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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창의 산줄기
순창지역의 산줄기는 호남정맥과 지맥, 그리고 금남호남정맥에서 나눈 풍악산줄기와 용골산줄기 등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호남정맥 순창구간의 산줄기는 고당산, 내장산, 백암산, 추월산, 용추봉, 강천산, 산성산,
광덕산 등은 전남과 경계를 이루면서 왼쪽에는 섬진강, 오른쪽에는 영산강의 분수령이 된다.
그리고 정맥에서 나눈 지맥의 산줄기에 솟구친 세자봉, 여분산, 회문산, 아미산, 설산 등은
모두 섬진강의 물줄기를 가르며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다시 말해서 순창지역의 호남정맥 산줄기는 전남지역의 영산강, 순창지역의 섬진강의 물줄기를
가르게 된다. 아울러 금남 호남정맥 팔공산에서 서북으로 분기된 지맥의 마령치에서 남으로 뻗어
가는 풍악산 줄기는 왼쪽은 요천, 오른쪽은 오수천을 가르며, 마령치에서 서북쪽으로 뻗어가는 용골산줄기는 왼쪽은 오수천, 오른쪽은 오원천, 갈담천, 적성강의 분수령이 되며 모두 섬진강의 물줄기를 이룬다.
순창지역의 산줄기는 호남정맥과 지맥에서 나눈 산줄기와 금남호남정맥의 장수 팔공산에서 분기된 지맥의 마령치에서 남으로 가는 풍악산줄기와 임실 성수산으로 뻗어 가는 용골산 줄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호남정맥과 지맥의 산줄기는 완주 주화산에서 북으로 금남정맥을 보내고 남쪽으로
뻗어가며 고당산에 이르러 순창과 경계를 이룬다.
이곳에서 시작된 순창지역의 산줄기는 호남정맥에 내장산, 백암산, 추월산, 용추봉, 강천산,
산성산, 광덕산 등을 일구어 놓고 팔덕면 창덕리에 이르러 동쪽으로 24번국도와 88고속도로를
지나 아미산 줄기를 나눈다.
그리고 서암산과 민치를 지나면 곧바로 동쪽에 설산줄기를 나누어 놓고 전남지역으로 뻗어간다.
호남정맥 용추봉에서 나눈 지맥하나가 동으로 뻗어가며 세자봉, 여분산, 회문산을 일구어 놓는다.
회문산은 지리교과서와 지도상에 노령산맥에 솟구친 산이라고 잘못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일제가 1908년에 우리의 지리교과서를 왜곡시킨 일제의 잔재이다.
두 번째 산줄기는 금남호남정맥 팔공산에서 서북쪽으로 분기된 지맥이 마령치에서 남으로 나누어
뻗어가는 풍악산줄기(고리봉줄기)와 마령치에서 임실 성수산을 거쳐 백련산과 용골산, 나래산,
무량산 등으로 뻗어 가는 용골산줄기이다. 순창지역의 산줄기를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 호남정맥과 지맥
가. 호남정맥 줄기
순창과 정읍의 경계지역에 고당산, 내장산을 솟구놓고 순창과 전남경계지역에 백암산,
추월산, 용추봉, 강천산, 산성산, 광덕산, 설산 어깨를 지나 전남지역으로 뻗어 간다.
나. 회문산 줄기
호남정맥의 용추봉에서 분기된 이 산줄기는 동쪽으로 뻗어가며 세자봉, 여분산,
회문산으로 뻗어간다.
다. 아미산 줄기
호남정맥 분기점(팔덕면 창덕리)에서 동쪽으로 뻗어 가는 이산줄기는 순창-담양을
잇는 24번 국도와 88고속도로를 지나 곧바로 아미산을 솟구쳐 놓았다.
라. 설산 줄기
호남정맥 순창구간의 마지막 지점인 설산 어깨의 분기점에서 동쪽으로 뻗어가며
곧바로 설산을 솟구쳐 놓았다.
▲ 금남호남정맥 지맥의 산줄기
가. 풍악산 줄기
금남호남정맥에서 나누는 풍악산줄기(남원 고리봉줄기)는 팔공산에서 나눈 지맥의 하나가
마령치에서 남쪽으로 산줄기 하나를 나누고 다름재와 임실 성수산 방향으로 뻗어간다.
마령치에서 나눈 풍악산줄기는 왼쪽에 요천 우측에 오수천을 가르며 장수의 묘복산과
상서산, 남원의 만행산을 지나, 순창군 동계면에 들어서면 남원의 사매면 대산면과 경계를
이루며, 청룡산, 노적봉, 풍악산, 응봉을 솟구쳐 놓고, 남원 금지면의 고리봉으로 뻗어가다
섬진강에 여맥을 가라앉힌다.
나. 용골산 줄기
팔공산에서 나눈 지맥이 마령치 부근에서 지나 다름재, 임실 성수산, 고덕산, 임실-남원간
17번국도, 봉화산, 응봉을 지나 무제봉에 이른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임실 백련산과 나래산
방향으로 산줄기를 나누고, 남쪽으로 내달리며 지초봉, 원통산을 일구어 놓고 남촌에 이르면
두 갈래로 나누어 우측의 산줄기는 순창군 적성면 어치리에 용골산, 좌측의 산줄기는 동계면
동심리에 무량산을 솟구쳐 놓았다.
이 두개의 산은 적성강을 가운데 두고 마주 바라보고 있다.
2. 순창의 물줄기
호남정맥 순창구간의 산줄기는 고당산, 내장산, 백암산, 추월산, 용추봉, 강천산, 산성산, 광덕산 등은 전남과 경계를 이루면서 왼쪽에는 섬진강, 오른쪽에는 영산강의 분수령이 된다.
