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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변황야망(邊荒野望)의 부활(復活)
변황(邊荒)!
대륙의 밖을 일컬음이었다.
고래(古來)로 중원대륙은 초인(超人)들의 전설지(傳說地)였고,
변황(邊荒)은 신비로운 신화지(神話地)로 불리우고 있었다.
변황에 내려오는 수천, 수만 가지의 신비로운 신화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신비로운 신화 하나가 변황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오직, 이름만이 알려져 있었을 뿐
모든 것을 신비의 장막에 가리운 채 드러내지 않은 변화최후의 신비지,
<태양천(太陽天).>
태양의 하늘!
그렇게만 불리우는 이름이 전해져 내려왔다.
대막(大漠),
저 가이없는 대사막을 건너,
열 개의 죽음의 용권풍역(龍拳風域)을 지나야 당도할 수 있다는
태양의 신화지!
변황인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단지 하나는 변황무도계의 시조신이라 일컫는
변황유일신(邊荒唯一神)의 탄생신화가
그곳에서 이어졌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사막을 떠도는 신기루(蜃氣樓)와도 같은 불가해(不可解)의 신화였다.
태양천!
그것은 과연 영원(永遠)히 깨지지 않을 불파(不破)의 신화인가?
콰콰콰콰!
콰우우우우웅!
바람(風)!
시원함을 넘어 살인적인 대강풍이 대지를 휘몰아친다.
콰--드득!
거치는 모든 것은 산산이 으깨어져 분말(粉末)로 화(化)해 버린다.
콰우우우웅!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휘돌며 허공 일천장(一千丈)을 치솟아 오른다.
용권풍(龍拳風)!
일명(一名), 지옥(地獄)의 돌개바람이라 일컫는 죽음의 모래바람(砂風)이
저 가이없는 대사막 전역을 굉렬하게 휘도는 것이었다.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만 근의 거암(巨岩)조차 그대로 박살나 먼지로 화해 흩날리고마는
공포적인 살인강풍지대(殺人强風地帶)!
<등격리사막(騰格里沙漠).>
그렇게 불리우는 대막제일의 대사막은 동격리사막 내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해 있었다.
죽음의 흑선대강풍역(黑旋大强風域)!
인간은 물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지옥의 흑풍지대(黑風地帶)는
그 넓이가 얼마인지 그 내부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는지조차
아는 사람은 전무(全無)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 한 명의 인간도 들어갔다 하면 아무도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불귀지옥(不歸地獄)!
한 번 들어서면 시신(屍身)은 물론
그 영혼(靈魂)마저 산산이 으깨어 버리고 마는
공포(恐怖)의 사역(死域)이 흑선대강풍역이었다.
콰콰콰콰콰!
콰우우웅!
대기마저 휘말아 버려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의
굉폭한 죽음의 흑사선풍(黑砂旋風)이 휘몰아친다.
묵묵히 입술을 꽉 다문 채 우뚝 서 있는 사인(四人)이 있었다.
돌부처가 아닌, 분명한 인간이었다.
삼남일녀(三男一女)였다.
츠츠츠츠!
쿠우우!
보라!
대지(大地)마저 갉아 천중(天中)으로 날려 버릴 공포적인 죽음의 용권풍마저
사 인의 십 장 근역으로는 아예 접근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파파파팟!
시퍼런 불똥을 퉁겨 내며 오연히 대지를 밟고 선 사 인의 시선은
한 곳으로 모아져 있었다.
능히, 기도만으로도
범인(凡人)이라면 압사(壓死)할 정도로 가공할 풍도를 지닌 인물들이었다.
성별(性別)이나 그들의 나이도 다르나 그들 사 인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절대종사(絶代宗師)의 위엄!
바로 그것이었다.
만일, 이런 인물들이 무림천하에 열(十)이 있다면
그대로 피의 폭풍우 속으로 휘말아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그들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기도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츠으으!
선두의 백의중년인의 전신에서 폭출되는 번갯불 같은 예기는
닿는 모든 것을 단번에 수백만 조각으로 분참(分斬)할 듯 날카로운 것이었다.
그의 움직임은 볼 수도 없었지만 유리(琉璃)와도 같이 투명한 은검(銀劒)을
소중하게 두 손으로 안고 있는 그의 자세는
바늘 끝이라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수호검강(守護劒剛)을 이루고 있었다.
