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즈 접경 지대인 슈롭셔 지방에서 태어난 이지(본명: Isobel Cooper)는 네 살 때 리코더를 잡으며 음악을 시작, 이후 5년 동안 리코오더 계열의 악기들은 물론이고, 피아노, 클라리넷, 플루트 연주에 이르기까지 클래식 연주자로서 착실하게 음악 수련을 쌓아갔다.
하지만 아홉 살이 되던 해 그녀는 자신의 음악 활동에 있어 결정적 전환을 맞이했다. 학교 합창단 지휘자의 선구안으로 그녀는 연주자가 아닌 가수의 신분으로 'Arts Educational School'에 입학, 음악과 더불어 드라마, 춤을 함께 배우며 뮤지컬 가수로서의 꿈을 키웠다.
십대 중반부터 그녀는 학교 합창단에서 주요 솔로 부분을 자신이 소화해 내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런던의 'The Royal Albert Hall'과 'The Festival Hall' 그리고 이태리의 'St. Francis Basilica', 'Florence Cathedral' 등에서 공연을 하는 등 신동 성악가로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1993년 열 여덟 살의 나이에 그녀는 영국의 줄리어드로 평판이 자자한 <Guildhall Music School>에서 개최한 'Junior Guldhall Singing Prize' 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Guildhall Music School>에 입학, 바라던 대로 음악과 드라마를 공부했다.
하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소프라노로 착실히 음악 실력을 쌓아 나가던 그녀는 목 부위에 수술을 받으며 성악가로서의 수업을 중단하게 되는 불운을 맞았다. 그녀는 그러나 양아버지의 격려로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부터 그녀의 음악 스타일은 정통 클래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자신에게 맞는 음악들을 스스로 작곡했고, 한편으론 많은 사람이 신봉하는 클래식의 엄격한 제약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결국 그녀는 졸업 학년이었던 1999년 <데카 레코즈(Decca Records)>와 계약을 맺고 크레이그 리온(Craig Leon)을 프로듀서로 맞이하여 데뷔 앨범 Libera Me(나를 자유롭게 하소서) 를 발표했다. 음반은 클래식 뮤지션의 이름이라고 하기에 짧고 장난기 어린 이름(이지는 이소벨이라는 애칭에서 따왔다고 한다)을 선택한 것처럼 젊은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해 낸 팝화된 클래식이었다.
다른 소프라노 가수들의 음악과 확연히 구별되는 그녀의 음악은 팝과 클래식 양쪽에서 모두 인기를 누렸고, 앨범은 발매 첫 주에 안드레아 보첼리, 호세 까레라스 등 최정상의 가수들을 차트에서 밀어내며 정상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녀는 2001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Ascolta (들어주세요) 에서도 독특하게 해석한 클래식 고전들을 수록하였고, 세 곡의 민요를 집어넣는 이색적인 모습도 보여줬다. 음반은 국내에도 라이선스로 발매되어 삼 만장 이상의 성공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녀의 내한 프로모션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지는 1년 뒤인 2002년 유사한 스타일의 퓨전 클래식 앨범 <New Dawn>을 발표하며 다시 한 번 팝페라의 매력을 과시하고 있다.
`팝페라`, 우리시대의 음악
작년부터 음악계는 '팝페라(Popera)'라는 용어가 등장해 계속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신조어는 `이지(Izzy)`라는 영국 출신의 한 여성 가수와 함께 등장했는데, 그 뒤를 이어 발매된 여러 가수들의 앨범에서 우리는 `팝페라`라는 수식어를 발견하게 된다.
왜 우리는 팝페라에 열광을 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팝페라`라는 용어가 오늘날의 음악과 예술의 성격을 분명하게 규정짓고 있음은 물론이며, 더 나아가 은연중에 우리 자신들이 처해있는 사회적인 상황과 성격을 음악적인 방법으로 공명시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팝페라는 pop + opera의 합성어이다. `오페라`라는 고전적인 음악 장르와 `팝`이라는 대중적인 음악 장르는 그 동안 전혀 다른 세계를 추구하며 어떤 면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의 음악 장르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이들은 그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간다.
