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 勸酒詩文 鑑賞
高麗(고려) 睿宗(예종)과 處士(처사) 郭輿(곽여)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고려 예종(睿宗)은 여러 임금들 가운데에서 유난히 시(詩)를 좋아했다고 한다. 자주 궁궐을 떠나 자연과 벗하며 강호(江湖)의 문인(文人)들과 어울려 시를 즐기면서 처사문학(處士文學)을 염원(念願)하였는데, 특히 곽여(郭輿)라는 처사를 무척 아끼고 친애(親愛)하였다고 한다.
처사 곽여는 임금이 동궁(東宮)으로 있을 때부터 보필하여 둘 사이의 교분이 남달리 두터웠다. 예종이 왕위(王位)에 오르자 송도(松都) 동쪽 약두산의 한 봉우리를 주어 그의 거처로 정하게 하고 정자를 지어 이름을 동산재(同山齋)라 하였다. 곽여는 늘 검은 관(冠)에 흰옷으로 대궐을 왕래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궁중을 드나드는 신선(神仙)이라 하였다 한다.
예종(睿宗)의 시‘何處難忘酒’는 물론 백낙천(白樂天)의 시제(詩題)를 모방하여 지은 것이다. 자신이 보위(寶位)에 오른 후 벼슬을 그만 두고 떠난 곽여(郭輿, 1058~1130)를 찾아 동산재([同山齋]를 방문하였으나 끝내 만나지를 못하고 돌아오면서 지은 시라고 한다.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어디서 술 생각이 나는가?
尋眞不遇廻(심진불우회)
신선을 찾아갔다가 못 만나 돌아갈 때이라.
書窓明返照(서창명반조)
서실(書室) 창이 밝도록 석양이 들이비치고,
玉篆掩殘灰(옥전엄잔회) *掩-가릴 엄
옥전(玉篆) 같은 향불은 식어 남은 재에 가리었네.
方丈無人守(방장무인수) *方丈-高僧의 處所.
스님의 처소엔 지키는 이도 없었고,
仙扉盡日開(선비진일개)
신선의 집 사립문은 종일 열려 있도다.
園鶯啼老樹(원앵제노수)
동산의 꾀꼬리는 고목 위에서 우짖고,
庭鶴睡蒼笞(정학수창태)
뜰 안의 학은 검푸른 이끼 위에서 조는구나.
道味誰同話(도미수동화)
불도의 참맛을 누구 더불어 이야기할까?
先生去不來(선생거불래)
선생은 출타해서는 돌아오지 않으니 말일세.
深思生感慨(심사생감개)
깊이 사모(思慕)할수록 감개(感慨)가 일어,
回首重徘徊(회수중배회)
머리를 돌려 살피며 거듭 서성이었노라.
把筆留題壁(파필유제벽)
붓을 잡고 벽 위에다 글을 남기고,
攀欄懶下臺(반란라하대)
난간을 휘어잡고 게을리 대(臺)를 내려왔었네.
助吟多態度(조음다태도)
시흥(詩興)을 돋구어 이래저래 읊노라니,
觸處絶塵埃(촉처절진애)
눈 닿는 곳곳마다에 속진(俗塵)을 벗었도다..
暑氣蠲林下(서기견임하) *蠲-끊을 견, 밝을 견, 깨끗할 견
더운 기운은 숲 속이라 사라지고,
薰風入殿隈(훈풍입전외) *隈-낭떠러지 외, 물굽이 외
향기로운 바람이 전각(殿閣) 모퉁이로 도는구나.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이럴 때 술 한 잔 없다면,
煩慮滌何哉(번려척하재)
번거롭고 답답한 마음 무엇으로 씻을까?
何處難忘酒-郭輿
※ 위 예종의 시에 대해 곽여가 화답한 시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何處難忘酒(하처난망주)
어디서 술 생각이 나는가?
虛經寶輦廻(허경보련회)
임금님 수레가 헛되이 돌아가셨을 때이라.
朱門追少宴(주문추소연)
지체 높은 집 잔치에 갔다 오니,
丹竈落寒灰(단조낙한회) *竈-부엌 조
신선의 부엌에는 차가운 재만 떨어져 있네.
鄕飮通宵罷(향음통소파)
밤새껏 향음주(鄕飮酒) 나누고 파(罷)하자,
天門待曉開(천문대효개)
새벽녘을 기다려 대궐문이 열렸네.
杖還蓬島徑(장환봉도경)
지팡이 짚고 봉래(蓬萊) 섬 길 돌아오다가,
屐惹洛城苔(극야낙성태) *屐-나막신 극
나막신에 낙성(洛城)의 이끼를 묻혀 왔다네.
樹下靑童語(수하청동어)
나무 아래 청의동자(靑衣童子) 전하는 말이
雲間玉帝來(운간옥제래)
구름 사이로 옥황상제님이 오셨다네요.
鼇宮多寂寞(오궁다적막) *鼇-자라 오. 鼇宮-仙宮, 왕궁을 높여 부른 것임.
선궁(仙宮)의 안이 온통 쓸쓸하도록,
龍馭久徘徊(용어구배회) *馭 -말 부릴 어
임금의 수레가 오랫동안 여기 서성대었네.
有意仍抽筆(유의잉추필)
뜻이 있어 붓 뽑아 시 한 수 써 놓고,
無人獨上臺(무인독상대) 사
사람 없어 홀로 누대에 오르셨다 하네.
未能瞻日月(미능첨일월)
임금님 우러러 뵙지 못하고,
却恨向塵埃(각한향진애)
세상으로 향했던 일이 문득 한스럽도다.
搔首立階下(요수입계하)
머리를 긁적이며 계단 아래 서서,
含愁傍石隈(함수방석외)
시름을 머금고 돌굽이에 기대섰노라.
此時無一盞(차시무일잔)
이럴 때 술 한 잔 없다면,
豈慰寸心哉(기위촌심재)
이 내 작은 마음 어찌 위로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