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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석굴암을 품고있는 토함산을 지나는 호미지맥3구간
불국사 관광-원고개(7번 국도)-x150m-x317m-삼태지맥 분기점-△528.6m-x567m-석굴암 관광-토함산(△743.5m)-추령(4번 국도)-골굴사 관광-감은사지 관광-문무대왕릉 관광
도상거리 : 지맥 13.5km 놀며 관광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외동읍, 양북면
도엽명 : 1/5만 불국사
신라고도의 향기가 묻어있는 토함산을 지나는 구간이다
초반의 구간 비산비야지대의 농로와 민가지대를 지나고 숲으로 붙어봐야 317m를 오르면 다시 삼태지맥의 분기점으로 내려서고 이 후 석굴암 입구까지 도로가 거의 마루금이다
토함산 정상은 조망이 상당히 뛰어난 곳이다
토함산 정상에서 추령 간은 일반등산로로서 길이 뚜렷하고 이정ㅍ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내려서는 구간이라 미끄러운 겨울만 아니라면 내려서는데 30분도 소요되지 않을 것이다.
1/5만 지도 크게 보기
◁산행 후기▷
2011년 3월 7일 (일) 흐린 후 맑음 오전 제법 쌀쌀하고 바람이 불었음
추백팀과 함께
이번구간 신라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토함산을 지나가는 구간이라서 짧게는 십 수 년 길게는 30여년도 넘은 옛 수학여행 때의 추억이 묻어있는 불국사 석굴암 등을 오랜만에 들러보는 관광 겸 지맥의 종주는 짧게 하자는 계획들인 모양이다
하기야 오랜 세월 휴일이면 산으로 향했던 사람들이 한번 쯤 이런 여유로음에 젖을 만도 하겠다
싶었지만 막상 주말이 다가오니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한다
하지만 지도를 펼쳐 봐도 어차피 첫 구간 사일고개까지 진행하지 못했으니 오늘 산행에만 전력투구해서 추령을 지나서 성황고개까지 진행해봐야 나머지 구간을 한 번에 마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그래 관광 산행에 동참하자
불국사 석굴암에 하산 후 골굴사로 이동해서 골굴사 관광에 감은사지 둘러보고 문무대왕릉 바라보고 바닷가에서 싱싱한 해산물에 소주 한잔하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리고 반복되는 내 빠듯한 산행에 이런 일탈이 한번쯤 있다고 누가 뭐랄 사람 있을 것이겠나! 헐~
◁산행에 앞서 불국사를 들려서 어릴 적 수학여행을 추억하고▷
◁관음송과 천왕문▷
◁보물1523호 음수대로 사용되는 석조▷
◁자하문과 청운교 백운교▷
-불국사-
며칠 간 계속되던 꽃샘추위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자정에 만나서 달려가는 차안에서 잠에 빠지고 이른 아침 건천휴게소에 내리니 바람이 제법 쌀쌀하고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매식 후 산행 전에 불국사로 달려간다
07시부터 입장이라는 불국사 입구에 내려서니 손이 시릴 정도고 이른 아침부터 불국사 경내를 돌아보며 아득한 시절을 돌아보며 현재의 그림과 매치시켜 본다
자하문 청운교 백운교 대웅전 무설전 관음전 극락전 다보탑 석가탑 그냥 우리가 알만한 것들을 장시간 살펴보는 것은 입장료 4천냥이 비싸지 않느냐는 모두들의 생각에서일까
불국사 정문에서 남서쪽으로 바라보면 지난구간 지나왔던 마석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신기하다
◁안양문과 연하교 칠보교▷
◁범영루▷
◁당간지주와 자하문과 자하문에서 내려다본 모습▷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불국사에 대해서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10년(751년)에 재상 김대성이 발원하여 개창되고, 혜공왕10년 완성되었다
조선 선조26년(1593년)임진왜란 때 의병주둔지로 이용된 탓에 일본군에 의해 목조건물이 모두 불타버렸으며 그 후 대웅전 등 일부를 다시 세웠고 1969년~1973년 처음 건립당시의 건물터를 발굴조사하고 대대적으로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동서 길이 90m에 되는 석축과 청운교, 백운교 위에 자하문, 대웅전 무설전이 남북으로 놓였고 석가탑 다보탑이 서있다
