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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1일(월)
1. 하윤이가 일주일만에 학교에 왔습니다. 뉴스타임시간에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해줍니다. 코로나로 인해 갑작스럽게 등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속속 생겨납니다. 건강하게 다시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네요. 사진을 보니 하윤이도 그런가 봅니다.
2. 입춘, 우수, 경칩을 지나, 오늘부터 '춘분'이 시작됩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신비로운 일이 일어나고 이후로는 낮이 점점 길어집니다.
내친김에 날의 길이가 가장 긴 절기인 '하지'도 배우고, 다시,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도 배우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길어지는 '동지'도 배웁니다.
오늘부터 '구슬비' 곡조에 맞춘 절기노래도 부르기 시작합니다. 절기의 이름을 노래로 외우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러한 자연의 변화와 순환을 배우고, 또 그러한 자연의 순리에 맞추어 사는 삶에 대해 배우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낮이 길어지면 일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지요. 춘분은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진샘은 우리도 농사준비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번주에는 옷상 텃밭의 흙을 갈고 씨앗도 마련해서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기로 합니다.
3. 내일부터 농사 준비를 하기로 하고, 오늘은 지난 주 금요일에 비가 와서 못했던... 바로 바로 "참빛초등 둘레길 리본 만들어 달기"를 하기로 합니다.
진샘이 어디선가 큰 광목천을 가져옵니다. 이전에 다른 아이들이 그림을 그렸던 천을 재활용합니다.
천을 펼쳐 양쪽에서 잡고, 아이들이 한명씩 나와 길게 찢습니다. 가위나 칼을 쓰지 않는데도 천이 시원하게 찢어집니다. 진샘의 시범에 따라 아이들도 신나게 쫘아아아악~~~
4. 길게 찢은 천을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고 또 다시 반으로 접어 가위로 자릅니다. "시작이 반이야, 시작이 반이야!!" 긴 천을 반으로 접는 작업을 하면서 아이들이 마치 노동요처럼 읊어대던 소리입니다. ㅎㅎ..
완성된 천을 반으로 접어 한쪽에는 '부산참빛학교', 다른 한쪽에는 '초등둘레길'이라고 씁니다. 아이들마다 스무개씩 썼습니다. 아이들의 손길이 정성스럽네요.
5. 이제 완성된 리본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참빛초등둘레길 시작점에 리본을 하나 묶고, 이후로 아이들이 번갈아가면서 백보씩 걸을때마다 리본 한개씩을 나무에 묶었습니다. 아이들마다 일곱번씩 리본을 달았네요.
산길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아이들에게 사탕도 주고, 나무이름도 알려주고 기특한 듯 바라봅니다.
참빛초등둘레길... 이제 찾아 걷기 쉽습니다. 혹시 학교 뒷산에 오를일이 있으면 참빛초등둘레길 리본을 한번 찾아보셔요~~
3월22일(화)
오늘은 겨우내 묵은 옥상 텃밭을 재정비하고 밭을 갈기로 합니다. 진환이가 묻습니다. "밭을 갈다니... 어떻게 갈아요?"
진샘이 시범을 보입니다. 호미와 모종삽으로 흙을 갈아엎으며 위 아래 흙을 섞어주고, 뭉친 흙은 부드럽게 풀어줍니다. 흙안에 있는 돌이나 불순물들을 골라냅니다. 작년에 심은 작물의 흔적들은 흙으로 덮어줍니다.
아이들은 입으로는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이 또한 놀이처럼 즐겁고 신나게 영차 영차~~ 무얼 심을까? 무얼 심을까? 합니다.
잠시 내가 다른일을 보고 오니, 분위기가 심상찮습니다. 옥상 마당에 물이 흥건합니다. 텃밭에 남아있던 작물에 물을 준 모양입니다. 진샘이 아이들을 엄하게 나무랍니다. 물을 주면서 아이들이 장난을 많이 친 모양입니다. 한동안 물 한번 안주다가 갑자기 그렇게 물을 쏟아부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항상 귀하게 여기면서 식물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해야한다고... 하하호호 낄낄대던 아이들 표정이 심각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지만, 아이들의 인격을 생각해서 차마 사진에 담지는 못했습니다. 농사를 지을때 가져야할, 정성스러운 손길과 마음에 대해서 배우기를 바라는 진샘의 마음이었겠지요.
4층으로 돌아와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놀이모드로... 쾌활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아이들.. 중고등에만 있었던 나에게는 아직까지도 신기한 모습입니다.
