 경영하면서 교회는 더욱 열심히 봉사하여 예배당 청소 걸레질 같은 것을 도 맡아두고 하였고 예배 날은 문지기 안내 그 밖에 모든 힘드는 일은 하나도 사양치 않고 다 하였다. 그러나 모두 기계적으로 한 것뿐이다.
나는 외형적으로는 별 흠잡을 것 없는 기독교인이지마는 그때까지 중심에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암만 노력하여도 혈기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 마음이지만 내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소화 19년 동경에는 폭격이 심하였다 매일 꼭 정한 시간에는 미군 비행기가 어김없이 편대비행을 하면서 한톤, 두톤 자리 폭탄을 소내기 같이 퍼붓는 것이다. 그래서 동경에 살던 동포들은 다 본국으로 나오게 되었다. 동경 중앙교회에 천명 가까이 모이던 것이 마지막에는 한 이십명 세대주로 네세대만 남았다. 남아 있는 이 네세대는 어느 시간에 죽을는지 모르는 처지니까 서로 엉키어 초대교회의 사랑을 일루었다. 네것 내것도 없고 유무상통이다.
그러다가 나도 할 수없이 모든 것을 정리하여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서울에 있으며 여러 교회를 순례하였다. 그때에 나는 너무 외로우니까 사랑을 요구하였다. 어느 교회나 나를 따뜻이 맞아주는 교회가 있는가 하여 서울에 있는 큰 교회 이십여 교회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교회마다 찬바람이 불었다, 참말 사랑 없는 교회였다. 그러다가 한번 남대문교회를 찾아가니까 마침 김치선 목사님이 반가이 손을 잡으며 태선이 너 언제 왔네? 하는데 그만 그 사랑에 녹아졌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을 사랑으로 영접해 보라 방치노적이라도 부리면서 좀 껍데기 사랑이라도 해 보라.
내가 남대문 교회에 다니는데 이 성봉 목사가 오시어서 부흥회를 인도하시게 되었다. 나는 21일년 동안 설교를 들었다. 동경에서 고급 설교를 많이 들었다. 어디서든지 유명한 사람이 설교나 강연이나 한다는 데는 다 따라 다니면 들었다 그래서 귀가 나팔통만 해 가지고 왜 만한 설교는 잘 듣지 않았다. 이 성봉 목사님의 설교도 역시 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내가 남대문 교회의 집사였음으로 집사체면이나 차리노라고 출석은 부지런히 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부흥회 사일만에 은혜는 받게 되었다.
이 성봉 목사는 성신 받지 못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불쌍하다. (성신 받지 못한 신자는 마치 기름 치지 아니한 기계와 같아서 삐그덕 소리가 많이 난다. 성신 받지 못한 사람은 가정에서도 삐그덕 소리가 나고 교회에서도 삐그덕 소리가 난다). 고 말하였다. 이 심상한 말이 내 마음을 크게 감동하였다. 감동이라는 것 보다 차라리 가슴을 찔리웠다고 할 것이다. 이는 성신의 역사이었다 (아 내게 아직 삐그덕 소리가 많이 나는 것은 나도 성신 받지 못한 까닭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찔림을 받고 나는 성신 받기 위하여 기도하기를 시작하였다. 약복강 가에서 씨름하던 야곱의 심정으로 결사적으로 기도하였다. 밤낮 사흘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오직 주님에게 매달리었다.
사흘이 되기까지 아무 응답이 없더니 마지막날 새벽 4시 내 마음은 깨어지기 시작하였다. 지난 21년 동안 나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고 십계명을 그대로 다 지키노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되지도 못하고 될 줄로 알았다. 나는 잘 믿는 사람이거니 하였다. 그러나 밝은 빛이 내 마음에 비쳐 오매 나는 내 죄가 머리털 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맘속에 모든 악 독과 더러운 것이 그득 차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몸으로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죄를 다 통회하고 자복 하였다. 자복 하면 또 죄가 생각나고 자복 하면 또 죄가 나오고 모든 숨었던 죄가 전부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에는 주의 뜻대로 행하지 못한 죄, 남을 참으로 사랑하지 못한 죄, 한이 없는 모든 죄가 쓰러 나오는데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고 밸이 끊어지는 듯 함으로 천지가 아득하고 가슴은 막막하였다. 그러나 이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리었다. 나의 많고 많은 죄를 다 사뤄 버리고 내 중심은 뜨거워 졌다. 중심이 뜨거워 질뿐 아니라, 몸까지 떨리기를 시작한다. 내 몸이지만 내 몸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냥 부들부들 전신이 떨리었다. 중심에는 불이 붙어 뜨겁고 몸은 미칠 듯이 떨리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마동안 그 모양대로 떨리더니 후에는 몸이 상쾌하고 정신이 새로워지며 마음에는 평안과 한없는 기쁨이 임하였다.
(육군본부 군인 집회장, 손벽치며 찬송부르는 박장로)
3. 불의 변화를 받은 후
다 손벽을 치며 찬송하자 시편에 (손바닥을 치며 찬송하라)하였다. 첫날 와서는 모두 박수하기를 싫어하더니 은혜 받으매 팔이 마치 기름 친 기계와 같아서 저절로 박수를 하게된다. 이제는 팔이 날개가 단 것 같아서 맘대로 날개 칠수 있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굼뱅이와 같다. 중생하여 하늘에 속한 사람은 매미와 같이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을 받아먹으며 공주에 날아다니고 있다 땅에 속한 사람과 하늘에 속한 사람은 이렇게 구별이 있다.
여러분 내가 이렇게 나서서 말하니까? (저것 어디서 무엇하건 사람인가)의심하지 말라. 사도 바울이 자기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책망할 것이 없다고 한 것처럼 나도 자랑하려면 얼마든지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아홉 살에 예배당 다니기 시작한 후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한번도 예배당에 결석한 일이 없다. 아무리 급한 일이 생겨도 안식일은 범하지 않았다. 아이 때에 집에서 무엇 사먹으라고 주는 돈도 사먹지 않고 꼭꼭 모았다가 연보 하였다 후에 내 손으로 돈을 벌게 된 후부터는 십일조를 하느님에게 바치고 십의 구조 까지 바친 일이 있다.
나는 동경서 고학 생활하는 중에 삼사일을 굶고 고픈 배를 움켜쥐고 다니면서도 한번도 남의 것을 훔치거나 속이거나 한 일이 없다. 도둑질하지 말라 . 거짓말하지 말라 하는 계명도 지키었다. 살인은 고사하고 누구를 상하게 하거나 해롭게 한일도 없다. 동경 그 음탕한 도시에 있으면서도 한번도 간음죄를 짓지 않았다. 음란죄는 몸 안에 있는 죄요, 하느님의 제일 미워하는 죄인데 도리어 사람들이 제일 범하기 쉬운 죄이다. 목사들 중에도 이런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 어떤 여 집사는 목사만 아닌 사람을 죄에 꺼꾸러뜨려 넣었다는 고백을 하였다. 나는 독신으로 동경에 있으면서도 이 죄는 짓지 않았다.
일본 여자란 본래 정조관념이 박약한데 소화 19년쯤 그때 일본서 청년은 다 군인이나 징용을 나가고 젊은 사람은 없어서 남자 하나에 여자 20명의 비례가 되었다. 그러니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먼저 희롱을 하는 때였다. 나는 군수품 관계되는 공장을 경영함으로 징용을 면하고 동경에 뻐젓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결혼하기까지 도무지 여자를 알지 못하였다. 한번 온천에서 혼자 목욕을 하고 있는데 여자대학생 하나가 옷을 벗고 들어온다. 나는 그만 뛰어 나왔다. 얼마든지 쉽게 지을 수 있는 이 죄를 나는 한번도 짓지 않았다. 이는 하느님의 특별하신 은혜이었다
나는 본래 여자와는 말을 못하는 성격이었다. 여자가 무슨 말을 물어도 나는 고개가 수그러지고 대답이 잘 오나지 안는 사람이었다. 결혼하려고 지금 내 아내 되는 사람과 선을 볼 때에도 나는 한편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너무 부끄러워 움짝을 못하였다. 내 아내 될 사람은 도리어 활발하고 학교 선생 노릇을 한 고로 도리어 먼저 나에게 물어보는 것을 나는 겨우 대답을 하였다. 이는 하느님께서 나로 하여금 간음죄를 짓지 못하도록 내 성격을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 인줄 안다.
교회는 열심히 봉사하였다. 예배당 청소 걸레질 유리 닦는 것 다 맡아두고 하였다 늘 문에 서서 안내하는 직분을 하였다 전도하는데도 부지런히 따라 다녔다. 해방 후에 남대문교회에서는 매일 저녁 북을 치며 노방전도를 하였는데 나는 부지런히 여러분 나를 보고 저거 어디서 못되게 굴러먹던 것이 아니가?하고 의심하지 말라 나는 누구 보다고 잘 믿노라고 하였다. 누구보다도 거룩한 생활을 하려고 애쓰던 사람이다. 자랑하려면 얼마든지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되지 못하고도 될 줄로 알고 있었다.
21년 동안 나는 바리새 교인처럼 외형으로는 회칠한 무덤처럼 거룩하였다. 모범적 기독교인이었다. 별 흠잡을 것이 없는 신자였다. 그러나 나의 내심은 어떠하였는가? 거기는 모든 악한 것이 가득 하였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도 있었다. 불평, 원망, 노하는 마음이 자주 일어났다. 혈기가 있었다. 겉으로는 감음 죄를 안 지었다 하지만 길에서 멋쟁이하이칼라 여자를 보면 (나도 저런 여자와 결혼해 보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일어나군 하였다. 이것이 벌써 마음과 눈으로 음란죄를 지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마음을 보신다. 교회를 봉사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참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요, 전도를 한대도 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 형식이요, 모양뿐이었다. 예배당 문에 서서 안내를 하면서도 야고보서에 있는 대로 좋은 옷을 입고 점잖아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면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들어오십시오)하고 앞자리로 인도하고 허술한 옷을 입은 룸펜 같아 보이는 사람이 오면 그저 (들어오시오) 할뿐이었다.
동경서 나와서 공장을 경영하는데 상공부 재무부를 찾아가면 좋은 양복을 입고 금테 안경을 쓴 사람이 들어오면 친절히 대하여 주고 거기도 허술한 옷을 입고 가면 대하여 주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도 좋은 마카오 양복을 쭉 빼고 눈도 나쁘지 않으면서 금테 안경을 쓰고 다녔다. 그런데 노방전도 나가면 딸아는 갔지만 북은 치지 않았다. 마카오 양복입고 금테 안경 쓰고 키가 커다란 것이 북을 메고 치는 꼴을 상공부 사람이나 재무부 사람이 볼가 봐서 무서워 하였다. 그래서 노방전도 하는 틈에 숨어서 있다가 슬그머니 (나는 들어가서 안내 할테야)하고 빠져 나오군 하였다.
모든 것이 형식이요, 생명 없는 노름이었다. 나도 내 신앙생활에 이 거짓됨을 알기는 알았다. 그래서 좀더 참된 신앙 완전한 신앙생활에 나가보려고 많이 애를 썼다. 그러나 되지 않았다. 어떤 부흥회에 참예하여 일시에 감동을 받아 마음이 조금 뜨거워지고 변화가 생기는 듯 하나 얼마를 지나면 다시 식어지고 여전히 그 모양대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 성봉 목사님 부흥회에서 불의 변화를 받은 후에는 전에 되지 못하던 모든 것이 되어지고 여러 가지 새로 변화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대강 몇 가지를 말하려고 한다.
그 후로부터는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못한다. 이는 새 생명 되시는 주님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며 내 마음을 주장하시는 까닭이다. 내 마음에는 줄거움과 평안함으로 채워졌다 오늘날까지 내 마음은 즐거움과 평안이 계속된다. 나는 너무 고생을 하여 얼굴이 몹시 늙어 보였다 내가 28-9세 때에 남들은 40이 넘은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더니 지금은 내 나이 39세인데 30세로 본다. 점점 더 젊어진다. 예수님이 맘속에 들어 와 계시면 젊어진다.
불의 변화를 받은 후 집안도 화평한 집이 되었다. 호랑이 시어머니 호랑이 며누리다 회개하고 거듭나야 한다. 호랑이 시어머니를 무슨 안경 썼는가? 마귀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다 미워만 보이고 잘 못되이 보이기만 한다. 예수의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다 사랑스러워 보이고 귀여워 보이기만 한다. 호랑이 시어머니들 며누리가 미워만 보이고 하는 것이 다 자못하는 것 같이 보이지 않는 가? 이는 모두 마귀 안경을 쓰고 있는 까닭이다 .
그런 마귀 안경을 쓰고 있는 호랑이 시어머니는 천당가지 못한다. 지옥 간다. 지옥에를 가되 아랫목에 간다. 성신 받고 이 모든 호랑이 성질을 다 불로 소멸해야 한다. 지금도 불꽃같은 하느님의 눈이 그 아득한 마음을 뚫러 보고 계신다. 사람의 눈으로도 그 악독한 마음이 꽉 하게 들여다보인다. 성신 받으면 이 모든 악독한 마음이 다 타서 없어진다. 참으로 거듭나면 이 모든 것을 경험을 하게 된다.
불의 변화를 받은 후 내 귀가 바뀌어 졌다. 전에는 미국에 가서 음악을 공부하였다는 여자 이태리 가서 음악을 공부하였다는 여자들이 목청을 뽑으며 노래를 부를 때에 참 듣기 좋아하였다. 성신 받은 후에는 그런 목소리를 들으면 목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 듣기가 싫다. 성신 받고 거듭난 사람들의 찬미는 음악하교도 못나오고 곡조도 잘 맞지 않아도 그 음성은 은혜 스럽고 아름답게 들린다. 성신 받기 전에는 얼굴이 예쁘고 멋지게 차린 사람을 보면 그것이 좋아 보였지마는 성신 받은 후에는 그런 사람을 볼 때에 그 얼굴에 모든 더럽고 악독한 죄악이 다 나타나 있음으로 도리어 마귀의 얼굴과 같아 보이고 거듭난 사람의 얼굴은 못생기고 새까맣게 되었어도 그 얼굴에는 천사와 같이 거룩하고 화평하고 환한 빛이 나타난다.
불의 변화를 받은 후 내 마음에는 한가지 의심이 있었다. 성신이 임하심으로 중심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변해 지는 것은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육신이 떨리어 것 잡을 수가 없으니 성신의 역사가 육체까지 변화를 시키는 것인가? 늘 마음에 의심을 품었다. 그러다가 이를 하루아침에 깨달았다. 나는 매일 새벽 아현동 내 집을 출발하여 남대문 교회까지 한 이십분 걸리는 길을 걸어 청신기도를 드리려 내왕한다. 나는 시간의 십일조도 하느님에게 바치는데 아침 일어난 수 첫 시간이 하느님에게 바치기 가장 적당한 시간으로 생각 한다.
하루 아침 추운 날 나는 가만히 찬송을 부르며 남대문 교회를 향하여 걸어갔다. 불의 변화를 받은 후 나의 생활은 찬송의 생활이었다. 밥을 먹어도 찬송, 길을 가도, 찬송 집에서도 찬송, 공장에서도 찬송, 찬송의 생활이었다. 이날도 나는 찬송을 부르며 길을 걸어갔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보니 길에 수도가 있는데 그때 날은 가물고 수도가 잘 나오지 않아서 물 길러 온 사오십명 되는 남자 여자 아이 어른이 줄을 지어 서서 있었다.
이 때에 한 미치광이가 달려들어서 물기로 온 사람에게 폭행을 한다. 힘이 어찌 센지 모여든 사람에게 물통을 집어던지고 주먹으로 후려갈기고 하니 사오십명 사람이 다 달아나 숨었다. 이 미치광이는 큰돌을 들고 무섭게 생긴 눈을 부릅뜨고 내 앞으로 달려온다. 나는 피할 길이 없어 그냥 지나가는데 그 미치광이가 나의 시선과 마주치자 그는 돌맹이를 땅에 떠어뜨리고 부들부들 떨며 (예수 나 예수 안 믿어 나 예수 안 믿어) 하며 달아난다. 그 미치광이가 그 큰돌로 불과 몇 미터 안 되는 곳에 있는 나에게 던지었다면 나는 그 돌에 맞아 죽었을 런 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오십명을 후려갈기어 쫓아버린 이 장정이나를 보고는 그만 무서워 달아났다. 달아날 뿐만 아니라 예수 예수하며 달아났다. 나는 이 것을 보고 예수께서 나와 동행하시는 것을 그때에 깨달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의 안에 거하고 나는 너의 안에 거하리라, 하심 같이 예수께서 나의 안에 거하시고 내가 예수 안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 성신의 불이 임하심으로 사람의 육체에까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나는 알았다. 옛날 성자들에게 후광이 있었다는 말도 나는 믿는다. 사람이 성신의 변화하심을 받고 완전히 거룩한 지경에 나아가게 되면 그의 몸에서 후광도 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육안보다 영안을 가지 사람이 먼저 본다. 마귀의 영안을 가진 사람도 육안만 가진 사람보다는 더 잘 본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육안을 가진 인간들은 아직 그를 알아보지 못할 때이지만 사귀 들린 사람이 오히려 먼저 예수를 알아보았다. 바울이 빌립보 도시에 처음으로 가서 전도할 때에도 사귀들린 한 계집종이 그 바울이 가지고 있는 빛을 알라 보았다. 내가 불을 받고 떨릴 때에 내 육체에도 사람으로서는 잘 알아 볼 수 없는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나는 스스로 깨달았다. 나에게 내린 불은 늘 내 맘을 뜨겁게 하였다. 마음만 뜨겁게 할 뿐 아니라 몸도 뜨겁게 하였다.
전에는 노방전도를 나가도 북은 치지 않았다. 불을 받은 후에는 북을 남에게 빼아낄가 봐서 늘 먼저 가서 북을 메고 나섰다. 북을 메게되면 몸이 더워서 외투도 안 입고 장갑도 안 껴도 몸이 더워서 땀을 흘리곤 하였다. 날이 정 추울 때에는 아무도 나오는 사람이 없어 나 혼자 북을 메고 치며 찬송을 부르며 자나가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였다. 몇십명이 나서서 떠들면 전도하는 것 보다 나 혼자 북을 치며 나 혼자 전도하는 것이 효과 면으로 오히려 컸다. 누구에게든지 (예수 믿으시오)하면 참으로 진실 된 표정으로 (예 믿겠습니다) 대답하고 (예배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아주 공손히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불의 변화를 받은 나는 말하는 구변의 힘도 얻었다. 나는 전에는 말할줄을 몰랐다. 그런데 남대문교회 면려 청년회에서 회원 몇 사람씩을 뽑아서 문제를 주어가지고 말하게 하는 순서가 한 달에 한번씩 있었는데, 내가 불의 변화를 받은 후에 한번 그 순서에 뽑혔다. 뽑힌 사람이 셋이다. 면려회 날을 당하니 그때 한참 월남하는 피란 민들이 몰리던 때이므로 한 5천명 모였다. 그날 종교부장은 날더러 박 집사는 말을 잘 못하는데 사람이 많이 왔으니 말을 잘못하면 우리 면려회가 수치를 당할 터이니 신학생이요 웅변가인 자기 친구에게 순서를 양보하라고 권한다.
나는 (박 집사는 말못하나요 )하고 그 권면을 거절하였다. 나는 반남의 나귀로 하여금 발을 희게 하시고 돌로도 찬미하게 하시게 한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강단에 나섰다. 1만개의 눈알이 모두 또록, 또록 나만 쳐다보는데 처음에는 가슴이 좀 울렁거리었다. 그러나 어디서 오는 힘인지 내게서는 힘이 나는데 그때 내가 말은 문제가 사랑이라 사랑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하니 내 입에서 불이 터져 나가는 듯 하였다. 5천명 군중은 꼼짝도 못하고 내 말을 듣고 나는 그날 큰 감동을 주었다. 도리어 말 잘하는 종교부장이 믿음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자신 만만하던 그는 그의 웅변을 가지고도 그날은 실패하였다.
