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에 유용하거나 삶에 질을 향상시키는 사고의 단편들은 계획된 노력보다는 오히려 우연히 전개되는 일상 속에서 생산된다. 13살 조카녀석은 금요일밤 놀이공간 제공의 숙박비인듯 두둑한 무료영화쿠폰을 가져왔다. 그 덕에 보게 된 두 편의 영화가 관상과 신세계이다. '관상'을 본 뒤, '신세계'를 본 것은 그저 영화 나열목록에 열거된 제목의 선택이었지만, 영화의 잔상을 그저 버리기에 아쉬운 그 무언가를 이야기를 만들어주었다.
관상의 키워드는 생김새에 따른 길흉화복의 인생이다. 영화는 병약한 문종이 죽기 전에 아들 단종을 위해 역모의 관상을 가진 자들을 제거할 계획으로 전개된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팽팽한 힘겨루기는 천재관상가 내경을 먼저 만난 김종서에게 먼저 유리하게 보인다. 김종서는 내경을 통해 수양대군이 역모를 일으킬 관상의 소유자임을 확인하고 수양을 죽이려 계획하지만 이를 알아챈 한명회는 수양의 관상을 내경이 볼 수 없게 위장한다. 결국 문종이 죽은 뒤, 수양의 관상을 보게 된 내경은 김종서에게 그의 위험함을 알리고 단종에게 수양을 죽일 계획을 세우게 한다. 그러나 내경을 이용하고자 하는 한명회의 속임수로 내경의 아들은 두 눈의 시력을 잃고 이것을 알게 된 내경의 처남 팽헌은 수양에게 내경과 조카의 목숨을 담보로 김종서의 계획을 토설한다.
영화 관상의 키워드는 상이기보다 눈이다. 대상의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의 성격과 앞 날의 일까지 알 수 있는 것이 관상이지만, 실상 관상을 이용해서 자신의 앞날을 유리하게 전개하고자 하는 관상자의 눈이다. 그리고 관상자의 눈은 관상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하는 마음과 같다. 문종과 김종서는 굳이 수양의 관상을 알지 않았더라도 그가 어린 단종의 보위를 위협하는 자라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엄밀히 영화의 내러티브를 살펴보면 이 마음은 문종의 마음도 단종의 마음도 아닌 김종서의 마음이고, 내경의 마음이다. 만약 내경을 구한 권력이 김종서가 아닌 수양이었다면 영화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역모의 관상은 수양의 얼굴이 아닌, 김종서의 얼굴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 관상의 주제는 관상의 여러 종류처럼 꽤나 다양하다. 파도치는 바닷가에서 "사람의 얼굴을 읽을 수 있지만 세상을 읽지 못한" 내경의 고백과 애시당초 관상에는 마음이 없었던 "이미 된 왕을 왕이 된다고 말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수양의 고백에서 찾을 수 있다. 굳이 관상을 통하지 않아도, 현재의 모습이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주듯 미래의 모습을 위해 현재의 모습을 인위적으로, 부자연스럽게 노력하는 마음이 결국 현재의 불행을 가져온다. 수양대군은 역모의 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역모의 관상이었다면 왕위에 오른 지, 그렇게 짧게 보위에 있다가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적의 상은 죽어서도 참수형을 피하지 못한 어쩌면 4명의 왕들의 권력을 이용한 한명회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어본 신세계이다. 과거의 권력과 현재의 권력이라고 해도 무방할지 모르지만 주인공이 모두 이정재임에 요즘들어 중년의 이정재란 배우가 마음에 든다. 사내들만 득실거리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욕으로 시작되서 욕으로 끝나는 영화, 선정적이지 않지만 외설적인 제스처가 난무하는 영화, 더욱이 신세계는 조폭영화이다. 왜 늦은 새벽, 좋아하지도 않는 조폭영화를 보고 있는 것일까. 줄거리는 모두 생략이다. 그런데 단 한 장면이 내게 와 닿는다. 죽음의 순간을 앞둔 정청이 이자성에게 "이제 선택해라" 이자성(이정재)는 조폭에 심어놓은 경찰의 스파이다. 스파이는 무슨 쁘락지이다. 그의 삶은 경찰이기보다 조폭이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늘 경찰이었다. 그런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정청은 이미 그의 브라더 이자성이 경찰 쁘락지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경찰 쁘락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청은 이자성을 단지 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고 노력한다. 그 마음이 이자성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어쩌면 관상에서의 수양대군의 케릭터는 신세계에서 정청이다. 그들은 현재와 미래는 중요하지 않다. 관상이나 배신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폭 영화는 너무 잔인하다. 그렇다고 관상은 잔인하지 않았던가...끝~~~기타 고치러 가야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