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쟁을 하는 것일까.
인간끼리 서로 죽이고 새로운 무기로써,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
나의 인생에 대한 의문은 점점 확대되어 가고,
해결이 되지 않고 있었다.
종전. 나는 몇 번인가 생명이 위태로운 생활에서 해방되어,
부모님 앞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평화로와져 보는 고향의 산천은, 나에게 평안을 주었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군대 생활과는 전혀 다른 세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고향의 풍경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육군 생도 시절 배웠던 공부를 하기 위해, 두 달 후에 상경했다.
형님 집에 신세를 지면서,
물리, 화학의 공부에 열중함으로써,
나의 전후(戰後)의 즐거움이 생겼다.
극미의 세계랑 극대의 세계의 관련이,
우리들 인생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방향으로 나의 사고는 비약해갔다.
또 한편으로는 생활 수단을 위해서 전기공학을 배웠다.
차츰, 극미의 세계의 집단이 극대의 세계를 만들고 있음을 깨닫고,
물질계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에 대한 개략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의 나"에 대한 실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육체의 세포와, 오체의 여러 기관의 구성을 배우지 않으면 확실하지 않다.
식량난이 심한 때라, 감자 장사를 하면서 내 공부는 계속되었다.
학우인 사토 군이 라디오 조립의 일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주문도 많았고,
수리 등의 일로써 경제적으로는 편했었다.
나는 학력. 성적 등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수수께끼의 해명을 위해서 "또 한 사람의 나"를 탐구해 갔다.
경제 기반을 튼튼하게 해서 연구하기 위해,
나는 조그마한 공장을 차려, 경제력을 키워 나갔다.
영감(靈感)의 출현
물질에는 에너지가 동거하고 있다.
에너지와 질량의 존재를 알았다.
육체와 의식의 관계처럼 물질과 에너지의 관련이 나에게 이해되어 갔다.
이 무렵부터, 나는 영감(靈感)이 강해져서,
제삼자에 대한 예언은 백발백중처럼 되었다.
"왜 영감(靈感)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일까."
하고 오히려 의문에 의문을 더해갔다.
1950년경의 나는,
전기(電氣)와 자기(磁氣)에 의한 상호 감응과
자기(自己) 유도 작용이 어째서 일어나는가.
트랜스의 1차 측과 2차 측의 관계 등의
전기적 변화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었다.
전기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저 수학적으로 푸는 것만으로는
" 왜 " 라는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법칙에 따라 각 회로의 전기적 현상의 결과는 알았어도,
법칙은, 전기 그 자체의 근본을 해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문은 깊어 갔다.
나는 좋은 환경 속에서 힘들지 않게
계속 생명현상의 탐구에 몰두했다.
어디까지나 종래의 종교 관계를 구하는 것 없이,
그러한 서적을 읽지도 않고,
어디까지나 백지의 상태에서,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연구를 거듭했다.
이 무렵부터 친한 친구로부터 장래 문제 등을 상담 받으면,
한 장의 종이에 그 대답이 똑똑하게 나타나도록 되었다.
하지만 나 자신은, 이러한 현상에 더욱더 큰 의문이 쌓여 가기만 했다.
나의 인생은 어릴 때,
나의 장래를 예언한 행각승의 말씀대로 진행되어 갔다.
사업 관계의 일이며, 추궁을 거듭하고 있는
" 또 한 사람의 나" " 또 한 사람의 자기 자신"
에 관해서도, 그저 막연한 생활 가운데에서 풀리는 것이 아니라,
노력, 실천, 그러한 현실 생활 속에서의 활동 이외에는
해결될 길이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잡지나 텔레비전 등에서,
여러 가지 신비스러운 현상을 발표하거나 방영하고 있지만,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불가사의한 일'이라고만 생각할 뿐,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해답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의 영적 현상이나 예언에 대해서도
" 왜 "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환경에서 많은 여러 가지로 공부하고 있는데,
그들은 과연, 그 신리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을까.
나는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나는 다른 종교에의 편력도 하고 있었다.
자주 놀러 간 미다(三田)의 스님과 종교적인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전생 윤회 등이 책에 씌어 있지만,
그것은 인간 번뇌를 없애기 위한 방편이다."
라는 대답이었다.
" 인간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라고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을 기억한다.
또한 호슈의 관페중사의 신관(神官)은
" 일본은 신국이며, 야오요로즈(八百萬)의 신들이 수호하고 있다.
석가도 예수도 모세도 일본국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고문헌에 남아 있다."
라고 아주 사실인 것처럼 늘어놓는 것이었다.
미다(三田)의 스님은 단가(檀家)라고 하는
단골 신도만을 상대하는 종교 사업가이며,
독경해 주는 것이 장사이고, 스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영적 현상이 일어날 리가 없다.
현대 과학의 시대에, 그런 엉터리 같은 일은 없어."
하고 자기야말로 과학적인 문화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이 불교의 근본정신을 알고 있었을까.
물론 나의 연구 문제에 대해서도
" 현대 사회에 통하지 않는 꿈 이야기이다."
하고 일소에 부쳤던 일을 나는 기억한다.
호슈의 신관도, 일본만이 신국이며,
신(神)은 일본이 중심이 되어
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나의 의문에 대해서는,
" 당신의 뇌세포가 이상해진 것이 아닌가."
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신관의 가정을 살펴보면, 화합하지 않고,
가정은 복잡하고, 부부는 별거,
도저히 신(神)을 모시는 사람의 생활 태도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신을 모시는 사람이 어째서,
가정의 조화조차 이루지 못하는가, 나는 의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