불의 변화를 받고 새 생명의 주님을 내 맘속에 모신 후에 생긴 특별한 일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이다. 이는 성경의 말씀대로 되는 것이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게 하리라. 지금은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구하는 대로 주신다. (요14:13-14) 너희들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 할 것이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나에게 구하면 내가 시행할 것이다. 이 말씀 그대로 시행하시는 것이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권한 예수 믿음 더욱 줍소서, 나는 그 동안 받은 증거가 많다. 여러 백가지가 된다. 그 중에는 말 할수 있는 것도 있고 아직 말 할수 없는 것은 더 많다.
불의 변화를 받은 후 여러 가지 이상한 일이 내 몸에 일어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숨기고 묵묵히 교회를 섬기다가 6:25 때에 다시 생수를 마시는 경험과 그리스도의 보혈을 받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후에도 모든 것을 숨기고 있다가 작년 삼월(너는 일어나서 일하라) 는 주의 명령을 받고 일어나서 일하기 시작하였고 강단에 서기는 금년 정월부터인데 반년도 못되어 굉장한 성신의 역사가 일어나서 간곳 마다 여러 만 명씩 모여 내 집회는 이십사시간 계속하여 철야 금식 통회로 지나면 모일 적마다. 사람이 배가되어 벌써 육십만 이상이 내 집회에 모여 은혜 받고 성신의 역사를 친히 보았다. 이십일년의 내 지나간 날의 신앙은 믿노라고 만 한 것이요 살았다는 이름은 있어도 나 실상은 죽었던 것이다.
4. 신앙생활의 3단계
바울은 말하기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 ) 고 하였다. 이 말은 보면 믿음도 점점 진보하고 점점 향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냐? 믿음으로 구원을 얻느냐? 물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우리의 구원하심은 의를 행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하였다. 그러나 이 구절을 따 가지고 죄를 그냥 지으면서도 (믿음으로 구원 얻지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가?)하면서 자기 죄의 생활을 스스로 변호한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서도 그냥 천당에 갈 줄로 믿고 있다. 여기 대한 바른 해답이 (로 3: 31)절에 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을 인하여 율법을 폐하리요<) 즉 율법을 무용지물로 돌리느냐? 결단코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하나니라)대답하였다. 주예수께서도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노라) 말씀 하였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이뇨? 책 끼고 예배당 다니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니다. 믿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믿음이란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선물인데 참 생명의 씨가 내 마음 에 들어 와서 완전히 거듭난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러한 믿음에 도달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어거스틴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본래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그 어머니의 감화로 중심에 변화가 생기는 순간 그는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참 변화가 생기지 않은 사람은 몇 십년을 믿노라고 하여도 쓸데없는 것이다. 천당에 가지 못한다.
믿음에는 3가지 계단이 있다.
첫째는 믿노라고 하는 계단이다.
믿노라고 말로만 하는 사람은 아직 양심이 단 쇠에 화인 맞은 것 같아서 죄를 알지 못한다. 예배당에 와도 반목 질시하는 자는 지옥 간다. 며누리를 괴롭게 하는 호랑이 시어머니 다 지옥 간다. 시어머니를 괴롭게 하는 호랑이 며누리 다 지옥 간다. 그런고로 천당 갈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하다. 세상 모든 사람은 시기, 질투, 분쟁, 탐욕, 음란, 모든 죄의 보따리를 지고 다닌다. 죄의 보따리가 몇 백개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믿는다는 사람도 이 죄의 보따리를 그냥 그대로 지고 다닌다. 그러다가 예배당에 들어 올 때에 그 죄의 보따리를 잠깐 내려놓는다. 그리고 예배를 필하면 그 죄의 보따리를 도루 걸머지고 돌아간다.
어떤 사람은 예배당에 들어 와서도 그 보따리를 그냥 지고 앉아 있다. 어떤 사람은 예배당에 와서 보따리 몇 개를 더 만든다. 앞에 앉은 김 집사 미워하고 강도 하는 목사 흉보고 이리하여 들어 올 때에 백개 보따리를 지고 들어 왔다가 보따리 몇 개를 더 만들어서 백다섯개의 보따리를 지고 나간다. 이리하여 그 죄의 보따리는 점점 더 커진다. 이 죄의 보따리를 완전히 벗어버리기 전에는 천당 가지 못한다. 소위 잘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첫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사울 시대에는 바리새 교인이었다. 율법의 의로는 책망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였고 성신도 알지 못하였고 자기는 가장 하느님을 잘 공경하노라고 하였지만 전도인을 픽박하고 스테반을 죽였다. 바울의 지난 경로는 말세까지 모든 믿노라고 하는 자들에게 좋은 거울이 된다. 지금도 잘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성신의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한다. 저들은 믿노라고 하지만 실상은 믿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지옥의 자식들이다. 사오십년 예배당에 출입하면서도 죄의 해결을 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목사, 장로, 집사 할 것 없이 다 지옥을 면치 못한다. 그들은 회칠한 무덤이다. 그러나 그들의 입으로라도 믿는다고 하고 예배당에 출입하니 그들도 역시 믿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 신앙의 첫 계단에 속한 사람들이다.
신앙의 둘째 계단
나는 일본서 갖은 고생을 다하는 괴로운 생활 중에서도 주일은 거룩히 지키고 십계명은 꼭꼭 지키고 했다. 그러나 나의 도덕생활은 내 억지의 힘으로 된 것이요, 근본적 변화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고로 일시적 결심이 엄마 지나면 다시 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이것이 나의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무엇이 안타까운 것인가? 즉 아무래도 완전히 주의 뜻대로 행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로7: )장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의 큰 고민이 있었는데 바울의 고민이 즉 그것이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행하게 되면 이는 내가 행함이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가 행함이라 고 하였다.로7장 한 장에 바울은 이러한 탄식을 일곱 번이나 하였다.
어떤 사람은 바울의 이런 탄식을 볼 때에 바울이 무슨 악한 짓이나 행동을 하고 있던 줄로 생각할는지 모르겠으나 바울은 거듭나기 전에도 인간으로서는 가장 거룩한 사람이었다. 이상한 것은 못된 사람일수록 자기가 옳고 잘하는 줄 알고 인격이 높고 고상한 사람일수록 자기의 부족을 느끼고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 동양에 있어서도 제일 큰 성인이라고 하는 공자가 자기는 의를 들어도 그대로 행할 수 없고 선을 들어도 그대로 행할 수 없으니 이것이 나의 근심이라(聞善不能移 聞義不能從 是吾憂也)하였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아는 것이 제일 첫 계단에 있는 것이요 이런 사람이 제일 많다.
원하여도 되지 못하여 안타까워하는 사람, 이것이 신앙의 둘째 계단에 오른 사람이다. 믿노라고 하는 사람 중에 이 둘째 계단에 오른 사람도 많지 않다. 오늘날 우리 대한 교회 안에 죄를 떡 먹듯 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옛날 바리새 교인만도 못하다. 바리새 교인은 경건한 능은 버렸어도, 경건한 모양은 있었는데 오늘날 대한의 신자들은 경건한 능은 고사하고 경건한 모양도 없다. 지금은 기독교인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가 많이 들려온다. 제 사신의 멸망은 물론이다.
신앙의 셋째 계단
쇠(鐵)를 3000도나 되는 용광로 속에 넣으면 아주 녹아버린다. 백열(白熱)하여진다. 그러나 용광로에서 꺼내 놓으면 세시간만 지나면 다시 식어지고 굳어진다. 신앙생활도 한때에 뜨거워졌다가 다시 식어지고 한때에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눈물이 다시 마르고 한다. 나도 이십일년동안 그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걸 가지구 성신 받은 줄로 알고 중생 한 것인 줄 알았다.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 성신 받은 생활 참된 신앙 생활이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쇠를 용광로에 넣으면 달고 끄내 놓으면 식어지고 한다. 쇠에다 구멍을 뚫고 (니크롬)선을 넣고 전기를 통하면 다시 식지 않는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제3계단은 성신 받는 계단인데 성신이 우리 마음속에 임하시면 그때에야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신은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것이니 성신 받으면 의의 꽃이 피고 선행의 열매가 맺히어 항상 끊어지지 안는 것이다. 성신 받는 것은 포도나무에 완전히 접붙인 가지와 같다. 그 가지는 살아 있고 풍성한 열매를 맺혀있다. 성신 받지 못한 것은 접붙지 못한 가지와 같아서 자연히 말라 버리는 것이다. 속에 없는 것은 밖으로 나올 수 없고 속에 있는 것이라야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나오는 것이 시기, 저주, 악독, 더러운 행동이니 이는 그 속에 마귀가 있는 증거이다. 그런고로 성신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열쳐녀 비유에 등만 가지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쳐녀는 성신 없는 믿음에 어찌 거룩하고 아름다운 행동이 나타나겠는가.
그러나 로마서 7장에 바울의 모든 번민은 로마서 8장에 와서 다 해결되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죄를 정함이 없나니라. 대개 예수 그리스도라 성신이 내 맘속에 들어와 계시게 되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성신을 받아야 할 이유를 세가지로 말하였다. 첫째 (로8:9)므릇 그리스도의 신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신은 즉 성신이다. 성신 받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면 마귀의 사람일 것이다.
2. (로8:11)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하느님의 신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성신으로 너희 죽을 몸을 살리시리라. 여기 (하느님의 신) 도 역시 성신을 가리킨 것이니 성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 하느님의 신 즉 삼위일체 되시는 하느님의 성신으로 나타나시는 것이다. 이 성신 받은 사람은 이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게 육신을 쫏아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요. 오직 성신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한가지 방법은 성신을 받아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다.
3. (8:14) 므룻 하느님의 성신의 인도함을 받는 자는 곧 하느님의 아들이라. 성신 받은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 된다. 성신 받지 못한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 하느님의 아들이 되지 못하면 누구의 아들이 되겠는가? 마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천당 문은 두 곳에 있다. 하나는 예배당 문이다. 예배당 문은 큰 천당 문이다. 여기는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첩을 가진 자도 들어 올 것이요 양갈보가 들어와도 좋다. 아무나 와도 좋소 , 문은 쫙 열어놓고 다 들어오라는 것이다. 시기하는 사람도 독사의 종류도 다 들어와도 좋다.
그러나 여기 들어와서는 정말 회개하고 죄를 씻고 성신 받아야 천당에 들어간다. 죄의 보따리를 완전히 벗어버려야 그의 앞에 정말 천당 문이 열리는 것이다. 요 못난 것도 이십일년 동안 머리털 보다 더 많은 죄의 보따리를 그냥 짊어지고 예배당에 출입하였다. 지금은 이 보따리를 다 벗어버리었다. 이것도 다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이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야 한다. (디도서 3:3-5)절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으며 복종치 아니하며 속으며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을 쫓아 악독과 루기로 평생을 지내며 가증스러우며 피차 미워하였으나 우리를 구원하심이 오직 그 긍휼 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신의 새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
여기 바울은 옛적 자기 낡은 생활을 고백하였다. 즉(어리석으며 속으며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을 쫓으며 악독과 투리로 평생을 지내며 가증스러우며 피차에 미워하였다. 고 하였다.) 우리가 다른 곳에서 바울의 고백을 들을 때에 그는 바리새 교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책망할 것이 없노라고 하였다. 바울은 과연 외형적으로는 십계명을 잘 지키고 율법의 의로는 책망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바울도 그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악독과 더러운 것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위로부터 내리시는 선물을 받았다. 곧 중생의 씻음과 성신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이다.
참으로 성신 받지 못하고 믿노라고 만 하는 사람들이 불잡는 한가지 줄은 (고전12: 3)에 있는 성신이 감동치 않고는 그리스도를 주시라 하는 이가 없나니라, 하는 말씀이다. 나도 예수를 주라고 부르니 나도 성신 받은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자기를 위로하고 있다.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것도 입술로만 부르느냐? 참 마음으로 부르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정욕과 악독이 가득하고 세상만 생각하는 그 마음이 어찌 주를 부르는 마음이라고 하겠는가?
나더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고 하였다. 예수를 주라고 한다고 성신 받은 줄로 알고 의례히 천당에는 들어갈 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신앙의 첫째 계단 둘째 계단은 사람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층층다리다. 그러나 제 3계단은 사람으로서 만은 올라갈 수 없고 성신이 오심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요 천당은 첫째 계단 둘째 계단에 있는 것이 아니요. 셋째 계단 위에 있는 것이다.
5. 六. 二五 동란과 생수를 마시는 경험
나는 성신의 불을 체험한 후로부터는 기도하는 중에나 주를 위하여 봉사할 때에는 늘 하늘로부터 불이 내리는 것을 자주 경험하였다 그러나 한 3년 지나니 다시 불은 오지 않았다. 다시 이태를 지나서 六. 二五때에 나는 생수를 마시는 새로운 경험을 얻게 되었다. 이런 모든 은혜는 내가 생각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나는 六. 二五 까지 3백 4십여명 직공을 데리고 공장을 경영하였다. 그리하다가 갑자기 六. 二五를 만나니 모든 것이 혼란하게 되었고 은행에서 예금을 찾아 낼 수 없음으로 3백 4십명 직공의 임금을 지불하지 못하게되니 내 처지는 말할 수 없이 곤란하게 되었다. 그 때일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다.
그러나 나는 대강 공장에 대한 처리를 마치고 그대로 살아 보려고 수색으로 나갔다. 그러나 수색도 불안함으로 (세비로)양복에 농림모자를 쓰고 짐을 짊어지고서는 김포비행장 방면으로 해서 빠져나가려고 그리로 향해서 가다가 산에 올라가 보니 인민군은 벌써 한강을 건너 김포비행장으로 들어 왔다. 이제는 죽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에 앉아서 죽어도 개죽음은 않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고 할 수없이 다시 본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못하는 사이에 내 조카아이들이 우리 집에 있는 종교서적을 다 꺼내다가 뜰에 흙을 파고 묻어 버리었다. 그리고 궤짝을 놓고 거기에 올라서서 벽에 걸린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를 없이하려고 그것을 찢어버리려고 했다. 이때 나의 아직 세 살도 못된 어린것이 크게 소리 쳐 “여호와의 영광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영광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영광을 배반하고” 세 번 말하였다. 어린것이 어떻게 그렇게 큰 음성으로 어떻게 그렇게 힘있는 위험 있게 말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 아이의 그 말을 듣고 성화를 찢어 버리려고 하던 아이가 그만 손을 멈추고 올라섰던 궤짝에서 슬그머니 내려섰다. 발남의 나귀로 하여금 말하게 하신 하느님께서 이 어린 입을 통하려 말하게 하신 것이다.
나는 즉시로 내 식구들을 모아놓고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미를 부르고 우리식구들의 모든 운명을 오직 여호와의 보호하시는 권능에 맡기었다. 그러나 사람들로서 힘이 믿는데 까지는 힘을 쓰지 아니할 수가 없다. 나는 큰 공장을 경영했다는 점으로 또 그 공장이 군수품의 가장 중요한 정밀기계 공장이었다는 점으로 기독교회 직원이었다는 점으로 어느모로 보든지 붙들리기만 하면 반동분자로 몰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서서 공산군에 협력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나 한 몸 만이라고 자취를 숨기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생각다 못해 나자는 방에 침상을 치우고 온돌을 뜯고 구들장 밑에 내 한 몸이 겨우 오그러 뜨리고 들어앉을 수 있으리 만치 구덩이를 파내었다. 그리고는 그 위를 교묘하게 덮어놓고 여전히 침대를 놓았다. 나는 이 구들장 밑 구멍에서 20여일 사는 동안 나의 믿음은 더 자라났다 찌는 듯 한 더운 여름 땀은 물불은 듯 하고 구들장 및이 매 석탄재는 숨을 쉴적 마자 콧구멍 목구멍으로 날아들고 모기는 밤에는 말 할 것도 없고 대낮에는 어듬 컴컴한 곳이니까 마구 얼굴에 달려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다. 오그러 뜨리고 있는 몸이니 손을 곰짝 달싹 할 수 없으니 얼굴을 파먹는 모기를 날릴 수도 없었다. 매일 20시간 이상을 그렇게 쪼그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밤이 깊어야 내 아내가 뚜껑을 열어주면 가만히 오라 와서 능쟁이 삶은 국물을 조금 마시고 기를 펴고 누었다가는 날이 새면 다시 그 구들장 밑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만일에 성신 받아 변화하지 않은 마음이었다면 단 10분도 거기서 견디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는 본래 성질이 급하고 조금만 어려운 일을 만나도 콩 뛰듯하는 성미였다. 거기서 하루 이자는 것이 십년 감방생활 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기도하였다.
기도의 도수가 찰 때에 이상스럽게 하늘로부터 오는 생수가 마시어 지는 것이었다. 내 입으로 내 코로 시원한 무엇이 흘러들어서 나를 시원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몸은 말 할 수 없이 괴로우면서도 마음속은 시원하였다. 이는 내가 기도하고 하느님으로부터 교통하는 동안 하느님께서 나에게 생수를 부어 주시기 시작하신 까닭이다. 그러나 일순간이라고 기도를 끊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몸은 괴롭고 배는 고프고 묵은 마르고 공기는 통치 않고 모기는 덤벼들고 석탄재가 입과 코로 그냥 날아드는 그 구멍 속에서 나의 믿음도 자라고 인내하는 힘도 자랐다. 살은 다 말라빠지고 벼만 남아 해골 같이 되면서도 심령은 배부르게 지냈다.
그 구들장 밑에서부터 마시어 지기 시작한 생수는 계속하여 마시어진다. 지금도 생수는 끊임없이 하늘로부터 내러온다. 이 생수는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네가 만일 하느님의 주신 것과 또 너더러 물을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으리니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니 )하신 그 생수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 말씀을 듣고 도 생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이 또한 깊으니 어디 가서 생수를 얻겠아옵니까? 물었다. 예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은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이 그 속에서 샘이 되어 영생하도록 솟으리라) 하시건 그 생수다.
선지자 이사야가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으리라 하던 그 구원의 생수이다. 이 생수가 마시어지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이 생수를 알지 못한 것처럼 이 생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도 많다. 오직 마시어 본 자 만이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구들장 속에도 더 오래 있을 수 없이 되었다. 내가 거기 들어가 있는 것을 어린것들이 알게 되었다. 철이 없는 고로 이따금 아버지 하고 찾는다. 인민군은 날마다 문을 두드리며 동무, 동무 찾는데 그때에 만일 어린것이 아버지하고 찾게되면 그만이다. 나는 생각다 못해 그 구들장 밑에서 나와서 철도관사에 있는 한 친구의 집으로 갔다.
