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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느3:10]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옛문 건축]
주: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 - 이곳은 예루살렘 서쪽의 급경사지로 추측된다.
성 경: [느3:11]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옛문 건축]
주: 하림의 아들 말기야 - '하림'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이었다(스2:32). 따라서 여기의 '아들'(*, 벤)은 '자손'으로 번역됨이 타당하다. 한편, '말기야'는 '여호와는 왕이시다'의 의미를 가지는데 23절의 '베냐민'과 형제인듯하다(스 10:31, 32).
주: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 - 본절의 '바핫모압'도 최초로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스2:6)이다.
주: 한 부분(*, 미다 쉐니트) - 이것은 문자적으로 '두번째 부분'으로서, 이미 배정됐던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말기야'와 '핫숩'은 여기 이외에 다른 부분의 축성(築城)작업도 부여받았던 셈이다(23절).
주: 풀무 망대 - 이는 12:38; 대하 26: 9등으로 볼때 '골짜기 문'과 '넓은 성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던 곳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이 같은 명칭이 붙여진 것은, 그곳에서 빵이 구워졌기 때문인 듯하다(Williamson).
성 경: [느3:12]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옛문 건축]
주: 그 다음 - 이는 '풀무 망대'와 '골짜기문'(13절) 사이의 성벽 부분을 말한다. '일자형'(一字型)에 길이 약 450m 정도이다.
주: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었던 지역의 한 부분을 다스리던 사람을 가리킨다(9절 주석 참조).
주: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 '할로헤스'라는 이름은 '속삭이는자'(M. Newman). 혹은 '마술사'(Batten)라는 의미를 갖는다. 바로 이점 때문에 학자들은, 이 이름이 '사람의 이름' 곧 고유명사가 아니라 '직업명' 곧 보통명사라고 주장한다(M. Newman, Batten). 그러나 이와 동일한 이름이 에스라의 언약문에 인친 자들의 명단 중에 나온다는 사실은, 이 이름이 구체적인 개인명임을 입증해준다(10:24). 한편, 여기의 '아들'(*, 벤)은 오히려 '자손'의 의미로 봐야할 필요가 있을것이다(Schultz). 그리고 '그 딸들'(*, 베노타이우)은 (1) '딸'이 큰 도시에 인접해서 성장하고 있는 성읍에 대한 일상적 용어로 사용된 사실(겔 16:53)에 근거해서 '마을 사람들'을 뜻할 것이라는 견해(Batten, Rawlinson, Fensham, Kidner), (2) 여자는 성벽 쌓는 일에 종사할 힘이 없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 딸들'(베노타이우)은 '그 아들들'(베나이우)의 오기(誤記)라는 견해(JB, Vimcent), (3)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Williamson, Schultz, Keil)등으로 그 해석이 구분된다. 그러나 첫째, 고대 아테네에서는 무너진 성벽의 재건을 위해서 여자들도 동원됐으며 둘째, '딸'들은 남자 형제가 없을 경우 아버지의 이름과 재산을 상속받으며(민 36:8) 셋째, 본서의 3장은 성벽 재건에 대한 백성들의 열심을 강조하는(8절) 문맥적 특색을 갖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때, 위의 세 견해 중 (3)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있다.
성 경: [느3:13]
주제1: [성벽에 참여한 자들]
주제2: [골짜기 문, 분문(糞門), 샘문 건축]
주: 하눈과 사노아 거민 - '하눈'은 30절에서는 '살랍의 여섯째 아들'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 이름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의 의미를 갖는 '하나니엘', 혹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다'의 뜻을 갖는 '하나니야'의 단축형으로 짐작된다. 또한 '사노아'는 예루살렘 남서쪽 약 22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성읍이다(수 15:34).
주: 분문까지 성벽 일천 규빗을 중수 - '일천 규빗'은 약 450m의 길이이다. 북쪽 성벽 약 200m 정도를 네 집단에서 담당했던 것(2-5절)과 비교해보면 매우 작은 성읍 '사노아'의 거민들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은 특이하게 보인다. 이 점에 대해서는 (1) 사노아 거민들이 큰 열심을 냈었다는 측면, (2) 그들이 담당했던 성벽의 파괴가 극심하지 않았었다는 측면 모두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성 경: [느3:14]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골짜기 문, 분문(糞門), 샘문 건축]
주: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말기야 - '벧학게렘 지방'은 '벧학게렘'이라는 성읍과 전혀 다르다. 여기서 '지방'은 어떤 성읍과 인접해 있는, 혹은 둘러싸고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9절). 한편, '벧학게렘'은 예루살렘 남쪽 약 5Km 지점에 위치했다.