그리고 정맥에서 나눈 지맥의 산줄기에 솟구친 세자봉, 여분산, 회문산, 아미산, 설산 등은 모두
섬진강의 물줄기를 가르며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다시 말해서 순창지역의 호남정맥 산줄기는 전남지역의 영산강, 순창지역의 섬진강의 물줄기를
가르게 된다. 아울러 금남호남정맥 팔공산에서 서북으로 분기된 지맥의 마령치에서 남으로 뻗어가는 풍악산줄기는 왼쪽은 요천, 오른쪽은 오수천을 가르며 마령치에서 서북쪽으로 뻗어가는 용골산
줄기는 왼쪽은 오수천, 오른쪽은 오원천, 갈담천, 적성강의 분수령이 되며 모두 섬진강의 물줄기를 이룬다.
섬진강의 발원지는 진안군 백운면 원신암마을의 금남호남정맥에 위치한 천상데미의 상추막이골
'데미샘'이며 강의 길이는 전남 광양만의 하구까지 225km이다.
섬진강의 물줄기는 진안군 백운면, 임실군 관촌면과 신평면을 흐르면서 오원천을 이루고 임실군
운암면에서 옥정호에 합수된다.
옥정호의 물줄기는 대부분 칠보발전소에서 수력발전을 한 뒤, 정읍시와 부안군의 동진강 유역을
흘러서 계화도 간척지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옥정호의 일부 물줄기는 임실군 강진면을 지나 덕치면에서 갈담천과 일중천과 합수되고,
순창군 동계면과 적성면에서 적성강을 이루어 흐르다가 동계면 평남리 어은정에서 오수천과 합수
된다. 이 물줄기는 다시 순창군 유등면과 풍산면, 남원시 대강면을 거쳐 금지면 하도리와 곡성군
곡성읍 동산리에 이르고 이곳에서 남원지역에서 흘러오는 요천과 합수되어 17번국도를 따라 구례를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금남호남정맥 완주 주화산에서 분기된 호남정맥의 산줄기는 왼쪽에는 한결같이 섬진강,
오른쪽에는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 등의 물줄기를 가르는 분수령(分水嶺)이 된다.
3. 순창의 아름다운 산
● 강천산(剛泉山,538.7m)
자연경관은 금남 호남정맥 완주 주화산에서 분기된 호남정맥이 북으로 금남정맥을 보내고,
남으로 뻗어가며 경각산, 오봉산, 내장산, 백암산, 용추봉, 추월산을 거쳐 호남정맥에서 동쪽으로
약간 벗어난 곳에 강천산이 솟구쳐 있다.
강천산의 물줄기는 남쪽은 담양호를 통하여 영산강으로 흐르고 동쪽은 구림천을 통하여 섬진강으로 흐른다. 행정구역은 순창군 팔덕면, 구림면과 전남 담양군 용면에 위치해 있다.
강천산(剛泉山)은 원래 광덕산(光德山)으로 불렸으나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지만 강천사(剛泉寺)라는 유명한 사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온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강천산은 호남정맥에 걸쳐 있는 산이기는 하나 정상은 정맥에서 동으로
약간 벗어나 있으며 전망대의 남쪽과 전남의 경계를 이루는 접경지대에 솟구친 550m봉우리인
광덕산은 호남정맥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전남과 경계를 이루는 550봉을 광덕산, 강천사의 뒷산을 강천산이라고 구분해서 불러야
한다. 강천산은 예부터 호남의 소금강으로 알려진 명산이며 1981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순창읍에서 정읍가는 북쪽으로 10km를 가다보면 강천사 입구인 도선교에 이른다. 8km나 이어진 계곡은 천인단애를 이룬 병풍바위 아래 벽계수가 흐르고 군데군데 폭포와 그 아래 소를 이룬 곳이 10여 군데나 된다. 옥수와 같은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용소는 명경지수(明鏡止水) 그대로 선경을 이루고 있다. 시오리가 넘는 계곡 안에 병풍바위, 용바위, 투구봉, 호두암, 금강굴,
수좌굴, 형제굴, 용소, 비룡폭포 등을 비롯해 광덕정, 흥화정의 정자와 삼인대라 불리는 비각 등의
명소가 즐비하다.
강천산이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깍아지른 계곡에 높이 50m 길이 76m의 호남제일의 구름다리인
현수교를 만들었다. 강천산은 산세가 웅장하거나 높은 편은 아니지만 계곡이 깊고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천산 입구에서 1.8km 지점에 있는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887년)때 풍수지리로 이름을 떨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은 사찰이다.
옛날에는 불전이 3개, 승방이 12개나 있었던 절로 수도승이 많았던 절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왕주암은 후백제를 전주에 세운 견훤이 한때 머물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고려 충숙왕(1315년)때 덕현선사가 중건할 때 세웠다는 높이 2.5m인 5층석탑(지방문화재
제92호)은 6.25때 붕괴됐던 것을 1959년에 원상대로 복원하였다.
산동리 및 창덕리 남근석/전북민속자료 제14.15호는 강천산 길목인 팔덕면 소재지 왼쪽으로
1.4km쯤 떨어진 팔왕리 입구마을 정자앞에 1.9m의 남근석이 세워져 있다.
옛날에 이 마을 부녀자들이 음기가 돌자 어느 여장부가 남근을 2개를 새겨 치마에 싸가지고 오다가 무거워 하나는 창덕리에 놓아 두고 하나만 신동리에 세웠다.
그 뒤에 남자들이 창피스럽다고 돌을 넘어드렸더니 샘이 말라버리는 괴변이 생기자 부랴부랴 다시 세웠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가 밤에 남근석을 안고 공을 들이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아미산(峨媚山,515.1m)
호남정맥의 산줄기가 완주 주화산에서 북으로 금남정맥을 보내고, 남으로 달리며, 만덕산,
경각산, 오봉산, 내장산, 추월산, 산성산을 지나서 좌측으로 지맥하나를 나뉘어 놓고 전남 땅으로
내닫는다. 이 지맥은 동쪽으로 방향을 꺽어 뻗어가며 24번 국도와 88고속도로를 지나서 아마산을
솟구쳐 놓았다. 아미산의 물줄기는 섬진강에 합수되어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순창군 순창읍, 금과면, 풍산면에 경계해 있다.
