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운동 ‘프라하의 봄’의 중심 무대였던 벤체슬라프 광장.
프라하의 봄은 짓밟혔지만 그날의 뜨거운 열정은 20여 년 뒤 무혈 ‘벨벳 혁명’을 통한
매끄러운 체제 전환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

바츨라프광장 |
프라하의 신시가지의 일각을 형성하는 최대의 번화가이다. 고단한 체코의 역사가 베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하철 A선과 B선이 교차하는 무스테크 역이 있는 무스테크 광장을 중심으로 L자형으로 교차하는 이 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는 파리의 샹젤리제처럼 "boulevard"를 이루고 있는 바, 넓이는 무스테크 광장에서 국립 박물관까지 길이 750m, 폭 60m의 대로로서 서울의 명동거리에 비 할 만 하다. 거리 양쪽에는 유서 깊은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 백화점, 은행, 사무실들이 늘어서 있고, 휴일에는 늘 인파로 붐비며 여름에는 아래쪽의 무스텍 광장 주변이 노천 까페가 들어선다. 국립박물관의 테라스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면 광장의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의 모습을 자세히 구경할 수 있다
이 광장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말 시장으로 이용되었던 곳으로서 체코 역사의 전환기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장소였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으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이곳에서 선포되었고, 1948년에는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주의 공화국이 이 곳에서 선언되었다. 1968년에는 두브체크로 대표되는 개혁공산주의자들이 시도한 '프라하의 봄'이 소련군 탱크부대의 침공으로 많은 체코국민들이 생명을 바친 곳으로도 유명하며, 1989년 11월 18일 프라하 예술아카데미의 학생들과 배우들이 공산정권에 항의하는 데모를 시작하여 결국 자유주의를 획득하였던 '벨벳 혁명'의 역사적 현장도 바로 이곳이 중심지였다. 광장의 동쪽 끝에 보이는 중앙청 모습의 건물이 이 나라의 국립박물관이다. 폭 100m, 높이 70m에 이르는 이 박물관은 광물·동·식물 표본 등을 전시한 자연박물관으로서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과 함께 19세기 후반 체코의 네오 르네상스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힌다. 천장과 1층 방에는 체코 역대 유명인사의 그림과 청동 흉상이 전시되어 있다. 광장에서 국립 박물관 쪽으로 서 있는 동상은 보헤미아의 수호신인 성 바츨라프의 기마 상. 성 바츨라프는 국난의 시기에 중부 보헤미아의 그라니크 동굴에 잠들어 있는 기사들을 깨워서 이끌고 적을 격퇴시켰다는 전설의 왕으로서, 기마 상 앞뒤로 3명의 수호성인인 성 루드밀라, 성 프로코피우스, 성 아그네스의 기념상도 함께 볼 수 있다. 이것은 J.V. 미슬베크의 작품으로 예전의 바로크 식 조각을 대신하여 1913년에 이 광장에 들어섰다. 현재는 동상 아래에 각종 무대가 마련되어 있어 정치 집회나 콘서트 등이 열리고 있다. 동상 앞에는 '프라하의 봄'을 탄압하던 소련군에 저항하다 희생된 사람들(특히 21세의 나이로 분신 자살한 챨스 대학 학생 얀 파라프palach)과 1989년 혁명 당시를 기하는 꽃과 촛불, 사진들이 항상 놓여있다 |

성 비토 성당 앞에서

프라하 성 안에 있는 성 비트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반대쪽은 햇빛을 받아서 신비하게,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군위병과 찍은사진

근위병 교대식.