성 경: [느3:15]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골짜기 문 분문(糞門), 샘문 건축]
주: 샘문 - 이에 대해서는 2:14 주석을 참조하라.
주: 미스바 지방 - 이것도 '미스바'와는 전혀 다르다(14절 주석 참조). 한편,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 약 12.8Km에 위치했다.
주: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 - 여기서 '왕의 동산'은 기드론 골짜기 남단, 즉 그 골짜기가 힌놈의 골짜기와 만나는 곳에 위치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벽 바깥에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IDB, 왕하 25:4; 렘 39:4; 52:7). 한편, '셀라못'은 '실로암못'과 동일시 되는 것으로서(사 8:6; 요 9:7). 그 물이 넘쳐 흘러서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가 마주치는 곳에 위치했던 '왕의 동산' 쪽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 '셀라 못'은 '왕의 동산'의 수원(水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못이 예루살렘 본성(本城)의 바깥 쪽에 위치했었다. 이런 점 때문에 그 못과 그 물을 이용하는 자들의 보호를 목적으로 별도의 성벽이 쌓아졌었으므로 '셀라 못'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본 문구의 '성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루살렘의 동쪽 성벽의 가장 남쪽 부분 약 100m를 가리키며 '셀라 못'의 동쪽성벽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것은 '셀라 못가의 성벽'이라고 할 만하다.
주: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 - '다윗성'은 예루살렘의 동남쪽의 한 구릉지대로서, 기혼 샘의 북서쪽에서부터 남쪽까지 뻗어 있었다(삼하 5:7, 8). 그리고 '층계'는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갈 수 있었던 계단이었다.
성 경: [느3:16]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골짜기 문, 분문(糞門), 샘문 건축]
주: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느헤미야 - '벧술 지방'은 예루살렘 남쪽 약 21Km지점에 위치한 '벧술'이라는 성읍(수15:58) 그 자체를 뜻하지 않고 다만 그 성읍의 인접 지역을 가리킬 뿐이다(9절). 한편, 본절의 '느헤미야'는 본서의 저자인 '느헤미야'와 동명 이인이다.
주: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 '다윗의 묘실'은 '묘실'(*, 키브레이)이 복수라는 점에서 다윗 왕 한 사람만의 무덤이 아니라 다윗부터 시작해서 그 후예들의 공동 묘지였음이 분명하다(대하 28:27). 그 위치는 '다윗 성'(15절)의 남쪽곧 시온산 어디였을 것이다(Myers, 왕상 2:10).
주: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에 의해서 포위됐을 때, 히스기야는 기혼의 샘 물을 막은 후 고랑을 파서 그 물이 다윗 성 안쪽으로 흘러 들어오도록 해서 식수(食水) 문제를 해결했었다(왕하 20:20; 대하 32:3, 4). 그때 그 흘러 들어온 물이 한 곳에 모이도록 해놓은 시설이 곧 여기의 '파서 만든 못'이었다(사 22:9 - 11). 한편 '용사의 집'은 다윗의 충실한 부하들이었던 '용사들'(삼하 23:8; 대상11:10)이 사용했던 병사(兵舍)였다(Rawlinson).
성 경: [느3:17]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골짜기 문, 분문(糞門), 샘문 건축]
주: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 - 이처럼 성전 봉사에 바빴을 '레위 사람'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는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운동에 대한 백성들의 호응이 적극적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혹자는 본절의 '레위 사람'이 (1)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던 레위 사람의 후예이기 때문에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고 그래서 성벽 재건에 동참할 여유가 있었거나, (2) 포로 귀환후에는 레위인의 일부가 성읍의 행정에만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벽 재건에 동참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Williamson). 그러나 (1)의 견해는, 저자가 단순히 '레위 사람'이라고만 언급했다는 점에서 타당치 않다. 반면 (2)의 견해는 그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어느 정도 타당하다.
