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향한 바울의 염원(고전 1: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바울의 단순한 인사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본문을 고린도전서의 서론, 또는 바울의 인사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이루고 싶은 것을 우리에게 서론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은 고린도교회가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라감으로 잘못된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을 바로 잡아 주려고 쓴 내용들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그들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린도교회가 복음을 듣고 어떤 교회로 세워진 교회인지, 하나님께 무엇을 받은 교회인지를 먼저 일깨워 주면서 그 은혜 가운데 바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내용을 보냅니다. 그 속에는 고린도교회가 다시 복음 앞에 바로 서기를 바라는 바울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몇 가지로 나눠 살펴 보면서 은혜의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1. 바울은 왜 자신이 사도인 것을 밝히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1절)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밝힙니다. 이것은 단순한 직분 소개가 아닙니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바울의 사도권과 그가 전한 복음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사도권을 밝히는 것은 자신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한 복음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내 뜻으로 너희에게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전했다. 그러므로 나를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내가 전한 복음을 바라보라.”
바울의 사도권을 밝히는 것은 결국 복음의 권위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2. 왜 소스데네를 “우리 형제”라고 소개했는가?
“우리 형제 소스데네와 함께”(1절)
사도행전 18장에는 고린도의 회당장 소스데네가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갈리오에게 고발했지만 갈리오는 그들의 종교적인 문제를 재판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소스데네가 사람들에게 붙잡혀 매를 맞습니다(행 18:12–17).
성경은 소스데네가 왜 매를 맞았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맥상 소스데네가 바울을 적극적으로 대적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바울의 복음 전도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분노를 샀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1에서 바울은 그를 “우리 형제 소스데네”라고 부릅니다.
사도행전의 소스데네와 고린도전서의 소스데네가 동일 인물인지는 성경이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일 인물이라면 의미가 깊습니다.
바울과 복음을 대적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이제는 “우리 형제”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소스데네의 소개는 고린도교회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는 사람이 변화되고, 서로가 형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고린도교회가 다시 복음 위에 서는 교회가 되기를 염원했다
이것이 1–9절 전체를 관통하는 바울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먼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2절)라고 부릅니다.
바울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2절)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문제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누구인지를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4절)를 말합니다.
5–7절에서는 모든 언변과 지식이 풍성하고,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하며,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이미 복음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항구도시에 세워진 교회로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오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고린도교회를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외국인들의 방언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은사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문제는 은사는 풍성했지만 복음이 흔들리고 있었고, 복음에 합당한 삶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염원은 은사를 더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복음의 은혜를 바르게 깨닫고, 그 은혜 위에서 다시 복음에 합당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6절의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라는 말씀처럼 바울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나 아볼로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또한 7–8절에서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그리스도의 날까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견고하게 되기를 말합니다.
그리고 9절에서 그 근거를 사람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교회를 하나님께서 끝까지 세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위의 말씀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1. 바울의 사도권을 밝힘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한 복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2. 소스데네를 “우리 형제”라고 소개함
복음 안에서 사람이 변화되고 서로가 형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3. 고린도교회를 다시 복음 위에 세우려 함
사람을 따르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 은사를 자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증거를 견고하게 하는 교회, 현재의 문제에 머무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날까지 견고한 교회가 되기를 바울은 염원하고 있습니다.
한 문장으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밝힘으로 복음의 권위를 세우고, 소스데네를 “우리 형제”라고 소개하며 복음 안에서 하나 됨을 보여 주고, 고린도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정체성을 회복하여 다시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굳게 서기를 염원하며 이 편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염원은 긴 시간이 흐른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을 고린도전,후서에서 우리는 발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마음의 부르짖음은 성령의 응답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도 바울의 이 간절한 목회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