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홀(唱笏)
홀기(笏記)를 부르는 것, 홀기를 창(唱)하는 것을 창홀이라 한다.
2. 창(唱)
1) 가락을 맞추어 사성(四聲)에 따라 노래를 부르듯이 하므로 가창(歌唱)에 가깝다.
2) 가곡,곡조,잡가조(雜歌調), 판소리 등으로 노래나 소리를 하는 것도 창이다.
3) 노창(臚唱) : 조선조 때 의식에 사용하던 노래 형식으로 소리를 높여 부르
는 창으로 통례원(通禮院)에서 종 6품인 인의(引儀)가 의식의 절차를 노래 형
식으로 읽었다.
4) 고사(告祀)을 창으로 읽는다.
3. 홀(笏)
홀(笏)은 중국에서는 주대(周代)에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처음에는 문관이 모양을 꾸미는 장식품의 일종으로, 임금에게 보고할 사항이나 건의할 사항을 간단히 적어서 잊어버리지 아니하도록 비망하는 것이었다.
신분에 따라 규격과 색채와 질이 정해져서 중국에서는 옥(玉). 상아(象牙). 서각(犀角) 등이 도입되었으며, 조선조가 창건되어 유학이 국교로 채택되자 홀(笏)에 대한 제도로 확정 되었다. 조선조에 제정된 홀은 한 자[尺] 정도의 길이에 두 치 정도의 너비로 얇은 것이며 1품에서 4품까지는 상아로 만들고 5품 이하는 나무로 만들어 쓰게 하였다.
4. 홀기(笏記)
의식(儀式)의 순서를 적은 글로서, 홀(笏)의 사용이 발달됨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문명이 발달될수록 생활의 방식도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생활을 통제하는 방법도 번잡하여졌다. 인간을 자율적으로 통제한다는 예는 점차 까다로워져서 자칫 착오를 범하기가 쉽고, 그 착오는 실수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와 보고를 행하는 절차가 필요하였으며, 그 필요에 따라 발달한 것이 홀기(笏記)이다.
홀기는 크게는 국가의 조참(朝參)과 상참(常參)에서부터 종묘(宗廟), 사직(社稷), 배릉(拜陵)등의 의식에 이용되고, 작게는 시학(視學), 입학(入學), 석전(釋奠), 전시(殿試), 방방(放榜)을 비롯하여 양로연(養老宴) 등에도 이용되었다.
민가(民家)에서는 서원(書院)의 유회(遊回). 향회(鄕會)를 비롯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 강학례(講學禮) 등에도 이용되고 혼례(婚禮), 관례(冠禮), 제례(祭禮) 등 사가(私家)의 행사나 의식(儀式)에 까지도 이용되었다.
홀기(笏記)는 절차를 미리 의정(議定)하여 그대로 시행함으로써 절차의 오류(誤謬)를 막고 시비의 근원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5. 창홀(唱笏) 방법과 내력(來歷)
※ 아래 내용은 김우영 전 대구향고 전교가 창홀과 관련한 광산김씨(명 미상)의 생전 강의 를 녹취한 것임
전통의 창홀과 독축(讀祝) 문화가 전해지지 않는 것을 무한히 한스럽게 여기던 예(禮)에 밝으신 한 선비 어른이 지금은 고인이 된 광산 김씨(光山金氏)였다.
1980년대 초에 두어 차례 그분으로부터 창홀과 독축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그 후 1993년에 대구향교에서 고인이 된 소원(韶園) 이수락(李壽洛) 선생과 안동 이동광(李東光) 씨를 초빙하여 창홀과 독축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앞에 소개한 광산김씨와 독축 창법(唱法)이 같았다.
그래서 전통 독축 창법이 아니겠나 하는 확신이 생겼다.