그 서쪽에 연하교 칠보교 안양문과 여래좌상 금동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 있다 무설전 뒤편에는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모신 비로전과 관음전이 있다
불국사는 화려하고 장엄한 부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 찬미하던 수도자들이 불도를 닦던 곳이다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적인 기량이 어우러진 신라불교 미술의 정수로 1995년 석굴암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 되었다
◁대웅전▷
◁다보탑과 석가탑▷
◁불국사▷
◁불국사를 빠져나오며 후문▷
◁불국사 정문 앞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면 마석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원고개-
불국사에서 다시 차량으로 이동한 원고개에는 전주기사식당 등이 있는 휴게소가 있고 바로 앞의 송림의 150m봉 앞으로 원성사가 있고 괘릉마을로 향하는 포장길이 있으며 길 입구 진행방향으로 →청심사슴목장 안내판이다
08시10분 상당히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운데 호미의 발걸음을 띠고 송림과 무덤들의 150m를 좌측으로 두며 생략하고 그냥 시멘트 포장길을 따른다
송림의 150m를 휘돌면 넓은 들판이 이어지는데 그냥 걸어가는 길이 마루금의 날 등이라고 보면 되겠다
북동쪽 저 앞으로 토함산이 지난 구간보다는 훨씬 가깝게 보이면서 슬쩍 던지는 우스개 소리는 overeat mountain이 가까이 보이네 (^_^)
잠시 후 괘릉마을 민가들이 나타나고 출발 10분 정도 지나면서 마을회관 앞을 지나고 우측 저 편에 보이는 송림이 아마도 괘릉일 것이다
사적 제 26호의 괘릉은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 숲에 있는 것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785∼798)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원성왕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 후손으로 독서삼품과를 새로 설치하고 벽골제를 늘려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원고개 지난번 내려섰던 곳과 진행할 들머리 뒤로 150m가 보인다▷
◁우측으로 보이는 송림이 괘릉 인 듯▷
◁전면 좌측으로 토함산이 보이고, 아래사진은 마석산을 뒤돌아본다▷
-감산사-
잠시 후 ↑사슴목장1km의 마을외곽 사거리다
직진의 목장안내판 쪽으로 진행하면서 살펴보면 역시 길이 마루금의 날등으로 보이는 것이 우측으로 수로가 흐르고 있다
삼거리에서 10분 정도 후 목장이 나타나면서 모호해지면서 주위를 살펴보고 길을 버리고 전면 논들 저위에 보이는 대나무들로 둘러진 붉은 벽돌의 민가 쪽으로 전답을 사이로 올라선다
담장 안에 소나무가 심어지고 태극기가 걸린 잘 지어진 민가로 올라서니 아까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휘돌아오는 시멘트 길을 만나고 종주자들의 표지기도 보인다
그러나 여러모로 살펴보건대 휘돌아오는 길이 아니라 우리가 올라섰던 것이 날 등에 해당되지 않을까! 확신을 가진다
전면 저 앞으로 괘릉지의 둑이 보이는데 그 괘릉지의 우측이 317m로 이어지는 마루금으로 보이니확실한 가늠이 되는 것이다
민가에서 3~4분 더 시멘트 길을 따라가면 감산사卍가 보이고 넓은 길은 괘릉지로 향하게되며 여기서 전면우측의 송림으로 들어서면서 산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08시43분)
동쪽 송림으로 들어서며 오름이 이어지고 몇 기의 무덤들을 보기도 한다
6~7분 정도 올라서면 방향이 좌측(남동)으로 바뀌면서 좌측아래는 나뭇가지사이로 괘릉저수지가 내려다보이면서 그 쪽은 상당히 가파르다
◁청심목장에서 전답 사이로 마루금이 이어지는 듯▷
◁민가를 지나고 감산사 입구에서 우측의 송림으로▷
◁송림으로 올라서면 좌측 아래로 괘릉저수지가 내려보인다▷
-x317m-
08시55분 송림아래 은근히 올라서니 바위들도 박혀있는 좁은 능선상의 봉우리에 남서쪽으로 지능선이 길게 늘어진 x317m 정상이다
쟈켓도 벗고 막걸리 한잔을 마시며 지체 후 09시02분 출발,
남동쪽으로 내려서면 우측은 대나무고「慶州 金公」의 무덤이며 살짝 오르고 내리면 능선의 폭은 상당히 좁다
