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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 취미라며 치악산은 올라봤나?”
“아뇨.”
“그럼 등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아야지. 사다리병창 쪽으로 해서 비로봉을 올라봐야 그게 진짜 등산이지. 조그만 야산을 올라봐야 어디 그게 등산인가.”
“그래요. 그 곳이 그렇게 대단한 가요?”
사실 등산이랍시고 횡성의 덕고산, 홍천의 팔봉산, 춘천의 삼악산 정도이다.
치악산은 총각시절 오를 기회가 있었는데 전날 술을 너무 퍼먹어 초입에서 넉아웃 되는 바람에 오르지 못한 이후 기회가 없었다. 원주에 산 지 5년인데도 지역의 명산을 올라가지 못한 것이 아쉬워 꼭 올라보고 싶었다.
“치악산을 올라보고 싶은데 동행 좀 해 주실 수 있어요?”
“말도 말게 그 곳이 얼마나 힘든 코스인지 실장은 반의 반도 못 올라가서 주저앉을 걸.”
<날 물로 보시는군.>
약간의 약올림에 열망이 강해졌다. 치악산이 어떤 산이길래 이 몸을 굴복시킬 산도 있단 말인가?
당장 내일 올라가자는 제안에 대 여섯 명의 인원 중 선뜻 자원하는 사람이 없다.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나는 내일 치악산 비로봉에 올라갔다 와서 월요일 보고할게요.”
처음부터 악소리 지르게 하는 나무계단
띠리링
“형님이시죠? 내일 치악산 비로봉에 올라가려는데 동행해 주실 수 있죠?”
횡성의 형님에게 단정적인 질문으로 부탁했다.
“우선 비가 오지 않는지 알아보고 폭우가 내리지 않으면 새벽에 출발하자구.”
반승낙이 떨어졌다. 주말이면 밭농사에 매달려야 하고 풀이 허리춤까지 올라와 그것부터 제압해야 했으나 다 무시하고 즉시 131번을 눌렀다.
“원주!”
99 숫자를 누르고 수화기를 귀에 대고 외쳤다.
<원주지방의 일기예보입니다. 오늘 내일 날씨는 1번...>
멘트에 따라 1번을 누르니 ARS 기상예보는 원주지방의 날씨를 바로 안내해 준다. 요즘 컴퓨터가 많이 진화했다고 감탄했다. 간단한 지역단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졌으니.
띠리링
“지금 출발하니 15분 후에 집앞으로 나와.”
새벽 4시 30분에 휴대폰 수화기를 통하여 들리는 형님의 목소리다. 내가 농사의 신이라 자처한다면 형님은 산신이다. 틈만 나면 야산부터 이름난 명산에 이르기까지 산에 오르길 좋아한다. 평지에서 하는 조깅운동부터 집에서 틈만 나면 근력운동을 즐기고 한 두시간 정도 짬나면 산행으로 체력을 다진다.
“형님이 하시는 운동을 돈 주고 시키면 하루 인건비가 얼마나 나올까?”
그런 농담을 가끔 했었다. 스스로 즐기면 운동이지만 돈받고 하는 일은 값비싼 노동일 터이다.
사다리 병창길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려고 하니 아내가 깨어 산행준비를 해준다.
잠이 많아 아침 열 시나 되어야 간신히 일어나는 사람인데 남편이 안하던 등산을 한다고 함께 일어나 옷가지와 커피, 제과점 빵 등을 주섬주섬 배낭에 챙겨준다.
“아침결이니 추울지 몰라요. 등산용 잠바를 입고 가세요.”
그리 추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반 팔티를 입었으나 아내의 권유에 따라 다시 잠바를 걸쳤다. 준비가 끝난 후 다시 드러누울 듯 했던 아내가 졸래졸래 따라 나와 형님께 인사한다.
“아주버니 잘 다녀오세요. 여보 점심은 당신이 사세요.”
참 좋은 아내다.
LPG엔진을 장착한 형님의 트럭은 조용한 엔진음을 내며 구룡사 입구를 향해 달렸다.
매표소 입구 주차장에 주차한 후 걷기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까지 꽤 멀지. 해가 짱짱한 때에 걸으면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 될 거야.”
5시 30분인데도 나무 그늘이라 그런지 사위가 어둡다. 등산로 입구까지 30분이나 소요되었다. 거리로는 2km 남짓일 것 같다.
“자 이제부터 등산로 시작이야.”