산의 이름은 산 이름아(峨), 아첨할 미(媚)를 써서 남의 환심을 사기위해 요염하게 웃음 짓는 여자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금과에서 순창방향으로 88고속도로를 달라다가 동쪽을 바라보면 뭇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미산이 여자의 매혹적인 자태처럼 다가오며 산꾼들을 유혹한다.
울창한 숲과 정상부근의 암봉의 웅장한 모습은 이 부근에서 보기 드문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순창읍 방향보다는 금과면 방향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더욱 정겹고 아름다우며, 금과의 명산으로
불리고 있다.
못토재는 옛적에 길이 없을 때에는 순창으로 통하는 큰 고개였으며,우측의 봉우리를 작은아미산,
상죽마을 뒷편의 가운데 봉우리를 아미산, 북쪽 끝에 있는 암봉의 정상을 시루봉이라고 하며,
산 전체를 부를 때는 아미산이라고 한다고 했다.
전설에 의하면 아미산을 '배맨산'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옛적에는 이 주변에 물이 가득 차있어서 시루봉 정상에 있는 절구통바위에 배를 매어두었다 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회문산(回文山/830.0m)
호남정맥의 산줄기가 내장산, 백암산, 추월산을 지나 용추봉에서 동쪽으로 지맥 하나를 나뉘어 놓는다. 이 지맥은 세자봉, 여분산어깨, 장군봉을 지나서 회문산을 일구어 놓는다.
회문산의 물줄기는 차자천과 일중천을 통해 섬진강에 합수되어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일중리와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 경계해 있는 산이다.
주봉인 회문봉(830m)을 위시하여, 장군봉(將軍峰), 깃대봉 등, 수많은 연봉과 골짜기들이 첩첩으로 둘러 쌓여있고 구림천과 옥정호에서 흘러내린 섬진강이 회문산을 두 팔로 감싸듯 휘감고 장천선을 따라 흘러가고 있어 지형적으로 피난처와 방어하기에 천혜의 유리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최근에는 저항과 투쟁, 격동의 근대/현대사를 한 몸에 체험했던 회문산의 아픈 상처를 씻고 역사
테마 관광지로 조성된다.
회문산 개발은 '남부군 사령부 복원' '역사기행 테마 관광코스 발굴, 국민정신교육관 건립, 비목공원 조성, 비목제행사 개최 등이다.
영산인 회문산은 홍문대사(홍성문)가 이산에서 도통(道通)하여, 회문산가(回文山歌) 24혈(穴)의
명당책자를 만들었다해서 유래되었고 책에는 회문산 정상에 24명당(明堂)과 오선위기(五仙圍碁)가 있는데 이 곳에 관(棺)을 보토(補土)하여 묘를 쓰고 나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대까지 갈 것이라고
하였다. 이 설을 입증하듯 회문산 정상과 주변에는 많은 묘들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김대건 신부가 처형을 당할 때 3족이 멸하는 화를 면하기 위하여 동생 김란식과 조카 김현채가 영산인 회문산으로 찾아들어 기거하였고 그들의 묘소가 현존하고 있다.
동학혁명과, 한말의 일제침략에 항거하던 면암 최익현, 동헌 임병찬, 양윤숙 의병대장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해방이후에는 여수, 순천 반란군의 잔당이 찾아들어 총성을 울리기도 했으며,
6.25가 발발하면서는 빨치산들의 활동의 근거지가 되어,지역주민들과 수난을 함께 겪어온 산이다.
또 100만권의 책이 팔려 화제가 되고, 영화관객 70만명을 기록했던 '남부군'의 빨치산들의 활동
무대가 바로 회문산 주변이며 지금은 이들의 근거지였던 장군봉 아래 87만평에 휴양림이 조성
되었고 정치간부 정치훈련장이였던 '노령학원'자리가 이제는 삼림욕장으로 가꾸어졌다.
학문과 창의에 빛난 조평(趙平)선생이 죽자 생전에 이룩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천만평의 사패지(賜牌地)를 하사하였고, 사패지에 깃대를 꼽도록 하였다.
지금도 회문산 북동능 끝봉에 '조평선생사패지(趙平先生賜牌地)'라는 깃대를 꼽아 놓고,
이름을 '깃대봉'이라 부르고 있다.
깃대봉 아래 북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덕치면 회문리(回文里)는 380여년 전 함안조씨인 조평선생이 임진란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정착한후 부락이 형성되었고 이조말엽까지 지명을 고덕치(高德峙)라 했으나 일제때 행정구역이 개편됨에 따라 회문봉에 천연적으로 생긴 돌문(回門)을 본 따서 회문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의 회문산 중턱에 있는 만일사(萬日寺)의 유허비에 의하면 고려말에 이태조의 등극을 기원하기 위해 무학대사가 만일(萬日)동안을 기도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약간 검붉은 색깔에 반짝거리는 윤기속에 감미롭고 특이한 맛이 혀를 감칠 맛나게 하는
순창고추장이 세상에 알려진 동기는 고려말 무학대사가 이태조의 등극을 위해 만일사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이태조가 무학대사를 찾아오다가 어느 농가에서 고추장을 먹어보고 그 맛을 잊지 못해 등극 후 순창현감에게 고추장을 진상토록 해서 그 후로 부터 유명해 졌다.
또한, 순창자수가 명성을 떨치게 된 동기는 조선조 중엽 순창현감이 임금을 알현할 때 관복에
수 놓은 자수 솜씨에 임금이 감탄하자 그 후로 부터 진상품이 되면서 유명해졌다.
● 산성산(山城山,572.7m)
금남호남정맥 완주 주화산에서 분기된 호남정맥이 북으로 금남정맥을 나뉘어 놓고, 남으로
뻗어가며 경각산, 오봉산, 내장산, 백암산, 용추봉, 추월산, 강천산 어깨를 지나서 산성산을 솟구쳐 놓았다. 산성산의 물줄기는 동쪽은 강천제를 통하여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남쪽은 담양호를 통하여 영산강에 합수된다. 행정구역은 순창군 팔덕면과 전남 담양군 금성면과 경계해 있다.