초극검예인(超極劒銳人)!
그는 능히 검도의 초극지경에 다다른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맞은편,
파스스…!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의 십 장 근역의 대지는 진흙바람처럼 질퍽하게 녹아 있는 것이 아닌가?
녹인(綠人)!
걸치고 있는 옷도 짙푸른 녹의(綠衣)였고,
어깨까지 덮은 산발한 머리결 또한 녹발(綠髮)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하얗고 까만 인간의 눈빛도 없었다.
츠으으!
일 장의 길이로 폭사되는 섬뜩한 녹광을 폭출시키는 녹안(綠眼)을 지니고 있으며,
피부조차도 녹색으로 빛나는 녹령괴인(綠靈怪人)이었다.
독(毒)!
녹령괴인의 전신에 서린 기운은 바로 가공할 독강기였던 것이다.
저 공포스러울 정도의 흑사용권풍마저 녹아 버리는
미증유의 독기류(毒氣流)를 폭출시키는 절대독종독인(絶代毒宗毒人)!
그의 좌측,
백색일색(白色一色)의 여인이었다
. 머리카락과 피부, 검은자위가 있어야 할 동공(瞳孔)마저도
섬뜩한 백안(白眼)의 여인이었는데…
쩌쩌쩌쩡!
보았는가?
그녀 주변의 땅덩어리가 얼어붙어 거북의 등껍질인 양 갈라지고 있었다.
그 위로,
스스스…!
새하얗게 쌓이는 서리들은 급속이 대지를 냉각시켜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좌측,
나이를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주름진 노안(老顔)을 지닌
혈가사(血袈裟)를 걸친 승인이었다.
허나, 그에게서 풍겨지는 기운은 성불(聖佛)과는 거리가 먼
대악(大惡)의 사기(邪氣)가 물씬 배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악불(惡佛)!
그렇게 불리워야 할 섬뜩한 사승(邪僧)!
전율적인 악불마기류(惡佛魔流氣)를 흘리고 있는 그의 반쯤 감긴 눈가로는
어울리지 않게 색정(色情)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누구라도 그 눈을 본다면…
특히, 여인이라면 그 대로 혼령(魂靈)을 빼앗겨 버릴만큼
사념(邪念)의 극한기가 서려 있는 눈이었다.
능히, 일문의 지존기도를 지닌 이들이 어찌 이 대사막의 인적 끊긴 오지에 서 있는가?
그들의 공통된 시선의 끝.
콰우우우웅!
여전히 허공 일천 장을 치솟으며 광란하는 죽음의 사풍이 휘몰아치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제왕검혼(帝王劒魂)을 지닌 인물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한 점의 감정도 실리지 않은 무심음이 새어나왔다.
"변황(邊荒)은 지난 일천년간(一千年間) 네 번의 대륙도전(大陸挑戰)을 감행했다!"
여인은 북빙(北氷)의 한풍(寒風)이 불 듯한 냉음(冷音)으로 사내의 말을 받았다.
"네 번 모조리 깨졌어요! 철저하게…"
한을 짓씹듯 여인은 뱉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허나, 이제 우리가 힘을 합한 다음에야 누가 감히 우리를 막을 수 있겠는가?"
쩌르릉!
광풍의 대기를 뚫고 울려 퍼지는 범종(梵鐘)이 울리는 듯한 웅후한 목소리가 있었다.
녹령독인이었다.
그에 뒤이어, 반쯤 감긴 눈까풀을 떨며 혈가사의 악불마승이 입을 열었다.
"악불타불! 우리 패천사상혈세(覇天四象血勢)의 모든 것을 잇고,
변황최후의 신화인 태양의 하늘을 얻는 진정한 변황지존후(邊皇至尊后)가 탄생된다면…"
격동하는가?
부르르르!
벅차오르는 희열을 감당할 수 없는 듯 악불마승의 눈썹은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슨 소린가?
<패천사상혈세(覇天四象血勢).>
동(東)--제왕검도(帝王劒道)!
서(西)--악마사원(惡魔寺院)!
남(南)--남황독왕전(南荒毒王殿)!
북(北)--북천설빙국(北天雪氷國)!
천외(天外)의 공포혈세(恐怖血勢)!
