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귀해 수출도 못 하고 한국에서만 먹는다는 한국 채소
2022. 12. 10. 19:02
지난 번에 종자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일본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할 '루비로망'이라는
포도는 한 송이당 1,400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최고급 포도 품종이지만, 실수로 품종보호 등록 시기를 지나
로열티를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잘 키운 종자 하나, 열 제품 안 부럽다고 했는데, 일본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일은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국이 개발한 세계 시장 점유율 100%를 기록 중인 '상추'가 하나 있습니다.
한국인이 개발한 이 상추는 일반 상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효능을 가진 소위 '슈퍼 상추'지만, 아직 외국인들은
구경도 못 해 봤고, 어쩌면 평생 시식은커녕 구경도 못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어떤 상추일까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라는 말이 관용어구처럼 사용될 정도로 한국인의 대표적인 소울푸드인 삼겹살은 남녀노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 먹어도 맛있는 음식입니다. 지글지글 불판에 잘 익은 삼겹살 한 점을 상추에 싸서
파절임과 마늘을 얹어 먹으면 세상 이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에 소주 한 잔까지 곁들인다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보양식이 따로 없죠.
그런데 삼겹살과 마치 짝이라도 되는 것처럼 항상 같이 먹지만, 그동안 삼겹살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채소가
바로 상추입니다. 마늘이야 '재배되지 못했다면 산삼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는 말로 위로받지만, 상추는
너무 평범한 채소였기 때문일까요? '식곤증이나 불러오는 채소' 정도로만 인식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상추라는 채소가 누군가에게는 수천만 원을 주더라도 고치고 싶은 질병의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바로 불면증 환자들인데요.
최근 한국에서 '식곤증이나 불러오는 채소'에서 착안해 완전히 새로운 상추를 개발해냈습니다.
바로 '흑하랑'이라는 상추인데요.
매년 5월만 되면 흔히 "졸음운전을 조심해야 한다"라며, "운전 직전에는 가급적 상추 섭취를 조심하라"라는 조언이
소재처럼 등장합니다. 상추가 잠을 불러오기 때문인데요. 잠시 언급했던 소울푸드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먹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식사 후 졸음을 경험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상추에 함유된 '락투신'이라는 성분 때문입니다.
상추의 줄기를 꺾어 보면 하얀 액즙을 볼 수 있는데, 이 액즙에 락투신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분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진통 완화 및 심신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 졸음을 불러오게 되는 것인데요.
물론 모든 상추가 그러한 것은 아니고, 상추 품종마다 함량은 다릅니다. 일반 상추는 1g당 0.03mg의 락투신을 함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서 개발된 '흑하랑'이라는 상추는 락투신 함량을 무려 124배 늘렸습니다.
천연 불면증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기도 한 이 상추를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불면증 경험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동물 세계에서 가장 진화했다는 인간은 하루 평균 7시간을 잡니다.
하루의 약 1/3의 시간을 잠으로 소비하는 것인데, 이를 전체 인생으로 환산해 본다면 100세 인생 중 약 30년은 잠을 자며
보내는 겁니다.
깨어있는 나머지 시간에 우리는 돈을 벌고, 사회 활동하고, 식량을 얻고, 자손을 번식하는데요. 잠자는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잠만 잡니다.
그럼에도 그간 잠이라는 행위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지만, 잠은 우리 인간의 뇌와 신체 건강을 재충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충분히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다음 날 하루에 심각한 영향을 받습니다.
병든 닭처럼 골골대기 마련이죠. 그래서 숙면을 만병통치약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지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고 횟수가 늘면서 남들은 모르는
고통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수면제 등의 의약품을 처방받지만, 먹으면서도 늘 마음이 찝찝합니다.
혹 화학약품에 기대다 건강을 해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지만, 너무 괴로워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는 것이죠.
저 역시 한 때 박사 논문을 쓰느라 과도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데,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30분도 못 자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그런 날이 반복될수록 삶이 피폐해지는 느낌이었는데요. 수면제는 무서워서 술에
의존하거나 소위 잠을 잘 오게 한다는 소식에 상추를 의도적으로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힘들어하던 시기에 이미 전남 농업기술원에서는 부작용 없는 불면증 퇴치 상추가 개발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주인공 '흑하랑'인데요.