산성산의 이름은 이산에 축조된 산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일명 금성산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금성면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순창방면에서는 이 금성산성을 '연대산성'이라고 부른다.
이성을 일주하는데 3시간30분 소요되고 사적353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시대에 축조하였고 조선 태종 9년(1409년)에 개축하였다.
임진왜란 후, 광해군 2년에 파괴된 성곽을 개보수하고 내성을 구축하는 등 14년에는 내성안에
대장청을 건립하였고 효종 4년에 성첩을 중수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외성의 주위가 4km, 내성의 주위가 2km에 달하며, 철마봉을 중심으로 성벽의 높이가 낮게는 3m에서 높게는 30m에 이른다. 현재는 동서남북 4개의 문과 60%의 성콱이 대부분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1984년 동학농민운동때 성안의 대장청, 장교청, 동헌, 보국사, 민가 등이 불에 타서 자취만 남아 있다.
이산은 해발 600m의 철마봉의 절벽에서 시작된 연대봉, 시리봉 등의 산줄기를 이용하여 축조한 금성산성이 있다. 강천산의 산줄기가 서남쪽으로 뻗어 담양군과 경계를 이루고 봉우리마다 암봉으로 이루어져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철마봉에서 서쪽엔 담양호가 아름답고, 추월산이 다가온다.
● 여분산(如粉山,774.3m)
금남호남정맥 완주 주화산에서 분기된 호남정맥이 남으로 달리며 만덕산,경각산, 오봉산,
내장산, 백암산, 추월산을 지나 용추봉에서 동쪽으로 지맥 하나를 나뉜다.
이 지맥은 세자봉(700.9m)을 지나 3.5km지점의 여분산 어깨에서 남쪽으로 산줄기 하나를 나뉘는데 1km 거리에 여분산이 위치해 있다.
이 지맥은 여분산 어깨에서 다시 동쪽으로 뻗어가며 회문산의 산줄기에 장군봉을 지나 9km지점에
회문봉(830m)을 일구어 놓는다. 여분산의 물줄기는 구림천과 추령천을 통하여 섬진강에 합수되고
광양만의 남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전북 순창군 구림면 운북리, 방화리에 위치해 있으며 특징이 없는 그저 평범한 산이다. 그러나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방이 탁트여서 막힘 없이 좋다.
남으로 호남정맥의 용추봉(龍秋峰)과 무등산, 동으로 지리산의 연봉들이 아스라히 마루금을 이룬다. 서로는 용추봉과 세자봉(世子峰)이 눈앞에 다가선다.
북동쪽으로는 장군봉(투구봉)과 회문산의 정상인 회문봉이 우뚝 솟아 눈을 가득 채워준다.
여분산의 남쪽에 위치한 호랑이바위는 구림면 운북리 운항마을 앞에 있는 큰바위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바위가 바로 호랑이바위이다. 호랑이바위가 북쪽(여분산 방향)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형상이며, 예전까지만 해도 바로 그 앞에는 2개의 개를 닮은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즉 호랑이가 먹이로 개를 가장 좋아하는데 호랑이바위와 개바위가 있어야만 마을에 액운이 없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개설에도 불구하고 호랑이 바위는 그자리에 있으나, 2개의 개바위는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과거에 50호에 이르렀던 마을이 지금 17호만 남았고 빈집이 많았다.
그러나 요즈음의 우리나라 농촌은 어느곳이나 똑같이 피페해져 가고 있는 실정이어서 속설에 불과 하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 용골산(龍骨山,645.0m)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이 산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어가다가 팔공산
에서 마령치 방향으로 지맥 하나를 나뉘어 놓는다.
마령치를 향한 지맥은 남쪽 만행산 방향의 산줄기를 나뉘어 놓고 서쪽 임실성수산을 지나 봉화산,
응봉, 무제봉, 지초봉, 원통산, 무량산, 백이산을 넘어 섬진강에 오수천과 섬진강원류를 가른다.
이 지맥 가운데 원통산과 무량산 사이에 적성강을 앞에 품고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용골산을 솟구쳤다. 행정구역은 사면(四面)이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에 둘러 쌓여 있다.
그리고 동.서.남.북중 동쪽을 제외한 3면이 섬진강으로 둘러 쌓여있기 때문에 산행길도 주로 섬진강 변에서 오르고 내리게 되어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좋다.
북으로는 섬진강이 흐르는 덕치면 가곡리의 협곡너머로 청웅의 백련산, 덕치의 원통산이 다가오고, 동으로는 남원 보절에 있는 천황봉너머로 지리산의 제 2봉인 반야봉이 아스라하게 다가온다.
동남으로는 무량산이고, 그 아래는 섬진강이 햇빛을 받아 은빛물결이 출렁거린다.
서로는 요강바위, 자라바위 등 기암괴석들을 품에 감싸안고 있는 섬진강이 장구목 마을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내려다 보인다.
저 멀리로 눈을 돌려보면 강천산과 내장산의 연봉들이 다가오고 북서쪽으로는 회문산과 팔봉산이
섬진강과 어우러진 풍광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또한 장구목 주변의 섬진강에는 주변경관이 좋아서 여름철 피서객들로 붐 빈다.
그러나 적성댐 건설이 계획되어 있어 장구목(내룡)마을 주변뿐만 아니라 덕치면 주변까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수몰될 처지에 놓여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용골산과 무량산은 전설을 매우 많이 간직한 산이다.
적성에서 순창방향으로 가다 화탄마을을 지나서 갓고개를 못미처에 있는 중산리 버스승강장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는 용골산의 모습이 마치 용이 하늘을 날아가는 형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무량산(無量山)은 자원이 헤아릴 수없이 많은 산의 의미라고 한다.
용골산은 용과 관련된 지명과 전설, 수려한 자연경관이 많다.