비로봉 1288m
이정표는 사다리 병창과 계곡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다리 병창길을 택했다. 완만한 나무 계단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뼈빠지게 힘들다니 그런 게 아닌가 보군.”
그러나 이내 경사가 심해지고 있었다. 건물의 비상계단처럼 급경사의 계단들이 구불거리며 이어지고 있었다. 등산을 시작한 지 10분이 되지 않아 숨이 가빠지더니 이내 땀이 범벅된다.
“아이고 형님, 좀 쉬었다 갈까요.”
“안돼. 일단 이 고비를 지나면 완만한 곳이 나오니 조금만 더 참으면 되네.”
할 수 없이 형님의 뒤를 따른다.
“등산이 힘들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일세. 아주 완만한 야산이라면 뛰어다닐 수도 있겠지만 웬만한 산은 모두을 올라갈 때는 힘든 거야. 천천히 올라가지.”
다람쥐라는 별명을 붙일 만 했다. 계단만 보면 후다닥 뛰어올라가는 모양을 보면 참 날렵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힘들어 하는 아우님(!)을 배려하신다. 뚜벅뚜벅 올라가니 급경사를 지나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용창중>이 신의 계시로 쌓았다는 미륵불탑
“자 여기서 쉬어가지. 음료수와 빵을 풀어놓고 먹고 가자구.”
“에휴 힘드네요.”
“힘들지. 치악산 등반코스 중 지금 올라온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다네. 또 일부는 사다리병창에서 되돌아 서는 사람들도 많다구. 등산길과 인생은 유사한 점이 많다네. 힘에 부치는 등산코스를 못 이겨내고 포기하여 하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리 가파르고 험하다고 해도 절대로 오르지 못할 길이란 것은 없다네. 인생 살다가 어려운 일들을 만나고 못 이겨내는 사람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포기하기도 하지.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라도 사람이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고난이 주어진다네. 밥을 빌어먹더라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이야기도 있지.”
등산 때마다 좋은 이야기를 해 주시는 형님의 어록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이는 여섯 살 위지만 독자로 자라 지금의 형수님과 만나 자수성가로 살아오면서 많은 외로움과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자식 키우는 이야기, 농사 이야기와 사회생활 이야기 등을 들으면 형님의 지혜와 철학이 번뜩인다.
운무로 덮인 산
去去去中知 行行行裡覺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다.)
85년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설 丹의 책표지에 커다랗게 쓰여진 문구가 생각났다.
형님이 나보다 여섯 살 위이니 그리 많이 사신 것은 아니지만 인생을 살면서 깊이 생각하며 깨달음을 많이 가지신 가 보다. 그냥 편하게 살아가는 나같은 범부에게 무슨 깨달음이 있을까만 형의 여러가지 철학을 들어보면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형님이기 이전에 좋은 말벗이라 해도 좋겠다.
나는 인스턴트 커피와 제과점 빵, 형님이 꺼내 놓은 것은 신선한 물과 포도 한송이이다. 생활방식도 자연음식이다. 형님과 나를 보면서 우화 시골쥐와 도시쥐 이야기를 언뜻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시골쥐가 푸성귀를 먹고 살지만 맘 편하게 사는 것에 만족하지만 도시쥐가 차량이 번잡한 도로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도 기름지고 맛난 것을 먹을 수 있는 도시행을 이야기할 때면 어떤 것이 좋은 인생인지 헤깔린다.
이른 아침 간식이지만 두둑하게 먹고 다시 산행길을 재촉한다.
운무를 금방 걷어내는 자연의 조화
곧 사다리 병창에 도착했다.
1.5미터 폭의 바위길이 이어진다. 굵은 쇠줄을 박지 않았던 옛날 같으면 위험한 길이라고 노약자의 산행을 통제했을 법 하다. 사다리 병창이 끝나고 이내 급경사 계단이 이어진다. 급경사가 끝나면 다시 완만한 길이지만 결코 내리막길이란 게 없다. 같은 <악>자가 붙은 춘천 삼악산엘 오를 때만 해도 평탄하거나 약간의 내리막이 있더만 이곳 치악산은 계속 오르막길이다. 급경사와 완만한 경사가 반복될 뿐이다.
세 번 정도의 다리 쉬임을 하고서 정상에 도착했다.