■ 구시청사와 천문시계 |
구 시가지 광장에서 전형적인 고딕 양식을 자랑하고 있는 건물은 구 시청사이다. 1388년 시민권을 허가하기 위해 세운 이래 1410년 시계탑이 세워졌다. 원래는 상당히 큰 건물이었으나 제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폭격을 받아 부속 예배당과 북쪽 건물의 상당부분이 불에 타고 말았다. 그 후 남은 부분을 복구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높이가 70m에 이르는 탑의 내부에는 감옥이 설치되어 있어 후스파의 사람들이 수용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탑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남쪽에 설치된 천문시계이다. 프라하의 명물 천문시계(ORLOJ)는 15세기 프라하 대학의 수학교수였던 하누슈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기발하고도 아름다운 시계에 대한 소문이 유럽 각 국으로 퍼지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주문이 쇄도하였다. 그러자 이 시계를 독점하고 싶은 프라하 시청에서는 하누슈 교수가 두 번 다시 시계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를 장님으로 만들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자신이 만든 시계를 만져보기 위해 시계탑 위에 올라가 시계에 손을 댔을 때 시계 바늘은 그대로 멈추어 400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1860년 수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410년에 제작된 시계탑의 천문시계는 위아래 두 개의 원으로 천동설에 입각한 우주관을 보여준다. 위원은 칼렌다륨이라 하여 해와 달 전체의 움직임을 묘사한 것으로 1년에 한바퀴를 돌며 년·월·일·시간을 나타낸다. 아래쪽에 있는 원은 플라네타륨인데 이것은 12개의 계절별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헤미안의 농경생활과 관련이 있다. 천문시계 한 가운데에는 푸른 지구가 위치해 있고, 3개의 시계 바늘 축은 지구의 중심으로서 프라하를 가리키고 있다. 3개의 시계바늘은 각기 바늘 끝에 달려있는 태양, 달, 별 모양이 암시하듯 태양 시간, 달 시간, 황도 대를 각각 가리키고 있으며, 맨 외부 24 아라비아 숫자는 고대 보헤미아 시간을, 다음 안쪽 두 쌍의 12로마숫자는 중부유럽의 낮/밤 시간을, 맨 안쪽(푸른색 내)의 12 아라비아 숫자는 일출-일몰 시까지의 낮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위의 푸른색은 하늘을, 밑의 갈색은 땅을 나타내며, 갈색 안의 검은 색은 여명의 시간을 나타낸다. 매시 정각 천문시계 옆에 있는 해골인형(죽음을 상징하며 시간의 유리잔을 들고 있음)이 움직이면서 종을 치면, 그 위 두 개의 창문에 열리면서 그리스도 12제자 인형이 차례로 나타난다. 이때 천문시계 왼쪽에 있는 거울을 보는 자(허영을 상징)와 돈지갑을 든 유태인 인형(부를 상징)이 같이 움직이고, 아울러 오른쪽의 터번을 슨 터키인은 음악을 연주한다. 천문시계는 '여명의 시간이 다가오면 허영과 부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매시마다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 시계는 여러 차례에 걸친 수리작업이 있었으나 아직도 대개 매시정각에 시계 바늘 윗 부분에 있는 창문 2개가 열리면서 작은 종소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12사도를 뜻하는 인형들이 차례로 얼굴을 내밀고는 사라진다. 마지막에는 시계의 가장 위쪽에 닭이 나타나서 우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매시 정각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비디오를 들고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다.