오르면 우측으로 무덤이 보이고 작은 오름과 내림이 반복된다
09시07분 무덤1기를 지나고 거의 남쪽으로 오르니 우측 활성리 방향으로 긴능선이 분기되고 내리고 올라서면(14분) 역시 우측 지능선이다
3분 후 폐 무덤의 우측「열반못」방향의 지능선이 분기하는 봉우리에서 좌측(동)으로 틀어서 살짝 내리니 우측사면에는 폐 무덤이 보이고 좌, 우 희미한 소로 흔적의 잘록이다
다시 올라서면 우측 긴 지능선이 분기하며 좌측으로 확실히 틀어서 방향을 트는 곳이며 우측 사면으로 무덤이 1기 보인다
7분 정도 오름이 이어지니 북동쪽으로 방향이 틀어지는 봉우리고 좌측사면으로 무덤이 보이고 곧「月城 李公 月城 崔氏」2기의 무덤이고(09시32분) 부드럽게 북쪽의 오름이고 우측사면으로 많은 무덤이 보인다
◁317m 봉이고▷
◁이곳을 지나면 방향이 북동쪽으로 휘어진다▷
-△528.6m-
남동쪽 저 앞으로 삼태지맥의 시설물의 봉우리가 보이면서 금방 저 앞에 작은 소류지와 토함산목장이 보이면서 삼태지맥 분기점이다
삼태지맥은 이곳에서 분기한 능선이 남쪽으로 이어지며 삼태산(630.5m) 동대산(444.8m) 무룡산(450.7m) 염포산(206m)을 거치는 도상거리 33.9km의 짧은 지맥이다
산행을 기획한 선배의 말로는 오늘 어차피 짧은 구간을 빨리 마치고 여기저기 관광형식으로 둘러보자고 여기서 마루금 자체가 945번 도로로 이어지니 기다리고 있는 최기사의 차량으로 석굴암 입구까지 그냥 차량으로 진행하겠다니 다소 서운한 기분이 있지만 다수의 의견을 존중해야한다
다만「동산령 인근의 △528.6m 삼각점은 꼭 확인해야겠으니 잠시 내려달라」
토함산목장 인근 솔밭가든 앞에서 차량으로 갈아탄다
09시51분 차량출발 8분 후 동산령 인근 우측(동쪽) 사전마을 갈림길에서 차량을 내리고 좌측 사면을 치고 △528.6m 정상을 향해서 홀로 올라선다
옴 몸을 날려버릴 듯한 바람이 불어대는 가운데 나목들 사이로 올라서니「자연보전지구」말뚝들이 보이고 3기의 무덤 뒤에「국가측량기준점보호」안내판이 서있는「불국사 457」삼각점의 정상이다
얼어붙은 눈을 파헤치니 나타나는 이끼 낀 낡은 삼각점의 글씨는 알아볼 수없고 안내판에 4등 삼각점의 도엽명이다
◁이통 시설물의 봉은 삼태지맥이다, 작은 소류지 뒤는 토함산목장▷
◁좌측의 마루금의 날 등이고▷
◁528.6m 정상을 올라서고 내려서서 올려본 528.6m 정상부▷
-석굴암-
서쪽으로 살짝 틀어 무덤을 지나서 내려서고 다시 북쪽으로 잠시 오르고 내려서니 다시 도로와 만나는 마루금이고 기다리고 있던 차량으로 옮겨타고,
석굴암 입구에 자리한 x567m봉도 생략된 체 석굴암주차장 입구도착이 10시13분이다
큰 종각 하나가 보이는데 종각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모양이다
1打 1.000냥 중얼거려본다「1타 천피!!!」
좌측의 내리막 큰길은 불국사 2.7km의 길이다
아침에 불국사에서 보았던 그 길이고 우리는 잠시 석굴암을 돌아보고 토함산 정상을 오르기로 하고,
10시30분 석굴암 도착 역시 옛 추억에 젖어들고,
국보제24호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으며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있다
◁석굴암 주차장에서 석굴암으로 향한다▷
◁석굴암 전경▷
◁신라인들의 손때가 묻은 석물들이고, 아래사진, 멀리 감포쪽 동해를 본다▷
◁석굴암▷
-토함산-
10시45분 석굴암 출발,
다시 되돌아 나오기는 너무 도는 것 같아서 좌측 사면의 뚜렷한 길을 따라서 토함산 정상을 향한 오름의 시작이다
금방 주차장 쪽에서 올라서는 일반등산로를 만나서 넓은 길을 따라 오르니
10시55분 좌측 성화채화지 갈림길이다
기왕이면 성황채화지에 올라보자고 올라서니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성화 채화봉에 오른다
북쪽 가까이 토함산 정상이 보이고 서쪽의 조망도 좋지만 일단은 토함산정상에서 조망을 즐기기로 하고 살짝 내려서면 넓은 등산로가 녹아서 질척거리고, 진달래 터널사이로 은근히 올라선다
11시05분 우측으로 추령 갈림길의 이정표를 지나서 토함산 정상으로 향하고 넓은 헬기장을 지나서 올라서면 억새들로 평원이루고 탐방객들이 많다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석과 또 작은 정상석「불국사24 1989재설」의 삼각점이다
토함산은 신라의 영산으로 일명 동악이라 불리었으며 서악 선도산, 남악 금오산, 북악 금강산, 중악 남산과 더불어 신라 5악으로 불렸고 신라의 4대 임금인 석탈해왕이 죽은 후 동악의 산이 되었다고 한다
석탈해왕은 토해왕 이라고도 했는데 토함산의 이름은 동악의 산이 된 데에서 유래된 듯하다