그 친구는 동지들을 숨겨두기 위하여 변전소에서 그냥 복무하며 인민군에게 협력하는 체 하면서 여러 동지들을 지붕 밑에 숨겨 두었는데 나도 그 지붕 밑으로 가서 숨었다. 뜨거운 염천 태양 볕이 달대로 달은 함석 지붕 밑에 무던이 더웠다. 그래도 사지를 쭉 뻗고 눕는 맛이란 구들장 밑에 비하면 천당이었다. 그 천장 밑에서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시었다. 낮에는 천장 밑에 숨었다가 밤에는 지하실로 내려가서 리디오를 듣는다. 미군의 인천 상륙 부평, 김포, 점점 가까이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음은 무던히 조리고 긴장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친구가 올라와서 날더라 자기 집을 떠나기를 청한다. 그 일은 이러하다. 그 집에 반역자 여러 사람이 숨어 있다는 소문이 나서 인민군들이 그 날 저녁은 그 집을 수색하러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집을 떠나기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우선 갈곳이 없고 또 그 집 앞으로는 인민군이 연락 부절 한 곳이요. 또 미군이 점점 가까이 오니까 인민군들도 신경이 날카로워 가지고 사람은 보는 대로 쏘아 넘어가는데 그 집 문 앞을 나서기만 하면 총알이 날아 올 것이다. 그런고로 그 집 문을 나설 수가 없다. 시간이 자날수록 주인의 재촉은 심하였다. 마지막에는 좋치 않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제는 더 유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친구와 이제는 천당에 가서나 서로 만나자고 작별의 악수를 교환하고 죽음의 문 앞을 나섰다. 퇴각하는 인민군 행렬 앞을 지나 곡식 밭으로 들어가 곡식 밭을 헤치고 다름 질 치는데 거기에는 사십여명의 파수꾼들이 있어 좀 이상한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총을 갈기는 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인민군 틈으로 그 파수꾼들 사이로 곡식 밭을 헤치고 달아나는데 한 사람도 나를 보고 총을 쏘는 사람은 없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눈을 가리워 주신 까닭이다.
여수 반란사건 때에 어떤 장로 한 분이 조그만 갈대밭에 숨었는데 수십명 인민군이 그 갈밭을 삿삿히 뒤져보면서 바로 눈앞에 있는 그 장로를 보면서도 보지를 못하더란 말을 듣고는 믿지 아니하였더니 내가 그런 경우를 지나보고야 비로써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를 위하여 원수의 눈을 가리워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믿게 되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철도 관사에 있는 내 친구가 날더러 나가 달라고 한 것은 하느님께서 시키신 일이다.
나는 그냥 다름박질하여 겨우 목적하였던 곳에 이르러 그 집 문을 두드릴 때 내가 숨었던 절도관사에 한 톤자리 폭탄 일곱 개가 떨어졌다 내가 숨었던 그 자리에는 재가되었다 나는 나를 피하게 하여주신 여호와께 감사하였다. 그 친구에게 들은 말은 사람의 말이 아니요. 천사의 말이었다. 천사가 나를 그 죽을 자리에서 몰아 내었다. 나는 하느님께서 나를 살려 주셨으니 이 몸이 백조각이 나도 그 은혜를 보답하여야 할 터인데 나는 아직 요 정도 이상에는 더 못하고 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일제시대, 공산군 시대 유치장 열흘, 스무날 먹지 않고 주의 충성된 종들,
나의 집회는 생수를 마시는 부흥회이다. 그런고로 몇 날씩 하여도 배가 고프지 않다. . 한 일주일 열흘 금식하는 사람이 많아 밥도 먹지 않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안는데도 한 주일 찬미를 부르고 박수를 하고 해도 피곤치 않다. 이는 생수를 마시는 까닭이다. 위로부터 내리는 생수는 사람의 심령을 시원케 할 뿐 아니라 육신의 힘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시대와 공산군시대에 유치장에서 열흘 스무날 아무 것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지낸 주의 충성된 종들이 있다. 이를 보지 않는 세상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고 지켜 서서 눈으로 보고 있던 순사들이나 인민군들은 이상하다고만 하였지만 우리는 이를 믿고 이상히 여기지도 않는다.
이는 다 생수를 마신 사람들이다. 아직까지 이 생수를 마셔보지 못한 사람들은 다 와서 이 생수를 마시어 보라. 성신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도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이 생수에 대하여 이는 영적으로 해석할 것이요 육체적으로는 해석할 것이 아니라 한다. 나도 이십여년 동안 그렇게 만 알았다. 집적 하늘에서 내리는 생수를 마시어 본 후부터 이 신기한 일이 이루러지는데 대하여 나는 놀랍고 감사하게 받는 것뿐이다.
이 몸도 장차 영화 할 몸이요, 변화할 몸이매
하늘에서 내리시는 생수가 이 육체에서도 어느 정도까지 신비스러운 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믿어진다. 옛날 엘리아가 로템 나무 아래서 받아먹었다는 떡과 물도 이런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러기에 한번 먹고 열 나흘을 다름박질 하였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는 고로 모세는 사십일 사십야를 호렙산에 있다가 내려오는데 그 얼굴에 오히려 영광이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 충만한 것이 신비의 기록인데 이를 모두 상징적인 문자라고 해서 영적으로만 해석한다면 이는 합리주의에 떨어지는 것이요, 신학을 인학으로 (神學을 人學으로 )바꾸는 것이다.
6. 성신의 역사
이번 집회에 여러분은 코로 백합화의 향기와 같은 향기를 맡게 될 것이다. 조가 타서 송장을 태우는 냄새와 같이 누린대가 나는 것을 코로 맡게 될 것이다. 눈같이 이슬 같이 성신이 내리는 것을 눈으로 볼 것이다. 성신의 불이 떨러지는 것을 눈으로 볼 것이다. 다 숨을 크게 쉬어 보라 시원하지 않느냐? 마치 은단을 먹은 때 보다. 더 시원하지 않느냐? 이는 공기가 아니다. 이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생수이다. 이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다 이 생수를 마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오십년 믿어도 해결하지 못한 모든 문제가 이 집회에서 다 해결될 것이다. 새로운 변화가 생기는 것이요, 전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역사를 볼 것이다. 선지자의 시대나 사도 시대에도 나타나지 않던 큰 역사를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은혜가 있는 고로 나의 집회는 열릴적 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것이다. 이땅에 언제 사오만명 오이는 집회가 있었던가.? 반대하는 자들도 마침내 불 것이다. 지금 강한 은혜는 쏟아진다. 안개처럼 내리는 저 은혜 영안이 열린 사람은 누구나 다 본다. 성신의 나타나시는 모양은 여러 가지가 있다. (소경이 눈을 뜬다. 장면 사진) (호14:5-7)
1) 향기로 나타나신다.
“그 향기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으리니 그 향기는 베바논의 이술과 같이 되리니” 본래 하느님의 축복 받은 사람은 하느님의 주시는 향기를 그 몸에 가지고 있다. (창27:27) “아버지가 그 옷에 향내를 맞고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에게 향기가 있음이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기로다.”
아버지 이삭을 그 아들 야곱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았다. 눈은 어두어 얼굴은 보지 못하면서도 그 몸의 향기는 맡고 이 향기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기라고 하였다. 모든 범죄 한 인간들은 이 복 주신 여호와의 향기를 잃어버리었다. 성신 받고 거듭나는 사람에게 이 여호와의 향기가 내리신다. 그래서 그의 몸에서는 향기가 나고 하느님의 아들딸들이 있는 곳에는 향기가 진동하는 것이다.
2) 이슬 같이 내리심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3) 급한 바람같이
4) 불과 같이
(행2:) 보면 오순절에 성신이 급한 바람과 같이 또는 불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나라 나시었다.
5) 생수로
(요7:37-39) 절기 끝 날은 큰 날이라 예수께서 서서 소리 불러 가라사대 사람이 목마르거든 나에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으면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리라, 하시니 이는 믿는 사람의 받을 성신을 말씀하심이라. )
성신을 받는 것은 성령한데 속한 일이므로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마음이 둔하여 이 신령한 일을 잘 알지 못함으로 우리 눈에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여 주시기도 하신다.
“비들기 같은 성신” “불과 같이” “허와 같이” “바람같이” 내린 성신 우리가 다 성경에서 보는 것이다. 나의 집회에는 향기가 나기도 하고 이슬 같이 내리기도 하고 바람같이 지나가기도 한다. 생수같이 마시어 지기도 한다.
성령의 하시는 일을 물질화 하는 것은 성경에 위반된다고 한다. 그러면 비들기 같이 나타난 것은 무엇일까? 물같이 혀가 갈라졌다는 것은 무엇일까? 바람같이 임한 오순절의 성신은 어찌된 일인가? 그러나 이것은 요 못난 것이 행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어떻게 향기가 나게 하며 이슬 같이 내리게 하며 바람같이 지나가며 불덩어리가 떨러지게 할 수 있을까? 이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나는 믿음으로 이를 겸손히 받는 것뿐이다. 나는 오직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성신 받음(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여 기운을 불며 가라사대 너희들은 성신을 받으라) 하시었다. 성신은 하늘로부터 받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기는 것인 로고 받아본 자 만이 아는 것이다. 이를 받아보지 못한 자는 알지도 못한다. 니고데모는 바리새 교인이요 유대의 관원이었다. 예수께서 육신의 병든 자를 고치시는 것을 보고 이는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것을 알았다. 오직 하느님의 독생자이신 것만 몰랐다.
그가 예수를 찾아 왔을 때에 예수께서 먼저 (중생하지 아니하면 하느님 나라를 보지 못 하나니라) 말씀하시매 그는 이 말을 알지 못하여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나겠습니까? 두 번 어미 뱃속에 들어갔다가 날수 있습니까?) 물었다. 다시 예수께서 물과 성신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 하나니라.) 말씀하시니 니고데모는 )어찌 일한 일이 있겠사옵나이까? 하였다. 저는 아직 육에 속한 사람이매 하늘에서부터 되어지는 일을 깨달지 못하였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그리스돌 전파하였다. 그러나 빌립은 복음만 전하고 그리스도의 이름만 전하여 많은 사람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성신의 도리는 가르치지 못하였음으로 교우들이 성신을 받지 못하였다. 후에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성신 받기를 기도하고 손을 안찰하매 그들도 다 즉시 성신을 받았다.
사도행전 18장 24절에 나타나는 아볼로라 하는 사람은 (학문이 많아 성경에 능한 자요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마음이 간절하여 예수의 일로 자세히 의론하여 가르치었다. 그러나 그도 성신을 알지 못하였다. 그가 예베소에서 여러 사람 앞에서 힘을 다하여 성경을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성신을 가르치지 못하였다. 후에 바울이 아볼로가 전도하던 에베소에 와서 두어 제자를 만나 성신을 받았느냐 물으니 그들은 (성신 주심을 듣지도 못하였노라) 고 대답하였다.
선생 되는 아볼로가 성신을 가르쳐 주지 못하였으니 제자 된 교인들이 어디 가서 성신의 도리를 배울 수가 있겠는가? 오늘날도 성신을 가르치지 못하는 목사와 교사들이 교우들은 성신이란 말은 자주 들었지만 성신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더구나 성신 받지 못한 교인은 굉장히 많다. 참으로 기막히는 일이다.
바울은 아직 성신 받지 못한 에베서 교인들을 위에 손을 안찰 하매 성신이 그 위에 임하였다. 이 성신은 받은 자 만이 아는 것이다. 받지 못한 사람은 성신의 일을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나니라. 또한 성신을 받은 자라야 다른 사람에게도 성신을 받게 할 수 있다. 자기가 받지 못한 성신을 어떻게 남에게 받게 할 수가 있겠는가? 성신은 불이다. 이 불은 받은 사람이 남에게 불을 줄 수가 있다. 제게 없는 불을 어떻게 남에게 주랴.
이 부흥회는 말만 듣는 부흥회가 아니라 성신 받는 부흥회다. 성신의 불을 받는 부흥회다. 불에도 두 가지 불이 있다. “열왕기 하 1장”에 엘리아를 잡으려 온 군사들을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불이 실뤄 죽이고 말았다. 이는 죽이는 불이다. 그러나 이 부흥회에 내리는 성신의 불은 살리는 불이다. 나는 죽이는 불을 내리게 하는 것 보다. 살리는 불을 내리게 하는 더 귀한 직분을 맡았다. 불이 내려 눈앞에서 번쩍거리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그 불이 속으로 들어가서 중심이 뜨겁게 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이 부흥회는 성신을 마시는 부흥회다.
(고전12:13) 우리가 유대 사람이나, 헬라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 하는 자나 다 한 성신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고 또 다 한 성신을 마시게 하셨나니라.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이다.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신을 받아 보지도 못한 사람이 성신의 교리를 암만 설명한댓자 이는 죽은 교리에 지나지 못한다. 이 육체는 그룻이라, 더러운 것을 담으면 더러운 그릇이 되고 보배가 담기면 보배로운 그릇이 되는 것이다.
그런한데 오늘날 소위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 눈에는 시기가 가득 차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담이 가득 차고 그 마음에 악독이 가득 찾으니 이 어찌 보배로운 그릇이라고 하겠는가? 이 육체는 집이다. 성신이 거하시면 성전이 되는 것이오. 마귀가 거하면 마귀의 집(伏魔殿)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 우리 신자들의 몸은 성전이라 했다. “너희가 하느님의 성전이 된 것이 하느님의 성신이 너희 안에 거하심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더럽게 하면 하느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또한 그러하니라.
너희 몸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신의 전 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 육체는 기계이다. 성신이 사 사용하면 성신의 기계가 되는 것이요, 마귀가 사용하면 마귀의 기계가 되는 것이다. 자 여러분의 육체를 다 생각하여 보라 입- 마귀가 욕을 하라 하면 욕이 쏟아져 나오고 저주를 하라 하면 저주가 쏟아져 나오고 거짓말, 모략. 중상 모든 악담이 그냥 쏟아져 나온다. 이 입이 성신의 기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분명 마귀의 기계이다.
눈도 성신이 쓰시면 눈에서 거룩한 비치 사랑의 빛이 흘러나올 터인데 모든 음란 한 빛 더러운 빛 탐욕의 빛이 흘러나오니 이는 그 눈이 마귀의 기계가 된 것이 아닌가? 신령한 눈만 열리면 사람들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볼 수가 있다 많은 사람의 눈에서는 지금도 사특 한 빛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마귀의 것이다. 다 환하게 바라보인다. 이러므로 더러운 죄악을 내 입, 내 마음, 내 속에 그득히 채워 놓고도 천당 가겠다는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하다.
그것을 그냥 두어두고 천당에 가지 못한다. 이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야 한다. 어떻게 씻는가? (고전 6:11) 우리들이 하느님의 신을 인하여 씻음과 거룩함과 의로움을 얻었느니라. (디도3:5) 중생의 씻음과 성신의 새롭게 하심을 말미암음이니, 성신 받음으로 모든 죄와 더러운 것을 씻는다.
성신은 죄를 태우기도 한다. “죄 태워 주실 성신 불 곧 강림하시사 이 추한 맘과 생각을 다 태워 줍소서” 성신은 중심의 죄와 악독을 태우는 고로 이 부흥회에는 죄를 태우는 냄새가 화장터에서 송장 태우는 냄새와 같이 퍼져 나간다. 다 토로 이 냄새를 맡을 것이다. 이 성신의 일을 받지 안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이 받지 안는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당파를 짓는 자들은 성신 없는 자들이다. (유다서9) 이는 곧 당을 짓는 자며 혼은 있고 성신은 없는 자니라
오늘날 대한 교회에는 일본시대에 일본에 붙어서 교인들을 억지로 끌고 신사 참배 다니고 예배당 팔아먹고 충성된 성도들을 경찰에 밀고하여 고생시키던 친일파 목사들이 그냥 그대로 세력을 차지하고, 또 공산군에 아부하여 교도연맹을 조직하여 가지고 세를 부리던 목사들과 이북에서 진실한 목사들은 공산당과 투쟁하다가 순교를 한다. 잡혀간다. 하는 판에 기독교연맹을 조직한다. 김일성 만세를 부른다하던 목사님들이 월남하여 가지고 근신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빛이 없이 교회 안에서 하는 노릇은 감투싸움질이다.
성신을 받게 하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롬 8:13) 대개 너희들이 육신을 쫓아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요, 오직 성신으로서 육신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고후 3:6) 의문은 죽는 것이요, 성신은 살리는 것이라. 우리의 맡은바 직분은 모세의 직분보다 더 크고 귀하다. 모세의 직분은 죽이는 의문을 맡은 것이요 우리는 살게 하는 성신의 은사를 맡은 것이다. 죄를 정하는 직분도 영광이 있었거든 하물며 죄를 없이하는 직분 이리오. 나는 모든 사람이 성신 받아 성신의 쓰시는 기계가 되게 하려고 힘쓴다. 가는 곳마다 이 성신의 역사는 일어난다. 지금은 악의 세력이 점점 꺽이우고 의의 세력이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10월말까지 이 땅에 악의 세력은 꺽이우고 만다.
점점 죄를 짓기 무서워하기를 시작한다. 교회 안에서도 교인들이 이제는 성신 받은 목자와 성신 받지 못한 목자들을 분간 할 줄 알게 되었다. 성신 받은 목자에게서는 은혜가 쏟아지지 마는 성신 받지 못한 목자에게서는 쏟아지는 은혜가 없으며 심령이 갑갑하여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성신 받은 목사가 인도하는 교회에는 뭇 영혼들이 모여들지만 성신 받지 못한 목사는 교회에는 교우가 하나씩 둘씩 흩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7. 주의 보혈을 받는 경험
공산군은 물러가고 국군이 서울에 들어 왔다. 그러나 동란 후에도 예금도 못 찾고 공장도 쉬고 나는 할 수없이 수색 역전에 조그만 발동기를 놓고 작은 정미소를 차려 놓았다 벼를 찧으려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 식구들의 먹을 것은 넉넉히 벌었다. 11월이 되니 평양과 해주, 등지에서 피란 민들이 밀려오는데 나는 내 힘이 자라는 대로 그들로 더불어 조금씩 양식을 나누어 먹었다. 12월 3일 나는 공산군이 다시 밀려 올 묵시를 받았다. 쏘련의 붉은 기빨이 하늘을 뒤덮듯이 쭉 펼쳐지었는데 (再來)다시 온다. 는 글자가 크게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과연 공산군은 다시 밀려오고 중공군이 따라 나왔다. 일은 더 크게 벌어졌다. 나는 속히 피난을 가야 하겠는데 이번에도 속히 떠날 수가 없다. 나는 동경 고학시절과 6>25 때에 굶어 본 경험이 많은 고로 배 고푼 사정을 잘 아는데 배고파하는 피난민들을 버리고 나 혼자 달아날 수가 없었다. 그런고로 나는 끝까지 있다가 최후에 피난하기로 작정하였다. 목사님은 먼저 교회를 버리고 달아났다. 전도사가 남아있어 나와 함께 교우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 날 우리 식구와 전도사도 다 같이 떠나서 한강 얼음 위를 건넜다. 전도사는 이불을 지고 팔십이 가까운 조부님을 걸으시고 나는 자전거에 쌀 두말과 의복을 꿍져서 싣고 그 위에 어린아이들을 태우니 일백 오십근이나 되는 것을 끌고 피난길을 떠났다. 지옥길, 지옥길 그때 우리 걸어가던 피난 길이 지옥길이 었다. 人山 人海 로 길이 메어 나가는데 짐이 없는 사람들은 밭고랑으로 길에는 자전거 마차 리야카가 겹겹히 밀리고 아버니, 엄마, 아들, 딸, 남편, 아내가 서로 아우성 치고 찾고 울며 허둥지둥 먼지가 자욱한 죽음의 길이 었다.
그 중에 저만 살겠다고 어린 아기를 나무 가지에 걸어 놓고 혼자 달아나는 어머니도 있었다. 우리는 이 지옥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나가다가 이틀 날 길거리에 방한 칸을 빌려서 언 밥을 데워먹으며 내 아내가 걱정을 하였다. 우리 가진 것이 쌀 두말 돈 4만8천환 뿐이니 이걸 가지고 우리 아홉 식구가 몇 날이나 살겠소 하였다. 우리와 동행하던 전도사는 아마 우리가 돈을 굉장이 많이 가지고 가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내 아내의 말을 듣고는 슬그머니 도망을 치고 말았다. 일행 아홉 식구라야 팔십 된 조부가 계시고 연약한 내 아내가 있고 그 밖에는 어린애들뿐이다. 그런데 우리를 좀 도와주던 전도사는 우리를 버리고 혼자 도망하였다. 우리 물건까지 짊어진 채로 달아났다. 그때 나의 실망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전도사는 나를 버리고 달아났어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계시었다. 그때 우리가 밀려 나가다가 마침 화물차가 달린 기차 하나를 만났는데 이제 오래지 안아서 떠난다 함으로 모두 그 위에 올라탔다. 우리 식구도 죽을힘을 다해 세길이나 되는 화물차 위에 오르고 일백오십근이나 짐을 실은 자전차 까지 겨우 겨우 그 위로 끌어 올이었다. 화물차꼭대기에는 사람이 개미떼처럼 엉키어 거기서도 서로 밀고 당기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 역시 지옥이다.