3월23일(수)
1. 어제 오후에 진샘이 PCR검사를 받았습니다. 만약 양성이 나온다면 오늘부터 학교에 못오십니다.
오늘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옥상 텃밭에 심을 씨앗을 사러 구포장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초등아이들은 여덟시 30분이 되기도 전에 등교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 아홉시까지 그 삼십분을 얼마나 열정을 다해 노는지... 그런데 오늘 그 시간에 아이들이 시무룩하니 힘이 없어 보입니다. 진샘이 안계셔서 그런가봅니다.
애들 기운을 북돋아 보려고 애를 써봐도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심란한 마음에 나도 강당 바닥에 풀썩 앉았는데..
"진샘이다~~".. 아이들이 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안도하는 마음과 반가운 마음이 밀려들면서.. 아이들도 내마음과 똑 같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에 대해 새삼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포시장에 갑니다. 학교차를 타고 구포시장에 갔습니다. 오전인데도 사람이 제법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꼭 사자고 한 '옥수수'씨앗을 비롯해 몇가지 씨앗과 씨감자를 사고 돌아오는데,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납니다.
아침마다 숫자세기를 해서 모아둔 돈이 제법 되니, 그 돈 중 일부로 맛있는 것을 사먹자.... 진샘이 아무리 아이들을 구슬러도 넘어오지 않습니다. 절대 그돈은 쓸 수 없지만, 맛있는 것은 먹고 싶어요.. ㅎㅎ
결국 진샘이 져주어습니다. 시장에서 바로 튀겨 파는 꽈배기와 고로케를 사주셨습니다. 구포역 쪽으로 한바퀴 돌면서 구경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진샘이 구포시장에서 계절탁자에 올릴 '수선화'를 사셨네요. 참 예쁩니다.
2. 오후... 맨발동무도서관에서 하는 '책읽기 수업'입니다.
3월24일(목)
1. 아침마다 반복되는 리듬활동.. 자칫하면 아이들이 지루해할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실상을 보면, 아이들은 반복하면서도 매번 어제와 다르게 즐기고 배우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좀더 흥미를 가지고 도전할 수 있도록.. 교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겠지요.
그러고보니, 진샘의 그런 시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강당을 돌며 숫자세기를 하는 시간이 날이 갈수록 길어지고 아이들은 이제 여간해서는 쉽게 틀리지 않습니다.
이번주부터 진샘은 숫자를 세는 사이 사이에 틀린 숫자를 외쳐 아이들을 헷갈리게 만들기도 하고, 숫자를 세는 동안에 공을 던져서 누군가 받으면 계속하고 받지 못하면 거기까지만 인정해주는 방해작전을 시작하셨네요. ㅎ
2. 텃밭 정비도 끝냈고, 씨앗도 샀지만, 파종도 다 때가 있으니...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오늘은 지난 주에 했던, 마을탐색과 지도그리기를 마무리합니다.
오늘은 지난주보다 더 멀리 갑니다. 학교에서 구민운동장을 둘러 화명생태공원까지 갑니다. 물론 걸음수를 세면서 갑니다.
지난 주에 빠졌던 하윤이까지 다섯명이 함께 공동작전으로 진행하기로 합니다.
갈길이 멉니다. 아이들은 만단위까지 예상하면서 역할을 나눕니다.
하윤이와 세욱이가 하나에서 열까지를 계속 반복하고, 우리의 반장 진환이가 양손의 열개손가락을 이용해 십단위와 백단위를 셉니다. 석환이가 천단위를 우영이가 만단위를 세기로 합니다. 아무리가도 만단위까지 나올것 같지 않자 우영이가 하윤이와 세욱이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길이 멀다보니 중간 중간 헷갈려서 다시 세기도 하고, 뒤에서 따라가다보면.. 한번씩 아이들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합니다. 뭔가 서로에게 불만이 생겨 한명이 삐친 표정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명은 울그락불그락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멈춰서는 경우가 여러번 있지만, 어떻게든 자기들끼리 문제를 조율합니다.(진샘은 관찰은 하되, 가능한한 최소한으로만 개입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걷기시작하면 또 언제 그랬냐는듯이 함께합니다. 마침내 구민운동장을 지나 화명생태공원에 도착해서 걸음수를 기록하고.. 또 뛰어놉니다.
