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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 산행후기/완주 스크랩 금북정맥 2구간
140 도름바우 추천 0 조회 80 11.05.21 23: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금북정맥 2구간:

산행일시 : 2011년 5월 1일 일요일 맑음.(황사) 

참가자: 권오훈.최남영.정진구.김정태.박재윤.정철교.이채훈.김순길.손병희.   

산행구간 : 옥정현 ~ 470.8  ~ 배티고개 ~ 서운산 ~ 395.2 ~ 엽돈재 ~ 459.1 ~ 부수문이재 ~ 524.4 ~ 우물목고개 22.25㎞         8:30분후미기준

시간대별 진행사항.

05:00.경주 황성공원 출발.

08:40.옥정재도착

08:45.옥정재 2구간 (산행시작)

08:55.409.9봉 삼각점첫번째헬기장

09:45.470.8봉 삼각점 호화헬기장

10:12.장고개표지판 ?

10:42.연안이씨 숭모원

10:45.중앙콜프장.장고개

11:25.배티고개

11:45.배티성지갈림길

12:05.석남사 갈림길

12:18.서운산정상

12:40.중식.서운산헬기장

13:12천룡사갈림길.나무이정표

14:14.엽돈재

14:53.부소산(459.1봉)

15:19.부수문이재

16:29.위례산(524.4봉)

17:00.옛 우물목고개

15:15.우물목고개(산행완료)

17:30.우물목고개 출발

21: 30.경주도착(황성숯불)

 

 

 

 

 

 

 

 

08:40.옥정재(玉井峙:390m) 출발

충북 진천과 경기도안성을 이어주는 옥정재는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러 가거나 안성장을 갈 때 이용했던 곳으로 지금은 587번 지방도가 지난다.

 차량의 행렬이 수시로 이어지는 것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음이다.

 

올곧고 바르게 개척해 나가자』는 의미의충청북도의 마스코트 고드미와 바르미

 

 

2구간 산행들머리

 

08:53.첫번째헬기장

                     08:55.무 409.9봉

 

 

 

 09:47.호화 헬기장 앞에서 묵언님

 

 

 09:27.철탑지나  호화헬기장 가는중 동초님과 묵언님(황사가 점점 심해짐)

능선의 오른쪽 구암리에 남아 있다는 김유신 장군의 흔적은 이곳뿐만이 아니라

 

 진천군 전체에 걸쳐 곳곳에 남아 있는데 김유신과 진천은 어떤 관계에 있던 것일까.

  김유신은 이곳 태수로 있던 김서현과 만명 부인 사이에서 595년에 태어났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본디 신라에 합병된 가락국의 왕족이다.

신라의 왕족은 부모가 모두 왕족인 성골과 어느 한 쪽만 왕족인 진골로 나뉘는데 이들 성골과 진골이

다른 신분과 혼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김서현은 신라의 장군이기는 했으나

 엄연히 다른 신분에 속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왕족인 만명과 사랑을 하게 되고 이 사실을 안

 만명의 아버지는 이들의 사이를 떼어 놓기 위하여 김서현을 고구려와 맞닥뜨려 싸움이 그칠 새 없는

 이곳의 태수로 보내 버렸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이들을 떼어놓지 못하고 만명이 당시

 만노군이라 불리던 이곳 진천까지 도망을 쳐 사랑의 결실로 김유신을 낳은 것이다.

 

 

09:45.대한민국에서 산에서 가장 화려한 헬기장

470.8봉 정상에 화려한 헬기장이 하나 나타난다. 어느 산을 가더라도 헬기장들이

보도블럭에 잡풀들이 가득 차 있는게 대다수인데 여긴 착륙장에 아주 고급 강판으로

깔끔하게 처리해 놓고 관리도 잘되어 있다.

 

 

10:12.장고개(지도상장고개아님)수월회장님 멀리서 닭알(달걀.계란)이먹고싶다고 전화옴

 

10:28.장고개지나 중앙콜프장직전 계란시식타임

 

10:42. 연안이씨 숭모원(납골묘)

 

 

 .