그러나 기차는 기다리고 기다려도 떠나지 않는다. 하루를 지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미군들이 와서 모두 다 내리라고 야단이다. 막 몽둥이로 후려갈기면서 다 내려 쫓는다. 모두 제각기 뛰어내리지만 세길이넘는 이 꼭대기에서 팔십되는 조부와 어린아이들 올려 놓을 때에도 죽을 힘이 들었지만 이제 갑자기 내리기는 더 큰일이다. 남들은 다 내려서 달라나는데 우리 식구만 내리지 못하고 어찌 할 바를 모르는데 난데없는 청년 하나가 나타나서 키가 어찌 큰지 세길 되는 화물차꼭대기에 있는 우리 식구들을 하나씩 하나씩 쉽게 다 내려놓고는 없어졌다. 그는 천사였다. 사람은 아니었다.
최후로 나만 남았는데 일백오십근 되는 짐을 실은 자전차를 끼고 세길 되는 화물차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는데 아무 지장 없이 곱다랗게 땅위에 내려섰다. 자전차도 고대로 땅위에 내려섰다. 오 이는 하느님이 붙들어 주심이다. 그뿐 아니다. 우리가 화물차에서 내려 백오십메터 가량 전진하였을 때 꽝 하더니 그 화물차에 폭탄이 떨어져서 산산이 부스러졌다. 조그만 더 지체하였다면 우리식구는 거기서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또 그 화물차 앞 차량에는 전부 군수품을 실었는데 거기 실었던 폭탄이 튀기 시작하여 그 근방은 불바다를 이루고 파편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길에 있던 피난민들이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지고 땅바닥에는 피가 튀는데 우리 식구는 그 파편의 소내기와 넘어지는 송장 틈으로 지나갔지만 어린 아기 털끝하나 상하지 않았다.
여호와의 보호하여 주심을 나는 믿는다. 물결처럼 흔들거리는 피난민의 길은 아무리 밀고 떠밀면서 나가도 하루에 15리 이상 더 전진하지 못한다. 우리는 가고 가다가 평택을 벗어나지 못하고 한 동리에서 짐을 내리었다. 우리는 다니엘의 사자굴속 생활 같은 생활을 거기서 했다. 다행이 그 동네는 우익들만 사는 동네이므로 우리를 잘 숨겨 주었다. (전신불수가 완치되다. 사진) 그 주위에 있는 다른 동네에는 전부 인민군이 주둔하였지만 나 있던 그 동네만 인민군이 들어오지도 아니하고 남겨 두었다.
나는 이 평택 피난 생활 중에서 여러 가지 신령한 경험을 얻었다. 우리는 그 촌락의 믿는 사람의 집 한방을 얻고 임시로 살림을 차리었다. 가지고 간 돈이 적으니 좁쌀을 몇 말 사다가 멀건 밈을 쑤어서 우리 아홉 식구가 조금씩 마시고 나면 한 그릇이 남는다. 이 한 그릇을 가운데 놓고 나와 아내는 당신 먼저 좀 마시오 아니오 나는 배 불러요 당신은 아들 데리고 고생하기에 배가 오직 고프겠소 당신 먼저 마시고 그러면서 밈 한 그릇이 서너 번 왔다 갔다 한다. 그러노라면 곁에 있는 아기들이 그럼 나 먹겠다 하고 흘 딱 마셔 버린다.
건너 방에는 김포에서 온 장로의 딸 한 가정이 들었는데 그들은 쌀을 마차로 실어다. 놓고 돈을 얼마나 가지고 왔는지 매일 소갈비를 사다가 구워먹고 삶아먹고 한다. 그때 소고기 값이 참 헐하였다. 우리 식구들은 그 맛있는 소고기 냄새 김이 나는 쌀밥 냄새에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이따금 방싯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보면 밥그릇이 나까리 처럼 높고 고기를 굽고 하는 것이 보인다. 나도 이따금 침을 삼키었다. 그러나 그들은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서 배가 고파 안타까워하는 우리아이들이 날마다 배가 고프다고 우는데 밥한 숟갈 주지 아니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 가정은 그 밥상을 물리기도 전에 구라파 전쟁이 일어나 왱 그랑 소리가 나고 하루 십여 차레나 후두락, 후두락 소리가 난다. 그 집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는 이 평택 피난생활 중에 또 한가지 피가 바뀌는 경험을 하였다. 배는 고프고 육체는 극히 쇠약하여 졌는데 하루는 소변을 보다가 피가 흘러내린다. 나는 놀랐다. 너무 많은 피가 흘러내림으로 더욱 놀랐었다. 의학상으로 보면 신장염 아주 중증이라야 이렇게 되는데 이는 꼭 죽는 병이다. 그러나 나는 죽음에 대하여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매 두려워 할 것이 없고 죽더라도 하늘 아버지 집에서 영원히 살 것이매 두려울 것이 없었다.
만일 병으로 피가 쏟아진다면 피가 빠질수록 몸이 약하여 질 터인데 네 번 다섯 번 열번 스무번 이십여회나 피를 쏟았다. 전신의 피의 이 삼배나 되는 분량의 피를 쏟았는데도 힘은 점점 더 왕성하여 졌다. 그 뿐아니라 피가 나올수록 강한 생수가 마시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피가 다 빠져 아오니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전신이 시원하고 상쾌함이 오는 것이었다. 그때 시원함이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었다. 더운 여름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생물을 만나서 생수를 실컷 마시고 몸까지 풍덩 샘물에 뛰어드는 것보다 더 시원하였다.
그때까지 나는 신령한 눈이 뜨이지 못하여 낮에는 주님의 나타나심을 보지 못하였다. 밤에 나타나시는 주님을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피가 빠져나간 후 때가 낮인데 주님께서 나타나시었다. 가시관을 쓰시고 손에 못 자욱이 분명하여 거기서 피 흐르는 주님 옆구리에서 막 피가 쏟아지는 주님 발에서도 피가 흐르는 주님이 나타나시었다. 피 흘리시는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피를 마시라 하시며 그 피를 내 입에 넣어 주시어서 내 심장 속에 정하고 정한 주님의 보혈을 흘려들여 주셨다. 이는 물론 환상이다. 나는 그의 피를 한없이 마시었다.
그후부터는 내 사정이 주님의 사정 같고 주님의 사정이 내 사정 같아져서 보혈 흘려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적마다 늘 눈물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또한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을 드려 주를 섬기려고 결심 한 것이다. 주의 보혈이 이루어진 이후로는 내가 무엇이든지 구하면 아버지께서 다 시행하신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이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영생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느니라 이 말씀 그대로 나는 주의 피를 마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를 내 몸에만 부어진 것이 아니다. 요 못난 것을 통하여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 들어가는 역사는 얼마든지 일어난 것이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 후로부터 이상한 일이 생겨났다. 평택에 내가 임시로 얻어 살고 있는 집 앞방에 있던 김포 장로님 딸의 가정에는 본래부터 폐병을 알는 아들 하나가 있었다 병세가 점점 중하게 되어 마침내 죽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라파 전쟁을 하면서 사는 이 부부도 아들이 죽게 되니까 마음이 감동되었는지 평시에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던 우리 방으로 건너와서 아이가 죽게 되었으니 죽기 전에 예배나 한번 보아 달라는 것이다.
변화하기 전의 마음 같으면 내 어린것들이 매일 배가 고파 우는데 밥을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서 우는 아이에게 밥한 술 주지 않던 당신네 아들이 죽고 사는 것이 내게 상관이 무어요, 하였을 것이나 나는 즉시 그 아들을 내 방으로 가져가 누이고 예배를 보기 시작하였다. 폐병은 죽을 때에 모든 독한 균이 밖으로 나오는 것인데 영양 불양으로 극도로 쇠약한 우리 어린것들 곁에 환자를 가져오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고 그 아이를 위하여 찬미하고 기도하기를 시작하였다.
기도는 평범하였다 이제 방금 죽을 아이니까 그저 하느님께서 평안히 그의 영혼을 거두어 달라는 의미의 기도였다. 그리고 주기도로 예배를 마치려 하는데 나에게 너 디시 한번 더 기도하여 보아라, 하는 명령이 내리었다. 다시 기도를 하게 되면 무슨 기도를 할 것 이가? 이제는 다시 살게 하여 달라고 기도해 볼까 하고 병이 낫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기도할수록 힘이 생긴다. 마지막에는 이 아이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 는 자신이 생긴다.
그래서 일심 정력을 다하여 기도하였다. 눈을 다 뒤 솟고 입술이 다 마르고 얼굴이 백지 장 같이 되고 호흡이 다 끊어졌던 아이가 점점 얼굴에 혈색이 돌고 눈이 바로 서고 끊어졌던 호흡을 다시 하게 되고 이 다 죽었던 아이가 다시 살아 일어났다. 그 부모들도 이 놀라운 기적을 보고는 나무나 놀랍고 기뻐서 미칠 듯 하였다. 그 아이는 즉시 튼튼한 아이가 되었다.
나는 평택 생활 중에 이 보다 더 큰일을 경험하였다.
내가 피난하였던 동네에서 오리 가량되는 촌락에는 중공군 오천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중공군이 한번도 나 있는 동네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는 하느님의 보호하심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유엔 비행기가 중공군 있는 촌락을 폭격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중공군 오천명은 우리가 있는 뒷산 솥밭 속에서 숨어 있었다 그런데 해가 떨어지자 대장이 한번 호령을 하니까 오천명 중공군이 전부 우리 동리로 쏟아져 내려온다. 선봉대는 바로 옆집까지 달여왔다. 그때 나는 가멜 산상에 엘리아의 기도를 생각하였다
그래서 엘리아의 심정으로 주여 이 중공군으로 하여금 물러가게 하옵소서 기도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이루어 주시었다. 즉시 이루어 주시었다. 중공군은 우리 동네를 향하여 물결처럼 밀리어 오다가 갑자기 그 대장이 무슨 큰 소리로 호령을 하니까 오천명 중공군은 일시에 발걸음을 돌리켜 다시 산으로 돌라가 버리고 말았다. 하느님께서 한번 호령하시면 억만 대병도 물러 가게 되는 것이다. 선지 엘리사는 많은 군대로 하여금 소경이 되게 한 것이다.
의인의 수를 채우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맡겨주신 의인의 수가 채워진 다음에는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중공군 쏘련군 다음에는 인민군 다 요 못난 것이 기도에 의하여 물러갈 것이다. 유엔군의 실력에 의하여 물러갈 것이 아니라 요 못난 것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에 의하여 물러갈 것이다. 나는 어서 속히 나에게 맡겨주신 의인의 숫자가 채워지기만 바란다. 그런고로 나는 그 숫자를 채우기 위하여 가는 곳마다 이렇게 기를 쓰는 것이다. 보라 장차 나의 손만 펴면 몇 백만의 공산군이 쓰러진다.
8. 안찰(按擦) 함으로 병이 나음
성신의 불을 받은 후 7년을 지나서 나는 다시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작년 3월 밤에 나는 자리에 누었는데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로부터 환한 빛이 내려 내 몸을 뒤덮었다. 야곱은 돌 벼개를 베고 자다가 꿈에 땅으로부터 하늘에 닿는 사다리 위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꿈도 아니었다. 내 눈으로 보았다. 내 위에 열린 하늘 문은 3일간 계속하여 열린 채로 있었다. 3일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었다. 너는 나가서 나의 명하는 것을 행하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명령을 받고 일하기를 시작하였다.
그때 내게 맡기신 것은 주의 이름을 병을 고치는 것 뿐이요, 강단에 나서는 것은 금년 정월부터다. 나는 하늘 문이 열리었던 자리 하느님께서 음성을 내게 들리신 그 자리에 옛날 야곱이 꿈을 꾸고 일어나서 누었던 그 자리에 돌비를 세운 것처럼 나도 장차 한 기념탑을 지으려고 생각한다. 주의 명령을 듣고 주의 일을 시작한 후부터는 놀라운 일이 자꾸 일어난다.
하루는 상이군인 한사람이 왔다. 문 앞에서 지팡이를 집고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며 돈을 좀 달라는 한다. 나는 돈을 한 백환 주려고 하다가 그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 폐병 알는 이가 아니요? 그는 자기 병을 숨긴다. 대개 폐병 들린 사람은 남이 싫어하는 것을 아는 고로 자기 병을 숨긴다. 그러나 그는 방금 또 목이 칼락, 칼갈 하더니 입으로 핏덩이가 나온다. 나는 전에는 친구가 폐병을 알는 데도 방문을 할 때에는 입에 소독 마스크를 하고야 방문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그 청년더러 당신 돈 한 백환 준댓자 어디 가서 쓰러질는지 모르니 근본문제를 해결합시다. 하고 그 청년을 방으로 끌어들이었다. 그리고 그를 방에 눕히고 안찰을 시작하였다. 다 죽어 가는 그 청년에게 손을 안찰 하매 죽겠다고 야단치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냥 안찰을 계속하니 얼마 후에 그의 모든 교통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의 손을 통하여 주의 보혈이 그에게 흘러들어서 피가 통하기 시작하였다 얼음장 같이 차던 손과 발이 더워지고 창백하던 얼굴에 붉은 혈색이 통하고 말랐던 입술에도 윤택한 빛이 난다. 나는 더욱 열심히 기도하여 안찰 하였다.
그는 기운을 차려 일어났다. 그는 내 아내가 차려 주는 밥을 그 자리에서 한 그릇 다 먹고 짚고 왔던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제 발로 성큼성큼 힘차게 걸어 갔다. 나는 그에게 내일 다시 한번 오라고 부탁하고 보냈다. 이틀 날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몇 날을 두고 다시 올까 하고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한달 후에 내 아내만 있을 때 그 청년이 찾아 왔다. 그의 말을 듣건대 그날 당장에 그는 완쾌하여져서 말할 수 없이 기뻐하였다. 그러나 이 세상 현실문제란 참으로 잔인한 것이었다.
그가 병들었을 때는 비틀거리면서라도 이집, 저집 가서 구걸을 하면 그래도 돈푼을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 몸이 건강해지고 보니 벌어먹을 길이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지개를 하나 사 가지고 싹짐을 져서 벌어먹고 사노라고 다시 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대구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인사의 말씀이라도 드리려 왔노라고 하면서 무한히 감사한 뜻을 표하였다.
안찰과 권능
내가 손을 안찰함으로 그 사람의 속의 죄가 무너져 나가서 병이 낫고 여려가지 권능이 나타난다. 내가 손을 안찰 할 때 안찰을 받는 사람은 몹시 아파한다. 손을 가만히 대기만 해도 어떤 사람은 너무 아파서 죽으려고 한다. 대 수술을 해본 사람은 개복수술을 할 때보다 더 아프다고 한다. 부인들은 애기 셋을 한꺼번에 낳는 것만큼 아프다고 한다. 아픈 것은 그 속에 죄의 근거가 있는 까닭이다. 내가 손을 대면 그 속에 죄의 근거가 내 손을 대항함으로 충돌이 생겨서 아픈 것이다.
그런고로 나는 손을 대면 그 속에 무슨 죄가 있는지 알게 된다. 존경하는 목사님들 중에도 간음죄 같은 무서운 죄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랜다. 숨길 수가 없다. 그러나 손을 안찰 하면 처음에는 죄의 근거가 내 손을 대항하다가도 얼마동안 안찰 하면 그것이 다 무너져나가 는 것이다. 그런고로 처음에는 몹시 아프다가도 점점 시원하여지는 것이다. 내가 안찰하는 도수를 따라 접점 더 시원하여지는 것이다. 그 동안나에게 안찰을 받은 사람이 여러 천명되고 목사님들만도 사오백명 된다.
병은 왜 생기는가?
병이 생기는 것도 죄 때문에 생겨난다. 그런고로 속에 있는 죄의 근거가 무너져나가면 병도 낫는다 죄의 근거가 무너져나가면 병이 숨어 있을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죄는 병이 숨어 있기에 가장 적당한 곳이다. 그러나 내가 안찰 함으로 속에 있는 죄의 근거가 무너져 나가고 병이 낫는 것도 요 못난 것이 행하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 계신 주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것이다. 안찰 함으로 병이 낫는 또 한가지 이치는 병자의 모든 고통과 병의 근원이 이 손을 통하여 주님께로 돌아가고 주님께로부터 새로운 보혈이 그 병자에게 흘러들어 새 힘을 주고 새 생명을 주시는 까닭이다.
가령 심장병이 있는 사람에게 손을 안찰 하면 그 심장병의 고통과 악독한 병이 근원이 다 나의 손을 통하여 나의 심장에 들어오고 다시 그 고통과 병의 근원 주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주님에게서 흐르는 생명의 보혈이 내 심장과 내 손을 통하여 그 병자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하여 그는 새 생명의 힘을 얻어서 병이 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찰 하여 병을 고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안찰 하여 병을 고쳐본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 사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내가 경영하는 공장에는 일백사십명 가량 모일 수 있는 기도회실을 짓고 내 공장에서 일하는 직공들을 데리고 매일 아침 기도회를 보았다. 처음에는 기도회에 출석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나 점점 수가 늘어갔다. 나는 이전과 같이 새벽 기도회를 필한 후에 병자가 있으면 안찰을 하는데 안찰 하면 병이 낫고 병이 낫는 대로 점점 많은 병자가 몰려 왔다.
그런데 아침에 공장에 모여든 수많은 병자들을 일일이 안찰 하고 나면 밖에는 나를 실러 온 자동차들이 여러 대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는 장관들이 보낸 자들도 있다. 이 자동차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저마다 자기 차를 타라고 한다. 그러나 순서를 어길 수 없음으로 제일 먼저 온 차를 타고 가면 다른 차들은 뒤를 따라 오는데 마치 결혼식 자동차 행렬처럼 행렬을 지어 따라 온다. 그래서 순서를 따라 다음 차로, 다음 차로 온 장안을 동서남북으로 달리며 한집, 두집, 세집 하루 종일 돌아다닌다.
어떤 날은 온종일 한끼도 못 먹고 굶는 수도 있다. 좀 일찍 간 집은 다음 집에 가서 먹겠지 좀 늦게 간 집은 전집에서 먹었겠지, 하고 바쁜 사람을 붙들기는 미안하니까 그냥 돌려보낸다. 이리하여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굶게 되는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배고프다는 생각도 없고 오직 이 서울 장안 병마를 소탕시켜 보겠다는 일념으로 동분서주하였다.
그러다가 저녁에 돌아오면 공장 기도 회의실에는 또 한자가 충만하여 나의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들을 저녁 교통통행시간 전으로 돌려보내기 위하여 저녁을 먹을 사이도 없이 그들에게 안찰을 시작한다. 겨우 교통금지시간 전 까지 그들을 다 안찰 하여 돌려보내고 나면 그때에야 저녁상을 대하게 된다. 그러나 너무 피곤하여 먹을 수가 없다.
아침 4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매일매일 적어도 이백명은 안찰 하게 된다. 이 이백명 병든 자들의 고통은 다 한번씩 나의 손과 몸을 통하였다가 살아지니 그 고통이 내 몸을 지나 갈 때에 받는 고통이란 당하는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지금 국방장관 손 월일씨의 부인도 병 고치는 능력을 받으셨는데 그가 안찰하여 전신불수병자 한 사람을 고치고는 사흘을 알아 누었었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몇 달을 지나고 보니 20관 4백 몸에 되던 나의 체중이 18관으로 줄어들었다.
