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존성(持敬存誠)의 예(禮)로 무열사 대제를 올리다
시관(始貫)의 길을 열어주신 서흥군(瑞興君) 3世 휘(諱) 천록(天祿)공의 조부님이자 서흥 김문(瑞興金門)의 시조(始祖)이신 고려의 명장(名將) 휘(諱) 보(寶)공을 모시는 첫 제향이 종친 2백여명의 참례속 2011년 10월30일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 무열사(武烈祠)에서 지경존성(持敬存誠)의 예를 다해 엄숙히 봉행되었다.
휘(諱) 보(寶)공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드님이신 보국대안군평장사(輔國大安君平章事) 휘 은열(殷說)공의 5세손이시다. 1183년(명종13)에 탄생하셨으며 일찍이 무과(武科)에 급제하시고 32세에 관직이 금오위정용중랑장(金吾衛精勇中郞將)에 오르신 고려의 무장(武將)으로 명성을 떨치셨다. 그의 주자(冑子) 휘 덕인(德仁)공 또한 무장으로 관직이 좌우위정용장군(左右衛精勇將軍)에 오르셨다.
중랑장공(中郞將公) 휘(諱) 보(寶)의 손자이신 천록공은 1279년(원종12년)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진압작전에 출정 당시 진도작전을 지휘하던 김방경(金方慶)장군을 위기에서 구출하는 대의충절(大義忠節)의 무공을 세웠다. 또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는 려·원연합군(麗·元聯合軍)의 일본 정벌에 두차례 참전 혁혁한 무공을 세움으로써 찬성사상장군(贊成事上將軍) 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의 관직에 오르셨고 원조(元朝)에서는 충현교위관군총파(忠顯校尉管軍摠把)라는 대작(大爵)을 내렸다.
나라에 큰 공을 세우자 고려조는 천록공에 서흥군(瑞興君) 봉작(封爵)을 내렸다. 천록공은 그러나 자신이 시조가 되심을 송구히 여겨 역시 명장으로 이름을 떨친 조부 보(寶)공을 시조로 모시게 되었으니 시조 삼대(三代)가 무장(武將)의 가문에서 문무제예(文武諸禮)를 익히신 분들이다. 후손들은 이로부터 본관(本貫)을 「서흥(瑞興)」으로 하게 되었다.
서흥 김문 각파 중 제일 맏집인 경기파 후손들은 매년 음력10월 첫째 일요일 서흥군 휘 천록공의 영정(影幀)을 모신 무열사(武烈祠)에서 제향을 모셔왔다. 중랑장공 휘 보 시조님과 정용장군 휘 덕인 2세 선조님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일이 그동안 재정문제 등으로 엄두도 못 내고 난관에 봉착해 있던 중 대동보편찬사업이 추진되면서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안성종친회가 대동보 편찬 수익금의 일부를 배정받아 시조 봉안을 결정하고 선조님 세분의 위패를 무열사에 봉안하여 신묘년 첫 대제를 올리게 된 것이다.
무열사 대제에 앞서 9월25일에는 시조 봉안 고유례(始祖 奉安 告由禮)도 올렸다. 익(瀷) 고문, 석목(錫穆) 자문위원, 석창(錫彰) 종무이사 등 경기파 후손들은 고유례에서 대제 봉향(奉享)에 이르기까지 소홀함이 없도록 첫 제례의식에 열과 성을 한데 모았다. 특히 서예인 창동 부회장은 보물처럼 아끼는 붓을 꺼내 시조할아버지를 모신 위패에 혼을 담았다.
2011년 9월25일 고유례에는 초헌관(初獻官) 기환(基煥) 경기파 종손, 아헌관(亞獻官) 희국(熙國) (株)서흥International 대표이사, 종헌관(終獻官) 희덕(熙德) 영남계파 종손, 진설(陳設) 희문(熙文 字 熊) 광양종친회장, 집례(執禮) 석창(錫彰) 종무이사, 축관(祝官) 창수(昌洙) 자문위원, 봉향(奉享) 연규(年奎 판서공파) 종원, 봉로(奉爐) 희창(熙昌) 총무이사, 사준(司尊) 각수(珏洙) 안성종친회장, 봉작(奉爵) 동수(東洙 숙천파) 이사, 전작(奠爵) 규윤(奎潤) 초계파종친회장, 찬인(贊人) 귀영(貴泳) 이사, 찬창(贊唱) 화섭(華燮) 영광종친회장이 맡았다.