들은 내용은, 조선조 중엽인 선조, 숙종, 영조, 정조 시대를 중심으로 하여 전국에 문묘 및 향교가 삼백여개소, 서원이 육백팔십여개소나 되었는데 이 시대에는 창홀과 독축을 가르치는 사람도 많았고 배우려는 사람도 많았으며 향사 지내는 때가 되면 행사에 숙달된 유생들을 봉청(奉請)하여 향사(享祀)를 거행하니 미숙한 유생들은 이를 보고 견문을 넓혀 교육이 전수되었다고 했다.
그후 고종 8년에 흥선대원군이 많은 서원을 훼철(毁撤)하여 47개의 서원만 남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한 후로는 향사(享祀)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자 고유의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게 되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많은 서원이 복원되어 서원 향사를 치르고 있으나 옛날과 같이 창홀, 독축법을 가르치고 배우지 아니하여 숙달된 사람이 드물고 향사 때가 되면 문벌(門閥)좋은 성씨(姓氏)의 사람을 봉청(奉請)하여 행사를 하다 보니 창홀이 아니라 독홀(讀笏)이 되는 경우가 많고 고저장단이 역창(逆唱)이 되는 것을 허다히 볼수 있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잘못된 줄 모르고 ‘행사하는 예가 지방마다 다르다’고 하고 ‘이번 행사는 어느 성씨의 아무 어른이 집례(執禮)하였으니 행사가 잘 되었을 것이다’하고 문벌과 성씨만 보고 잘 되고 못 되로를 판단하니 고유의 전통문화가 다 사라져 가는 것이 현재 유림(儒林)의 실정이다. 요즈음은 가르칠 사람도 배울 사람도 없으니 안타깝다고 하면서 향교석전홀기(鄕校釋奠笏記)와 축문에 매자 마다 고저(高低)표시가 된 것 일첩(一帖)을 나에게 전해 주었다.
창홀은 제목 그대로 창(唱)을 하는 것인데 창이란 ‘태산고악(泰山高嶽)에 천리내용(千里來龍)’과 같아서 산맥(山脈)의 봉우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기복(起伏)이라 하고, 좌우로 왔다 같다 하는 것을 지용(之龍)이라 하는데 이러한 산맥은 모두 생용(生龍)이라 하여 쓸모 있는 명산(名山)이라 하고, 내용산맥(來龍山脈)이 죽은 미꾸라지처럼 쭉 뻗은 것은 수려하기는 하나 사용(死龍)이라 쓸 모 없는 무용지산(無用之山)이라 하니 창(唱)도 역시 이와 같이 고저장단을 맞게 하여야 좋은 창이 되나, 듣기 좋아라고 쭉쭉 뻗는 창을 하면 고저가 없어 죽은 창이라 못 쓴다고 하였다.
창홀과 독축을 잘 하려면 문장의 뜻을 잘 알아서 자구(字句)를 옳게 띄어야 하고 글자의 고저를 알아야 한다.
사성(四聲)중 상성(上聲)과 거성(去聲)은 높은 자(字)라 높고 길게, 평성(平聲)은 낮은 자(字)라 낮고 짧게, 입성(入聲)은 높은 자(字)이나 문장에 따라 높거나 낮게 창(唱)을 한다.
예를 들면 축문(祝文)에 ‘…감소고우(敢昭告于) 선사(先師) ㅇㅇ공(公) ㅇㅇ선생(先生) …’이라 할 때 ‘소(昭)’는 평성(平聲)이니 낮고 짧게 창을 한다. ‘소고우(昭告于)’에서 다음 구절을 띄지 말고 연결을 시켜 ‘소고우(昭告于)~선사(先師)…선생(先生)’까지 달아서 창해야 한다.
그리고 한 문장은 고음(高音)으로 높게 뻗고 다음 문장은 저음으로 낮추어서 목소리를 변음을 시켜 리듬을 맞춘다.
또한 축문(祝文)의 끝인 ‘상향(尙饗)’에 ‘향(饗)’는 높고 길게 한다.
‘배(拜) 흥(興) 배(拜) 흥(興)’은 여러 사람이 절을 할 때 절하는 동작이 같게 하기 위함이고, ‘부(俯) 복(伏) 흥(興)’은 엎드렸다가 일어날 때 몸이 움직이는 율동을 형용하는 말이라서 한자 한자씩 띄운다고 한다.
