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퀘렌시아를 즐기자
임성욱
(시인/사회복지학박사)
갑자기 추워지고 있다. 한파주의보까지 내렸다. 해갈이 필요한 시기에 너무나 연약한 비만 몇 방울 내렸는데 그 비가 한파를 몰고 온 것 같다. 몇 년 전, 어느 식당에서 만났던 한 노인. 어디서 많이 본듯했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도 오늘처럼 강한 바람이 불었다. 추웠다. 그래서 곰탕집에 갔는데 거기서 본 것이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그 주인공도 생각났다. 다름 아닌 광주 시내 모 대학병원에서 과장까지 지냈던 의사였다. 이 이야기를 지인에게 얘기했더니 심히 충격적인 말을 했다. 치매로 고생하다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인간사 모를 일이다.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때문에 의식이 있을 때 올바르게 살아야 할 것이다. “돈은 건강할 때는 자산이라 하지만 아픈 뒤에는 유산이라 한다.”는 그 누군가의 말. “전반전은 나보다 높은 코치의 말에 따르지만 후반전은 나의 명줄을 잡고 있는 의사의 명령에 따른다.”는 말과 함께 마음 깊이 새기면서 살아가야 하리라. 그런데 일부 정치인들을 비롯한 험담을 좋아하는 엽전들은 이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주변인을 험담해도 자신의 격이 올라가지 않는데도. 오히려 험담의 대상자를 올려주고 자신은 추락해 갈 뿐인데도 말이다. 오물 덩어리의 삶을 줄곧 살아온 것을 주변 사람들이 잘 알기에 더더욱 그렇다. 하기야 이를 인지할 정도라면 추한 언행들을 일삼겠는가. 그러니까 엽전들이지. 스페인어에 퀘렌시아(Querencia)라는 말이 있다.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장소라는 뜻이다. 요즘에는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나만의 안식처’란 뜻이다. 행복과 불행 자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흘러가는 시간들. ‘인간’이라기보다는 한 쪼가리의 기계 부품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어떨까. 무척 공허하지 않을까.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어루만지면서 삶을 영위해 가야 할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제3의 공간’이 아닐까. 비교적 잘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집단들은 대부분 제3의 공간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져봄이 현명하리라. 나만의 또는 우리의 파라다이스를 위해.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도 이를 그의 저서 ‘정말 좋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에너지 충전을 위한 별도의 장소라 했다. 제3의 공간이란 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느끼기에 편한 곳이면 된다. 언제든지 갈 수 있고, 떠날 수도 있어야 한다. 구차한 격식도 없어야 한다. 물론 직분의 높낮이도. 이런 공간은 미술관・극장・공연장 등 각종 문화관은 물론 커피숍, 술집, 갈대밭, 숲속, 산, 바닷가, 낚시터, 외딴섬일 수도 있다. 본인이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면 그 어디든지.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여행의 진한 향기를. 삶터의 경계선을 지나면서부터 자유의 미를 눈과 마음에 담았던 추억 한두 토막에 스민. 갑자기 떠오른다. 북풍한설 휘몰아치던 춥디추운 어느 겨울날. 칼바람에 서로 몸을 부대끼며 상대방을 지켜주던 갈대들의 볼 빨갛게 물들어가는 사랑의 노랫소리가. 달빛서린 잔잔한 호수의 물결 위로 은은하게 피어오르던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선율도. 이런 추억에 젖어 들 수 있는 마음이라는 공간 자체도 역시 퀘렌시아가 아닐까. 그렇다. 마음껏 젖어보자. 그리고 행복하게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