이를 정치적인 무대로 옮겨보자. 세계는 오랫동안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서로 분리된 이데올로기 체제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 경계가 허물어졌고, 명목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도 자본주의의 핵심인 시장경제 방식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북한마저 이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학문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진데, 그 동안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해오던 학문 분야들이 최근 들어 서로의 벽을 허물고 학제간 공동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상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이런 현상을 패션과 영화, 미술, 문학 같은 예술분야뿐 아니라 의,식,주와 관련된 생활과 문화 전반에 걸쳐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혼성장르(hybrid-genre) 현상을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에서는 이종교배(hybridization) 혹은 혼성모방(pastiche)이라 부른다. 유전학 용어인 이종교배는 흔히 말하는 잡종(hybrid)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 `잡종`이라는 것이 `괴물`이라는 것과 거의 동일시될 정도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새롭고 신기한 것을 의미하게 됐다.
음악적으로 볼 때 크로스오버(cross-over)나 퓨전(fusion), 그리고 팝페라(popera) 등이 모두 이 `잡종`에 해당하는 음악 양식인 것이다. 문화사회학자 마이크 페더스톤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문화>라는 저서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경향 가운데 하나를 “일상생활의 미학화”라고 규정하고, 바흐친의 용어를 빌려 “시장은 상이한 여러 문화의 교류를 통해 문화의 변형이 이루어지는 '이종교배(Hybridization)의 장소'”라고 말한바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이 시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 중 일부는 이 시장의 법칙을 삶의 제일 척도로 여기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는 이미 경계가 무너진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클래식 음악계는 마에스트로가 사라진 시대를 맞고 있다. 비록 짧은 기간동안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들은 있을지 모르나 거장들은 이미 전설의 시대로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이런 현상은 음악뿐 아니라 문학과 여러 예술에서도 나타나는 공동 현상이다. 아마도 이는 롤랑 바르트가 주창한 “작가의 죽음”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예술의 특징은 더 이상 작가와 그가 지닌 고유한 스타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기존의 스타일을 합성하여 새로움(?)을 창출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즉 낯선 새로움이 아니라 친숙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의 소멸과 함께 고유한 스타일의 창출은 구시대적인 것이 되었다. 그리고 작품 속에 깃든 작가의 정신이나 진정성보다는 그 작품이 취하고 있는 형식과 이미지가 더 중요시된다.
음악으로 이야기하자면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기존에 있는 곳들을 다시 변형시키는 것(편곡, 리믹스), 혹은 잠시 잊혀졌던 노래를 다시 리메이크하는 것(민요나 바로크 이전의 음악들, 혹은 과거의 팝 넘버들)이 각광을 받게 되는것이다. 또한 이전에는 예술가의 재능이나 기교가 중요한 요소였다면 이제는 테크놀로지의 활용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때문에 가수의 음악적 재능보다 그 음악을 만들어낸 프로듀서의 기능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수들간에 더 이상 변별력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음악이 이 세계에서 사라지거나 멈춘 것은 아니다. 경계가 뚜렷했던 기존의 음악 형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복합적인 형식의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다. 즉 음악에서의 탈장르화의 혼돈은 혼성장르라는 새로운 탄생을 가져왔다. 기존 음악 형식의 단순함과 표현 능력의 한계를 의식하게 되면서 이를 극복하고자 한 결과 이종교배를 통해 혼성장르의 음악들이 탄생한 것이다. 더불어 고급예술과 저급한 예술의 구별도 무의미해지게 됐다.
벤야민 식의 아우라가 없는 키치도 이제는 하나의 예술로서 떳떳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팝페라’로 대표되는 혼성장르 음악은 오늘날의 시대정신 혹은 현대인의 사유체계를 반영한 예술 형식이다. 현대인들이 다양한 삶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혼돈을 극복하고 조화로운(안정된)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가에 대한 예술적인 관찰과 대안이 바로 혼성장르의 탄생을 가져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일선에 팝페라의 요정 ‘이지’가 있다.
헨델의 오페라 아리아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는 세계적인 팝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76년에 발표한 <클래시컬 바브라>를 통해 이미 오래전에 대중들에게 친숙한 곡이 되었으며, 95년에 나온 영화 <파리넬리>에서 컴퓨터로 합성한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로 국내에서도 크게 알려진 곡이다.
제1차 십자군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는 기사 리날도와 그가 속한 기독교군의 장군의 딸인 알미레나 그리고 적군인 다마스커스의 여왕이자 마법사인 아르미다와의 삼각관계를 다룬 이야기이다. 2막에서 여주인공 알미레나가 부르는 이 아리아는 사라센의 왕 아르간테와 다마스커스의 여황 아르미다에게 납치되어 인질로 잡혀있는 알미레나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흔히 “편지 이중창, Sull' Aria”으로 알려진 곡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이 이중창으로 수잔나와 백작 부인이 함께 부르는데,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사용되어 큰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파반느는 원래 16세기와 17세기 초반에 궁정에서 크게 유행한 느리고 정적인 무곡으로, 이태리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레의 “파반느, Pavane”는 1887년에 쓰여진 관현악 소품으로, 그의 음악 가운데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특징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곡이다. 이 곡은 다음 해에 파리에서 초연 되어 대성공을 거두었고, 나중에 목가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합창으로 편곡되기도 했다.