청사건물 정문 위 르네상스식 창문 위에는 'Praha. Caput. Regni'라는 문구가 있는바, 이는 '프라하, 왕국의 수도(Prague, Capital of the Kingdom)'라는 의미이다. 구 시청사 바로 옆 잔디밭은 1945년까지만 해도 청사의 신 고딕양식 건물이 있던 곳이었으나, 1945년 5월 속련 군이 이곳 프라하에 입성하기 수일 전에 나치 독일군이 밀어버려 지금도 빈터로 남아있다. 건물 안에는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프라하 시민에게는 결혼식장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편 천문시계가 있는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구 시청 사 내부의 역대 프라하 시장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집무실과 예배당을 견학할 수 있다. 예배당에서는 벽시계의 최상 부에 있는 12사도의 조종 장치를 구경할 수 있다. 현재 1층에는 관광안내소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각종 여행정보를 제공하는 이외에 호텔 소개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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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광장 |
블타바 강 동쪽 강변의 카를 다리에서 화약탑 및 공화국 광장에 이르는 일대를 구시가지라고 부른다. 이 일대는 예로부터 프라하의 심장부였던 곳으로 상공업자 및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활기에 넘치던 거리였다고 한다. 구 시가지 중심부에 해당하는 구 시가지 광장은 격동기를 겪은 역사의 현장이다. 프라하와 관련된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무대로 등장했던 장소로 현재 광장의 중앙에는 아르누보 양식의 얀 후스 동상이 그의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의 500주년 순교 일을 맞이하여 1915년 7월 6에 세워진 것이다. 후스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카를 대학 총장을 역임하고, 카톨릭의 면죄부 발행을 비판하다가 교황 요한 23세에게 파문 당하고 화형을 받은 체코의 신학자였다. 대좌에는 '진신을 사랑하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실을 지켜라' 라고 새겨져있다. 동상으로 올라가는 5단의 폭이 넓은 계단은 구 시가지의 산보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광장 주변에는 아케이드가 딸린 르네상스 양식의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오늘날 밀려드는 관광객들과 주변의 레스토랑, 카페, 거리의 악사들의 공연 등으로 과거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 광장에서 15세기 초에는 얀 후스의 추종자들이 처형되었으며, 1945년에는 나치 독일에 의해 광장 앞의 구 시청사가 크게 훼손되었다. 1948년에는 광장 주변의 킨스키 궁전 발코니에서 공산당 정권이 선언되었고, 1968년 8월에는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 이후 바르샤바 조약군인 소련군대가 탱크를 앞세우고 점령을 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구 시가 광장 주변은 프라하 성 주변과 함께 프라하의 대표적 관광지구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12사도가 시간을 알려주는 천문시계가 있는 구 시청 사, 종교개혁 당시 후스파가 모이던 틴 교회, 킨스키 백작이 살던 곳으로 현재는 국립미술관이 판화로 공개되고 있는 로코코 양식의 킨스키 궁전 등이 모두 이곳에 있다. 또한 1948년 클레멘트 고트발트가 공산혁명을 부추기는 연설을 하고 카프카가 공부했던 김나지움을 볼 수 있다. 이 곳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아르누보 양식까지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광장 주변에는 크리스탈 제조, 거리 악사의 연주 등 다채롭고 재미있는 행사가 벌어진다.