변황무림계를 사분(四分)한 채,
각각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군림해 왔던 변황의 사대패천세력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들은 서로 한 번씩은 대륙 군림의 야망을 가졌었던 세력이었다.
아울러, 처절한 패배의 아픔을 안았던 숙명적인 변황의 공존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말하는 의미는 실로 공포스러울 정도로 경악할 현실이었다.
패천사상혈세의 통합(統合)!
그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로 실현된 것이 아닌가?
"후후! 대륙정복(大陸征服)이라는 최후(最後)의 야망(野望)을 위해
우리의 개인적인 야망을 포기한 것은 잘한 일이외다!"
제왕검도주 제천검왕(帝天劒王)은 예의 무심한 어조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요. 초인기재(超人奇才)를 공동발굴하고 우리의 모든 것!
군림의 야망과 변황인의 한(恨)도 모두 풀 수 있는 변황의 유일지존(唯一至尊)을
우리가 탄생시킨다는 것보다 더 크나큰 기쁨은 없어요!"
북빙(北氷)의 여왕이었다.
--북천설빙국주(北天雪氷國主) 북천여제후(北天女帝后) 빙설연(氷雪燕)!
그녀의 옥용엔 따스한 기운이 피어 올라 있었다.
"클클! 고 계집아이가 나오면 대륙의 놈팽이들은 모조리 녹여 버려 줘야지!"
녹령독인의 이름도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남황독왕전주(南荒毒王殿主) 독종천황(毒宗天皇) 흑사룡(黑邪龍)!
지상최강의 독종독인이라는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흡사, 딸을 바라보는 부친의 눈길과고 같은 따스함이 서린 녹안(綠眼)으로
그는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소림사를 부수고 숭산에 악불혈신상(惡佛血神像)을 세울 날도 멀지 않았도다!"
웃는다.
악마사원주 악불대종사(惡不大宗師)!
중원제일악(中原第一嶽)에 악불혈신상을 세우는 것을
평생(平生)의 염원(念願)으로 불태워 온
천축불계(天竺佛界)의 유일신(唯一神)이라는
그의 입가로도 만족한 웃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변황사천황(邊荒邪天皇)이라 통칭되는 사 인의 절대종사(絶代宗師)들은
오직 일념의 간절한 시선으로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콰콰콰콰!
콰우우우웅…!
천지는 암흑 속에 갇혀 미친 듯한 죽음의 용권풍 속에 신음하며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한데, 어느 한 순간,
쩌쩌쩍!
갈라지고 있었다.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다는 흑선대강풍이
허공 일천 장 위로부터 반쪽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화르르르…!
칼로 벤 듯한 광풍(狂風)의 소용돌이 속에서 폭발(爆發)해 오르는
저 미증유의 지옥겁화(地獄劫火)의 기운은
천지간의 모든 것을 태워 잿가루로 만들어 버릴 듯이 굉렬한 것이었다.
그런 지옥겁화(地獄劫火)의 중앙엔 구층(九層) 구십장(九十丈)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거탑(巨塔)이 웅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고오오오…!
태양이 대지 위에 떠 있는가?
구층의 화탑(火塔)에서는 가공할 태양광휘(太陽光輝)가
일만장(一萬丈)을 뻗어오르고 있었다.
"오오… 드디어!"
"태양의 하늘이 열렸도다."
"이제야 탄생되는가? 변황지존후(邊荒至尊后)인 태양여왕(太陽女王)이!"
"태양의 성탑(聖塔)이여!"
변황사천왕은 격동에 몸을 떨었다.
치지직!
그 굉렬한 지옥의 태양화기류(太陽火氣流)에
의복(衣服)과 모발(毛髮)이 타오름도 잊은 채
그들은 치밀어 오르는 환희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비비비빙!
구층의 태양화탑(太陽火塔)에서 기이한 소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쩌쩌억!
거대한 탑신(塔身)이 거미줄같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앙!
태양(太陽)의 폭발(爆發)!
고오오오…!
삽시간에 방원 일백 이내는 태양의 광휘에 휩싸이고,
대지는 모든 빛을 잃고 말았다.
태양천하(太陽天下)!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한데,
그 작렬하는 태양화(太陽火)의 중심으로부터 일어나는 기사(奇事)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둥실…!
