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아홉 순정 *
3월 신학기가 시작되고 며칠 안 되었었다.
교무실에서는 고3 수험생 500여 명 중 45명을 선정하여 대입을 위한 소수 정예반 하나를 발표했다.
그 반에 들어갔다는 자랑스러움과 여대생이 되는 꿈을 앞당겨 꾸면서 가슴이 먼저 설레었다.
이른 아침부터 도시락 두 개와 장장 12~3시간의 수업준비물이 들어 있는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만원 버스에 시달렸으나, 명문대 합격을 연일 다짐하는 우리들에 눈빛은 샛별처럼 반짝거렸다.
‘들꽃 향기와 낙엽 타는 냄새가 온 세상을 뒤덮어도 시 한 줄 쓰지 않겠다.’
얼룩무늬 일기장에 아직도 남아있는 쑥스러운 열아홉 순정이다.
시작은 그러하였으나 목련꽃이 지기 전에 나는 그곳을 떠나왔다.
‘우린 지금 더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가난해. 고등학교는 몇 끼 밥을 걸러서라도 보냈다지만
대학은 온 식구가 모두 굶어도 갈 수가 없단다. 나중에 네가 너무 실망할까 봐서 미리 말해두는 거야
잘 생각해보고 판단하라고.’
오빠는 영민하고 똑똑하다. 그에 의견은 늘 옳았기에 수긍하며 실행해야 했다.
꽃잎이 하나 둘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던 날이었다.
모두 싱싱하게 매달려있는데 너는 왜 벌써 떨어져 내리느냐고, 아픈 속사정을 맞대어 보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만 홀로 3학년 5반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몰랐다.
하얀 꽃송이가 파란 하늘에 얼비쳐 슬프도록 아름다운데 그 모습 그대로 낙화해야 하는 이유와
떨어져 내리면, 끝인 줄 알고 절망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들었다, 그것을 날았다고 할 수는 있을까?
우리 가족이 세 들어 사는 집주인은 고위 공직자였다. 하나뿐인 아들이 공부는 뒷전이고
축구에만 빠져 산다는 주인댁에 걱정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딸내미가 공부를 잘했다던데 우리 아이를 좀 가르쳐 줄 수 없겠느냐고, 거역할 수 없는 부탁을
어느 날 엄마가 내 앞으로 내민다.
아이는 소문과는 달리 누나, 누나, 부르며 잘 따라주어 가르치기 수월했다.
반에서 40순위 안에도 못 들던 개구쟁이가 불과 두 달여 만에
일약 2등까지 올라선 성적표를 받아오는 바람에 동네가 떠들썩하다.
피부에서 광이 나는 학부모들이 영험한 점집 찾아오듯이 초라한 우리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예상을 웃도는 수입은 우리 여섯 식구에게 여유로운 밥상을 차리게 해 주었다.
시험 때마다 환호 소리가 터지면서 내 자리는 날이 갈수록 유명세로 견고해져 갔다.
행여, 어느 대학을 다니느냐, 몇 학번이냐, 물어보는 이도 없었고 의심하는 이도 없었다.
왜냐하면 초, 중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고졸이어도 자본이 부족하지 않았다. 또한 그 자리를 지켜내느라,
나는 결핵성 임파선염도 앓았고 급성 위경련이나 장염 등으로 정신을 놓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맥이 너무 약해요, 혈압이 잡히질 않습니다, 간호사의 놀란 목소리와 빠른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누구 망하는 거 보려고 이런 상태로 환자를 데려오느냐는 의사에 호통을 받는 것은
대부분 오빠의 몫이었다.
대꼬챙이처럼 말라버린 여동생에게 혹,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 봐서 덜덜 떨고 있는 오빠를 쳐다보면서
내 코에선 왜? 깨소금 냄새가 났는지...