나는 이 일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한번은 주님에게 물었다 주님이여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나이까 참으로 견디기 어렵사옵 나이다. 하였다 그때 내 앞에 가시관을 쓰신 주님이 나타나시었다. 손과 발에 못 박히신 주님 이마에 피가 흘러내리시는 주님 창에 옆구리가 상하신 주님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주님이 내 앞에 나타나시었다 그는 나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를 위하여 십자가를 졌다 영 죽을 너를 위하여 영원히 불 탈 너를 위하여 피 흘렸다 이제는 너를 살려준 은혜를 깨닫지 못하느냐,
네가 병자를 안찰할때 네게 고통이 오지 안더냐 그러나 즉시 그 고통이 사라지고 다시 시원함이 오지 않더냐 그 모든 고통을 모두 다 나에게로 오는 것이다. 네게는 잠깐 통과 할뿐이다. 그런데 나는 한 사람에게로부터 오는 고통 뿐이 아니고 온 천하 만백성의 고통이 다 나에게로 몰려오니 나의 당하는 고통은 어떠하겠느냐 나는 이 말씀을 듣고 주님이시어 나는 어려서 깨닫지 못하였나이다 하고 한시간 반 동안이나 울었다 그
다음에는 나에게 어떤 고통이 임하든지 내 입에서는 다시 왜 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의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안찰을 하게 된다. 어떤 집회에는 한꺼번에 2만명 이상을 안찰 하며 돌아가게 된다 그 많은 사람의 머리에 내 손이 부딪칠 적마다 그 삶에게 잇는 고통은 나에게 감촉된다. 그 뿐 아니라 수많은 군중을 헤치며 그 사이로 자나가면 안찰 하노라면 다리를 잡아당기고 옷을 붙들고 해서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다 내 발은 마치 진흙 구덩이에 빠진 것 같다 겨우겨우 빠지지 않는 발을 뽑아 나가노라면 그만 기운이다 풀리고 만다.
그러나 내 손이 그의 머리에 부딛치는 그 순간 순간에도 그의 고통은 나를 통하여 주님에게로 가고 주님의 생명의 보혈은 그에게 흘러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이 병이 낫는 것이다. 나는 주님의 피가 내 생명 속에 들어온 후에는 내가 괴로우면 주님만 바라본다. 그리하면 나의 모든 고통이 물러간다. 이따금 심장이 멎지만 주께서 다시 힘을 주신다. 사람의 손을 통하여 성신을 부어 주시는 일은 성경에 가르친 것이다. 사도가 손으로 무리에게 안찰하매 즉시 성신을 받는지라 (행9:17)
바울이 그 위에 손을 안찰 하매 성신이 그 위에 임하여 각국방언도 하고 예언도하니(행19:6) 하느님은 무슨 일이든지 하실 때에 사람을 통하여 행하신다. 그런고로 순종하고 성신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이 쓰시는 좋은 기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모든 지체도 다 하느님이 쓰시는 좋은 기계이다. 입도 그러하고 눈도 그러하다. 모든 선지자들의 입은 하느님의 말씀이 통하여 나오는 기계였다. 손은 더욱 그러하다. 모세가 손을 들면 아말렉이 패하였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다시 쳐들어 왔다. 하느님의 능력은 모세의 손을 통하여 흘러 가간 것이다. 그런고로 사도들이 손으로 안찰 할 때 성신이 내리었고 손으로 안찰 할 때 병이 나았다.
요 못난 것도 이 손을 통하여 하느님의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본다. 이 손으로 안찰 할 때 성신의 능력이 통함으로 그 중심의 죄악이 무너지고 그의 병도 낫는 것이다. 병균은 마귀의 무기이다. 심령의 병이 나으면 육체의 병도 낫는 것이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병이 붙어 있을 곳이 없어진다. 그래서 병이 낫는 것이다. 그런고로 선결문제는 사람의 심령이 변화하는 것이다. (팔이 펴져서 간증함 사진, 죽음에 이르렀다가 안수로 소생한 소년 사진)
연보를 권함
하느님은 복을 주기도 하시고 화를 주시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 화를 주시는가? 구약 여러 곳에 이를 많이 말하였다. (말라기에는 하느님께 실일조를 드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였다.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시었다. 이렇게 귀한 말씀을 믿지 않고 썩을 것에 속하여 십일조를 드리기 싫어하니 참으로 가련한 백성들이다. 이 나라에 외국서 원조는 오지만 해마다 더 가난해지고 남마다 더 못살게만 되는 것은 이 귀한 말씀을 지키지 않는 까닭이다.
나에게는 아들이 셋이요, 큰딸 하나 작은 딸 하나 합하여 자녀가 다섯이다. 전에 아들 셋만 있을 때 세 아이를 시험해 보았다. 세 아이들에게 다 과자 한 봉지씩을 주고 “맏아이에게 {너 나 과자 좀 줄래?} 하면 마지못하여 서너 개 집어준다.” “둘째 아이는 생기기는 매주덩이 처럼 생겼는데 {너 나 과자 좀 줄래?} 그러면 과자 봉지 채 집어 주면 먹으라고 한다.” “셋째는 아주 인색한데 {너 나 과자 좀 줄래?} 하면 안 줘 하고 과자를 감춘다.” 여러분 내가 과자가 먹고싶어 어린것에게 과자를 달라겠는가? 그 아이의 마음을 보자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과자봉지 채 집어 주는 그 아이는 귀여워서 더 줄 마음이 생기고 안주겠다고 야단치는 아이는 아무래도 섭섭하다. 누구나 다 그럴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 하셨거늘 무엇이 없어서 여러분에게 달라고 하겠는가? 여기 양장하고 온 부인들 날 때 그런 양장 가지고 나왔는가? 안경 쓴 이들 안경들 가지고 나왔는가? 금가락지 금반지 다 가지고 나왔는가? 모든 것이 다 아버지의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것으로 풍성히 쓴다. 옷과 쌀, 집, 물, 내리는 비, 마시는 공기 하느님께서 잠깐만 거두어도 우리 인생은 살지 못한다.
에디슨은 가장 위대한 발명가로 3천 여종의 발명을 하였다. 그는 진실한 크리스찬으로 인생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발명하였고 해가 되는 것은 하나도 발명하지 않았다 그는 연구실에 들어가면 하느님으로부터 영교(靈交)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연구한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3천 여의 발명을 하였지만 하느님의 주신 원소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물 한 방울도 만들어 낼 수 없다 나의 모든 발명은 다 하늘에서 온 것이다 하였다.
빠리, 빠리 아는 사람들은 자기 적은 지식을 믿고 하느님을 배척한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하느님을 경외하게 된다. 에디슨의 임종이 가까 왔을 때 헤느리 포드씨가 방문을 와서 선생이 발명 한 모든 것 중에 어느 것이 발명하기 가장 어려웠고 또 가장 귀한 것입니까? 물었다. 에디슨씨는 축음기를 가리키면서 축음기를 발명하기가 제일 어려웠다. 고 하였다. 축음기는 사람의 머리를 해부하는데서 발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가 갈 인생인 것을 깨달은 미국 사람들은 아버지의 신체라도 인생에게 유익 될 일이라면 연구재료로 내주라고 내어 맡긴다. 에디슨은 이 귀중한 연구재료를 받아 가지고 사람의 두부를 쪼개고 확대경으로 뇌수를 검사해보니 지식이 많은 사람은 뇌수 끝까지 가는 혈관이 들어가서 머리털 뭉치와 같이 엉키었고 무지한 야만인들의 뇌수는 묵사발과 같고 혈관이 퍼져나간 것이 없다 또한 뇌수에 감긴 혈관이 굵은 것 가는 것이 있는데 이는 음파의 고저를 따라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의 뇌수를 보고 레코드판을 생각한 것이다. 또 사람 목의 성대를 움직이게 된 것을 축음기 속에도 바람을 내어 보내는 장치를 하였다. 이 축음기의 발명이 가장 어려웠고 또한 제일 귀한 발명이라고 하였다. 에디슨은 계속하여 말하기를 그러나 나는 그 보다 더 큰 발명을 하고 가노라 나는 이 썩을 세상에서 나의 임무를 완수하고 저 보이는 하늘나라로 가노라 이것이 나의3천 여의 발명보다 더 큰 발명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위대한 과학자도 진실은 원소 한 개도 만들어 내지는 못한 것이다. 오직 이 모든 것이 다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 인줄을 알았을 따름이었다 이렇게 풍부하신 하느님께서 무엇이 없어서 우리에게 달라고 하시겠는가? 이는 우리가 하느님을 위하는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물질의 은혜와 신령한 은혜로 더 주시려 하는 까닭이다. 요 못난 것이 물질을 바침으로 축복 받은 것을 좀 말하려고 한다.
내가 동경서 주머니에 남아 잇는3원60전을 전부 하느님께 드리고 사흘을 굶었는데 그후부터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살길을 열어주시고 큰 공장도 경영하게 하여 주시었다. 전쟁 말기에 동경에 폭격이 심한 고로 나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나와서 오래지 아니하여 8.15 해방을 맞이하였다. 나는 하늘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다가 동경서 가지고 나온 재산을 홀딱 다 빼앗겼다가 후에 다시 찾은 일이 있다.
그때 나는 남대문 교회에 다녔는데 남대문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고 마지막에 예배당 건축을 위하여 연보를 하게 되었다. 그때에 나는 하늘로부터 3천원을 바치어라 는 전보를 받았다. 그때 광목 한 필에 95원이니 3천원 이면 광목 30필 값에 해당한 돈이다. 하느님께 받은 재물을 하느님에게 바치는 것이 무엇이 아깝겠는가? 그러나 그때 나는 광목 30필이 너무 많아 보여서 그 절반 15필 값 1500원을 드리기로 약속하였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내 믿음을 시험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절반을 에누리하였다 이는 내 마음이 벌써 하느님을 멀리 하기를 시작한 것이다. 하느님을 멀리하매 물질도 점점 빠져나가서 마지막에는 여지없는 구렁텅이에 떨어졌다. 하느님을 떠난 내 마음에는 교만이 생기었다. 동양에서 제일 큰 도시 동경에서 각색 경험을 다한 내가 이제 무슨 일에 성공하지 못하겠는가? 그리고 무슨 착수할 사업이나 없나 하고 사방을 다녀 모았다.
한번 화신 백화점에를 가서보니 청년들이 모두 넥타이를 찾는데 서울에는 넥타이가 없다. 나는 이것을 보고 즉시 미싱 다섯 대를 사고 또 거리에 나가서 일본사람들의 허리띠 오비 기질을 보는 대로 다 사들이었다 그리고 여직공 30여명을 모집하여 밤낮 계속하여 넥타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넥타이는 빌빌 꼬여서 팔 수 없는 넥타이가 되었다 후에 들으니 넥타이는 상당한 기술자도 재단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되는대로 잘라 놓은 넥타이가 바로 될 리가 없다. 그리하여 넥타이공장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만들었던 넥타이는 근처 집에 허리띠나 하라고 돌라 주었다.
나는 미싱과 기타 도구를 전부 팔아보니 3만원을 거두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내가 하느님을 멀리하는 것을 보시고 내게 돈을 주면 음란 방탕 죄에 빠질까봐서 나를 지옥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나의 재물을 흩어 버리신 것이다. 세상으로 향하는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행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나는 그 때라도 하느님의 명령하시었던 3000원을 그대로 드리고 2만7천원을 가지고 다른 사업을 시작 하였더면 성공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여전히 어두워서 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3만원을 그냥 손에 들고 또 사업을 시작하였다가 그만 십년 감수를 하였다.
나는 다시 화원시장에를 가서 보니 한 전라도 빗장수가 소뿔로 빗을 만드는데 이 소뿔 빗을 얻어 사기를 위하여 청년들이 줄을 지어 서서 기다리고 있다. 즉시 가서 소뿔 빗을 만들어내면 큰돈을 모을 것이라 생각하고 일본 빗 만드는 기계를 설치하는 동시에 서울 인천 수원 등지로 돌아다니면 소뿔이란 소뿔을 모조리 사서 태산같이 쌓아 놓고 기계로 뿔빗을 만들어 내니 매일 이천개 이상 생산고를 낼 수가 있었다. 한 개에 순이익 삼원만 쳐도 큰돈이다.
그러나 이도 한 꿈이었다. 뿔로 만든 빗은 쩍찌가 일어나서 쓸 수가 없는데 벌써 일본으로부터 셰루로이드로 만든 좋은 빗이 나와서 한 개에 십오원씩 팔린다. 우리 공장에서 만든 뿔빗은 거져 준대도 가져갈 사람이 없다. 나는 이 뿔빗 노름에 십년 감수를 하였다. 그 때에 내 나이 29세인데 보는 사람마다. 40세는 넘었으리라고 하였다. 나는 할 수없이 뿔 빗 만드는 시설 전부를 청산하고 3만원 밑천에서 겨우 8천원을 거두었다. 그것으로 다른 장사를 하다가 또 2천원을 밑졌다. 남은 것은 6천원 뿐이다. 게다가 그때 마침 이북으로부터 내 친척 19식구가 넘어왔다. 내 식구까지 21명 식구이다.
그때에야 나는 정신이 들었다. 동경서 3원60전을 몽땅 바치던 그날을 생각하였다. 그때에 마침 또 예배당에서 부흥회를 하고 연보를 하는 고로 나는 1만원을 적었다. 6천원 현금과 또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갚기로 생각하였다. 이때 하늘로부터 성신이 인도하시는 음성이 나타났다. 6천원을 가지고 동경서 경영하던 공장을 다시 경영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동경서 고등공업하교 기계과를 나왔고 4-5년 동안 정밀기계 공장을 경영한 경험이 있다. 전에 해보고 익숙한 일을 다시 해보라는 것이었다. 하느님은 미리 예비해 놓으시고 기다리신 것이다. 내가 하느님을 순종하니 은혜는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부흥회를 필하고는 나는 성신의 지시하시는 그대로 베아링을 만드는 정밀공장을 경영하려고 어디 적당한 기계가 있는가 하여 거리에 나가보니 마침 한 고물상점에 좋은 기계가 있고 싯가 일만오천원이나 되는 것을 삼천오백원을 달라고 한다. 이는 하느님이 준비하여 두신 것이다. 나는 장소를 구하러 다니다가 아현동에서 뜻밖에 좋은 장소를 얻어 즉시 기계를 설치하고 일을 시작하였는데 열흘만에 만원 연보를 다 갚고 이개월 만에 직공 사십여명 이년만에 직공 일백이십여명을 사용하는 훌륭한 정밀기계공장이 되었다.
하느님은 내 마음을 하느님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나로 하여금 실패하게 하시었고 돌아오매 은혜를 쏟아 주신 것이다. 그후에 나는 십의 구조까지 드리었다. 십일조를 드려보아라. 있는바 전체를 드려보아라,
이제 특별 연보를 할 터이다.
연보의 용도는 첫째로 이번 부흥회의 비용을 거두자는 것이다.
둘째는 하느님에게서 나에게 맡겨주신 의인의 수가 있다. 이 수가 차기만 하면 이 땅에 다시는 괴로움이 없어질 것이다. 다시는 불로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이 있다. 오늘 헌금함으로 내게 맡겨주신 그 숫자에 같이 참예 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셋째는 옛날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은 것처럼 서울중앙에 오만명이 모일 수 있는 건물을 지으라는 하느님의 특별명령을 받았다. 통성기도 할 때에 연보 얼마나 내라는 기별이 하늘에서 올 것이다. 하늘에서 그런 기별이 오지 않는 사람은 하늘로부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의인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저주를 하면 저주가 임하고 축복을 하면 그대로 복이 임한다. 의인 노아의 일을 생각하여 보라. 노아가 축복하여 준 샘과 야벳은 복을 받고 노아가 저주한 함의 자손은 대대로 종의 종이 되지 않았는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저 얼굴이 새까만 흑인종이 곧 노아에게 저주받은 함의 자존들이다. 요 못난 것도 나의 구하는 대로 축복과 자주가 여러분에게 내린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여러 가지를 보여주신다. 서울서 한 큰 광산가가 요 못난 것을 청하여 안찰 받고 축복하여 주기를 원하므로 나는 처음으로 그 집에 가서 안찰도 하고 그 집을 위하여 축복하였다. 본래 믿지 않던 가정이었지만 지금은 다 회개하고 아름다운 가정이 되었다. 그때에 내가 간절히 복을 빌던 바로 그날에 큰 석탄 광맥이 발견되었는데 노천채광만 해도 우리 나라 전국에서 쓰는 것을 다 당할 수가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 나라에 도무지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하였던 검은 금강석이 발견되었다.
하느님께서 이 나라에 모든 보물을 다 감추어 두시었다. 오직 축복 받은 사람에게 눈을 여러 주어서 그 보물을 캐어 가지게 하신다. 하느님의 축복이 없이 눈을 딱 감고 아무리 헤메어 보아라 얻을 것은 바람뿐이다. 십일조를 드려보아라 축복의 문이 열린다. 물질의 은혜가 비와 같이 쏟아진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철장을 맡겨 주시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성신의 불이 떨어진다. 성신의 불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대한 축복의 문도 열린다. 지금 하늘과 땅 바다 모든 곳에는 축복의 문이 열리고 그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물질이 충만하여 찾아 갈 자를 기다리고 있다. 오직 하느님에게 드릴 줄을 아는 자의 손에 이 모든 물질의 복이 쏟아질 것이다. 네 집이 가난한 것은 하느님께 드린 것이 없는 까닭이요 네 쌀독에 쌀이 떨어진 것은 하느님의 창고에 쌓은 것이 없는 까닭이다. 하늘 복의 문이 열리었나니 복 받은 자들은 그 문을 바라볼 것이다.
10. 천년 시대와 천당 가는 길
여러분 천당 가려느냐? 지옥 가려느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 중간은 없다. 후일에 생명 끊질 때 온전히 찬송 못하나 성부의 집에 깰 때에 내 기쁨 한량 없겠네 이 생명이 끊어지지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영웅 호걸도 아니 끊어지지는 못한다. 이 생명 끊어지면 티끌 속에서는 찬미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 집에서 찬미하게 되는 것이다. 내 주 예수 뵈올 때에 그 은혜 찬송하겠네 천당에서는 주님의 얼굴을 영원히 바라보게 된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늘 찬송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은혜의 찬송이다.
천당 가고싶지 않은 사람은 손을 들라 후일에 장부 같은 몸 무너질 때는 모르나 정녕히 내가 알기는 주 예비하신 집 있네 이 육신의 장막이 언제 무너질는지 누가 아는가? 부인들 당신 남편이 황소같이 튼튼해도 믿지 말라 다리 통이 기둥 같아도 믿지 말라 어느 시간에 {썩---) 할 런지 모른다. 그런고로 언제든지 준비하여야 된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질 때에 주 예비하신 집이 하늘에 있다. 이 하늘 집이 있는 고로 사도들은 돌무더기 속에 둘어 가면서도 외치었다. 천당 영화는 세상 감투에 비 할바 아니다.