용골산의 남쪽방향인 어치리 내룡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오르면 천연동굴인 아흔아홉개의 용굴이
있는데, 세 번째 용굴까지는 사람이 갈 수가 있으나, 네 번째 용굴부터는 불을 켜도 앞을 분간할 수 없어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화강암으로 이뤄진 용골산 정상인 상봉의 신선바위와 산중턱에는 삼형제바위, 최근까지 스님들이 찾아와서 축조했다는 절터, 물맛 좋기로 소문난 용골샘 등이 있다.
남쪽의 무량산의 바위에는 아흔 아홉개의 샘이 패여 있어 바가지로 물을 떠먹을 수 있다고 한다.
용골산의 정상에 있는 신선바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는데, 옛날에 용골산에서 수도하던 스님이 바둑을 두자는 내용의 서신을 호랑이의 입에 물려 인근의 무량산에 기거하는 스님에게 보내서, 서로 만나서 바둑을 두었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25때 아군들이 적군을 토벌하기 위해서 막사를 설치하면서 쇠말뚝을 박으면서 바둑판의 형체가 없어졌다고 한다.
장구목은 내룡마을에서 장구목재 못미처 오른편에는 옹씨들이 3백여호가 살았다는 집터가 있는데, 섬진강의 '두무쏘'에서 잉어를 잡아먹고 모두 죽었다고 전해온다. 그리고 장구목은 옛날에 지역주민들이 왕래하던 큰 길목이었으며, 원래 이름은 그 주변에 장군의 명당이 있어서 '장군목'으로 불려졌는데, '장구목'으로 이름이 변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요강바위는 내룡마을의 장구목가든 앞 냇가 가운데에는 자라바위가 있고 내룡마을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좋은 곳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요강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어른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항아리처럼 움푹 패인 구멍이 있어 옛날에 어른들이 소변을 보던 요강처럼 생겼다하여 요강바위, 또는 용이 승천하려고 용트림을 하던 '용틀바위'로 불린다고
한다. 또한 이 바위의 상단부에는 연꽃모양을 한 돌출부 3개가 있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귀를
쫑긋 세우고있는 토끼같기도 하고, 또는 여성의 성기를 빼어 닮은 모습을 한 기암괴석이다.
바로 옆에는 자라모양의 자라바위가 있고, 강한 가운데 물결 무늬를 이룬 거대한 너럭바위위에는
여인들이 목욕을 한 뒤,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용추봉(龍秋峰,560.0m)
남으로 내달리며 전북지역에 수많은 산들을 솟구쳐 놓고, 추령, 내장산의 장군봉과 신선봉을 지나
새재에 이르러 530봉에서 서쪽으로 입암산 방향으로 산줄기하나를 내려놓는다.
호남정맥은 남쪽으로 전북과 전남의 경계를 달리며 백암산과 추월산을 지나 용추봉을 솟구쳐 놓고 강천산 방향으로 뻗어간다.
용추봉의 물줄기는 남쪽은 담양호를 통해 영산강으로 흐르고, 북쪽은 추령천을 통해 섬진강에 합수된다. 행정구역은 전북 순창군 복흥면과 전남 담양군 용면에 경계해 있다.
정상에는 헬기장과 삼각점이 있고, 조망은 서쪽으로 추월산, 남으로 강천산, 무등산이 다가오고
동으로 세자봉과 여분산, 회문산이 보인다.
이곳은 호남정맥의 산줄기를 남북으로 이어주며, 동쪽의 산줄기는 세자봉, 여분산, 회문산을 이어
주는 요충지이다. 동으로 뻗어가는 지맥은 세자봉을 거쳐 중간지점에서 두 갈래를 쳐서 산줄기
하나를 남쪽의 여분산을 일구어 놓고, 동쪽으로 지맥을 뻗어가며 장군봉과 회문산을 솟구친다.
문화재자료 제72호인 낙덕정은 복흥면 답동에서 1.5km를 달리면 맑은 호수를 이루고 있는 낙덕보
옆에 우뚝 솟은 바위위에 낙덕정이 있다.
6.25이전까지는 수천마리의 백로가 서식하여 학마을로 불렀다.
이곳은 조선시대 선조때 학자요. 명신이었던 하서 김인후가 을사사화 후, 어지러운 세상을 개탄하고 낙향하여 은거할 때 고향인 장성과 가까운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시운을 읊던 유서 깊은 곳이다. 조선시대 문단에서 고산 윤선도와 쌍벽을 이룬 송강 정철이 김인후에게 이곳에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고종 37년(1900년)에 이웃 마을인 상송리 김노수가 건립하였다.
김병로의 고향 낙덕정에서 0.5km지점의 하리에는 우리나라 초대와 2대의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의 출생지이며 성장지이다.
19세에 의병활동, 일본에 유학하여 법률공부를 하고 변호사로 독립투사로 변론하였고 광복후에는
대법원장으로 이승만 대통령과 맞섰던 대쪽같이 곧은 성격의 소유자로서 국민의 추앙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유형문화재 제27호인 삼인대는 조선 중종때(1506-1544년) 순창군수 김정과 담양부사 박상, 무안
현감 유옥, 세사람이 이 곳에 모여 죽음을 각오하고 중종의 페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하는 글을 섰던 곳으로 그때 허리에 차고 온 인장을 나무에걸었다고 하여 그위 이들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어 삼인대라 부르고 제향을 지냈던 것이다.
이기반 시인은 삼인대(三印臺)와 애환에 대하여 이렇게 시를 읊었다.
剛泉溪谷/ 소나무가지에 걸렸던/ 세사람 수령의/ 직인은 간데 없고
碑閣에 이는 솔바람이/ 三印臺 아픈 사연을 말해준다.
순창군수 金淨/ 담양군수 朴祥/ 무안현감 柳沃의
章敬王后 복위상소를/ 아는가 모르는가.
不義를 물리치던/ 그 얼 길이 받들어
어지러운 이 세상을/ 바로 보고 정의롭게 살으리.
● 고당산(高堂山/639.7m)
금남호남정맥 완주 주화산에서 분기된 호남정맥이 북으로 금남정맥을 보내고 남으로 뻗어
가며 만덕산, 경각산, 오봉산, 성옥산, 왕자산, 구절재, 굴재를 지나서 고당산을 솟구쳐 놓고 내장산, 백암산을 거쳐 전남 광양의 백운산까지 이어진다.