창홀에서 높고 긴 자는 ‘위(位), 강자(降自), 인강복위(引降復位)’ 등이고 낮고 짧은 자는 ‘초(初), 관(官), 전(前), 삼(三), 향(香), 동계(東階), 서계(西階)’ 등이며 낮으면서 길게 하는 자는 ‘신(身), 개(皆), 궁(躬)’ 등이다
1. 축문(祝文)의 의의(意義)
제례나 상례 때 신에게 축원을 드리는 글로서 예서(禮書)에 의하면 의식에 쓰이는 글을 축문, 축사(祝辭), 고사(告辭)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세 가지를 모두 축(祝)이라는 말로 구별 없이 사용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구분하면 축문만이 신에게 축원을 드리는 글이다. 축사는 신에게 드리는 글이 아니고 의식을 행하는 데 대한 축하하는 내용의 글이며 고사는 어떤 사실을 신에게 고하는 글이다.
축문은 신을 대상으로 행사는 의례 때에만 사용된다. 그러나 많은 의례 중 상례와 제례에만 고유문과 축문이 있다. 관례와 혼례에는 고사와 축사가 있을 뿐이고 축문은 없다.
2. 독축 방법
독축은 창홀 방법과는 다르다.
독(讀)하되 경건하게 축(祝), 애(哀), 경(敬), 고(告) 등에 따라 경건하고 행사 내용에 맞게 사성과 고저장단에 맞게 읽어[讀]야 한다.
3. 축문의 일반적 서식
먼저 언제 축문을 올리게 되는지 그 때를 명시한다. 그 형식은 왕조의 연호를 먼저 쓰고, 다음에 세차 간지(歲次 : 干支)에 의하여 정한 해의 차례를 쓰고, 다음에 월, 일을 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연호는 없이 세차부터 쓴다. 세차와 월 다음에 그달 초하루의 일진을 쓰고 날짜와 그날의 일진을 간지로 명기한다.
때를 명기한 다음 축문을 올리는 사람의 신분을 밝힌다. 벼슬이 있으면 먼저 관직을 쓰고 이름을 쓴다. 또 조상에게 올리는 축문일 경우는 몇 대손 혹은 현손(玄孫), 증손(曾孫), 손(孫) 등으로 제사 대상과의 관계에 따라 쓴다.
그 대상의 적장자일 경우에만 ‘효(孝)’를 붙여 ‘효자(孝子)’, ‘효현손(孝玄孫) 등으로 쓴다.
4. 축문 예시
1) 조부모 기제 합설축
2) 선대 묘사축
3) 선대 묘사 산신축
4) 한글 축문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한문으로 축을 써서 독축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날 시대적 상황을 보면 교육정책이 한자 교육에 소홀하여 고등교육을 받고서도 우리의 전통 축문을 제대로 쓸 소양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축문을 쓰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전통적인 한문 축문을 쓸 수 있는 경우와 한글 축문을 쓸 수 있는 경우가 있으며 한글 축문도 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한문 축문을 써야 한다고 고집하면 한문 축문을 쓸 능력이 없는 세대는 축문 자체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
축문의 본뜻은 행사에 따라 고할 내용을 아뢰면 되는 것이니 시대적 상황에 맞게 한글 축문이라도 써서 행사해야 마땅하다. 또 지방을 한글로 써도 된다.
전통적 한문 축문을 쓰거나 한문 축문을 한글로 번역한 내용을 축문으로 활용하거나 오늘날의 문체로 쓴 한글축문을 써서 활용하는 등 세 가지 방법이 있으니 각자 상황에 맞게 축문을 써서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축하면 제주뿐 아니라 주부도 손님도 한잔을 올일 수 있는 삼헌(三獻 : 석 잔)으로 제사를 모시는 것이 자손의 도리이다.
부모기제합설축문(父母忌祭合設祝文) (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