10:45.중앙콜프장 순회도로.(건너편 계단으로 진행함)

 

11:04. 422.3봉

 

11:25. 배티고개(이치재:341m )

313번 도로가 지나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과 안성시를 넘는 고개로

이 지역에 배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치(梨峙)재라고 했고 그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재라 불렀다는 설과 조선시대 영조때 이 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백곡을 지나다 이 마을의 이 순곤이라는 노인이 이끄는 주민들에게 패한 뒤

다시 안성쪽으로 향하다 오 명황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했다고 해서 패치라고

불리다가 변했다는 설도 있다.

배티이티에서 ‘티’는 고개를 뜻한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티 대신 재나 고개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되고,

 그에 따라 티의 뜻이 불분명해지자 유의어 고개를 중복하여 배티고개로 부른 것이다. 배티배티고개

그 뜻은 같지만, 현재 배티는 마을 이름으로, 배티고개는 고개 이름으로 나누어 사용되고 있다.

고구려백제의 옛 지명에 ‘영(嶺)’·‘현(峴)’계 지명이 여럿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개는 일찍부터 지명에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백곡면 양백리 노고산 아래에 있는 배티마을은 원래 아랫말·중간말·꼭대기말로 이루어졌으나 현재 중간말은 없어졌다.

배티마을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교우촌으로, 이곳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20~1830년대 무렵이다.

1857년 무렵에는 배티절골 주변의 양백리 삼박골, 용덕리 용진골·정삼이골, 백곡면 명암리 발래기·명심이,

백곡면 사송리 지구머리, 이월면 신계리 새울, 진천읍 지암리 지장골, 문백면 구곡리 굴티 등에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배티는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신도 30여 명이 관군에게

학살당한 곳으로 지금은 성역화하여 순례지가 되었다. 윤의병(尹義炳) 바오로

신부의 박해 소설 『은화(隱花)』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진천군지 1994 인용)

 

생거진천이 무슨 뜻인가..   아마도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死去龍仁)
즉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말에서 유래된 듯 한데..

 


언제부터인가 진천지방에는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死去龍仁)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 하나는 옛날에 진천과 용인에 추천석이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살고 있었다. 진천의 추천석은 양순하고 농사만 짓고 사는 사람이었던 반면 용인의 추천석은 부자로 살면서 심술이 많아 동네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고 한다. 염라대왕이 용인의 추천석을 괘씸하게 여겨 사자(使者)로 하여금 잡아오도록 하였으나 사자가 실수로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와 다시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이미 장사를 지낸 후인지라 용인의 추천석을 잡아들이고 그 시체에 진천 추천석의 영혼을 넣어 환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다시 환생하여 용인에서 살았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옛날 한 여자가 용인으로 시집을 가서 아들 낳고 단란히 살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진천으로 개가하여 아들을 낳고 평화롭게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용인 아들이 성장하여 진천의 어머니를 모시고자 하였으나 진천의 아들이 극구 반대하여 결국 관가에 소장(訴狀)을 내었다. 관가에서 판결하기를 "너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동안에는 진천에서 살고, 죽은 후에는 용인에서 모시고 제사도 모시도록 하라"고 하여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은 후에는 용인으로 간다는 전설인데, 위 두가지 이야기가 모두 근거가 없는 전설일 뿐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진천 지방은 옛날부터 평야가 넓고 토지가 비옥하여 산물이 풍성하고, 한해와 수해가 별로 없어 농업경영이 순조롭고 사람들의 인심이 좋아 살만한 곳이기에 生居鎭川이라 하였고, 용인은 산세가 순후하여 사대부가 (士大夫家)의 묘소가 많기에 死去龍仁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약 80년전에(1932) 만든 진천군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는 常山誌 土産편에는 조선시대 진천에서 년간 6만여석의 쌀을 생산하였다는데, 당시 전국통계가 단보당 평균 수확량이 9말3되에 비해 진천은 11말5되나 수확되어 곡향(穀鄕)으로 유명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의 古蹟條에는 동호(東胡)가 조선 중종조 이전부터 관개용 저수지로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11:45.천주교 순교자모입구

 

12:03.석남사와 서운산정상 이정목(10분 가격으로 3개있슴)

 

12:15.서운산정상 삼각점

 