고당산은 동진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 되며 물줄기는 동쪽은 추령천을 통하여 섬진강에 합수되어 남해로 흘러들고 서쪽은 수청저수지를 통하여 동진강에 합수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상 전북 정읍시 부전동과 칠보면, 순창군 쌍치면 등 1동 2개면에 경계해 있는 산이다.
정상에서 조망은 북으로 수청저수지와 칠보면 마을, 서로는 내장 저수지와 뾰쬭 솟아오른 내장산의 연봉들이 병풍처럼 줄지어 다가오고 건너편으로 추월산, 그리고 발 아래는 개운치와 건너편에 통신시설이 설치된 510봉이 보이며, 남으로 회문산이 조망되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 백암산(白岩山/741.2m)
금남호남정맥 완주 주화산에서 분기된 호남정맥이 남으로 뻗어가며 전북지역에 수 많은
산들을 솟구쳐 놓고 추령과 내장산의 장군봉과 주봉인 신선봉을 지나 새재에 이르러 530봉에서
서쪽에 입암산으로 뻗어가는 기맥 하나를 나뉘어 놓는다.
이곳에서 호남정맥은 남쪽으로 전북과 전남지역의 경계를 달리다가 바로 백암산의 정상인 백학봉을 일구어 놓고 광양의 백운산까지 이어진다. 백암산의 물줄기는 남쪽은 장성호를 통해 영산강에 합수되고 북쪽은 추령천을 통해 섬진강에 합수된다.
행정구역상 전북 순창군 복흥면, 정읍시 내장동, 전남 장성군 북하면에 경계하고 있는
백암산(白岩山)은 내장산과 함께 1971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백양사 입구에 들어서면
사찰 뒤편 저 멀리 흰 바위봉우리가 보이는데, 이 바위가 '학바위' 또는 '백학봉'이다.
백암산은 흰백(白), 바위암(岩)을 써서, 흰 바위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백양사를 향해 다가갈수록 사찰과 어울린 기암봉으로 눈길이 이끌리게 된다.
내장산, 입암산과 함께 내장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고, 내장산의 단풍에 빛이 가려져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산세와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산의 짜임새와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적은 내장산과 어깨를 견준다. 또 백암산은 만개한 연꽃을 연상시키는 '학바위'와 다양한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백양사의 그윽함은 내장사보다 한 수 우위로 평가되고 있다.
단풍나무, 비자나무, 은행나무, 감나무, 기암괴석 등이 어우려진 10월말부터 11월 초순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 이 무렵이면 단풍축제가 열린다.
백암산의 5천 그루의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153호), 굴거리나무숲(천연기념물 제91호),
고로쇠나무 등의 난대성 상록수림이 많고 바자나무의 열매는 기충충인 촌충의 구제약으로 쓰여져
옛부터 사찰에서 많이 길렀으며, 백암산의 비자나무도 고려 고종때 각진국사에 의해 심어진 것으로 전해온다. 이 수백년생의 아름드리 비자나무에 새싹이 돋아나고, 사찰입구의 벚꽃이 만발했을 때,
기묘하게 솟은 백학봉과 천년고찰 백양사가 어우러진 풍광은 너무 아름다워서
'춘(春)백양, 추(秋)내장'으로 불린다.
백양사는 환양선사가 학바위 아래 영천암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아미타불경을 설법할 때
백양 한 마리가 백학봉에서 내려와 경청한 뒤 눈물을 흘리며 사라졌다하여 백양사(白羊寺)로 이름을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는 조계종 제18교구의 본사로서 각진국사, 만암종사, 서옹종정 등의 이름난 고승
들이 거쳐간 사찰이다.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선사가 창건하여 백암산 백암사로 이름지었고, 그 뒤에 고려 덕종때 중연선사가 중창하여 정토사(淨土寺)로 개칭하였으나, 조선 선조때 환양선사가 중창하여 다시 백양사로 바뀌었다.
이 사찰은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변종루 대웅전, 극락보전, 진영각, 칠성전, 명부전, 만세루와 다층
석탑 등이 있으며 이중에서 극락보전과 대웅전은 유형문화재이다.
대웅전안 오른쪽 벽에는 등을 긁는 모습의 나한상 등 해학적인 나한상 16위가 모셔져 있다.
극락보전은 백양사 건물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4백여년 전에 건축되었다.
팔층탑에는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으며, 부도전에는 백양사 출신 18승려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함과 비가 있다.
● 추월산(秋月山/729.0m)
금남호남정맥 완주 주화산에서 분기된 호남정맥이 남으로 내달리며 전북지역에 수 많은
산들을 솟구쳐 놓고, 추령, 내장산의 장군봉과 신선봉을 지나 새재에 이르러 530봉에서 서쪽으로
입암산 방향으로 산줄기 하나를 내려놓는다.
호남정맥은 남쪽으로 전북과 전남의 경계를 달리며 백암산 솟구쳐 놓고 강천산 방향으로 뻗어간다. 추월산의 물줄기는 남쪽은 담양호를 통해 영산강에 합수되고 북쪽은 추령천을 통해 섬진강에 흘러
든다. 행정구역은 전북 순창군 복흥면과 전남 담양군 용면에 경계해 있다.
추월산(秋月山)은 가을추(秋), 달월(月)을 쓰며, 가을의 보름달이 추월산에 닿을 것같이 드높은 산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고 호남의 5대 명산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추월산 암봉 아래에는 단풍나무가 매우 많아 가을이면 이 풍경을 감상하러온
등산객들로 만원을 이룬다. 그리고 가을 뿐 만 아니라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봄에는 진달래와 개나리, 여름에는 울창한 녹음과 시원한 담양호반의 푸른 물결, 겨울이면 설경과
암벽에 매달린 고드름이 매우 인상깊다. 순창에서 담양방면으로 가는 24번 국도에서 바라보는
추월산은 산의 전체가 암봉으로 뒤덮여 있으며 산중턱에 아슬아슬하게 보리암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추월산을 등산해보면 암벽 사이사이로 절묘하게 등산로가 나있어 산행의 멋과
스릴 만점이다. 또 산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담양호의 푸른 물결이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담양호의 물이 항상 가득한 것은 지역의 지명과도 연유가 있는데 담양이 한자로 못담(潭)자 쓰듯이 옛부터 이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강우량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고려 성종때의 지명도 담주(潭州)였다.