2011년 10월30일 첫 대제는 경기와 영남, 호남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서흥인 200여명이 참례한 가운데 석창(錫彰) 종무이사의 집례(執禮) 의식으로 시작되었다. 삼헌관에는 초헌관(初獻官) 기환(基煥) 경기파 종손, 아헌관(亞獻官) 성주(成珠) 대종회 회장, 종헌관(終獻官) 후식(厚埴) 부산종친회 고문이 맡았고 집사 등 제관에 진설(陳設) 예섭(禮燮) 영광종친회 총무, 축관(祝官) 희덕(熙德) 영남계파 종손, 봉향(奉香) 재중(在中 호남파) 종원, 봉로(奉爐) 안식(安埴) 부회장, 사준(司尊) 동헌(東憲 숙천파) 종원, 봉작(奉爵) 희창(熙昌) 조직이사, 존작(尊爵) 관식(官埴) 이사, 찬인(贊引) 병국(炳國) 사무차장·재경서흥회장, 찬창(贊唱) 화섭(華燮) 영광종친회장이 맡았다.
영남장파 백용(栢容) 차종손, 영남계파 희덕(熙德) 종손, 진안파 모수(模洙) 종손 등 각종파 종손들도 대제에 참례 극진히 예를 올렸고, 서울에서 성주(成株) 대종회장, 영식(英埴) 상임부회장, 창동(昌東) 부회장 내외, 철식(喆埴) 사무총장 내외, 병하(秉夏)재무이사 내외 등 재경서흥회 회원이 중심이 되어 전세버스편으로 서울 양재동을 출발 안성으로 이동했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장으로 봉직하며 한 때 안성과 연고를 맺은 희옥(熙玉 동국대총장) 부회장은 도착 즉시 사당으로 바로 올라가 두손 모아 배례의 예를 올렸다. 서흥김씨친목회를 만드는 등 문중종사(門中宗事)에 큰 족적을 남기신 해운(海雲) 현선(鉉善) 선생의 자제분 윤호(潤浩) 종원은 사진작가로 변신, 무열사(1면 사진참조)를 카메라에 담아 대종회카페에 올렸다. 한국화가 옥농(沃儂) 창식(昌埴) 화백은 스케치북을 꺼내 펜화로 무열사의 모습을 담았다.
재경서흥회는 효영(孝永) 부회장, 희곤(熙坤) 자문위원, 동수(東壽) 자문위원, 춘식(春埴) 전례이사, 은식(殷埴) 총무이사, 태갑(兌甲) 사업이사, 기후(基後) 홍보이사, 성용(聖容) 이사, 쾌식(快埴) 이사 등 회원 36명이 참례했다. 석목(錫穆) 자문위원, 석록(錫祿) 종원 등 경기파 회원들은 전날 안성에 도착하여 대제 준비를 도왔다.
부산종친회는 영육(榮六) 회장, 후식(厚埴) 고문, 태환(兌桓) 고문, 희삼(熙三) 고문, 형식(炯埴) 부회장, 광번(光繁) 부회장, 복득(福得) 부회장, 대식(大埴) 부회장, 태수(兌壽) 부회장, 희문(熙文) 부회장, 칠식(七埴) 부회장, 태면(兌勉) 사무국장, 수식(水埴) 청장년회장 등 32명이 전세버스편으로 안성에 도착해 참례의 예를 올렸다.
대구경북종친회는 맹동(孟東) 회장, 백용 차종손 등 열 분의 종친이 참례했고, 호남종친회는 대식(大埴) 고문 등 일곱 분의 종친이, 진안전북종친회는 명석(明錫) 고문, 창현(昌鉉) 회장 등 일곱 분, 그밖에 창녕종친회와 해남종친회, 판서공파와 계파, 숙천파 종원 등 2백여 분의 종친들이 참례하여 선조님의 유덕과 훈업을 기렸다.
헌성금을 내주신 분들이다. 9월25일 고유례 : 희국이사 2십만원, 10월30일 대제 : 대종회(성주 회장) 3십만원, 영식 상임부회장 2십만원, 희옥 동국대총장 2십만원, 부산종친회(영육 회장) 1십만원, 대구경북종친회(맹동 회장) 1십만원, 숙천파종친회(계방 회장) 1십만원, 호남종친회(희술 회장) 2십만원, 진안전북종친회(창현 회장) 1십만원, 해남종친회 1십만원, 태갑 사업이사 1십만원, 효영 효성한의원장 1십만원, 동수 자문위원 5만원, 춘천거주 김 황 5만원, 철식 안성 종원 2만원, 희국 이사 수건 300매 협찬, 창동 부회장 서예1점.■
《서흥김씨대종보 제59호|2012.1.23.(壬辰年 正月一日)》
첫댓글 무열사 대제에 사진활영을 하신 종원님들께 부탁의 말씀드립니다.
제가 찍은 사진만으로는 무열사 대제를 알리기에는 부족한 듯 싶습니다.
10.30제례의식과 스케치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대종보편집주간 메일이나 카페에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열사 참례 수고하셨습니다. 모두들 귀향 잘 하셨겠지요.
대부님!! 이번 무열사 대제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진은 정리하는데로 카페앨범방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무열사대제에다녀오신모든종원님수고하셨고 11월달시작입니다건강한달되세요~~
기후대부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흥인의 자랑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