경주에서 가장 큰 산으로서 울산광역시와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는 추령재를 지나 기림사와 죽어서 동해의 큰 용이 되어 왜적으로부터 동해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수중릉이 있는 동해로 이어진다
◁성화채화지에 올라서 토함산 정상부를 바라보고▷
◁추령 갈림길▷
◁토함산 정상직전의 헬기장과 정상부▷
-조망 좋은 토함산 정상이다-
시수부거리 4.2km← →불국사3.6km 석굴암주차장1.4km의 이정표가 있는 토함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시원스럽다
서쪽 저 아래 하동저수지가 시원스럽고 그 좌측으로 코오롱호텔 등 불국사 단지가 보이고 저수지 저 뒤로 들판 너머로 보이는 두 개의 산은 고위산(495m)과 금오산(466m) 일반적으로 경주 남산으로 불리는 산이다
그리고 남산 더 멀리 제법 높게 보이는 산이 단석산(827.2m)이다
토함산을 위시해서 모두가 경주국립공원에 속하는 산이다
단석산에서 우측으로 더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마마도 낙동정맥과 비슬지맥이 분기하는 오봉산(633.5m)능선으로 보인다
남서쪽 지나온 치술령과 마석산 뒤로 아주 희미하지만 영남알프스의 대다수의 산들인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배내봉 천황산 능동산 가지산 고헌산 그리고 고헌산에서 우측으로 길게 평형을 이룬 능선상에 봉긋하게 솟은 문복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니 영남알프스의 운문산만 가지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고 거의 다 한눈에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는 곳이 토함산 정상이다
다만 치술령 이후 봉긋하게 솟은 329m을 기점으로 마석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보다는 역시 329m에서 토성소류지 쪽으로 보이는 벌판 쪽에 여전히 마음이 가는 것은 왜일까!
다시 정상에서 앞서본 방향과 반대쪽인 북동쪽을 보니 시설물의 추령이 보이고 그 뒤로 높이 이어진 산이 감로암과 기림사를 품고 있는 함월산(584m)인데 지맥에서 벗어나서 북쪽으로 시루봉(503.4m)운제산(481.4m)와 이어진다 함월산 북동쪽으로 우리가 앞으로 진행해야할 호미의 마루금이고 남동쪽 저 편으로 아마도 감은사지 저 쪽으로 희미하지만 동해가 보인다
조망도 즐기고 國泰民安도 빌고 토함산 정상 출발이 11시42분 이다
◁북동쪽 함월산▷
◁남서쪽으로 바라본 좌측 치술령과 중앙 마석산 뒤로 멀리 영축 신불 가지산 라인이다▷
◁당겨본 마석산 뒤로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이 보이고▷
◁당겨본 멀리 중앙 재약 천황산 고헌산과 가장 비죽한 가지산▷
◁당겨본 영축산 과 신불산▷
◁역시 당겨본 문복산▷
◁맨 좌측 영축산에서 신불 간월 천황 능동 고헌 가지 우측의 문복산 까지 한눈에▷
◁고위산 금오산 과 멀리 희미한 단석산, 아래사진은 당겨본 단석산▷
◁내려설 추령이 시설물 아래 보인다▷
-추령-
다시 추령갈림길 이정표까지 역으로 내려서고 북동쪽으로 3분 여 내려서니 추령2.5km의 이정표와 폐 무덤이다
잠시 후 ←포수우물180m 표시가 있는 쪽은 북쪽 긴 능선이 분기하는 지점으로 보이고 곧 전망대를 이룬 바위지대다
추령을 기점으로 함월산 모자골 한골 절골 들이 잘 보이는 지점이다
전망대에서 급격히 떨어져 내리며 고도를 줄이고 대체적으로 진달래터널과 참나무들이다
전망대에서 3~4분 후 추령2km의 이정표고 다시 5분 후「孺人 慶州 崔氏」무덤을 지나면 잘록이고 오름이다
12시06분 무덤에서 5분 후 오른 곳이 북동쪽으로 방향이 바뀌는 봉우리고 남동쪽 아래「상범마을」 골짜기가 보이고 추령1.5km 다
다시 내려서고 방향이 북쪽으로 바뀌는 봉우리는 오르다가 좌측사면으로 난 뚜렷한 길을 따라 그냥 진행하니 추령1km 의 표시가 있는 곳은 12시16분이다 고도를 계속 내리며 부드러운 진행이 이어지고
12시24분 추령0.5km를 지나고 부지런히 내려서려니 추령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제법 보인다
이정표에서 3분 후 이동통신시설물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휘돌아서 내려서니 곡 계단이 나타나며 내려서면 백년찻집을 끼고 지나니 차량통행이 빈번한 추령이다(12시30분)