태양의 화기를 계단 삼아 밟으며 하나의 인영이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인간일 수 있겠는가?
화르르르…!
불길이 타오르는 화관(火冠)같은 화염 투구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다.
쩌쩌쩌… 쩡!
새파란 불꽃을 퉁기는 일장(一丈)에 달하는 거대한 화창(火槍)을 비껴든 채
나타난 인영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습이 드러나는 인영의 가슴에 걸쳐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하(盛夏)에 폭발하는 태양(太陽)을 보는 듯 부풀어 있는 두 개의 육봉(肉峯)엔
곧이라도 불길을 내뿜으며 등천할 듯한 화룡(火龍)의 문신(文身)이 둘러져 있을 뿐이었다.
그것으로 보아 정체가 여인(女人)임이 틀림없었다.
여인의 가슴만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인의 하체(下體)는 또 어떤가?
천주(天柱)를 보듯 육중한 여인의 허벅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허벅지의 사이엔 한 올의 터럭(毛)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단지, 팽팽하게 조여진 하복부의 끝으로 새겨져 있는 화룡문신(火龍文身)의 꼬리가
간신히 여인의 비처를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도톰하게 올라 있는 살덩이의 사이로는 균열이 나 있었고,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것은 석류처럼 벌어져
내밀한 붉은 속살을 언뜻언뜻 내비치고 있었다.
환상적인 미체(美體)!
태양의 여왕과도 같은 여인이었다.
한데 어느 한 순간,
화르르르…
여인의 비처를 휘감고 있던 화룡의 문신에서
시뻘건 화염의 불꽃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그것은 그대로 한 마리 화룡이 또아리를 튼 듯, 여인의 가슴과 하복부,
그 끝의 삼각비역(三角秘域)을 가리워 주고 있었다.
스윽!
여인은 우수(右手)에 들린 화창(火槍)을 치켜 올렸다.
쩌쩌쩡!
일만 개의 화탄이 폭발하듯 굉렬한 화기(火氣)가
여인의 화안(火眼)에서 폭출되었다.
"나, 태양의 여왕이 탄생했으니 변황은 곧 태양의 성지가 되리라!"
우우웅…! .
해일이 밀려들 듯, 거대한 화염의 불꽃이 대기를 불태우며 퍼져 나갔다.
"천년풍! 그 무적철혈의 바람이 사라진 대륙은 무너지리라!
오직, 천 년의 바람만이 나를 막으리라! 그것일지라도 깨어질 것이지만…"
단언하고 있었다.
변황지존후(邊荒至尊后) 태양여왕(太陽女王)!
대륙이여 아는가?
변황의 오지(奧地) 속에서 수천 년을 잠 속에 빠져 있던
변황최후의 신화가 깨어졌음을…
태양의 신화!
변황의 힘과 태양의 천위(天威)를 지니고 탄생된 변황지존후 태양여왕!
변황은 급변하고 있었다.
그 결말은 어찌 될 것인지…?
태원(太原).
산서(山西)와 하북(河北)의 접경지에 있는 조그마한 성읍(城邑)의 이름이었다.
뚜렷한 특징도 없었다.
그래서 세인들에겐 별로 이목을 끌지 못하는 평범한 지대였다.
단지, 태원성의 외곽엔 하나의 장관(壯觀)이 펼쳐져 있었다.
죽림(竹林)!
수천 년을 단 한 번의 베어짐도 없이
그 무성한 잎을 뻗쳐 오른 엄청난 대나무의 밀림지대(密林地帶)였다.
굵기는 통나무만큼 두껍고,
그 길이는 천년거목(千年巨木)만큼이나 솟아 있는 엄청난 대나무 숲이었다.
그 하나 하나의 단단함은 보검이라도 자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런 대나무 군단이 태원성의 북방(北方) 일백리(一百里)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청하림(靑霞林)>
그곳을 태원성민들은 그렇게 불렀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계(四季)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푸르른 노을이 깔려 있는 죽림이었다.
아울러, 세인들은 청하림을 신역(神域)으로 여기고 침습하기를 꺼려했다
. 한 번 들어선다면 그 끝없는 죽림의 미로(迷路)에서 헤매다가 죽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청하림은 천년(千年)을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알지 못하리라
. 태원이라는 지명(地名)이 정착되기 수천 년 전,
이곳엔 잊혀질 수 없는 전설의 이름이 깔려 있었다.