이 상추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인물은 전남 농업기술원의 '장서우' 연구원입니다.
그녀는 이 상추를 개발하기까지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고 밝혔는데, 어쩌다 이 상추를 개발하게 된 것일까요?
그녀는 어릴 적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고 했습니다.
"여름에 상추를 따서 먹으면 줄기 부분에서 하얀 진액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나는 쌉싸름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라는 말에,
그 하얀 진액에 무언가 기능 성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연구를 시작했다고 했죠.
그 기능성을 차별화시켜 품종으로 만들면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상추 연구를 시작했는데, 2011년부터
267개 품종의 상추를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8년간의 연구 끝에 '흑하랑'을 발굴해 2016년, 품종보호출원을 거쳐 2019년,
최종 등록을 마쳤죠.
이렇게 품종보호를 위한 노력을 경주해하는 것은 2010년 채택된 '나고야 의정서'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컸습니다.
2010년 10월,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된 제10차 식물 다양성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생물자원을 활용하며 생기는 이익을
공유하자"라며 지침을 담은 국제협약을 채택했는데요. 말이 어렵습니다만 쉽게 말하면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국가는
그 자원을 제공하는 국가에 사전 통보와 승인을 받아야 하며, 유전자원 이용으로 발생하는 금전적, 비금전적 이익은 상호
합의된 계약 조건에 따라 공유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즉, 외국 생물 유전자원을 이용하려면 로열티를 제공하라는 겁니다.
이 의정서는 누군가에게는 생물자원 보호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반대로 제약업계나 화장품 업계는 로열티와 특허료 지급
부담이 늘어나는 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에 장서우 연구원은 나고야 의정서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토종 고유 식물에 대한 지식재산권 확보를 위해 '흑하랑'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요. 일반 상추와 흑하랑의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졸음을 유발하는 성분인 락투신 성분이 일반
상추에 124배 많은 3.74mg 함유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즉, 수면 유도를 위해 락투신 함량을 증가시킨 기능성 상추인 것이죠.
일반 상추를 먹고 식곤증이 온다면, 흑하랑 상추를 먹으면 잠이 쏟아지게 되는 것인데요.
일반 상추에 비해 월등히 쌉싸름한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흑하랑'이라는 이름도 '검을 흑', '여름 하', '최고 랑'을 써서
"여름 상추의 으뜸이 되어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흑하랑 상추는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남 농업기술원은 2019년, 품종보호출원을 마친 후
농가에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현재는 전남 화순과 함평의 시범 농가에서 재배 중에 있습니다. 실제로 흑하랑을 재배한 농부는
인터뷰에서 "낮에 밥하고 흑하랑 상추쌈만 싸서 먹고, 너무 졸려서 몇 시간 자고 일어났다."라고 자체 임상결과를 밝히기도
했죠.
올 2022년, 흑하랑은 총 2개의 시범 농가에서 재배되어 약 100여 톤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워낙에 기능성이 강조
된 특별한 상추이다 보니, 아직 수출은커녕 국내에서도 함부로 맛볼 수 없습니다.
작년 2월, 전남 농업기술원이 현대백화점 본점과 협약을 체결해 숙면 기능성 프리미엄 상추로 100g 당 2,500원에 납품되기도
했으나, 시범 농가가 재배한 상추는 대부분 가공식품 업체에서 티백 차나 양갱 등 수면 건강식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특히 티백 차의 경우 필요한 유기인증인 FDA 승인 등을 거쳐 아마존에 상품이 등재되어 미국으로 시범 수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장 연구사와 전남 농업기술원은 가공제품 시장이 커져도 농산물의 특성상 원료 납품 농가가 실질적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이 적다는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기술원은 가공업체와 시범 농가를 연결해 주고 시범 농가가 주도적으로 납품량과 단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농가들이 시장을 주도해 일정 소득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요. 혹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계신
분들 중 수면제 등 화학약품이 아닌 상추를 이용해 만든 제품으로 도움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흑하랑 굿드림티'나 '흑하랑
양갱'을 섭취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