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10. 20
세비야 스페인광장 2층 홀을 걷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집시의 노래와 음악을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급한 걸음으로 소리나는 곳을 찾아갔다.
2층 홀 중앙 라운지에서 한 댄서가 춤을 추고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급히 달려갔더니 이미 춤은 끝나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한 공연자에게 다가가 다시 하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얼른 무대의 앞자리 계단의 중앙에 자리잡았다.
한 사람의 젊은 여성 댄서와 나이 든 여성 소리꾼,
30대 여성 추임새 공연자, 20대 후반의 드러머가 공연을 펼쳤다.
잠깐의 휴식 후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가로세로 1m정도의 널판지 위에 올라선 댄서의 춤과 발굴림,
여성 소리꾼의 판소리 시김새처럼 처절하고 깊이 있는 음색의 소리 칸테,
젊은 드러머는 네모난 박스 위에 앉아 통을 두드리고,
추임새 여성은 박수로 추임새를 하다가 중간에 한번 캐쉬박스를 들고 한바퀴 돈다.
댄서의 몸놀림은 유연하면서도 절도가 있었다.
그녀의 춤은 플라멩코가 지녀야할 에너지와 메세지를 진심으로 보여주려는 듯 했다.
너댓번에 걸쳐 춤과 쉼을 거듭하면서 그녀는 맹렬한 열정으로 춤을 췄다.
나는 춤이 멈출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올래Olle!!!를 외쳤다.
노래인 칸테를 부르는 여성은 60대로 되어 보이는 가무잡잡한 피부의 노련한 여성으로 보였다.
그녀의 소리는 길고 높으며 비장하고 표정은 처절하였다.
집시가 지녔을 한의 정서가 묻어 있는 소리 그 자체로 보였다
마치 한국의 비장한 판소리창의 한 부분을 듣는 듯하였다.
세비야 스페인 광장에서의 플라멩코 공연은 매일 이루어지는 무료 노상공연이다.
아마도 관광객을 위해 세비야시에서 운영하는 공연 프로그램일 것으로 생각된다.
댄서의 의상이 화려할 수도 있고 인원이 한 두명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마주한 플라멩코는 집시문화예술로서의 전통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무대였다.
집시 본연의 모습대로 전혀 화려하지 않고,
쇼의 기교가 아닌 예술로서의 춤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느겼다.
미술과 음악 등 모든 문화예술에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스페인의 문화예술 중에
가장 전통적이고 독특한 장르는 플라멩코 Flamenco 일 것이다.
춤의 기원설은 다양하지만 안달루시아지방의 떠돌이 집단 집시와
이슬람 무어족, 쫓겨다니는 유태인의 예술적 전통이 혼합되었다고 본다.
대체로 인도의 카스트제도 아래 밀려난 하층민이 안달루시아지방에 정착하고,
이슬람을 정복한 기독교가 무슬림들에게 개종을 강요하며 핍박하자
동굴 등에 숨어지내며 집시가 되고, 이들의 정서가 오늘날 플라멩코의 기원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노래 칸테 Cante, 춤 바일레 Baile, 발구름 사파테아도 Zapateado,
추임새로 박수, 악기 토케 Toque로 기타와 드럼통 등이 결합된다.
남자 무용수 바이라오르 Bailaor와 여자무용수 바이라올라 Bailaola가 함께 추며
가수가 노래하고 기타와 드럼통 연주, 박수가 박자를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