황금소로. 중세시대의 투구 갑옷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고 기념품 및 선물가게가 들어서 있다 |

성당 에서 내려다 본 프라하 시내전경

성당에서 내려다 본 프라하 시내전경


블타바강의 까를교(Karluv Most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블타바강의 까를교(Karluv Most)가 있다. 다리 한 가운데에 있는 난간에 십자가의 플레이트가 묻혀 있는데, 그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또 다리는 해가 저무는 석양에 잘 어울리며 다리에서 바라볼수 있는 프라하 성과 블타바 강의 풍경 을 감상하는데 더없이 훌륭하다.

우리 선조들도 맥주를 마셨고
우리 아이들도 맥주를 마시며
아이들의 아이들도 맥주를 마실것이다
죽을때까지 마시고 노래하자
맥주를 마시고 죽는자나 안마시고 죽는자나
죽기는 매 한가지다 (UFIekU 벽서중에서)
체코 사람들은 맥주를 전통음료로 생각합니다. 농색맥주, 담색맥주, 중간색맥주, 라거맥주...체코에는 470여종의 맥주가 있으며, 레스토랑, 실외정원, 클럽 등에서 맥주를 즐기실수 있습니다 . 최고급으로는 담색 라거맥주와 흑맥주입니다. 체코에서는 동네식당에서 맥주를 사이에 놓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전형적인 체코인의 모습입니다.
맥주하면 독일을 떠올리지만 동유럽의 맥주강국 체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럽에서 연간 1인당 맥주 소비량이 단연 최고!! 하지만 1인당 맥주 소비량으로 맥주강국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필스너 우르켈, 부드바이저와 같은 세계적인 상표인 맥주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인데.. 체코의 특산, 부드바이저(Budweiser)맥주 맥주 애호가들이라면 그 맛을 인정하는 버드와이저(Budweiser). 지금은 미국의 이름으로 팔려 나가고 있지만, 사실 이 맥주의 원산지는 보헤미아의 왕국, 체코의 부디요비체라는 곳이다. 아무리 독일이 맥주로서 유명하다고 하지만, 맥주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그 맛으로서 체코의 그곳을 제일로
여긴다고 한다. 이 부드바이저는 우리나라의 막걸리와 비교되고는 하는데, 걸죽하고 냄새가 독하면서 발효가
잘 된 냄새를 내기 때문이다. 원래 버드와이저는 부드바이저라고 불렸는데, 이 상표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부터 버드와이저라고 읽혔다.
그런데 최근에 이 상표의 저작권에 관한 분쟁이 불거지고 있다. 10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이 분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란다. 체코의 '부드바이저 부도바르'라는 회사에서 미국의 맥주회사에 버드와이저 상표 판매를 허락하는 대신 앞으로
10년 동안 체코산 맥주원료를 매년 10만톤씩 판매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 버드와이저 ] 필스너 우르퀠(Pilsner Urquell), 체코에서 온 진정한 맥주 필스너 우르퀠 맥주를 말하기 이전에 먼저 보헤미아 지역의 맥주전통을 알아야 필스너 우르퀠 맥주가
가지는 진미를 알 수 있다. 근대 체코 공화국은 보헤미아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한다. 그리고 보헤미아는 지난 세기에 세계적인 클래식 맥주 스타일 가운데 하나인 필스너(Pilsner)를 낳은 지역이다.
그럼 필스너 우르퀠 맥주를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맥주의 어원을 알아보자.
☞ 맥주의 어원 맥주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BEER'는 게르만족의 언어 중 '곡물'을 뜻하는 '베오레(BIOR)'가 그 어원이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독일어 '비르(BIER)', 프랑스어 '비에르(BIERE)' 이태리어 '비라(BIRRA)', 등은 다 어원이 같다. 한편 중국어로는
'페이주(碑酒)'라고 하며, 러시아 등 슬라브 국가들에서는 '삐보'(PIVO)계통의 단어가 맥주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언어로 남아 있다.
☞ 프라하 관광과 맥주 먼저 프라하 관광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체코어 단어는 PIVO(삐보)이고 '맥주'란 뜻이다.
체코 관광에서 빠뜨릴 수 없는 체코식 대중식사는 비어 홀에서 오리고기나 돼지고기를 곁들여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체코는 유럽에서 독일과 함께 정통 라거 맥주를 생산하는 맥주 강대국으로 꼽힐 뿐아니라 최초의 필스너가 탄생한 국가이며
세계에서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도 꼽히고 있다. 체코를 얘기할 때 아름다운 프라하를 먼저 떠올리지만 체코 맥주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체코의 명품이며 종류 또한 다양하다.
- 부드바르 맥주 : 맥주의 황제로 불리우며 16세기 초에 왕실에서 마셨던 맥주이다. - 라데가스트 맥주: 3년 연속 올해의 체코 맥주로 선정된 명주 - 벨꼬뽀뽀비츠끼 꼬젤 : 1995~96년 세계맥주대회에서 맥주 금메달 수상 - 필스너 우르퀠 맥주 :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다. 이외 각 지방, 지역에 따라서 생산되는 맥주의 종류가 다양하다. 체코사람들이 어떻게 맥주를 마시느냐... 한국에선 식사시간이 되면 보통 식탁에 물통이랑 컵을 놓고 식후에 마시는데요. 체코에선 물대신 맥주입니다. 항상 하루세끼를 맥주랑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취하진 않더군요.. 보통 2잔을 초과해서 마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아줌마들이 모이건 친구들이 모이건 무조건 맥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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