주: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그일라 지방'은 예루살렘 서남쪽 약 24Km지점에 위치한(삼상23:1 - 13) '그일라'와는 전혀 다르다(9, 12, 14절).
주: 하사뱌 - '여호와께서 참작하셨다'의 뜻이다.
주: 그 지방을 대표하여 - 그곳 주민들을 통솔하는 등 그성벽 재건 공사의 주체(主體)가 된 것을 가리킨다. 이 같은 역할은 한 지역을 다스리는 자로서 성벽 재건에 참여한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을 것이다(9절).
성 경: [느3:18]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골짜기 문, 분문(糞門), 샘문 건축]
주: 그 형제..헤나닷의 아들 바왜 - 여기의 '바왜'(*)는 '빈누이'(*)의 오기(誤記)로 간주될 수 있다. 그 이유는 (1) '바왜'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이나 그밖의 문헌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으며, (2) 9절의 '한 부분'은' 이미 배당된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11절)을 가리키므로, 본장 어디에든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 할당받은 작업 몫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나 그렇지 못하며, (3) 더구나 10:9에는 '빈누이'라는 레위 사람이 '헤나닷의 자손'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절의 '바왜' 를 '빈누이'로 고치고, 이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 두 몫의 성벽 공사를 할당받았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이 '빈누이'는 에스라의 언약문에 인을 치기도 하였다(10:9).
성 경: [느3:19]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골짜기 문, 분문(糞門), 샘문 건축]
주: 미스바를 다스리는 자...에셀 -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했던 한 성읍 '미스바'를 가리킨다. 한편, '에셀'은 '도움' 혹은 '구원'의 뜻이다.
주: 한부분 - 배당된 몫 이외에 또달리 배당된 별도의 작업 몫을 가리킨다(11절). 따라서 본절의 '에셀'은 본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작업 몫 이외에 이미 또 다른 부분을 배당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에셀'이라는 이름은 본장 어디에도 안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이 함께 한 재건 사역이 본문의 에셀이 감당한 또다른 한 부분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7절).
주: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 - 이것은 문자적으로 '모퉁이에 있는 군기고로 오르는 곳 앞'의 뜻이다(Schultz, Fensham). 여기서 '모퉁이'는 '성벽이 날카롭게 꺾어지는 곳'을 의미한다(대하 26:9). 본절에서 느헤미야가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라고 '군기고'를 한정적으로 표현한 까닭은 예루살렘에는 여러 군데에 군기고가 있었던 때문이었다(사 22:8).
성 경: [느3:20]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골짜기 문, 분문(糞門), 샘문 건축]
주: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 '삽배'는 스 10:28에서 이방 여인을 취했다가 회개한 자로 언급된다. 그리고 '바룩'은 본서 10:6, 8을 볼 때, 제사장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같은 사실은 여기의 '한 부분'에 대한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있다. 즉, '바룩'은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성벽 재건에 동참했었고(1절) 이제 그와는 별도로 또 다른 '한 부분'을 맡아서 공사를 했던 것이다. 한편, '힘써'(*, 헤헤라)는 '맹렬하다', '타오르다' 혹은 '진노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하라'(*)의 사역형으로서 '뜨겁게 되다'(Fensham) 혹은 '열심을 품다'의 의미이다(Davidson). 이 같은 단어는 앞의 '한 부분'이라는 말과 매우 잘 조화된다. 즉, 그는 열심을 품어서 이미 자신에게 맡겨졌던 공사를 재빨리 완료하고, 또다시 새로운 부분에 대한 공사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
주: 성 굽이에서부터...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 '성 굽이'는 '군기고'가 있는 성의 모퉁이를 가리키며 '집문에'는 '집 문 맞은편'의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Batten, 16, 19절). 만일 본절의 '집 문에'를 여자적(如字的)으로 받아들인다면, '엘리아십의 집'이 성벽과 붙어있었다는 오해를 낳게 될 것이다.
성 경: [느3:21]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골짜기 문, 분문(糞門), 샘문 건축]
주: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 - '학고스'는 스 2:61에서 자신들의 계보를 증명치 못하여서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던 제사장 가문의 조상으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여기의 '손자'는 '자손'으로 번역함이 타당하다. 그리고 '므레못'은 스 8:33에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가져온 물품을 인수했던 제사장으로 언급된다.