여러분 세상 영광 취하다가 지옥 가려는가 주를 위해 수고하다가 천당 가려는가? 후일에 석양 가까워 사산에 해가 걸릴 때 주께서 쉬라 하시니 영원한 안식 얻겠네 사람이 마지막 눈을 감고 호흡을 거두는 것은 주께서(쉬라) 고 명하심이다. 사람이 죽는다고 하는 것은 주의 안에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죽음이 안식이 되지 못하는 것은 죄 때문이다. 그런고로 내가 가는 곳마다 부르짖는 것은 성신 받아 죄의 소멸함을 얻으라는 것이다. 죄악이 소멸되지 못하면 천당 가지 못한다. 그 날을 늘 기다리고 내 등불 밝게 켰다가 주께서 문을 열 때에 이 영혼 들어가겠네
등불은 무엇인가? 성신이다. 성신 없는 사람은 천당 가지 못한다. 성신 받지 못하고 믿노라고 하는 사람은 기름 없는 등을 가지고 신랑을 맞이하려는 다섯 처녀와 같다. 성신 받지 못하고도 천당 갈 줄로 아는 사람은 불쌍하다. 성신 받아야 천당 가는 이유는 성신 받아야 중심의 죄악이 소멸되는 까닭이다. 성신 받지 못하면 중심의 죄악도 소멸되지 못하고 따라서 천당도 가지 못한다. 남의 시비나 하고 속에는 악독이 가득차고 그런고로 천당 갈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불쌍하다 그런 사람은 가지 못한다. 비행기표가 있어야 비행기를 타고 입국허가증이 있어야 외국엔 간다. 성신은 천당 가는 비행기표요 천당에 들어가는 입국허가증이다.
(묵20:1-3) 장차 천년왕국이 임한다. 그런데 천년왕국이 임하기 전에 사탄은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지고 인봉 하여 둔다고 하였다. 장차 사탄을 인봉 하여 두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세상을 두루 헤매는 시대이다. 이사야서에 보면 장차 의의 왕국이 임하면 어린아이와 사자가 함께 놀고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다고 하였다. 지금은 사자가 왜 사나우나? 사탄이 사자 속에 들어가 있는 까닭이다. 독사가 왜 사람을 무느냐? 사탄이 독사의 속에 들어가 있는 까닭이다. 사람도 사자처럼 호랑이 처럼 서로 잡아먹을 듯이 으러렁 거리고 독사 같이 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속에도 사탄이 들어가서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천년시대에는 이 사탄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지고 보니 사자도 순하여 지고 독사도 양순하여 사람을 물지 않고 그밖에 모든 악한 짐승들의 성질도 다 변하여진다. 짐승의 성질이 변하여지거늘 하물며 사람의 성질이리요, 그때에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성질이 다 변하여져서 선하게 된다. 그러므로 천년세계에는 죄가 없다. 지금 우리 나라 안에는 이단들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들은 천년왕국이 벌써 지상에 임하였고 예수께서 벌써 재림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집집이 찾아다니며 신자들을 꼬이고 나의 집회마다 따라 다니며 돌을 던지며 방해한다.
또 (신령통일 협회)하는 것이 있는데 그 교주는 문 예수라 하는 사람이 있어 자기가 예수라고 한다. 그 제자들 중에는 베드로, 요한, 안드레드, 예수의 제자와 같은 이름을 지어주어 그런 사람이 열두 제자가 되고 이 문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 이 문예수가 나에게도 사람을 보내서 자기와 함께 일을 하자고 하며 자기와 합작하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협박장을 보내어 왔다. 이는 다 사탄의 역사이다. 그 미혹에 빠진 자는 천당에 가지 못한다.
(묵20:7_10) 여기에는 말일에 일어날 큰 전쟁이 기록되어있다. 우리는 전쟁이라면 우선 삼차대전을 생각하게 된다. 삼차대전은 원자탄 수소탄 세개면 지구를 아주 파괴하여 버리든지 오천년동안 지상에는 생물이 있을 수 없는 죽음의 땅덩어리를 만들든지 할 수 있다. 좌우간 세상은 말세가 가까왔다. 광명의 자녀들은 이 시대를 알고 있다. 세상 마지막 전쟁은 지상에서 사람을 멸절 시키는 전쟁인데 이 무서운 전쟁 속에서 살아 남을 육체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갈 것이다.
(마24: 22) 저에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 하였더면 구원을 얻을 육신이 없을 것이로되 오직 택하신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리라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그 전쟁에 도저히 살아 남을 사람이 없을 것이로되 주께서 특별히 전쟁의 날을 감 하사 살아 남을 자가 있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누구를 위하여 날을 감하시고 어떠한 사람들이 살아 남을 것인가? 오직 택 하신자 들을 위하여 날을 감하시고 택 하신자들로 살아 남게 하시는 것이다.
이 (택하신 자) 이외에는 다 불구덩이 속에 멸망한다. (에스겔39: )에는 그 죽은 시체를 처리하기에 7개월이 걸리고 구 무기를 처치하기에 7년이 걸리게겠다고 하였다. 그 발달된 과학의 힘을 가지고도 시체를 처리하기에 7개월 무기를 처리하기에 7년이 걸린다면 그 전생이 얼마나 큰 전쟁인가를 그 받을 바 재앙이 얼마나 비참할 것을 알 수가 있을 터인데 이것이 다 말일에 되는 일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나 하느님은 또한 진노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왜 진노하시는가? 가르쳐도 순종치 않고 외쳐도 듣지 않으니 지노 하시는 것이다. 노아의 시대 소돔과 고모라의 날을 생각할지라 죄악이 있는 곳에 하느님의 진노의 불길을 떨어지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조그만 실수라도 있을 때에는 하늘에서 벌이 내린다. 조그만 실수에 대하여서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큰 죄악에 대하여 어찌 하느님의 진노가 내리지 않겠는가? 반드시 내리는 것이다. 소화12년경 그때 동경은 밤이 되면 굉장한 네온싸인 황홀한 전등 빛으로 뒤덮이어 밤이 낮과 같고 그 속에서는 음란과 죄악이 충만하였다. 죄악의 도시 동경은 하느님의 불로 심판하시는 형벌을 받았다. 서울도 일제삼십여년 남의 압제아래 있다가 하느님의 은혜로 해방이 되었은 즉 마땅히 감사하고 찬송하고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할 터인데 도리어 점점 사치하고 음란하고 죄악의 도시로 화하다가 마침내 하느님의 불의 심판을 받았다.
6.25는 하느님의 진노의 징계이다. 이 국민이 한번 하느님의 징게 하심을 받았 은 즉 마땅히 정신을 차려야 할 터인데 지금은 다시 음란의 소굴로 변하여 간다. 누가 이 서울이 다시 소돔과 고모라가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나의 회개운동은 하느님의 진로의 불꽃 가운데서 살아남을 자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숫자가 있다. 이 맡겨주신 숫자는 하늘에서도 구원받고 땅에서고 구원받는다. 회개하지 않으면 정하신 날이 이르리니 그날은 멸망의 날이다.
(슥13: )장에 보면 (온 땅의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하였다. 그러나 어느 지방에서 삼분지 이가 죽겠 다고는 지정치 아니하였다. 어느 곳이든지 죄가 있는 곳이 더 많이 죽을 것이다. 대한민족도 죄의 분량을 따라서 그 죽는 수가 결정되는 것이다. 나는 이중에서 내가 맡은 의인의 숫자가 차기를 힘쓴다. 인류의 마지막 전쟁은 무저갱에서 나온 사탄의 미혹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무저갱에서 나온 사탄은 사방의 백성을 미혹하는데 특히 곡과 마곡을 미혹케 한다고 하였다.
곡과 마곡은 어디인가?
즉 지금의 쏘련을 가르 킨 것이다. (에스겔39:1) (로스 메섹 두발왕 곡) 이런 말이 있는데 다 먼 북방에 있는 나라라고 하였다. 로스는 (로스께) 즉 로서아요, 메섹은 (모스코를 가라 킨 것이다. ) 두발은 창세기에 보면 야벳이 자손 가운데 하나인데 쏘련에 살고 있는 족속이다. 사람이 무저갱에서 놓여 나와서는 곡과 마곡을 미혹하였다. 즉 쏘련을 미혹케 하는 것이다. 그래가지고 큰 전쟁을 일르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도의 진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성도들의 성을 들러쌓고 있을 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서 그 무리들을 다 멸망시키는 것이다. 그때에 사탄이 미혹을 받았던 사람은 다 멸망하고 오직 성도들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세상을 미혹하던 사탄은 또 다시 영영한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다. 지옥의 몇 마디로 말한다면 유황불 붙는 곳이요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곳이다.(묵20:11-15) 희고 큰 보좌가 있고 거기 심판주 되시는 하느님께서 앉으셨다.
모든 죽은 자가 무론 대소하고 다 일어나 그 심판대 앞에 서 있다. 거기에는 책이 두권 놓여 있다. 하나는 생명 책 하나는 모든 사람의 행위를 기록한 책 두가지 책이다. 생명 책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천당 가지 못한다.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책에 기록된 대로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묵 22: 12)장에서도 행위대로 갚아주겠다고 하였다.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되면 어찌될 것인가? 다 영원한 불구덩이에 들어갈 것이다. (묵3: 1) 사네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거기 죽은 자들이 있다. 이는 물론 영이 죽은 자들이다. 영이 죽은 자들의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하였다. 사네 교회의 다수가 흰옷을 더럽힌 자들이다. 그 중에서 오직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흰옷을 입은 자들의 이름만 생명 책에서 흐려지지 아니 한다고 하였다. (빌4: 3)절에 보면 주를 위하여 수고한 자들의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되었다. 고 하였다. 생명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한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하시었다. 귀신을 항복케 하는 능력을 가지었어도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지 못한 자가 많다.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되려면 1, 참 회개하고 성신 받아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되려면 2, 흰옷을 더럽히지 아니하여야 한다.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되려면 3, 주를 위하여 진정으로 수고하여야 한다. 성신 받지 못한 자들은 아직 땅에 속한 자이니 그의 이름이 어찌 하늘에 기록될 수 있으리요.
하르빈 교회에 참 독실한 청년 하나 죽었다가 여섯 시간만에 회생하였다. 그는 천당에 가서 자기 교회 교우들의 행위를 기록한 책을 다 보았다. 그리고 회생한 후에는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그 책에서 본 것을 말하여주었다. 친구들은 놀래서 모두 자가들의 죄를 자복하였다. 그 교회 전도사를 찾아가서 그 책에 기록한 것을 말하였더니 전도사도 그만 자기 죄를 자복 하였다고 한다.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은 어찌 되나? 그 행위를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 (묵 22;12)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하였다. (마17:27)그때에 사람마다 행한 대로 갚으리라 , 하시었다. 그러면 이 성신 받지 못하고 거듭나지 모하고 회개하지 못한 인간들이 받을 보응이 무엇이겠는가? 오직 지옥의 형벌뿐이다.
11. 믿음의 힘과 사탄이 주는 의심
지금은 교회 안에서 기사와 이적이 많이 일어난다. 우리 나라에서 뿐 아니라 세계 각국교회에서 다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부흥운동에 대하여 이는 전통적 기독교에서 떠난 운동이라 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의 근본 되는 신구약 성경에는 기사와 이적과 능력으로 충만하였다. 그뿐 아니라 주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이적이 따르리니 나의 이름으로 저희들이 사기를 쫓으며 새로이 방언을 말하고 뱀을 잡으며 독한 것을 마시되 결단코 상함이 없으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안찰한 즉 나으리라 하시었다.
사도 바울도 교회 안에서 하느님이 세우신 여러 가지 직분을 말할 때에 권능을 행하는 사람과 병을 고치는 사람을 말하였다.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행하는 것이 어찌하여 전통적 기독교에서 떠난 것이라 하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기사와 이적과 능력은 초대교회에만 있었고 그후에는 기사와 이적과 능력이 그치었다고 한다. 아마 신학자들과 교리를 연구하노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일 것이다. 나는 신구약 성경에서는 그런 말을 읽지 못하였다.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행하는 것은 교회가 전하여오는 귀중한 은혜요 유산인데 현대 교회는 이 귀중한 은혜를 잃어버린지 오래다.
어떤 사람이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행하느냐?
첫째는 믿는 사람,
주께서 말씀하시었다. 믿은 사람에게 이와 같은 이적이 따르리니 하시었다. 그게 믿는 사람을 말한 것도 아니다 보통 믿는 사람이다. 믿는 사람은 이적을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인자가 이를 때에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더니 과연 오늘날에는 믿는 다는 사람들이 믿음을 다 잃어버리었다. 믿음을 잃어버리매 기사와 이적과 능력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예수께서 “믿으라 네 믿은 대로되리라” 고 하셨는데 그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다.
예수께서는 몇 번이나 그 시대 사람들의 믿음이 없는 것을 탄식하시고 제자들을 향하여서도 늘 (적게 믿는 자여) 말씀하시었다. 오늘날도 믿음이 없는 시대요 소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다 (적게 믿는 자)_들이다. 나는 오직 믿으매 기사와 이적과 능력이 행하여진다. 나는 무엇이든지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믿는다. 믿으매 모든 것이 되어진다.
둘째 는 기도하는 사람이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행할 수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를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가신 후 아홉 제자만 남아 있을 때에 한 사람이 사귀들려 벙어리 아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 주기를 청하였다. 제자들은 암만 애를 써도 사귀를 쫓아낼 수가 없었다. 후에 제자들은 예수에게 우리들은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물었다 예수께서는 기도 아니하여서는 이와 같은 유를 쫓아낼 수가 없느니라 고 대답하시었다. 오늘날도 금식 철야 열심히 기도하는 성도들에게는 남녀를 물론하고 기사와 이적과 능력이 행하여진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셋째는 성신 받은 사람이다.
(사도행전1:8) 성신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하시었다. 권능이란 말에 는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행할 수 있는 권능도 포함되었다. 스테반은 독실히 믿고 성신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런고로 그는 은혜와 권능을 많이 받아 큰 시사와 이적을 민간에게 행하였다. (고전 11:9) 어떤 자에게는 같은 성신으로 병을 고치는 은혜를 주시고 어떤 자에게는 권능 행함을 주시고 라고 하였다. (롬 15:19) 성신을 힘입어 이적과 기사와 권능으로 말하였다. 고 하였다. 성신, 성신, 성신
성신이 이적과 기사와 권능을 행하게 하신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이적과 기사와 권능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사람만으로 되어지는 줄 알고 사람이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저들은 세상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성신의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다. 그러나 성신의 역사를 믿는 사람은 이것을 잘 알고 있다. 믿음이 식어지고 기도하는 소리가 적어지고 성신을 받지 못하여 주께서 우리에게 전하여 준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행할 수 있는 힘을 다 잃어버린 현대 교회 앞에서는 기사와 이적과 능력이 도리어 이단시되고 도리어 전통적 기독교를 떠난 노름이 되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하였다. 나는 사도 된 표는 이것이니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에 범사에 인내하며 이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였노라 요 못난 것이 믿음과 기도와 성신이 주시는 힘으로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많은 병자를 낫게 한다. 이도 몇 만명 모인 자리에서 신문기자와 사진반들이 둘러선 자리에서 형사 순사 헌병들이 이거 무슨 장난이 아니가? 하고 눈이 뚫어지도록 경계하는 자리에서 행하여지는 것이다. 외 따른 컴컴한 곳에서 비밀히 행하는 것도 아니다. 병이 나았다고 증거 하는 사람은 똑똑치 못한 바보들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고등인물들이요, 인류 인테리들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이 사실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땅덩어리가 얼마나 큰지 아느가? 발로 걷자면 자기 일평생 걷다가 자손 삼 사대를 두고 다녀도 이 땅덩어리를 다 다녀보지 못할 것이다. 이 우주는 얼마나 큰가 하늘에 있는 많고 많은 별들은 다 빛을 발하는데 한 초 동안에 지구를 여덟 번 돌 수 있는 빛의 속력을 가지고 별이 생긴지 6000년만에 비로소 그 빛이 우리 사는 지구에 겨우 비쳐오는 것도 있고 몇 만년을 걸려도 아직 그 빛이 이 지구에 비쳐오지 못한 별도 많다고 한다.
이 우주는 한량없이 크고 넓은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다 하느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지으신 것이다. 이 크신 권능을 믿는다면 무엇 믿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홍해가 가라졌다는 것이든지 떡 다섯덩이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 셨다 든지 물위로 걸어 가셨다든지 하는 말을 들을 때 너무 크고 신기해서 믿지를 못하고 믿는다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 말을 이리저리 합리적으로 설명해보려고 애쓴다, 이는 다 불 신앙의 무리들이 안타까워서 그러는 노릇이다.
하느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그대로 믿는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지극히 믿기 쉬운 일이다. 믿지 않는 것이 도리어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의심 의심이 모든 것을 깨뜨려 버린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요 주님에게 세례까지 준 인물이다. 예수께서 그를 정하여 여인이 나은 사람 가운데는 세례 요한 보다 더 큰 사람이 일어남이 없다. 고 하신 사람이다. 그 만큼 칭찬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기를 천국에서는 지극히 적은 자라도 세례요한 보다 크다 고 하시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였다 그는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가죽 띠를 띠고 약대 털옷을 입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다왔다. 고 외치었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옴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라 고 증거 하였다. 그는 하늘이 열리고 성신이 비들이 모양으로 강림함과 하늘에서 소리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는 말씀을 친히 들은 선지자이다. 후에 자기를 따르던 많은 사람이 예수에게 몰려 갔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시기하는 마음이 일어났을 터인데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저는 흥하여야 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고 한 사람이다.
과연 위대한 인물이다. 여인의 낳은 사람 중에 이 보다 더 큰 사람이 이어날 수는 없다. 그 후에 그는 또한 담대히 헤룻 왕 앞에 나아가서 그 죄를 책망하였다. 그는 감옥에서 아마도 무쌍한 고초와 악형을 당하고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였을 것이다. 그때에 그도 사람인지라 그만 심중에 의심이 생기었다. 예수가 정말 하느님의 독생자인가? 정말 메사아인가? 그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그만큼 일하다가 이렇게 잡히어 고생하는데 그는 “왜” 가만히 있는가? 사랑이 없어 그런가? 능력이 부족하여 그런가? 만일 그렇다면 그는 참 하느님의 아들은 아니요, 참 메시아는 아니다. 이러한 생각이 났다.
그래서 자기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어 마땅히 오실 이가 선생님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 물었다 하늘의 증거를 보았거늘 하늘의 음성을 들었거늘 그대로 믿을 것이지 무얼 의심할 까닭이 있겠는가? 그런고로 예수께서는 하늘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니라, 말씀하시었다. 누구든지 의심치 않고 믿기만 하는 자는 인간적으로 보아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하늘에서는 세례 요한보다 큰 자이니라 의심하는 자는 인간적으로도 세례 요한보다 떨어지는 자여든 하물며 신앙의 적이리요 의심에 떨어진 세레 요한은 하늘의 일을 알 수 없다.
그런고로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가서 듣고 보는 것으로 요한에게 고하라 고 하였다. 그리고 소경이 보며, 절름바리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하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다시 살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 하라 고 하시었다. 의심에 빠진 요한에게 하늘에 일을 말하여도 소용 없음으로 요한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일을 말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나라 교회에는 요한 보다 더 깊은 의심의 구렁치에 빠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않는다. 하느님의 하시는 일을 눈으로 보고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천국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다.
베드로는 어찌하였나?
그가 믿을 때에는 물위로 걸어갔다. 그러나 그가 의심할 때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예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고 물으실 때에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대답하였다. 그가 이렇게 예수를 믿을 때 그에게 반석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또한 천국의 열쇠를 그에게 주신다고 하시었다. 천국은 사람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굳게 닫혀진 천국 문을 그 죄를 다 소멸시킴으로 다시금 열게 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장차 고난을 받으시고 죽었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실 때에 그는 예수를 붙들고 이런 일이 임하지 않게 하라고 간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 해를 받으시겠다는 말을 그냥 믿고 다시 살아나겠다는 말은 믿지 않았다. 그런고로 예수를 붙들고 간한 것이다.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 고 말씀하시었다. 베드로의 속에서 의심을 일으키는 자는 사탄이다. 의심을 일으키는 사탄은 무던히도 베드로를 따라 다니었다.