오르는 도중에도 바람 소리가 굉장했으나 정상 부근의 바람이 매섭다. 윙윙거리며 한겨울의 바람소리와 함께 나뭇잎을 많이 단 나무들이 온 몸으로 바람을 맞고 있었다. 미륵불탑 세 개가 모진 바람에도 굳건히 서 있었다. 제과점을 운영하던 용창중이라는 분이 꿈에 비로봉에 3년안에 미륵불탑 세 개를 쌓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쌓았다고 하는데 두 개가 무너져 다시 쌓았다고 한다. 그 후에도 벼락을 맞아 무너진 것을 국립공원측이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높다랗게 피뢰침이 서 있는 것이 등산객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미륵탑 보호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늘과 소나무
날씨만 맑았다면 황골쪽이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인다는데 뿌우연 안개 속에 묻혀 있다.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놓고 촬영했다.
“형님 기왕 오신 김에 한 곡 뽑아 보세요.”
“노래는 무슨... 엇 지금 동영상 찍는 거야?”
동영상 촬영하는 것을 느끼셨는지 형님이 외면하며 저만치 피한다. 그동안에 거센 바람이 산을 감싸던 운무를 싸악 걷어냈다.
엇! 그렇게 깨끗하던 산이 30초도 되지 않아 다시 운무에 휩싸이고 만다. 운무를 걷어내고 다시 입히는 솜씨가 얼마나 빠르던지 하늘의 조화가 마냥 신비하다.
“다리 쉬임을 좀 했으니 다시 출발하자구. 땀이 모두 마르면 저체온증으로 감기 걸리기 딱이거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더 있고 싶은 생각도 잠시 다시 하산길에 나섰다. 300미터 정도 내려왔을까. 표지판은 세렴폭포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바위와 소나무
“여기가 아늑하니 남은 간식을 모두 먹고 가세.”
岳소리 나는 계단을 지나 두 번째 먹는 간식이다. 아까 먹던 포도와 물, 커피와 빵을 펼쳐놓고 요기를 시작했다.
엇! 다람쥐다!!
형님이 던져준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모양이 제법 귀엽다. 보통 야생짐승은 20미터 이하의 거리를 주지 않는 법인데 녀석만큼은 5미터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부스러기를 뜯어먹고 있었다.
녀석을 동영상에 담으려고 두손에 들었던 커피잔과 빵을 패대기 치고 카메라를 꺼내는 손길이 분주했다. 그런 나를 보는 형님이 안돼 보였는지 한마디 한다.
“그렇게 급히 서둘지 않아도 되네. 녀석은 도망가지 않을테니.”
줌으로 당겨 녀석을 찾으려는데 도무지 찾질 못하겠다. 찍는다는 것이 멀찌감치 있는 측량표지 부근에서 헤매고 있었으니 아무리 급해도 바늘 허리를 붙들어 매어 바느질을 못한다고 하더니 그 짝이다. 카메라 위치를 녀석에게 옮기는 순간 녀석이 쪼르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제 굴로 돌아가서 먹으려는 모양이지.
세렴폭포 - 선녀탕이라 해야 할 듯
다시 올 거라던 형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요깃거리를 마친 우리는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올 때는 나무계단을 많이 밟았으나 하산길은 돌길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병창길 방면에 비하여 완만한 오름길이어서 등산객들이 계곡길을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벌써 내려가시네요.”
생면부지의 등산객이라도 서로 만나면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예. 비로봉에서 내려오는 길입니다.”
“좋으시겠네요.”
좋겠다는 말에서 완만한 계곡길이지만 많이 힘들다는 뜻을 읽어낼 수 있었다.
계곡길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서 좋다. 새소리 대신 옆 쪽을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산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을까? 졸졸 거리는 물이 폭포로 변해 있었다. 아직 세렴폭포는 아닐 텐데 조그만 폭포와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이윽고 세렴폭포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새벽에 만났던 사다리병창길이 나왔다.
폭포와 나
한 사내가 꿩을 구해주기 위하여 뱀을 죽이고는 아내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려 할 때 꿩이 보은으로 사내를 살려주었다 하여 치악산(雉岳山)이란 이름을 가졌지만 적악산(赤岳山)이라는 이름도 있다. 적악산, 가을 단풍이 붉게 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내장산 붉은 단풍이 곱다고 하지만 원주의 치악산 단풍도 일품이라고 한다. 10월 중순에 이곳 비로봉을 다시 찾을 생각이다. 작은 카메라에 담을 10월의 붉은 단풍을 기대하며 이번 치악산 산행기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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