추월산의 산행은 담양호 때문에 습기가 많아 바윗길이 매우 미끄러워 신선대에서 정상에 이르는
암릉코스는 조난되지 않토록 주의 해야한다.
특히 겨울산행은 등산장비를 철저히 갖추어야 하며 장마철이나 동절기에는 신선대에서 우회로를
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추월산의 자연경관은 일출과 일몰의 모습이 뛰어나다. 석양에 그늘진 모습과 아침햇살이 담양호의 절벽들을 속속들이 비춰주는 모습은 서로 다른 추월산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어 등산객들로부터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추월산 등반은 전남 담양방면의 동쪽 등기점에서는 교통도 편리하고 등산로도 잘 나 있으나,
전북 순창 복흥면 방면의 서쪽 등기점에서는 교통도 불편하고 등산로도 정비되지 않았다.
행정당국에서 관광객유치나 지역개발차원에서 고려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
보리암(菩提庵)은 한자로 보살 보(菩), 보리수나무 리(提/들제)이나 본음은 보제(菩提)이다.
불교의 용어로서, 도(道), 지(智), 각(覺)의 뜻이며, 불교 최고의 이상인 불타정각(正覺)의 지혜와
불과(佛果), 또는 정각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 삼보리(三菩提)의
불도를 닦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추월산의 해발 650m에 위치한 보리암은 3간의 법당과 5칸의 당우를 지니고 있다.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며 전설에 의하면, 보조국사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나무로 깍은 매 세 마리를 날려보냈는데 한 마리는 장성의 백양사 터, 한 마리는 승주의 송광사 터, 한 마리는 추월산 보리암터에 내려 않았다고 한다.
보리암 입구의 암벽에는 임진왜란때 김덕령장군 등의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이 각자되어 있는데
이는 김장군이 이 추월산에서 무술을 연마했으며, 왜군을 만난 장군의 부인이 순절한 곳이라고 한다. 한편 인근의 금성산성 전투 때 왜군이 민간인을 학살하자 용면 주민들이 이곳 보리암 근처의 절벽의 동굴로 피신해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이 보리암은 불법(佛法의 초발심(初發心)의 자리이며 속세와 격리된 듯한 극락세계 풍경이 연상돤다. 특히 보리암 터를 받쳐주고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에 잇닿은 평상위에서 내려다보는 절벽과 어우러진 담양호의 푸른 물결은 한 폭의 수채화이다.
● 풍악산(楓嶽山,600.0m)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가 북서쪽으로 뻗어가다 팔공산을 지나면 곧바로 지맥 하나를 내려놓는다.
이 지맥이 남으로 내달리며 비행기재(718번도로), 묘복산, 만행산 천황봉, 갈치(721번도로),
밤재(17번국도)를 지나서 다시 두 갈래를 친다. 좌측으로 교룡산 줄기를 보내놓고 노적봉을 지나서 풍악산을 솟구쳐 놓고 문덕봉과 고리봉으로 뻗어간다. 풍악산의 물줄기는 동으로 요천, 서로는 오수천의 분수령이 되며, 섬진강에 합수되어 남해로 흘러든다.
행정구역은 순창군 동계면과 남원시 대산면에 경계해 있는 산이다.
산의 이름이 단풍나무풍(楓), 뫼악(岳)을 써서 풍악산으로 불린다.
풍악산하면 얼른 금강산의 가을산을 연상케 된다.
풍악산이 금강산의 가을산 별칭의 이름을 얻게 된 사연은 정상 주위에 있는 기암괴석과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진 멋진 풍광 때문인 것 같다.
이 산이 비록 해발 600m의 낮으막한 산이지만 섬진강변의 평야지에 우뚝 솟아올라 조망이 좋을 뿐만 아니라, 온산이 울창한 송림으로 이루어져 9월에서 11월까지는 송이가 많이 생산된다.
특히 정상 근처에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정상에는 삼각형의 커다란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풍악산엔 단풍나무가 존재하지 않다는 점이다.
신계리 마애여래좌상(보물 제423호)은 남원시 대산면 소재지를 가기 전 삼거리 표지판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신계리 신촌마을이 나온다.
신촌마을 위 시멘트길을 달리다가 저수지에서 표지판을 따라 좌측으로 5분쯤 오르면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서 서쪽 산기슭으로 0.5km쯤 오르면 마애여래좌상이 자리잡고 있다.
거대한 암석을 광배(光背)를 하고 자연암반은 대좌로 이용한 조각한 작품이다.
도선국사가 하루밤사이에 조성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큼직한 육계, 풍만하고 둥근 얼굴에 눈, 코, 귀 등이 비교적 생기 있게 조각, 넓은 어깨, 불룩한 가슴과 함께 팔, 다리에 입체감이 살아있어 생동하는 체구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견편단(右肩偏袒) 법의를 선각으로 표현하여 다소형식화된 점이나 신체각부에 도식화의
수법이 보이고 있는 점등에서 고려시대의 작품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머리, 신광(身光)이 모두 표현된 거신광배(擧身光背)에는 연주문(連珠紋),과 연화문(連華紋),
화염문(火焰紋)을 조각하였는데, 연주문은 그예가 별로 없는 특이한 것이다.
이 문양은 생기있는 작품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여래불상이다.
4. 순창의 명승지 문화유적
● 추령 장승축제
순창읍에서 정읍방향으로 20km쯤 달리면 복흥면소재지이고 다시 6km쯤 달리면 내장산 위의 추령마을의 장승이 많은 곳에 이른다.