사랑하는 가족의 빈 밥그릇을 떠올리게 하지만 않았더라면
서둘러 책가방부터 챙겨 들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곤두박질치는 점수 앞에서 대학이 인생에 전부냐며 담임 선생님께 큰 꾸중을 듣지 않아도 될 만큼만
유지했더라면, 차분히 차선(次善)의 길이라도 찾아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로
애먼 오빠를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두고 왔더니, 사각모를 쓰고 나타난 친구들에게 연민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찬란하게 비상하리라는 남다른 결의는
작은 곤충 한 마리도 장난 삼아 괴롭히지 말아라, 약자에게 약해야 하는 이유와
어떤 경우라도 진의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둥, 성대가 부어오르도록 학과 외에 것에 더 치중했던 속뜻은
이제 와 생각해보니 아마도 ‘돈벌이 이상(以上)’에 것으로 스스로 높아지려 함이었을 것이다.
지닌 것을 한껏 부풀리면서도 왜곡되거나 잘못 전달됨이 없기를 늘 학습하고 숙고하면서
마당 길던 집 문간방에서 열아홉 순정이 못 이룬 내 20대를 쏟아부었었다.
어느 날인가 결국
의기와 투합이 뭉쳐 공갈빵처럼 부풀어 올랐었던 비정상 행진은 독버섯으로 솎아내 졌다.
그러나 ‘어느 한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규칙이 존재했고
규칙은 가르치는 이의 건전한 정신에서 만들어졌다는 떳떳함이
내 마음에만 보였던 한낱 소행성에 불과하지는 않았다고 자부한다.
오만방자하게도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십 수 명에 이를 나에 그들은
선한 문화권 안에서 잘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간간이 전해오는 것으로 오늘에 내가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고운 자태 그대로 낙화했어도, 연둣빛으로 나뒹구는 아기 열매도,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
각각 그들 세계에 밑거름 되어 모두가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은 용기를 준다.
The Show Must Go On!
나는 지금 혹독한 바이러스 감염증 시대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경쟁조차 사라진 레드오션에서
생으로 붉은 피를 흘리고 있다. 하지만 내려앉음은 끝이 아님을 알기에 자가발전으로 만들어진 걸쭉한 양분을
온몸으로 퍼 나르며 오늘을 이겨낸다. (2020년 가을 어느 문예지에..)
첫댓글
부족한 글 하나 또 올려 봅니다.
읽기 편하시도록 행간을 조절했습니다.
사진은 11월 중순경인 듯해요^^
글만으로는 심란스러우실께비 ㅎㅎ
사진이 너무너무 좋고 수필 또한 심금을 울립니다. 아주 잘 쓰셨네요.
아주 글이 맛깔스럽고 성격 만큼이나 깔끔해요. 저는 내년에 통신고에 편입할 예정이에요.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고요.
다시 단발머리 학생이 되면 더 많은 걸 배워질 거 같기도 하고요. 제가 쓰는 수필이나 시의 깊이도 지금보다는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여기 공주에 학력이 별처럼 빛나는 사람도 많지만 그보다 시를 아주 천재처럼 잘 쓰는 분도 계셔요. 그분이 아마 공부를 했으면 멋진 삶을 살았을 거 같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하였어요. 그럼에도 늦깎기 공부를 하여 전체 일등을 하고 학생부회장을 맡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분을 멘토로 삼고 저도 내년에는 출발을 해보려 합니다. 아직은 유리잔처럼 조심히 다뤄야 하는 몸이지만 멈춤보다 거북이 걸음이라도 가다보면 결승선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라 여겨요. 지금 시대가 좋아요. 본인이 나서기만 하면 배움의 길은 고속도로예요.
선생님 글에 한바탕 감동의 소나기 맞고 갑니다.
수필집 나온 거 올려주세요. 공지에 놓게요.
ㅎㅎ 내년봄에 다시 책을 낼 계획입니다.
그 때 올리든가 할께요^^
수필집도 아닌 시집도 아닌
죽으면 할 수없이 남게되는 호랑이 가죽
대체품 정도로
가족과 친구들에게만 떡 돌리듯 한..
고귀하신 분들앞에는 못내밉니당^^
기둘리셔요~~~
꿈많은 열아홉 순정의 글을 읽고나니 코끝이 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