주: 한 부분을 중수하여 - '므레못'도 20절의 '바룩'처럼 자신에게 맡겨졌던 최초의 작업 몫을 재빨리 마치고, 본절의 또 다른 성벽 공사에 뛰어들었음이 분명하다(20절).
주: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모퉁이에 이르렀고 - 이것은 (1)므레못의 공사량(工事量)이 비교적 적었다는 사실(Rawlinson, Batten), (2) 엘리아십의 집이 매우 컸다는 사실(Keil) 중 하나를 시사할 것이다. 그러나 첫째, 느헤미야 귀환 당시의 예루살렘은 그 경제 형편이 좋지 못했으며(1:3) 둘째, 대제사장 그 당시 행정적 측면을 관장했었던 총독보다 권한이 비교적 적었음(5:9)을 미루어 볼 때, 위의 두 가지 추측 중 전자가보다 타당할 듯하다. 그런데 '므레못'이 이처럼 적은 몫 만을 담당했던 까닭은, 그 부근의 공사 조건이 심히 나빴기 때문일 것이다(Batten, 2:14). 아무튼 '므레못'이 대제사장 집 앞의 성벽 공사를 담당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 당시 신실한 제사장으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좋은 증거라 하겠다(Scultz).
성 경: [느3:22]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골짜기 문, 분문(糞門), 샘문 건축]
주: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 - '평지에 사는'(*, 안쉐이 키카르)은 문자적으로 '평지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한편, '평지'(키카르)는 (1) 예루살렘의 주변지역(Fensham, Williamson), (2) 요단강 유역의 여리고 지역(Keil, Rawlinson, Scultz, Batten) 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기의 '평지'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요단강 유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첫째, 이것이 에브라임 산지에 대해서도 적용됐으며(삼하 18:23 ) 둘째, 특히 본서에서 예루살렘 주변을 나타내는 데 사용됐다(12:28)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1)의것이 보다 타당한 듯하다. 따라서 본절의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시내에 살며 성벽 재건에 최초로 나섰던 제사장들(1절)과는 분명히 구별된다(Williamson).
성 경: [느3:23]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마문(馬門) 건축]
주: 베냐민과 핫숩 - '베냐민'은 '하림 자손'으로서 11절의 '말기야'와는 형제 혹은 근친인 듯하다(11절; 스 10:31, 32). 그리고 '핫숩'은 '바핫모압 자손'으로서 '베냐민'의 형제 '말기야'와 함께 '풀무 망대'를 재건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본절의 '핫숩'은, 한 곳에서는 '하림 자손'의 '말기야'와 함께, 또 다른 곳에서는 그형제 '베냐민'과 함께 공사를 하는 등 두 몫을 담당했던 셈이다(11절).
주: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 - '가까운 부분'(*, 에첼)은 구약 성경에서 대부분 '옆에' 혹은 '곁에'로 번역되는 단어(창 39:16; 삼상 5:2; 왕상10:19)이지만 문맥상 19절의 '맞은편'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 아무튼 이 문구나 앞에 '자기집 맞은편 부분'이라는 문구는,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 사업의 추진과 관련해서 공사 담당자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고려해주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라고 할만하다. 한편, '아사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의 뜻이다.
성 경: [느3:24]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마문(馬門) 건축]
주: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 - '빈누이'는 18절에 나오는 '헤나닷의 아들 바왜'와 동일 인물이다(18절). 이 사람은 동쪽성벽의 남쪽 부분을 건축한 다음 여기서 또 다른한 부분의 성벽 건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주: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 이것은 '아사랴의 집 끝 모퉁이에서 부터'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사람의 집 근처, 곧 아사랴의 집 맞은편 쪽은 아사랴 자신이 직접 성벽 공사를 하였기 때문이다(23절).
주: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 '성굽이'는 '성벽의 처음 꺾여진 부분'을 뜻한다(19절). 한편, '모퉁이'(*, 피나)도 '굽이' 와 거의 같은 뜻으로서, 여기서는 성의 꺾여진 부분이 원래의 방향대로 다시 꺾여진 부분을 가리킨다.