인간의 이름을 가졌으되 인간일 수 없는 절대의 초극천인(超極天人)이
하늘의 패권을 놓고 쟁패(爭覇)했던 곳인 것이다.
<탁록(倬鹿)>
아는가?
그 이름을…
중화대륙(中華大陸)의 천인신화(天人神話)중 가장 위대한 천인(天人)인 황제(黃帝)는
가장 지혜로왔으며 초유(初有)로 문명(文名)을 대륙에 심었던 대철인(大哲人)이었다.
그와 동시대(同時代)에 존재(存在)했던 또 한 명의 천인이 있었다.
공룡의 파천황력(破天荒力)을 지녔던 패신(覇神)인 치우(蚩尤)!
황제와 치우는 운명적으로 부딪쳐야 했다.
<탁록대전(倬鹿大戰)>
그 초유의 천인격투장(天人激鬪場)이 되었던 곳이 바로 탁록이었던 것이다.
결국, 하늘이 뒤집히고 대지가 함몰하는 대격돌(大激突)이 벌어졌다.
최후의 승자(勝者)는 황제(黃帝)였다.
그리하여, 황제는 차후에 그 이름을 남겼고,
치우는 패자(敗者)로서 치욕적인 오명(汚名)만을 떨구고 갔을 뿐이었다.
황제는 그 기념으로 탁록에 천령자죽(天靈紫竹)을 심었다는
전설이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이 청하림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 누구도 그 천령자죽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기에…
대륙역사에서 사라진 신화의 대지--탁록!
과연, 그 신화는 단지 옛이야기였을 뿐인가?
모를 일이었다.
"황제가 치우를 영원히 사멸시키려 천라금쇄천죽대진(天羅禁碎天竹大陣)을
탁록에 펼쳐 놓은 줄은 아무도 모르리라!"
한 소리 낭랑하면서도 청량한 음성이 죽림을 울렸다.
사박… 사박…!
죽엽(竹葉)을 밟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미청년이 있었다.
화르르르…!
단정히 백건(白巾)으로 묶어 뒤로 넘긴 수발(首髮)은 야풍(夜風)에 흩날리고 있었다.
언뜻 내비치는 용모는 기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귀밑까지 뻗어 내린 은광(銀光)마저 반짝이는 백미(白眉)의 아래엔
현천(玄天)의 모든 은하수가 응축된 듯 빛나는 성목(星目)이 있었다.
우주(宇宙)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모조리 쓸어 담은
현기(玄氣)마저 서린 눈망울을 지녔고,
여인보다 더 고운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삿빛 붉은 입술은 그 누구라도 입맞추고 싶어할 정도로 황홀했다.
한 마디로 환상적인 선계(仙界)의 미남이었다.
천세잠룡 하후미린!
바로 그가 아닌가?
절대황역(絶代皇域)인 자금성에서 자금쌍미후라는 황실제일쌍미(皇室第一雙美)를
자신의 것으로 취해 버린 천세기남아(千世奇男兒)!
헌데, 그가 휘적휘적 걷는 이곳은 청하림이 아닌가?
짙푸른 청죽의 바다엔 사방 어디를 돌아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직 대나무의 숲뿐이었다.
한데, 그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도 목숨을 도외시한 지옥에로의 입문이 아닌가?
그는 분명히 말했다.
<천라금쇄천죽대진(天羅禁碎天竹大陣)>
아는가?
만년(萬年)을 산다는 만년자령천죽(萬年紫靈天竹)으로만 펼칠 수 있다는
신화 속의 대사진(大死陣)이 바로 그것이었다.
만년자령천죽 두 그루를 심으면 무수한 잔가지를 뻗어
천세(千世) 후엔 그 가공할 진세(陣勢)로 하늘마저 가둬 버리고 말았다.
그것으로 이루어진 진세는 해진법(解陣法)이 있을 수 없었다.
오직, 하늘의 기운을 읽을 수 있는 철인(哲人)만이 영감(靈感)으로 길을 갈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은 자가 이곳으로 진입해 든다면 설사, 영혼일지라도 분쇄되어 영원히 갇히고 만다.