이 마을 입구에 서있는 거대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나무장승이 사찰의 일주문처럼 서있다. 그 안에 2천여평의 광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선사시대의 초가집 10채와 그사이에 20여개의 장승과
10여개의 솟대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옛 농경문화를 엿볼 수 있는 각종 농사도구가 진열되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선사시대로
되돌아온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추령마을 축제는 내장산 내장사와 백암산 백양사 주변이 만산홍엽 새 옷을 갈아입는 10월 중순부터 11월초 사이에 개최되며 농악놀이 등 각종 민족행사와 주변에서 우리 토산품 쓰기 풍물장터가
열리게 된다. 이 길목은 내장산 단풍을 구경하고 백양사로 넘어가는 길목이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쉬어 가는 곳으로 단풍과 더불어 볼거리가 많은 놀이의 축제 마당으로 부각되고 있다.
● 둔전리 들독놀이
쌍치면 소재지에서 시산을 거쳐 내장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영광정 옆에 둔전리가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 앞에는 큰 당산나무 아래 계란모양의 들독이 있는데 가금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들독
놀이를 즐긴다. 들독놀이는 돌을 들어 힘을 겨루고 머슴의 새경을 정할 때 그 값을 정하는 민속놀이다. 주로 전북의 서남부와 전남의 동북부 사이에 성행했던 흥겨운 이 농경문화는 점차 쇠퇴하고 들독이 없어 졌으나, 이 마을에만 보존되어 있다.
● 옥천사지 3층석탑/유형문화재 제26호
금산사 기슭, 현재 순창여중내에 고려대 축조했다는 3층석탑이 있다.
지금은 폐사가 된 옥천사 경내에 탑신의 장주와 면석이 단층의 옥개와 전각과 옥석 받침이 분리되어 있다. 조선조 중종 때 조광조 일파를 무참하게 참살해버린 유자광의 잔학상을 보다못한 그의 딸이
이곳에 와서 미혼으로 수절하면서 기도하였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 대모산성/문화재자료 제70호
순창읍에서 광주쪽으로 1km쯤 달리면 냇가 건너편에 높이 90m의 산둘레에 대모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산성은 일명 홀어미산성이라고도 한다.
문헌에 의하면 '군서 4리에 있으며, 석성의 둘레가 474m에 샘이 1개, 연못이 1개가 있고 군량미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부자집 할머니가 살았는데 아들 아홉명을 시켜 성을
쌓고 살았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양씨부인이 홀로 이곳에서 정절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양씨부인을 탐낸
홀애비가 구혼을 하자 양씨부인은 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내기를 청하였다.
홀애비는 나막신을 신고 한양을 다녀오기로 하고, 홀어미는 혼자서 성을 쌓기로 약속하였다.
홀어미가 몇달동안 날을 지새우며 성을 쌓고 나서 치마를 털고 있을때 홀애비가 한양에서 돌아와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 패배를 인정하고 그자리에서 자결하자, 애절한 홀어미의 굳은 정절을
기리어 홀어미산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 영광정/문화재자료 제134호
쌍치면 소재지에서 고당산(640m)자락을 지나 내장산으로 가는 도로로 5km쯤 가면 섬진강
상류의 둔전리 도로변에 영광정이 있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국권을 빼앗기자 금웅 김원중이 동지 7명과 함께 앞날을 걱정하면서 세월을
보낸 우국충정의 서린 유서 깊은 곳이다.
● 신경준 생가와 귀래정
순창읍 남산마을에 자리잡은 신경준생가지는 신말주 세거지로 불리고 있으며 신말주의 10대 후손인 여암 신경준이 조선 후기 1769년에 우리나라 전통지리서인 산경표(山經表)를 만든 사람이다. 또 그 위의 동산에 자리잡은 귀래정을 건립한 신말주는 신숙주의 동생으로 단종을 세조가 몰아내고 왕위에오르자 대사간의 벼슬도 버리고 이곳에 귀래정을 짓고 선비들과 십노계(十老契)를 만들어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다.
이 들이 남긴 십노계첩에는 10명의 계원들이 살아온 내력을 적어 놓은 것이다.
● 설씨부인 권선문첩/보물제728호
신말주의 부인 설씨의 작품으로 조선조 여류서화작품의 걸작으로 인정, 보물로 지정되었다.
강씨부인은 강천사 불사를 돕기 위해 불자들의 시주를 하도록 권하는 권선문을 짓고 사찰의
설계도를 여러 화폭으로 그려낸 서화가 어울진 작품이다.
● 충신리 돌장신/중요 민속자료 제101호
순창고교 교문입구 철책가운데 돌장승이 있는데 1.8m의 사각 돌기둥을 대강 깍아 몸통으로
하고, 겸손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새겨 놓았다.
그러나 이마에는 불상처럼 백호를 음각하고 무병과 태평을 지키기 위해 세운 것으로 당산제를
지냈었다고 한다.
● 순창 객사/유형문화재 제48호
6. 25 전쟁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보존된 중요한 유적지며, 임병찬의병장이 의병을 이끌고
이곳에 진을 치고 왜군과 격전을 벌이다 왜군의 신무기와 전주에서 파견된 진위군이 같은 동포임을 알고, 싸움을 포기하고 해산하자 의병장들은 체포되어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 팔덕면구룡리 입석
순창읍에서 강천산 방향으로 5km쯤 가다보면 좌측으로 팔덕면 구룡리 입석마을이 나온다.
국도에서 300m쯤 떨어진 마을과 들녘가운데 느티나무가 우뚝 서있고 그 아래에 직경 3m, 높이 2m의 돌더미 위에 마을쪽으로 기우러진 1m 정도의 입석하나가 서 있는데 마치 남근석과 비슷하게 보인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와 입석을 마을을 수호하는 당산으로 섬겨왔다. 그리고 나무를 베려다가 벼락을 맞았다거나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정월달에 해마다 당산제를 지내고 풍물을 치며 지신(地神)을 밟아 왔으나, 요즈음에는 당산제가 사라지고 당산만 보존되어 옛 토속신앙을 대변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