성 경: [느3:25]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마문(馬門) 건축]
주: 우새의 아들 발랄 - '발랄'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의 의미로서 구약 성경 중 본절에만 나오는 이름이다. '우새'도 오직 여기에만 나오는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들으셨다'의 뜻이다.
주: 왕의 윗 궁에서 내어민 망대 - 여기의 '윗'은 '높은'의 의미로서 '왕궁'을 수식한다기보다는 '망대'를 수식한다고 봄이 더 무난하다(Rawlinson). 한편, '왕의 궁'에 대해서는 (1) 솔로몬의 왕궁(Schultz), (2) 다윗의 왕궁(Rawlinson), (3) 포로로 끌려가기 직전의 왕의 임시 대피소(Fensham) 등의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왕궁'이 이미 언급된 남쪽의 '다윗 성'(15절)과 다른 이름으로 구별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1)과 (3)의 견해 중 (1)의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 그리고 '내어민 망대'는 솔로몬의 왕궁 외곽을 경비하기 위하여 세워진 망대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주: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 - 이것은 시(市)외곽을 감싸는 성벽의 일부가 아니라 솔로몬 왕궁 외곽의 '내어민 망대'와 연결된 내성벽(內城壁)의 일부이다. 한편, '시위성'은 영역본 흠정역의 번역대로 '감옥'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12:39; 롑 32:2).
주: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 - '바로스'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이었다(스 2:3). 따라서 여기의 '아들'은 '자손'으로 고쳐야 한다. 한편, '브다야'는 '여호와께서 속량하셨다'의 뜻이다.
성 경: [느3:26]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마문(馬門) 건축]
주: 때에(*, 웨) - '그리고' 혹은 '그런데'의 뜻이다.
주: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여 - '느디님 사람'에 대해서는 스 2:43 주석을 참조하라.
주: 동편 수문과 마주 대한 곳 - '수문'은 기혼 샘 반대편에 위치한 듯하다. 그렇다면 이 문은 동쪽 성벽의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채 못미치는 곳에 해당될 것이다. 이 문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 공중 집회시 이용되었다(8:1). 한편, '마주 대한 곳'은 '동편 수문'과 '내어민 망대' 사이의 성벽 부분이다.
성 경: [느3:27]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마문(馬門) 건축]
주: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 - '드고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백의 협조나 지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쪽 성벽의 한부분에 대한 공사를 담당했었다(5절).
성 경: [느3:28]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마문(馬門) 건축]
주: 마문 위로부터 - '마문'은 동쪽 성벽에 있었던 한 문으로서(롑 31:40), 말(馬) 혹은 말을 탄 사람들이 시내로 들어갈 때 이용됐었다. 아무튼 이 '마문'은 솔로몬의 옛왕궁으로 연결되는 문이었던 것 같다. 한편, '위'는 마문 북쪽성벽을 가리킨다.
주: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 - 이것은 이미 북쪽 성벽공사에 참여했던 '므레못'이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근처를 별도로 공사했었던 것과 유사한 경우이다(21절). 즉, 본절의 '제사장들'도 이미 '므레못'처럼 북쪽 성벽 공사에 참여했었고(1절), 다시 또 다른 몫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 경: [느3:29]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마문(馬門) 건축]
주: 임멜의 아들 사독 - '임멜'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제사장 가족의 한 조상이었다(스 2:37). 따라서 본절의 '아들'은 '자손'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또한 '임멜'은 다윗이 세운 제사장 조직 중 '열 여섯째' 반차에 속한 사람이었다(대상 24:14).
주: 동문 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 - 여기의 '동문'은 외성벽과는 상관 없이, 성전 건물에 속했던 문이었던 것 갈다(겔 40:6, 10). 그 문은 스룹바벨 성전 재건 때에 복구되지 못했다가 금번에 성벽의 한 부분으로서 복구된듯하다(Fensham). 이처럼 '동문'이 성전 건물에 속했다는 사실은, '동문 지기'가 레위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된다. 혹자는 본절의 '스마야'를 대상 3:22의 '스마야'로 보고, 그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근거가 희박하다.