오늘날에도 모든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크게 역사 하는 신은 사탄이다. 이 의심의 사탄을 물리쳐야 한다. 의심의 사탄이 크게 승리하여 허다한 교직자, 신학자, 허다한 신앙인들을 의심이 구렁치에 쓸어 넣었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에게 기사와 이적이 따르며 손을 안찰한 즉 병이 나으리라, 고 말씀하시었고 방금도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고 손을 안찰하여 병이 낫는 것을 눈에 보는데 의심의 구렁치에 빠진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무능력을 변호하기 위하여 (사도 이후에는 기사와 이적이 그치었다.)는 훌륭한 말을 지어서 그 말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울타리 안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 불쌍하고 가련하다. 모든 성도들은 그 의심의 울타리 안에서 뛰어나와 기사와 이적이 얼마든지 행하여지는 신앙세계에서 봉사하여 보자.
(신앙을 간증하는 미국인사, 한강에 투신자살을 하려던 청년이 구원을 얻다.)사진
12. 그리스도의 보혈
아직까지 마음 문을 열지 못한 사라들은 이 시간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위로부터 내리시는 은혜를 받으라, 오늘 아침 은혜가 제일 강하게 쏟아진다. 안개 같이 내리는 은혜는 이 눈으로 볼 수 있다 . (이날 아침 과연 천막 안에 안개와 같은 무엇이 그냥 쏟아져 내리는 것을 수만 사람이 보았고, 필자도 이 경이의 광경의 광선을 이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 김성여)
한 몸 된 형제자매들
주께서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었다. 우리들이 주안에 서 한 몸 되기 위하여 한 피 받아 한 몸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것이다. 당파를 만들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아니다. (요 6:51) 나는 하늘로서 내리는 양식이니 사람이 이 양식을 먹은 즉 영생하리라, 내가 줄 양식은 곧 내 살이니 세상 생명을 위하여 주는 것이다. 예수의 살이 양식이 되고 그 살을 먹어야 된다.
이 말을 듣고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라대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리요, 하였다. 예수를 따라 다니던 제자들도 의심하였다. 주께서는 저들의 마음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나니라, 하시었다. 우리 사람이 마지막 날에 다시 사는 것도 예수의 살을 먹고 예수의 피를 마시는 데 있다.
사람의 마음속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의심하는 것을 아시고 이 말이 듣기 싫으냐? 여기 생명이 있거늘 너희들은 이 말이 듣기 싫으냐? 너희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듣지 못하겠거든 인자가 이전 있던 곳으로 돌아 가는 것을 보겠는가?. 하시었다. 이 피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지 못하면 천당을 어찌 믿겠는가? 부활을 어찌 믿겠는가? 내가 한번은 지방 집회를 마치고 서울 집으로 돌아가는 차 중에서 한 친구에게 끌려 식당차로 들어가서 저녁을 먹고 잠시 앉아 있는데 지금 여러분이 마시어 시원함을 얻는 생수 나는 늘 이 생수를 마시는데 그때는 뜻밖에 전에 마시던 것보다 5배나 강하게 마시어 진다.
나는 아마 특별한 일이 있나보다 생각하였다. 전에도 특별한 일이 있게 되면 특별한 생수가 내리는 것이었다. 식당차에서 자리로 돌아오는데 한 찻간에 이동 헌병 경찰 차장들이 둘러서서 웅성거린다. 보니 한 청년이 미군 열차에 다리가 절단되어 피를 다 빠져 나오고 기절한 채로 그 찻간에 메어다 놓았는데 모두 둘러서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웅성거리고 있다.
벌써 한시간 경과한 것이라고 한다. 이때에 하늘로서 (너 저 사람을 일으켜 보아라 )하는 명령이 내린다. 이는 지극히 어려운 명령이다. 피가 다 쏟아져 나오고 숨이 넘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거짓 없이 하느님을 믿는 고로 순종하였다. 여호와 하느님은 돌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는 줄 믿는 고로 사람의 심장이 떨어져 나갔어도 다시 만들어 주실 수 있는 줄 믿는 고로 하겠나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헌병과 경찰들에게 기도나 한번 합시다. 하였다. 그들은 나를 보고 미치지는 않은 사람 같은데 하는 태도로 냉담한 눈으로 보기만 하고 있다. 나는 그 청년의 눈을 만져 보아도 아무 감각이 없고, 옆구리를 만져도 아무 감각이 없다. 그러나 그 청년을 붙들고 결사적으로 전신의 힘을 다하여 기도하였다. 땀은 빗방울 같이 떨어졌다. 주여 나의 피를 다 이 사람에게 부어 넣어서라도 이 청년을 살려 주옵소서 내 생명이라도 바꾸어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안찰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하고 안찰 해도 아무 기척이 없고 그의 얼굴은 벌써 껌애지고 입술도 다 말랐다.
그가 살아나려면 그의 고통이 나에게 통하여야 되고 주님의 보혈이나를 통하여 그에게로 쏟아져 들어가야 되는데 암만 기도하여 안찰 하며 기다려도 도무지 통치 않는다. 그의 몸은 다 죽은 시체와 같다. 나는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이 청년이 설사 목숨이 완전히 끊어졌드라도 다시 일으켜 주실 줄을 믿고 그냥 기도하며 안찰을 계속하였다. 40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에게서 고통이 나에게로 오기 시작한다. 주의 보혈도 그에게로 흐러 들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힘을 얻어 더욱 기도를 하였다.
한시간 10분을 지나니 그의 얼굴은 점점 변하여 광채가 난다. 그때부터 그의 아픈 것과 주님에게서 오는 피가 서로 바꾸어지는데 한 5분마다 심한 고통이 나를 통하여 지나간다. 그때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께서는 다시 나타나신다. 주님의 보혈은 나를 통하여 그에게로 쏟아진다. 이러기를 한시간, 안찰 함으로 병을 고친다는 것을 그의 고통이 다 나를 통하여 주님께로 돌아감으로 되는 것인데 발이 갈라진 고통이란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 고통이 5분마다 나를 통하여 지나가게 되면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주님을 바라보군 하였다. 한시간 동안에 주를 바라본 것이 열두 번이었다.
얼마 후 그 청년은 눈을 떴다. 자기 머리를 짚고 기도하는 나를 보고는 자기가 죽어서 딴 세상에나 오지 않았는가? 또는 꿈이나 아닌가? 의심스러운지 자기 얼굴을 만져 보기도하고 꼬집어보기도 하더니 딴 세상도 아니요, 꿈도 아니매 눈물을 흘러내린다. 조금 있드니 느껴 울기 시작한다. 한 40분 지나매 다시는 그에게서 아무런 고통도 오지 않았다. 그 후에도 나는 20분 동안 더 계속하여 기도하였다. 그 청년은 완전히 소생하였다. 죽을 것이 살아났다.
둘러섰던 사람들은 모두 신기하여 생각하였다. 그때 그 일을 본 부인 한 분이 여기 계시다. 그 청년에게 예수 믿느냐 물으니까 예배당에 삼년 동안 다녔다고 하다. 그러나 자기 죄가 많은 고로 이런 형벌을 받았노라고 하다. 모양만 다녔다 그냥 죄인이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어 말하기를 나도 이제는 죽어도 천당 가겠나이다. 지금 내 마음이 시원한데 내 마음이 이렇게 시원해 보기는 처음이외다. 하였다. 그는 그 후부터 주만 위하여 살기를 맹세하였다. 그의 다리는 그 자리에서 다 나았다. 영등포에서 이별하였다.
보혈이 그에게 부어진다는 이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이 신학을 인학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신비다. 어떤 사람은 신비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나 신구약 66권이 다 신비이거늘 이 길을 믿지 못한다면 무엇을 믿겠는가? 물위로 걸어가시었다는 예수를 어떻게 믿겠는가? 이 신비를 믿는 고로 나의 생명을 바꾸게 하실 수 있는 일을 그대로 믿는 고로 벙어리가 말을 하고 소경이 눈을 뜨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고함칠 때에 수많은 병자들이 일어나 뛰는 것이다. 이 신비를 믿는 고로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1900 여 년 전 가시관을 쓰고 이마에 피를 흘리시면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 올라가시던 주님 아무 말씀 없으시고 모든 고통을 참으시던 주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 한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고쳐달라고 하니까 당신의 고통은 생가지도 않으시고 그 아이를 고쳐주셨다는 주님 최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 그 주님은 지금도 만백성이 고통과 중한 죄 짐을 다 걸머지시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한다면 그 는 가련하다.
지금도 그 보혈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심장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이를 의심 없이 믿을 때 이 일의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산 제일교회 전도부인도 이것이 이루어져서 지금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있다.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자매들이여’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주님께서 못 박혀 피 흘리신 것이다. 우리들이 이 은혜를 생각할 때 줄거운 찬송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 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목사 장로 집사 모든 교우가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고 사랑의 불길이 일어나는 교회 이런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주님께서 피 흘리신 것이다. 이러한 교회를 이루기 원하는 사람들은 손을 들어 작정하자. 주께서는 “사랑을 결심하는 이 제자 손드는 제자”를 기뻐하신다. 참된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헛것이다. 내 주 예수 본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온갖 충성 다 바쳐서 괴로우나 줄거우나 주님만 힘써 섬기세 우리 주님 거룩한 손 제자들의 발을 씻어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네 우리들로 하여금 죽어도 살고 살아도 죽는 사실을 이루게 하신 이는 주님이시다. 그는 제자들의 발을 씻고,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 길, 서로 낮아지는 종의 도를, 우리에게 몸소 행해 보이셨다. 원수사이라도 서로 웃고 낮아진다. 그의 안에는 다툼이 없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서로 뭉쳐지기를 위하여 주께서 피 흘리신 것이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 보혈로 이루어진 형제들은 끊을래도 끊을 수 없이 뭉쳐진다.
부산 있는 라이스 선교사 나는 그와 함께 2개월 동안 전도를 하였다. 그는 사도 요한과 같은 사람의 사도이다. 이 백성을 위하여 늘 기도하며 거짓 없는 사랑으로 사랑한다. 거지를 만나도 돈을 주며 전도지를 주며 그를 위한 눈물을 흘리는 광경은 참으로 감심 할만 하다. 그의 말을 듣건대 그는 16년 동안 목사 노릇하였는데 성신을 받지 못하고 목사노릇 한 고로 많은 사람을 몰아서 구렁치에 넣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4년 전에 성신을 받았다 한다.
작년에 성신께서 명하시기를 너는 한국 백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 하시었다 그는 이 명령을 받고 한국에 나올 모든 수속을 할 때에 모든 친구들은 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미국에서 한국의 사정과 여러 가지 사진들이 널리 광포 되었는데 모두 좋지 않은 것뿐이다. 인민군들이 사람을 잡아서 우물 속에 마치 독에 생선을 저려 넣듯이 넣은 것 어린애를 찢어 죽인 것 가지각색 잔인하게 죽인 송장들의 사진이 미국에 퍼지어서 미국 사람은 우리 나라 사람을 야만족속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친구들은 라이스 목사더러 한국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스 목사는 받은 명령이 있으매 아니 갈 수가 없다고 하니까, 친구들은 다시 말을 통치 못하니 어찌하겠느냐 한다. 라이스목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세 가지 세계 공통어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이요 둘째는 성신이요 셋째는 음악이라 고 하였다. 그는 음악을 잘한다. 그는 한국에 와서 어디를 가든지 이 세 가지 공통어로 이 백성과 통하고 있다. 라이스 목사와 함께 2개월 동안 일하다가 서로 떠났는데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니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목을 안고 우리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가 서로 통하는 까닭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것이다.
(사진 할렐루야... 소리치며 춤추며 찬양하며 현악과 통소로 찬양할 찌어다. 나팔소리도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 찌어다.)
주님께서 싸우는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피를 흘리신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 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며 줄거운 찬송 부르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이 사랑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손을 들라 할레우야 우리 다 이 사랑으로 살다가 하늘 나라에 같이 가자 하느님이시여 이 모든 사람에게 이 사랑을 부어 주시옵소서
국회의원 윤치영 선생의 간증
오늘저녁 저도 죄인의 한 사람으로 은혜를 받으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간증을 하러 나오기는 하였으나 두려운 마음이 앞설 뿐입니다. 저는 이 육신의 고깃덩어리가 60이 가까워오도록 많은 싸움을 싸워왔습니다. 저는 그 동안 신도의 한사람으로서 살아오기는 했습니다 만은 형식적이요, 이름뿐인 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작년에 어떤 사명을 띄고 유엔본부에 갔다가 금년 정월에 돌라와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제 아내는 지금까지 33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두고 앓아온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대수술을 세 번 소수술을 세 번 도합 여섯 번의 복부수술을 하였으나 별 효과를 얻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윤치영 간증 사진)
결혼 전까지는 건강하였던 그가 결혼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앓기 시작한 병은 하루에도 5-6차 약을 먹어야만 죽이나 겨우 삭 일수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육신의 고통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최후의 대수술 때에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될 위급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그가 글세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제가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딴 사람으로 변해 있는 제 아내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완전히 병마를 물리친 건강체를 나에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제 아내는 자기의 복부를 제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박 장노님께서 만져주신 자리라고 하는데 저는 그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뚜렸하게 남아 있는 열 손가락의 자태는 불에라도 대지나 않았는가 생각되리 만치 검은 빛깔의 흔적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안수를 받던 그 당시를 회고하며 그전에 대수술을 받을 때보다도 더 괴로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절보고도 박 장노님의 안수를 한번 받으라고 말하는 것이었으나 저는 어쩐지 겁도 좀 나고 마음의 준비도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고 하여 화답을 못하고 하루 이틀 지내왔던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아내로부터 제 집으로 박 장노님께서 찾아오시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저와 같은 죄인의 집에 오시는 것이 한편 두렵기도 하고 자와 제 가족을 위해서 안수해 주시러 일부러 찾아오시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는 제가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제 아내가 밖에서 뛰어 들러오면서 지금 박 장로님께서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믿노라는 형식적인 교인에 지나지 못하지만 성경을 반대해본 일은 없었습니다. 모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믿어왔던 것입니다. 제가 제 자신을 이렇게 말씀드린다면 외람된다고 혹시 여러분 가운데서는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박 장로님께서 오시는 것이 감사도 하고 황송도 하고 겁도 나고 여러 가지 느낌이 많다가 도망을 해 버리려고 하고 있는데 벌써 어느 사이에 박 장로님의 웃는 얼굴은 제 앞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박장로님의 손은 제 머리부터 눈으로 입으로 스쳐 내려갔습니다. 그때의 그 뜨겁고 아픈 느낌이란 말로 다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어서 일제 때에 당했던 그 참기 어려웠던 고문보다도 몇 배나 더 괴로웠습니다. 저는 심히 괴롭다 못해 잠간 만 놓아달라고 소리쳤습니다. 박장로님은 웃으시면서 손을 제 몸으로부터 떼는 것이었으나 제 몸을 힘껏 움켜쥐시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살짝 스치기만 하는데도 그렇게도 심히 괴로웠던 것입니다.
박장로님의 손은 다시금 제 가슴으로부터 배로 미끄러져 내려갔습니다. 그의 손이 가슴에 닿자 제 가슴은 부어 올랐습니다. 배에 닿자 사과 알만큼 커다란 혹이 부풀어오르더니 거기서 피가 나오고 몹시 아파 왔습니다. 그러나 몸은 괴러워도 마음은 상쾌한 것이 그때의 제 느낌이었습니다. 그후 저는 어떤 장관에게 제가 안수 받은 사실을 말하고 가슴과 배를 보였더니 깜짝 노라면서 이건 큰일 났군 당신은 완전히 돌았어 빨리 병원에 가보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람에게 당신은 나보다. 못지 않게 병원에 가봐야 할 사람이다. 는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제 배의 혹은 없어져 있었습니다. 마는 가슴의 혹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목사님들도 많이 끼어 있는 국회의원 장관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는 돌았다는 조소를 받으면서 두 시간이나 싸우던 일 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3월 일기는 몹시도 추운 남산 집회 때였습니다. 저는 그때 제 아내의 집회참석을 방해는 하지 않았습니다. 마는 그의 건강을 매우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48 시간 쉬지 않고 계속되는 집회를 열 하루 동안이나 지내고 돌아온 그의 얼굴빛은 전보다도 더 좋아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돌아와서도 피곤하다고 눕는 일조차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의학상식으로는 풀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까지도 제 가슴의 혹은 낮아지지 않고 있었는데 저는 언제나 여러 사람들로부터 돌았다는 냉소가운데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박장로님의 안수를 받자 가슴의 혹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피 나온 자리만은 그냥 증거로 남아있습니다. 제 집에서는 그전에는 의사가 한 주일에도 서너 번씩 찾아오던 것이 박장로님께서 왔다 가신 후로는 지금까지 7달 동안 의사를 구경 못합니다. 그 후로는 소화불양이 나 감기 같은 병이 생길 때에는 의사를 부르지 안고 신앙으로이기고 있습니다.
약은 쓰지도 않을뿐더러 소용도 없습니다. 아들놈들도 한 주일에 두 세 번씩은 병원출입을 하던 것이 지금에는 그런 일일 없어 졌읍니다. 지금 제집에서는 무슨 병이라도 생기면 마귀의 시험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서울 대구 부산 각지에서 수 없는 이적 기사를 보셨을 것이므로 제가 이 이상 더 말씀드릴 필요는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안찰을 받은 후부터 특히 느끼게 되는 것은 모든 원수들에게 지금까지 느껴오던 노여움 마음과 증오심이 없어지고 그들에게 사랑과 동정이 간다는 사실입니다. 그전엔 죽여라, 없애라, 총살이다. 하고 험한 욕들만 돌아서 퍼붓던 원수들에게도 날 도둑 같은 협잡배들과 모략 중상 이간을 일삼는 원수들로부터 별별 소리를 다 들어도 그들에게 대한 적개심이 일어나질 않고 뱃속이 아주 편합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것을 확실하게 간증하는 바입니다. 박장로님을 통하여 나타나시는 성신의 역사는 이 악하고 강팍한 세상을 퍽 이나 부드럽게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보다는 확실히 부드러운 마음들입니다.
제 지금의 한가지 소원을 말씀드린다면 우리 대통령께서 박장로님의 안수를 한번 받으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대통령께서는 육신 적으로는 대단히 불쌍한 분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우리 노 대통령을 위하여 많은 기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극도의 부패상은 이와 같은 정화운동으로서만 구제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적 실책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발장로님은 2천년만에 처음으로 나타난 하느님의 일군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북쪽으로 곧장 걸어 갈 것 만 갈고 십자가를 들고 압록강까지 곧장 걸러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김성제 기)
전 사회부장관 의학박사 최창순 선생의 간증
저는 어렸을 때부터 유년주일학교에도 다니고 지금까지 40여 년간 교회 생할을 해 왔지만은 이렇다할 신앙체험도 없이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위대하신 하느님의 사랑의 섭리는 이 죄인에게 뜻하지 않았던 재난을 주심으로서 특별하신 은총의 기회를 내리신 것입니다. 지난 6월 2일 (케이캑) 사람과 보건부 사람과 저와 자동차로 춘천을 가다가 죽을 뻔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탄 자동차가 춘천으로 가는 도중 산꼭대기 길에서 전복이 되어 서양 사람하나는 목이 부러져서 아직까지도 입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바른쪽 다리가 부러져서 (렌드겐)으로 사진을 찍어보니 뼈가 세로 막으로 부러진 것이었습니다.
