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인 1991년 2월 22일, 안성초등학교 교사가 불탄 직후 지붕이 내려앉아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상태를 찍은 사진이다. 지금의 정문 인근에 신축된 강당 자리에 터를 잡았던 교사였으나, 실화로 불길에 휩싸인 후 철거되고 말았다.
현재의 본관은 그 이후 건축된 것이다. 자세히 보면 출입구 앞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데, 아마도 학교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서 찾아온 인근의 주민인 것 같다.
안성초등학교는 쇠락을 거듭하던 대한제국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거리던 광무(光武) 6년(1902년)에 당시 안성 주민들이 희사한 기부금을 재원으로 하여 개교하였다. 2년 후인 1904년 공립으로 전환된 안성소학교는 다시 2년이 지난 후에 이름도 안성공립보통학교로 바뀌고, 국권을 상실한 후 방치되었던 인근의 객사(白城館) 건물을 보수하여 교사로 활용함으로써 명실공히 근대적 대중교육 기관으로 거듭 태어났다.
정식 교사(校舍)도 없이 민가를 매입하여 시작한 안성소학교 초창기에는 학생수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이 사진이 촬영된 1920년대 초반 들어 교육의 수요가 크게 신장되었다. 당시 안성교육의 일선에서 활동하였던 김태영 선생이 생생히 전하고 있는 것처럼, 1920년대 초반에는 "향학열이 극도로 팽창하야 입학지원자가 정원의 5배에 달"할 지경이었고, 1925년에 이르러서는 학급수 13학급에 재학생수도 800명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히 새로운 건물을 지어 부족한 교실들을 충당하기도 했다.
현재 보개면 신양복리로 이건(移建)된 안성객사 백성관(白城館)의 원래 위치는 현재의 안성초등학교였다. 이 객사는 나중(1931년 경)에 명륜여중으로 옮겨졌다가 1995∼6년 현재의 터에 안치되었다.
안성에 최초로 설립된 근대식 학교인 안성초등학교는 일본인의 교육을 위해 일본인들이 1909년에 안성에 설립하였던 안성공립심상고등소학교(安城公立尋常高等小學敎, 후일 안성심상소학교)에 맞서 한국의 어린이들을 교육한 안성의 유서 깊은 교육기관임은 새삼 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