그런데, 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천계(天界)의 선인(仙人)인 듯한 인물인 하후미린은
마치 제 집의 정원을 산책하듯 유유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득,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뚝!
그는 이제 막 피어오른 죽엽(竹葉) 하나를 꺾어 입에 물었다.
"천하가 어지러워지고 있다."
츠으…!
유현한 그의 동공으로 한 줄기 기광이 스쳐가고 있었다.
"아직은 암중에 숨어 있으나 천하는 지옥겁풍이 휘몰아치기 직전에 놓인 상태다."
그는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십 장을 뻗어 올라 있는 짙푸른 청죽의 사이로는
그것만큼이나 창창(蒼蒼)한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내게 무공을 펼칠 힘만 있다면…"
꽈악!
하후미린은 입술을 피가 배이도록 짓씹었다.
음울하게 가라앉는 동공으로 투영되는 안타까움의 빛…
"하늘마저 뒤집을 자신이 있다! 허나…"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힘(力)!
내 본연이 힘만으론 겨우 대륙만을 감당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육합(六合)을 다스릴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뿐이지."
하후미린은 음울한 시선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무(武)!
그것이 무엇이기에 나 하후미린을 좌절케 하는가?
머리만으론 천하경략(天下經略)이 무리인가?"
지그시 이를 깨무는 하후미린이었다.
붉은 입술가로 맺히는 선명한 이빨자국은
자신의 무력(無力)함에 대한 반증(反證)인 듯했다.
그랬는가?
자금성에서 그는 무풍(無風)의 절대적인 힘을 보여 주었었다.
허나, 그것은 그의 초인적인 지혜와 가공할 수호암기(守護暗器)인
공룡혈각으로써 이룩한 것일 뿐이었다.
<무(武)>
하후미린은 단 일 푼의 무공도 펼치지 못하는 범인(凡人)과 다름이 없는
평범한 신체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공룡혈각만으로도 일류(一流)의 무인(武人)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슥…!
하후미린은 천천히 자신의 쌍수(上手)를 들어 올렸다.
강인한 힘이 넘쳐 흘렀으나 그 부드러운 피부는 여인의 속살보다도 고왔다.
손톱은 붉었다.
핏물에 담그었다 꺼낸 듯 붉은 적광(赤光)을 발하는 열 개의 혈조(血爪)!
공룡혈각!
닿는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공룡의 파천황력을 지닌 기병(奇兵)이 그것이었다.
공룡제왕(恐龍帝王)인 치우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신화 속의 천병(天兵)인 공룡혈각은
인간이면 누구나 지닌 우주오행기(宇宙五行氣)의 잠재력(潛在力)을 격발(激發)시켜
발출시키는 공룡의 발톱을 일컬음이었다.
허나, 내공력이 없는 사람의 폭발력(爆發力)은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하늘을 뒤엎으려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초인(超人)이라 불리우는
절대천인(絶對天人)에게는 위협만을 줄 수 있을 뿐이었다.
하후미린의 그의 고민은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무공을 펼칠 수 없다는 것…
머리로는 천하를 능히 뒤집을 수 있으나, 그것에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임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 하늘은 그대로 있어도 하늘이다!"
창궁(蒼穹)…
한 점의 티끌조차 없는 창창한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다.
"삼라만상이 다 하늘 아래 있고 하늘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허나…"
문득, 하후미린의 동공이 가볍게 흔들렸다.
"하늘이 있으려면 대지가 있고
, 또 만상(萬象)의 생물(生物)이 있어야 하는 법!
모든 것이 없다면 하늘은 더 이상 하늘이 될 수 없다!"
사박! 사박…!
하후미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떨어져 시든 죽엽은 비명을 토하고…
"대지가 가물면 비를 주고, 홍수가 인다면 태양의 화력으로 거두고
꽃이 필 때면 바람을 주는 것! 그것이 하늘의 본질이거늘…"
츠으…!
하후미린의 시선에서 뻗어 오르는 유현한 기운은 공허하기조차 했다.
우주조차 담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이를 지니고 있는 그릇이었지만
그 재질이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하후미린은 힘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 하후미린은 하늘이 되려 한다.
하늘이 날 내렸고, 난 그 하늘이 되어야 할 운명을 타고났다.
필사(必死)의 운명에서 범인(凡人)이 되었다.