오후에는 지난주에 걸었던 길과 오늘 걸은 길을 모두 넣은 지도를 그렸다고 합니다. 제법 넓은 범위의 우리 동네 지도가 그려졌습니다.
요 다섯명은 이런 모양으로 모여 앉기를 무척 좋아하네요. 무얼 하는지 궁금해 위에서 보니 그냥 막 땅을 파고 있어요.
3월25일(금)
1. 오늘은 전일제 수업입니다. 화명수목원까지 걸으며 쑥을 캐고 진달래꽃을 따기로 합니다. 쑥으로 털털이랑 튀김도 만들고 진달래꽃잎으로 화전도 구워먹기로 했습니다.
월요일에 달아놓은 '참빛초등둘레길'리본이 잘 있는지 확인도 할겸, 언제나 오르는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난 월요일보다 진달래꽃이 훨씬 많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할때와는 달리, 진달래꽃잎을 따는 일이 만만하지는 않네요. 높은 곳에 있거나 가파른 낭떠러지 가까운 곳에 있거나...
그러다보니 길과 가까운 곳에서 진달래나무를 만나면 우르르 달려가 꽃잎을 땁니다. 꽃술을 떼어내고 맛을 보기도 하고, 꽃잎 모양을 한참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참 예쁜지.. 집에 갈때 가져갈거라고 욕심을 부리는 아이도 있습니다.
양지바른곳에 앉아 쑥도 캐고 꽃잎도 따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더 오래걸려 수목원에 도착했네요. 점심시간에 늦어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2. 드디어 요리가 시작됩니다.
진샘은 평소대로 점퍼를 입고 있다가 아무래도 유니폼이 주는 느낌이 있으니... 하면서 앞치마를 하셨습니다. 처음 보았습니다. 진샘이 앞치마를... ㅎ
아이들은 예전에 혹은 집에서 해보았다고 하면서도.. 처음 해보는 아이들처럼 신나고 즐겁게 화전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쑥야채튀김을 만드느라 아이들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아이들이 다 만들어진 튀김과 화전을 도시락에 담아가면서 엄청 좋아했다고 합니다.
전일제를 하는날, 빈도시락을 가져와서 자기들이 만든 음식으로 채워갔으니.. 기분도 좋고 뿌듯했을것 같습니다.
눈으로 입으로 맛있게들 맛보셨겠지요?
진샘은 내년에도, 혹은 더 세월이 흐른 후에도 아이들이 지금을 생각하면서 봄이되면 진달래꽃 화전을 만들어먹고 싶어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한주를 보내며>
교과서도 시험도 없는 참빛학교에서 교사는 무엇으로 어떻게 아이들과 만나야할까? 우리학교에는 '삶교과'가 있습니다. 직면한 삶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각자의 배움을 일으키고 얻는... 그런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제안과 내용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삶을 직면하게 할까? 참빛 교사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됩니다. 연구도 하고 연수도 받고 고민도 하고 토론도 하고..
그런 고민중에 언젠가 진샘에게 물었습니다. 진샘은 삶교과 구성을 위해서 어떤 것들을 주로 참고하고 염두에 두는지..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
진샘이 본인의 경험으로 말해준.. '놀이'로, '자연'으로, '발달론'으로.. 이런것들이 실제로 수업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어떻게 그런 것들이 종합되고 있는지.. 올해 진샘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실제로 발견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사실 3월 내내 아이들은 자연과 함께 놀고 있지요. 그런 과정 속에서 진샘은 끊임없이 아이들을 관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3,4,5학년이 함께하는 반에서 발달에 따른 아이들의 차이를 진샘이 그처럼 섬세하게 발견하는 것은 결국 끊임없는 관찰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 바탕에 발달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함께하겠지요.
그렇다고해서 발달론이 아이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것을 참고로 아이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지 않겠나 싶습니다.
진샘은 작년에 하루 5천보도 채 걷지 못했는데, 올해는 거의 매일 2만보를 넘게 걷는다고 합니다. 저도 덕분에 많이 걷습니다. 때로는 아이들 뒷꽁무니를 따라가느라 숨이 찰때도 있지만, 심신이 더 많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 좋습니다. (끝)
첫댓글 일주일 내내 집안에만 갇혀있다가 진달래꽃을 보니 이제 정말 봄이구나 싶습니다
철따라 배우며 자연의 흐름과 우리 몸의 흐름과 앎의 흐름을 조화롭게 맞춰가면서, 하늘과 땅의 리듬을 우리 몸으로 회복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주간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