미국인 해군 장교와 게이샤와의 사랑을 다룬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은 동양의 이국적인 풍경과 애절한 사랑을 다룬 오페라의 명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어느 갠 날, Une Bel Di Vedremo”은 핀커톤이 미국에서 새로 결혼한 사실을 모른 체 그가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언덕에 올라 항구를 바라보며 행복한 재회를 꿈꾸는 나비부인의 심정을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노래한 곡이다.
“왈리 왈리, O Waly, Waly”로 더 잘 알려진 “The Water is Wide”는 17세기 이후로 전해 내려오는 영국의 민요로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편곡되기도 했으며, 유명 성악가들과 합창단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주 불리워지는 곡이다.
쟝-팝티스트 클레망의 샹송 “체리가 익을 무렵, Le Temps des Cerises”은 이브 몽땅이나 나나 무스쿠리, 줄리에트 그레코 같은 가수들이 불러 인기를 얻었던 곡으로, 92년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삽입곡으로 사용되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나 언제까지나 체리가 익을 무렵을 사랑한다 / 그때부터 내 마음속엔 /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 /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 온다 하더라도/ 이 상처를 고칠 수는 없겠지 / 언제까지나 체리가 익을 무렵을 사랑한다 / 마음속의 그 추억과 함께"라는 벨르 에포크를 연상시키는 노랫말과 아름다운 멜로디는 프랑스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이 외에도 ‘이지’는 본 음반에서 아름다운 프랑스의 민요들도 여러 곡 불렀는데, 중세의 기사 문학인 ‘장미 이야기’를 바탕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 클레망 마로가 쓴 시에서 곡을 붙인 프랑스 민요 “Qui C'est Celluy”와 “Helas, Pourquoy Me Suis Je Mariee”, “Laisses, Parler, Lsisses Dire”가 그 곡들이다.
“셰헤라자데 환상곡, Scheherezade Fantasy”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교향적 모음곡 <셰헤라자데>의 주요 선율에 ‘이지’ 자신이 가사를 붙여 만든 곡이다. ‘셰헤라자데’는 “아라비안 나이트”로 알려진 “천일야화에” 나오는 주인공 왕비의 이름으로, 동양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천일야회에 나오는 이야기들 가운데 네 가지 이야기를 음악으로 재구성했다.
흑인 영가인 “어서 가, Steal Away”는 1831년에 노예신분으로 흑인들의 반란을 주도했던 미국의 흑인해방운동가 냇 터너와 관련된 곡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흑인영가들과 마찬가지로 노예생활의 고달픔을 종교적인 희망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곡으로, 재즈의 두거장인 찰리 헤이든(베이스)와 행크 존스(피아노)는 흑인영가와 민요 등을 재즈로 연주한 그들의 앨범 타이틀곡으로 이 곡을 사용하기도 했다.
영국의 대표적인 민요 “푸른 옷소매, Greensleeves”는 원래 금광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였다고 한다. 이 민요는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편곡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랄프 본-윌리엄스가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푸른 옷소매의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 가장 유명하다. 영화 <태양의 제국>에 중요한 음악으로 사용되어 감동을 주었고, 조성모의 ‘가시나무새’에도 삽입되었던 “수오 강, Suo Gan”은 웨일즈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자장가 선율로 애잔한 느낌을 주는 곡이다.
아일랜드 민요인 “지난 여름 날의 장미, The Last Rose of Summer”는 독일의 낭만주의 오페라 작곡가인 플로토가 자신의 오페라 <마르타>를 위해 제2막에서 주인공 마르타의 아리아로 편곡해 사용할 정도로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곡이다. 이 민요의 가사는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작곡가인 토머스 모어가 당시에 내려오던 멜로디에 자신의 시를 가사로 붙인 것인데, 다정하게 지내던 친구를 잃은 쓸쓸함을 마지막 한 떨기 장미꽃에 비유하고 있다.
[자료제공.EMI]
첫댓글 아름다운 선율과. 고운목소리에. 매료되지않으면... 예의가 아니지요..고맙습니다.
첫댓글아름다운 선율과. 고운목소리에. 매료되지않으면... 예의가 아니지요..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