이제는 하늘의 운명(運命)을 받을 차례다.
날 살리려 일천종(一千種)의 영물(靈物)이 죽어갔고,
날 살리려 일천 종의 독물(毒物)이 사라졌다.
그것뿐이라면 아까울 것도 없을 것이다
. 내가 하늘이 되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소진(消盡)되는 기(氣)를 살리려 일천 명의 정기(精氣)가 소멸되었고.
그 폭발하는 열화지기(熱火之氣)를 잠재우려
백팔미녀(百八美女)가 순음지정(純陰之精)을 잃고 말았다.
--하늘이 날 탄생시켰고, 대지가 날 키웠다.
만상이 피를 주었고, 인간이 내게 인생을 주었도다!
--이 한 목숨으로 지옥겁화를 잠재울 수 있다면 그 무엇이 두려우랴?
"나는 지금이 좋다!"
빙그레…
하후미린은 저 창궁같이 맑은 미소를 떠올렸다.
"아침에 일어나 대죽으로 피리를 불고…"
뚝!
하후미린은 죽엽을 끊어 입가에 물었다.
"점심엔 죽순(竹筍) 요리를 먹고
밤엔 백팔첩(百八妾)과 더불어 운우의 낙(雲雨之樂)을 즐기니
어찌 황제(皇帝)인들 부러우랴? 하지만…"
하후미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상선약수(上善藥水)라…"
저미는 듯 새어나오는 음성이었다.
<상선약수>
최고의 지선(至善)은 곧 흐르는 물과 같다.
도가(道家)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설파한 도(道)의 원리가 되는 말을
하후미린은 되뇌이고 있는 것이었다.
"최선은 곧 흐르는 물과 같으니…"
하후미린은 힘없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모든 인간이 하늘이 되고자 위로만 오르려 한다!"
그는 허허로운 시선으로 창천을 올려보며 독백했다.
"물(水)은 만물(萬物)을 뒤덮고 생성(生成)시키되 아래로 흐른다.
나 하후미린! 하늘이고자 하여 아래로 흐르는 물이 되리라!"
츠츠츠…!
크다!
이 순간,
하후미린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은 저 무궁한 대창천(大蒼天)이었고,
가이없는 망망(茫茫)한 대해(大海)와도 같았다.
들었는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도(道)!
극락(極樂)이 옆에 있거늘
스스로의 몸을 던져 고해(苦海)의 늪 속에 빠뜨리려는 자가 지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있었던 것이다.
"이제 황실(皇室)을 장악하려는 위인들의 야망이 내게 이어지리라!"
하후미린의 미안은 굳게 굳어지고 있었다.
"천림이 청하림임을 알게 될 것이고, 야망의 불나방들이 밀려들 것이다! 그리고…"
츠으으…!
하후미린에게서 번져오르는 광휘는 무도와는 상관 없는 천인지광(天人之光)이었다.
"천림은 침묵할 것이고 나 천세잠룡을 취하려는 자들이 기연(奇緣)을 베풀 것이다!"
이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하후미린은 스스로의 뛰어남을 보이게 하여
천하의 야망화(野望火)를 지닌 효웅(梟雄)들을 끌어 모으려 한 것이란 말인가?
보이고 있었다.
하늘마저 투명(透明)하게 꿰뚫어 볼
대철인(大哲人)의 눈에 서려 있는 기색은 확신(確信)의 빛이었으니…
일다경(一茶更)이나 흘렀을까?
문득,
빙그레…
하후미린의 입가로 미소가 번져오르기 시작했다.
예의 장난스럽고 고집마저 서린 악동의 미소였다.
"후훗! 탁록삼미후(倬鹿三美后)! 오늘쯤은 완전히 익었으리라!"
츠으…!
그런 하후미린의 눈가로 번들거리는 색정(色情) 어린 동공은
어느새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탁록삼미후!
그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익었다는 말에 담긴 잠의(潛意)는?
이곳은 청하림이었다.
알지 못하나 능히 하늘의 숲이라 불리우는 천세의 신비지였다.
한 마리 천세잠룡이 웅비(雄飛)의 나래를 펴려 웅크려 있는 하늘의 숲.
과연 그 안엔 어떤 기경(奇景)이 펼쳐져 있는가?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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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