그후 일주일이 지나서 아침 7시30에 제가 누어있는 병실에는 천사 제분이 찾아왔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김준원 장로님과 박영창 장로님 박태선 장로님 이렇게 세분께서는 어떻게 아시고 찾아들 오셨는지 저는 부른 일도 없는데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분들은 확실히 하느님께서 제 파손된 육체를 권하시기 위함뿐만이 아니고 잠들어 있는 제 심령을 깨우쳐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보내신 분들이었습니다. 박장로님께서는 제 상처 위에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제 몸은 몹시도 아파 오고 괴로웠읍니다. 박장로님께서는 그때 제게 뜨거운 믿음의 격려을 해 주시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참으십시오”
그때 제 상처의 아픔은 사라지고 제 마음속에는 은혜의 단비가 스며들기 시작하였고 뜨거운 불이 제 온 몸을 태우는 듯 했습니다. 그때 박장로님은 인제는 일어나도 괜찮겠오 하고 말씀하시면서 칭칭 감은 붕대와 나무를 모두 풀어버리고 일어나서 걸으시오 하고 명령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어날 용기가 없었읍니다. 믿음이 없었던 탓이겠지요 저는 박장로님이 가신 후에 일어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세분이 모두 돌아가신 후 가만히 다리를 주물러보니 아프지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무래도 이상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걸을 용기가 나질 안아서 다시 한번 (엨스레이)를 찍어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나타났습니다.
부스러지다 쉽이 세 동강으로 끊어졌던 뼈가 흔적도 없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과학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3주일 내지 4주일이 걸려야 완치될 것 같다고 하던 것이 이처럼 기이하신 주님의 은총으로 주일 만에는 성한 몸으로 일어날 수 있게 된 사실은 오로지 저와 같은 부족한 죄인을 통하여서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함이었고 저와 같이 부족 된 죄인의 입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기 위한 크나큰 섭리라는 것을 저는 믿는 것입니다. (요9장) 있는 사실 그대로 그가 날 때부터 소경인 것은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저는 지난해 겨울 정말국엘 갔던 일이 있습니다. 제가 정말국에서 15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장님하교를 구경한 일이 있는데 그 학교의 수 천명 학생들은 멀고 먼 코리아에서 찾아오신 손님이라고 극진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그 학교의 선생님은 한 장님학생을 불러내어 지구의에서 한국을 찾아내라고 말하였는데 곧 그 학생은 재빠른 솜씨로 지구의를 돌리더니 조그만 한 점에 불과한 우리 나라를 지적해 내는 데는 노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에는 시를 잘 짓는 18세의 학생이 나와서 즉흥시를 낭송하였는데 그 내용이 이러했습니다. 나는 앞못보는 불행으로 삼라만상을 보지는 못 해도 활짝 뜬 내 마음의 눈은 열두 천성문을 바라보노라 내 눈이 멀어서 코리아에서 오신 손님을 보지를 못해도 나는 지금 천사의 얼굴을 보노라.
지금 우리에게는 눈을 뜨고도 못 보는 소경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주님에게 우리도 소경인가? 라는 질문을 했을 때 예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소경이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들 정말의 장님학생들에게 눈뜬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은혜를 주신 것을 저는 그때 느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가끔 우리 육신의 교만을 낮추셔서 흑은 병들게도 하시며 혹은 병신도 되게 하시는 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박장로님과 같은 분을 통하여 현대에도 우리 병들고 병신 된 육체 위에 기이하신 영광을 나타내시는 줄로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산산조각이 되도록 모두 파괴되어버린 우리 대한민국을 부흥시키며 소생시키는 힘은 성신의 역사밖에는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공산당이 파괴한 모든 부문을 부흥 재건하는 문제 둘째로 양단 된 남북을 다시금 하나로 만드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중대한 과업을 앞에 놓고 우리가 먼저 생각지 않으면 안될 것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의 타락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국민의 도의적인 부흥과 재건이 필요하며 그 길만이 국가 부흥재건의 첩경이 될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만이 우리 나라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대통령께서는 정동교회에서 경건한 예배를 드리셨는데 노 대통령께서는 매일 아침마다 시편과 잠언을 한 장씩 읽으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대한 민국의 모든 장관 국회의원들이 우선 믿고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통일을 부르짓는데 있어서도 이북동포들을 위한 눈물의 기도와 그들에 대한 정말 피눈물 나는 사랑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있었던가를 다시 한번 반성해보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입니다.
중앙대학 총장 임영신 선생의 간증
저는 벌레와 티끌만도 못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이 죄인에게 커서 참을 수 없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지금 저기 윤치영 선생 내외분도 앉아 계시지만 저녁 집회에는 나올 수 없느냐고 하는 권유를 저는 그분들로부터 여러 번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시험인지 그때가 되면 몸이 몹시 고단해오고 바쁘고 하여 이럭저럭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저녁에 제가 피곤한 몸을 침대 위에 누이고 마음속으로 기독을 드리면서 박장로님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벼란 간 불덩어리가 제게 보여졌습니다. 그래서 그 이틀 날 새벽에는 이 죄인 이 귀한 집회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그때 남산집회에 가보니 사람의 송장 썩은 냄새가 어찌도 그리 심한지 처음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서 그런가 했으나 그것은 결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보통냄새는 아니었습니다. 저길 가면 괜찮을까 하여 그 곳으로 가면 거기도 마찬가지였고 가는 곳마다 숨막힐 듯한 송장 썩는 냄새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기로를 드리고 나자 송장 썩는 냄새는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시원하고 향기로운 바람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세계에서도 제일 간다는 최고급 향수의 냄새를 맡아본 일이 있지만 그것은 이 훨씬 더 향기롭고 심령 속 깊이 스며드는 이상한 냄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제게는 미국서 살다가 40년만에 돌아온 오빠가 있습니다. 그 전에는 박장로님을 괜히 떠들기만 하는 미치광이라고 하여 비웃기만 하던 오빠였습니다. 그와 같이 완고하기만 하던 오빠가 바로 사흘 전에 남산집회에 참석하여 불덩어리가 떨어지면 온몸에 전기처럼 느껴지는 강렬한 쇼크를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제 오빠의 이와 같은 체험과 간증은 하느님의 영광을 교만한 인간들 위에 드러내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6.25 동란은 교만한 우리 들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라고 저는 믿습니다. 어느 때에나 총칼은 저의 육체를 정복할 수 있어도 마음을 정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총칼로써는 우리나라안에서 죄악을 숙청해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동안 10여일 간이나 계속하여 철야를 해 가시면서 참석하고 계시는데 그렇지 못한 부족한 이 죄인은 이 자리에 나와서 간증의 말씀을 드리기조차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값없이 받은 주님의 크신 은혜가 신기하고도 놀라워 저는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문제에 있어서 그처럼 어려운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게 있어서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게는 그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박장로님의 집회에 참가하여 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진심을 털어 버리고 돌아갔을 때 제 마음은 한없이 가볍기만 하고 기쁘기만 하였습니다.
전 무임소장관 박현숙 선생의 간증
저는 지금까지 산으로 예배당으로 기도 하로도 많이 다녔습니다. 새벽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기도를 드릴 때마다 언제나 그 기도에는 우리 나라의 독립을 열망하는 제 간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래 믿어는 오면서도 아짓껏 기독교를 수양의 종교로밖에는 생각지 못하였고 남과 대할 때 상대방과의 옳은 접촉을 가지기 위한 마음의 양식으로밖에는 생각함이 없는 아주 미온적인 신앙의 상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느님께서 박장로님을 통하여 놀라우신 은혜를 주시는 때를 당하여 이 부족한 죄인도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신비스러운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물론 여러분에게는 저보다도 더욱 더 놀랍고 감격스러운 은총의 체험을 가지고 계시겠지마는 저는 지금까지 며칠에 한번밖에는 박장로님의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부족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저와 같은 죄인에게도 신비스러운 체험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제가 처음 창신동 교회에서 열린 박장로님의 집회에 나갔을 때 어떤 목사님 한 분은 절보고 서너번씩 이나 박장로님의 안수를 받으라는 권고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부족한 제게 이처럼 여러번 말씀해주시는 데 저는 황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뒤섞여서 마침내 안수를 받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제가 박장로님의 안수가 어떤 한 것인지 미리 알고 있었다면 안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안수 받을 때의 그 괴로움이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안수를 받고 나자 박장로님의 손가락이 닿았던 제 뱃가죽 위에는 꺼뭇꺼뭇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박장로님은 이전에 운동선수였다고 하니 손 힘도 셀 거라고 생각하고 저는 집으로 돌아가서는 곧 넙적 다리를 제 손으로 힘껏 눌러 봤습니다. 그러나 아프기는 않았읍니다. 그래도 서는 박장로님이 내려 누르는 손 힘이 아무래도 저보다는 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박장로님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과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간절한 기도는 점점 저로 하여금 박장로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일군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했던 것입니다. 그후 제가 위경련으로 자리에 누은 후 저는 한번 더 박장로님의 안수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 받을 때에는 전번의 괴롭던 기억이 있는지라 치마 속치마 겹바지 모두 4겹으로 가리우고 그 위에 박장로님의 손이 닿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배 위로 스칠 때 제 몸의 아픔은 전보다 조금도 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후 다른 분들이 안수 받는 것을 자세히 보니 모두들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데 박장로님의 손은 절대로 깍 내려 누르거나 주물르는 것이 아니고 가만히 다칠 뿐이었습니다. 운동선수여서 남보다 순 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을 돌아와서 안수 받은 자리를 보니 손가락이 닿았던 흔적은 완연하게 살가죽 위에 나타나 있고 마치 연기가운데로 방금 지나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두 번째 안수를 받고 난 후부터는 그전에는 죽이 아니면 밥을 조금씩 밖에는 먹지 못하던 제가 밥한공기는 문제 없이 먹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직도 제 속 사람이 완전히 새로워지고 싶다는 소원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세 번 네 번 안수를 받는다면 새사람이 되어서 이 민족을 위한 양심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들은 저를 보고 항상 쌀쌀하다고들 말해왔습니다. 저도 자신이 그렇게 느껴지군 했는데 제게는 사랑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고관을 지냈다고 해서가 아니라 전부터 저는 사랑이 없고 냉정했습니다. 그전 평양시절부터 저는 남을 위한 희생적 정신이 박약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친국들은 지금 이렇게들 말하고 있습니다. 쌀쌀한 바람만 불던 네가 어쩌면 그렇게 온유하고 따스한 바람이 부니?
저는 이와 같은 귀한 체험을 박장로님을 통하여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 나라는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윤 치영 선생께서도 방금 나오셔서 간증하셨지만 저도 그와 같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저는 기회를 보아서 이 대통령 각하를 만나서 지금까지의 박장로님의 행적을 세세히 설명해 드리고 대통령께서도 안수를 받으시도록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이에 대한 많은 기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윤치영 선생을 그전에는 퍽 이기적이면 교만하신 분으로 생각했 왔는데 툴림 없이 이번에 변하여 새 사람이 되신 줄로 저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비난 저 한 사람뿐만이 아니겠지요. 이와 같이 우리 나라의 죄악이 충만할 정치계를 성신의 불로 모두 태워버리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된 사람들만이 정치를 해나간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 대한민국에는 무섭고도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 서울에 사람은 많지마는 여기 참석하신 분들만이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만큼 사명이 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정치사회에서 새 사람된 본분과 실천으로써 전도에 힘쓴다면 우리 나라는 다시금 부흥되어 우리에게는 살길이 열릴 것입니다.
국방장관부인 홍은헤 여사의 간증
아름다운 찬송을 불러드렸으면 좋겠는데 지금까지 너무 많이 불러서 목이 다 쉬었에요, 그런데 여러분이나 저나 여길 오면 자꾸 죄를 회개하라고 그러지,안아요? 전 별로 지은 죄가 신통 하게 없는 것 같은데 자꾸 그러니까 듣기가 싫어 졌에요, 그래서 저는 가만히 박장로님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이는 남잔데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가시관과 보혈을 애기 할 때에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벽에 걸린 예수님의 사진을 쳐다보면서 제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가하고 암만 기다려 보았지만 눈물은 한 방울도 안나와요.
그러나 제가 만약 세 살 난 어린아이였을 때 제 집에 화재가 나서 제가 불에 타서 죽게 되어 제 어머니가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저를 강보에 싸서 안전한 곳으로 옮긴 다음 제 어머니는 온 몸이 새까맣게 불에 타서 죽게 외었다고 해요 그때 제 어머니의 고통스럽게 돌아가시는 순간을 사진 찍어 두었다면 제가 어머니의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올 거에요,
그리고 제가 만약 죽을죄를 짓고 사형선고를 받아 방금 교수대에 목이 달리려고 할 때 제 한 친구가 저 대신 교수대에 달려 죽는 일이 생겼다고 해요 그때 제 친구가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하는 순간을 사진 찍어 두었다면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제 눈에서는 눈물이 나올 거에요, 가슴이 아플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귀하신 몸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으면 보혈을 흘리셨으며 가시면류관을 쓰셨는데 어째서 예수님의 사진을 볼 때에는 제 눈에서 눈물이 안나올까요?
그리고 여러분은 기도할 때마다 사랑하는 예수님 주님 하면서 간절한 기도를 드려요 그런데 어째서 여러분의 눈에서는 눈물이 안나올까요? 그러니 저나 여러분이나 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거짓말쟁이가 아닐 수 없에요. 죄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거에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이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 이것은 (요4:34)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음식을 권했을 때 대답하신 말씀 이예요. 만약 예수님께서 지금 이 세상에 살아 계신다면 여러분은 무슨 음식을 대접하시겠어요? 국밥을 대접하시겠어요? 시원한 냉면이나 한 그릇 대접해볼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음식을 잡수시지도 않을 거예요. 주님의 뜻대로 행함으로서 주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주님께 대한 제일 좋은 대접이 될 거예요.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할뿐 주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대접하지 않는 사람들 이예요. 그러면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욥기28:28)절에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고 하였는데 주님의 뜻은 우리가 모두 악에서 떠나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 이예요.
그런데 박장로님께서는 이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일우어 짐과 같이 땅에서도 일루어지기 위하여 전도하시는 분이라고 저는 믿어요. 그러나 지금은 말세가 되어서 그런지 여러분도 잘 아시다 싶이 敎도 많고 지도자도 많아서 무엇을 믿어야 옳은지 누구를 따라가야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능히 분별할 수 있을 거예요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거예요
만약에 저와 이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분이 있다면 저는 남편이 있는 사람이니까 남편이 제일 가까운 사람일 거예요, 제가 혼자서 집에 있을 때 밖에서 신발 끄는 소리만 들어도 남편이 온 것을 저는 곧 알 수 있을 거예요. 그 다음으로 가까운 사람인 제 아들은 아버지의 목소리만 들어도 알 거에요 그 다음으로 가까운 사람은 아마 조사를 해보고서야 알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가까운 사람은 저분이 손장관인지 아닌지를 족보를 캐보아야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보다도 더 먼 사람은 귀머거리나 소경이나 마찬가질 거예요 아무런 상관도 없으니까요. 마찬가지로 그가 정말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신령과 진실로 예배하는 사람이라면 참 집사 참 장로 참 목사라면 참으로 예수와 가까운 분이라면 그의 음성을 한번만 들어도 곧 알 수 있을 거예요 공산당은 곧 자기와 같은 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갈 거에요 참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곧 그의 양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양들은 가면을 쓴 이리가 아닌 목자의 음성을 알 수 있는 거예요.
지난번 영등포집회때였어요 제가 처음 가서 보니 먼지가 펄펄 일고 있는 거젹이 깔려 있는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찬송을 부르는데 자꾸 박자를 치라는 거에요 자꾸 부르기만 하라는 거예요 그 찬송소리는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고 전 따라서 부을 수도 없었에요. 전 가만히 박장로님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지요 그때 제 마음속에 느껴진 것을 지금 간증하겠에요 먼저 게 귀에는 (순종하라, 순종해서 박수를 져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어요, 창조된 천지만물은 태초로부터 마지막 심판 때까지 순종으로 시작되어 순종으로 그칠 거예요. 그러나 아담과하와는 따먹지말라는 선악과를 따서 먹음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치않고 에덴동산에서 쫏겨난 거예요. 순종하지 않은데서 우리에게 불행이 온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외아들 이삭을 바친 거예요 예수님께서도 신약을 통하여 순종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 거예요 지금 천하만물은 모두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거예요 이 우주의 질서는 쥬지되는 거예요
두 번째로 제 귀에는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단순하고 겸손하라) 는 음성이 들려왔어요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겸손하지 않고서 점잔만 빼는 어른들이 창피해서 어떻게 손벽을 칠 수 있겠어요 그 다음으로 제 귀에는 (교만한 마음을 버려라) 는 음성이 들였어요. 우리가 지식이나 좀 있다고 해서 교만한 것은 우스운 일 이예요. 하느님의 무한한 지식과 인간의 좁은 지식은 차이가 많아서 우리 인간들의 논리로는 (1+1=2) 지만 하느님께서는 (1+1=4) 로도 만들 실 수 있는 거에요 우리 인간들은 (0+0= 0)이지만 하느님께서는 (0+0=1)로도 만드실 수 있는 거예요 하느님께서는 無에서 有를 만들어 내셨으니까요 저는 마침내 순종하고야 말았어요 단순한 마음이 되어 교만을 버리고 (네 그리하겠습니다. 저도 함께 박수를 치며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하고 저는 복종하고야 말았어요
그 다음으로 제 귀에는 (죄를 회개하라) 는 말이 들렸어요 마음속으로 저는 죄는 사람은 알지 못해도 하느님께서는 아셔요 저는(네 자복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어요 그때 제 머리 속에는 어렸을 때부터 지은 모든 죄가 자꾸 나타나는 거에요 저는 무릎을 꿇고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어요 이 세상에서는 더러운 것이 있으면 물로도 씻어 깨끗케 하고 불로도 태워서 깨끗케 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의 죄는 성신의 불로써 예수님이 보혈로써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안돼요 저는 모든 죄를 주님 앞에 고하고 혹은 불로나 혹은 물로나 깨끗하게 씻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어요
그 다음에 제게 들려온 것은
너는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선 안 된다. 는 것이었어요,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마음속에 있으면 은혜는 받지 못할 거예요. 돈이나 향락이나 그 밖의 모든 것을 지금 저는 분토와 같이 보아요, 지금 제게는 예수님이 제일 귀해요 이 세상의 아무 것으로도 바꿀 수는 없어요 그때까지 저는 믿는지는 오래 되었어도 성신의 역사를 체험해본 일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결심을 하고 그날 저녁부터 사흘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기로 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어른들이 무슨 소원이 있을 때에는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정성을 다해서 제사를 지내며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저도 정성의 표시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그렇게 한 거예요 사흘 후 저는 박장로님의 안수를 받았는데 그때 뜨거운 불이 제게로 들어와서 제 몸 속에서는 열이 나고 그 다음부터는 새로운 중생의 생활을 체험하게 되었어요
저는 지난번 육군본부 집회 때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박장로는 성신을 부어주는 사람이라고 네가 나가서 말해라 고 하는 말씀이 들리는 거예요 그때 저는 맨 먼저 나서서 그 말씀대로 간증을 했어요. 믿기 시작한지 한달 반 밖에 안 되는 우리 집 운전수도 인도하시는 음성을 듣고 찬송가 94장과 127장을 골랐는데 믿기 시작 한 그에게는 가장 적합한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서울중학교에 다니는 제 아들은 257장을 찾아냈는데 그것도 그에게는 꼭 알 맞는 찬송 이였어요.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은혜를 각각 주시는 것을 저는 똑똑히 알게 되었어요 (눅14: 16) 절을 보면 천국잔치에 관한 애기가 있지요, 그런데 그 자리에는 미리 청했던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나 그 밖의 점잔을 빼는 양반들은 사무가 바쁘거나 무슨 파티가 있다 하여 모두 안나오고 그 자리에는 거지 문둥 병자 변신들만이 나왔다지요. 지금 이 자리에서도 그들은 손벽을 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그래도 자리가 남으니까 길거리에서 억지로 사람들을 불러 들이셨다지요 저도 길거리에서 오이잠수나 참외장수나 토마토장수를 만나면 (예수 믿으세요, 교회에 나가세요 ) 하고 전도를 안 할 수 없어요 하느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수를 채울 것을 요구하고 계셔요, 옷을 벗기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꼭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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