 

정 진구씨

 

12:18.손병희선생님과 나(도름바우)

 

서운산 (535m).경기도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547m이다. 경기도의 최남단인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을 경계로 차령산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성시에서 남쪽으로 약 12km 떨어져 있다. 아담하고 바위가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를 가졌다. 4월초가 되면 계곡과 능선에 진달래가 피고 5월이면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청룡사, 석남사 등의 산사와 청룡사 대웅전(보물 제824호), 청룡사 삼층석탑, 명부전, 관음전 및 조선 현종 때 주조한 무게 약 5톤의 동종 등의 문화재가 있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년)에 명본국사가 대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로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중건하면서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여 산 이름은 서운산, 절 이름은 청룡사로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 때에 홍계남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던 산성이 있는데, 반면식 토축산성으로서 서쪽 능선에서 남방향으로 해발 535m에서 460m 지점까지 펼쳐져 있다.

 

서운산정상(소옹님사진)

 

소옹님촬영

 

서운산 헬기장에서 점심(소옹님사진)

 

 

 

 

 서운산입구에 대간 정맥 회원모집 광고를 다는 산악회

 

 

12:23.서운산 엽돈재이정목

14:14.엽돈재(323m).

34국도가 여기를지나며 충북진천의 백곡면과 경기도안성시의 서운면.충남천안시의 입장면이된다

엽돈재는 다른이름으로 엽전재(葉錢峙).엽둔재(葉屯峙).율둔치등으로 불리었다.정확하지는 않지만 산세로봐서 아마도 산적들이 진을치고 있고 보부상등 상인들이 이재를 넘을때 산적들에게 통행료로 엽전을 지불한데서 지명이 유래하지 않았을까ㅡ유추해본다.

 

 

14:17.도로에도 등산이정목도 생거진천이 제일우선인가

 

14:28.만뢰지맥 분기점

14:52.부소산 삼각점

 

14:53.부소산 (소나무산)(459m)

15:19. 부수문이고개(279m) 진천입장면양대리에서 북면운용리로넘어가는 1차선 포장도로다. 이고개는 옛날부터 고개 마루턱에 서낭당이 있어 서낭댕이고개라 하였으며 부수머리고개 또는 속칭서낭댕이라고많이 불리워진다고도하고 부소문령이라고도하는데 백제시조 온조왕이 위례성에 도읍했을때 이곳에 부소문을 달았다고하며 소나무산(부소라고함) 고개의 뜻을 니녔다고함 

 

 

 

16:24.위례산성 돌탑

 

 

16:28. 위례산성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운용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48호로 지정되었다. 위례성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한 산성이다. 성내 면적은 5,700평이고, 성채의 길이는 900m에 이른다.

위례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처음으로 도읍지를 삼은 곳인데, 하북위례성과 하남위례성으로 나뉜다. 건국한 지 13년 만에 하남위례성으로 옮겼다고 전하므로 처음에는 한강 북쪽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천도한 하남위례성의 위치에 대해 전라북도 익산, 경기도 광주, 충청남도 직산의 세 곳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삼국유사》에는 충청남도 천원군 직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근의 학설에는 이곳 충청남도 직산이 가장 유력한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근거는 475년 한성이 함락된 뒤 문주왕이 남쪽으로 피란하여 이곳에 머물렀던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례산성은 전쟁이나 위급한 상황에 소용된 것으로 보인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이 산성에 1,690척의 성이 있고, 우물이 하나 있다고 되어 있다. 또 BC 5세기경 이곳에서 경기도 광주 지방으로 도읍지를 옮긴 것으로 보기도 한다.

16:33. 지나온 위례산성과 가야할 우물목고개 이정목

16:56.봉분없는 무덤

 

17:00.옜우물목 고개 :고개마루턱에 우물이있어 우물목고개라 한다

17:07. 먼저 도착한 박서방님이 후미의손 선생님 마중나와 함께가고있습.도와 주셔서 고맙워요

 

17:16.묵언님이 특별히 준비해 오신 돌문어와 진천막걸리로 오늘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보냅니다

오늘 첫 개시한 불통 3Kg짜리

 

17:32.우물목고개(33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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