성 경: [느3:30]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마문(馬門) 건축]
주: 하나냐...한 부분을 중수 - '하나냐'는 8절에서 '향품 장사'로 묘사되는 '하나냐'와 동일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즉, 본절의 '한부분'은 '하나냐'가 다른 부분의 성벽 공사도 담당했었음을 시사하며(11절), 이것은 곧 여기의 '하나냐'가 8절의 '하나냐'와 동일 인물임을 입증한다.
주: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 - '여섯째 아들'이라는 수식 문구는 '살랍'의 많은 아들중에서 오직 말째에 가까왔을 한 아들인 '하눈' 만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었음을 강조하려는 것인 듯하다.
주: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 - 4절의 '므술람'과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본절의 '므술람'도 두 곳의 성벽을 재건한 셈이다.
주: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 - '침방'(*, 니쉬카토)은 일반적인 의미의 '방'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특별하게는 성전에 속한 여러 방들에 대해 적용되는 단어이다(Fensham, 12:44; 13:7). 따라서 본절의 '자기 침방'은 '므술람'이 제사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은 성전과 가까운 성벽을 가리킨다.
성 경: [느3:31]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마문(馬門) 건축]
주: 금장색 말기야 - 본절의 '금장색'(*, 초르피)은 8절의 '금장색'과는 달리 단수이다.
주: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 - '함밉갓 문'(*, 솨아르 하미프카드)의 '하미프카드'는 삼하 24:9에서는 '인구 조사'의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본절의 '함밉갓 문'은 히브리 단어의 음역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차라리 의미적으로 번역해서 '소집문'(RSV, the Muster gate ; the Inspection gate)으로 옮겨질 수 있다(Fensham, Williamson). 이는 백성들이 특별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 그 문 앞으로 소집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의 위치는 '동편 수문'과 연결된 성벽에서 북쪽으로 약 90m 지점이다. 따라서 이 '함밉갓문'의 '마주 대한 부분'은 동쪽 외성벽의 거의 북쪽 끝부분이 되는 셈이다.
주: 느디님 사람과 상고들의 집 - '느디님 사람의 집'은 그들이 성전 봉사를 하는 동안에만 사용했던 거처로 받아들여야 한다(Fensham, Williamson). '느디님 사람'의 집은'오벨' 근처에 있었다(26절). 한편, '상고들'(*, 라칼림)은 '돌아다니다'의 뜻을 갖는 동사 '라칼'(*)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활동 반경이 상당히 넓은 상인을 가리킨다. 아들은 먼 곳에서 물건을 구입해서 팔거나 혹은 자기의 고향 물건을 먼 곳까지 가져가서 팔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금장색'이나 '향품장사'처럼 동업 조합(guild)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기의 '라칼림'이라는 복수명사는 이들이 동업 조합을 구성하고 있었으리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주: 성 모퉁이 누(樓) - 성벽의 북동쪽 부분에 있었던 '다락방' 종류였던 것 같다. 마치 망대와 같은 기능을 했을 것이다.
성 경: [느3:32]
주제1: [성벽 재건에 참여한 자들]
주제2: [마문(馬門) 건축]
성벽 공사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도 특수한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열심을 강조하고 있다(8절).
주: 양문 - 제사장들에 의해 복구된 바 있다(1절).
성 경: [느4:1]
주제1: [대적들의 준동과 그에 대한 대응]
주제2: [신발랏과 도비야의 조롱]
주: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 '산발랏'이 성벽 재건에 관한 소식을 들은 것은 그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일 것이다. 유대인들 중에 그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전에 이미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3:1, 4 주석 참조). 그런데 본절에서 '산발랏'만이 유대 백성을 훼방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는 까닭은, 그가 유대 백성을 훼방하는 일에 선동자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견해는 여러명의 훼방자가 동시에 언급될 때도, 그 이름이 항상 그들 중 첫번째에 위치한다는 사실로써도 분명해진다(7절 ; 2:10, 19 ; 6:1, 2, 5). 한편, '산발랏'이라는 이름은 '달신(月神)이 그에게 생명을 주었다'라는 말인 바벨론어에서 유래되었다. 2:10에 '호론 사람'이란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그는 에브라임 지파 남쪽 지역인 '벧호론'(Beth-horon)에서 출생한 듯하다. 그리고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리심산의 사마리아 성전은 이 산발랏에 의해 건립되었고 산발랏은 자기 사위를 이 성전의 대제사장으로 세웠다고 하나 그 사실성 여부는 분명치 않다. 한편, '크게 분노하며', '비웃는' 산발랏의 반응은, 2:19에서 보다 한층 강렬한 것이며 6:2에 가서는 느헤미야를 살해하려고까지 하는 것으로 발전된다.