◁남쪽을 바라보니 멀리 지나온 토함산목장과 삼태산이 보인다▷
◁전망대 바위에서 다시 한 번 함월산 쪽을 바라보고, 뒤돌아본 토함산 정상부▷
◁추령을 향해서 내려서고▷
◁추령에 내려서니 우아한 찻집이 자리하고 있고▷
-다시 관광모드로 골굴사를 둘러보고-
아주 짧고 가벼운 산행은 끝나고 차량으로 골굴사로 향한다
이전에 대구에 계시는 형님에게 전화해서 내가 대구로 가는 것 보다 어차피 서울로 오시려고 했던 것 잠시 시간을 내어 경주로 오시라고 하고 골굴사 입구에 도착 한 시간이 13시 TV에서만 보았던 선무도 대학이 있는 골굴사를 관광하기로 한다
骨窟寺는 함월산 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사찰로 사찰 뒤편에 우뚝 서 있는 골굴암이 유명한 사찰이며 경주에서 감포로 향하는 4번 국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골굴사는 당우도 너 댓 채에 불과한 작은 절이지만 골굴암에는 크고 작은 굴이 많아 그 굴에 불상들을 모셔 놓았고 또 바위 윗부분에 양각으로 새겨진 마애여래불이 있다
현재는 이 바위에 계단을 파 놓아 한 사람씩 오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마지막 마애여래불로 올라가려면 서너 발 정도 밧줄을 타야 한다
마래여래불은 높이 4m의 불각으로 균형감이 뛰어나고 인자한 얼굴이 인상적이다
이 마래여래불은 보물 제581호로 지정되어 있으나 이 골굴암 자체가 모래 성분이 많아 갈수록 마모가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보전을 위해 이 마애여래불에 지붕을 만들어 놓았다
골굴사는 또 불가에서 전해오는 전통무술인 선무도의 수련장이기도 하다
◁선무도의 본산 골굴사▷
◁절벽에 새겨진 골굴사 마애여래좌상▷
◁봄날아 가지마라▷
-감은사지와 대왕암-
약 40분에 걸쳐서 아주 천천히 올라서서 골굴사를 살펴보고 다시 차량으로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감은사지로 이동한다
14시 감은사지 도착, 그 시대에 대단한 석조물을 만들었다는 것에 감탄하고,
사적 제31호 감은사지는「삼국유사」에 文武王이 왜병을 진압하기 위해 역사를 시작했으나 중도에 죽자 그의 아들 神文王이 즉위해 682년(신문왕 2) 완성했으며 금당의 기단 아래에 동향한 구멍을 두어 이곳으로 海龍이 된 문무왕이 들어와 서리도록 했고 또 유서에 따라 骨을 매장한 곳이 절의 앞바다에 있는 大王岩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절의 이름은 본래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鎭國寺 였으나 신문왕이 부왕의 호국충정에 감사해 感恩寺로 고쳐 불렀고 1960년과 1979~80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이탑식가람(二塔式伽藍)배치로 남북보다 동서 회랑의 길이가 길며 양 탑의 중앙부 뒷면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금당터가 확인되었다
또한 금당의 바닥구조가 H자형의 받침석과 보를 돌다리처럼 만들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석재유구(石材遺構)를 동서방향으로 깔아 마치 우물마루 모양으로 된 것은「삼국유사」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매우 흥미롭다
원래 앞면 8칸 옆면 4칸이었던 북쪽 강당은 후대에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고쳐 지은 것도 밝혀졌다
◁감은사지 삼층석탑▷
◁건물 아래는 바닷물이 들어와 용이 된 문무왕이 쉬고 가게끔 만들어 졌단다▷
◁예전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들어와서 접안 했단다▷
◁대왕암▷
경주의 권종훈님이 예약해놓은 대왕암 인근의 횟집으로 달려가고 나는 양북면 소재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형님을 모셔 와서 일행들과 합류 후 모처럼 형제간의 우애의 술잔도 나누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따로 나누다보니 상당히 취하고 ......
그래도 일찌감치 서울로 돌아온 오랜만의 여유로운 행보였다. -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