성 경: [느4:2]
주제1: [대적들의 준동과 그에 대한 대응]
주제2: [산발랏과 도비야의 조롱]
주: 자기 형제들 - 이들은 의논 대상이 될만한 자신의 직속 부하들을 가리킨다. 물론 여기에는 '도비야'도 포함될 것이다(3절).
주: 사마리아 군대 - 페르시아 정부가 파견한 수비대라기 보다는 해당 지역별로 조직된 부대인 듯하다(스4 : 23). 산발랏은 이 '군대'를 이용해서 유대백성을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서라도 괴롭힐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8절). 사실 페르시아 정부의 지배력이 제국 내의 곳곳에 직접적으로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산발랏의 이같은 사악한 생각은 실천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Rawlinson).
주: 미약한 유다 사람들 - '미약한'(*, 아말렐림)은 '쇠퇴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아말'(*)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나무가 시들어 말라 비틀어지는 것'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사 16:8 ; 24:17). 특히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주로 소망이 없는 암울한 상태를 가리킨다(사 19:8 ; 호 4:3).
주: 제사를 드리려는가 - 이 문구에 대해서는, (1) 이'제사'를 성벽 재건사업이 마쳐질 때에 드려지는 감사의 제사로 보고 유대 백성이 성벽 재건을 완료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조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2)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초자연적인 힘으로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가'라는 식의 빈정댐으로 볼 수도 있다(Williamson).
주: 하루에 필역하려는가 - 이것도, 유다 백성들을 무능한 자들 이라고 하는 조롱이다.
주: 소화된 돌을...다시 일으키려는가 - 이것은 유다 백성들이 성벽 재건에 사용할 석재(石材)를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조롱이다(Rawlinson, Fensham).
성 경: [느4:3]
주제1: [대적들의 준동과 그에 대한 대응]
주제2: [산발랏과 도비야의 조롱]
주: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 '도비야'가 산발랏의 측근 혹은 직속 참모였음을 보여준다.
주: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 '여우'로 번역된 히브리어 '슈알'(*) 구약에서 7회 나오며(삿 15:4 ; 시 63:10 ; 아 2:15 ; 애5:18 ; 겔 13:4) '쟈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쟈칼이 주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반면 여우는 대개 혼자 다닌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본문에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여우'로 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도비야는 한 마리의 여우가 밟아도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조롱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성벽은 훌륭한 공성(攻城) 무기로 오랫동안 공격한 후에야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과장된 조롱임이 분명하다.
성 경: [느4:4, 5]
주제1: [대적들의 준동과 그에 대한 대응]
주제2: [느헤미야의 기도]
본절과 같은 탄원적 기도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사업이 원수들에 의해서 멸시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드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시의(時宜) 적절 하다고 할 수 있다(5:19 ; 9, 14 ; 13:14, 22, 29, 31 ;시 69:22-28 ; 79:12 ; 109:6-20).
주: 우리가 업신여김을...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 '업신여김을'(*, 부자)은'조롱하다' 혹은 '모욕하다'의 의미이며 '노략거리'(*, 비자)는 '전리품'을 뜻한다. 여기서 본저자 느헤미야는 이처럼 발음이 매우 유사한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여 말의 유희(Word play)를 살리고 있다. 즉, 느헤미야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부자'라는 행동, 즉 그 원인으로 말미암아 '비자'라는 불행, 즉 그 결과에 도달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Fensham).
주: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 이것은 고대 중근동 민족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환난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그와 같은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민족이다(스4:9, 10).
주: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 여기의 '덮어두지'(*, 카사)는 죄의 용서를 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렘 18:23 에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느헤미야가 예레미야서를 인용한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예레미야 시대나 느헤미야 시대에 공히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Fensh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